〈 38화 〉베레시트 계획
타브하의 요원들에게 연행되어가는 주인공군을 뒤로한 채 반쯤 마신 음료병을 정비원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일단 급한 문제는.. 현장 지휘관이 물러가자 이쪽을 향해 무섭게 다가오는 류하연이다.
"묘월씨.. 오퍼레이터를 부탁해놓고 .. 중반부터는 아예 통신도 꺼놨어.."
그녀가 다가오자마자 바로 질책이 시작되었다.
"그으건.. 초보군을 돕느라.."
"나보다 그 사람이 더 중요해?.."
앗 이런 질문 곤란한데..
마치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에 대한 질문을 들은 기분이다.
사실 류하연이나 주인공군이나 둘 다 내 자식 같은 느낌이라 누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이럴 때의 정답은 언제나 이거다.
"당연히 하연씨가 더 소중하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게 베스트 답안이다.
"그.. 그래?"
역시 이 대답은 언제나 올바른 대답이었다.
방금 전 까지 저번 도서관에서의 모습을 보여주려던 그녀는 내 대답에 만족한 것인지 조금 태도가 누그러진 것 같았다.
물론 둘이 한 자리에 있을 때 물어보면 그 때는 정말 엄청난 고민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보다.. 시간이 좀 늦었는데 괜찮겠어요?"
지금 시간은 19시 25분.
그녀가 지내는 학교 기숙사의 외출 시간은 20시 까지다.
기숙사에서 지낸지 삼일도 안됐을 텐데 벌써 통금을 어기긴 좀 그렇겠지.
"시간이.."
그녀도 시간을 보게 되자 조금 초조해진 듯 했다.
문제를 앞뒀더라도 당장 자신의 일이 걸린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기 마련이지.
"기숙사까지 보내드릴게요. 오늘 데이트는 미안했어요.. 다음엔 꼭 같이 놀러나가요."
오늘처럼 일이 아닌 진짜 데이트로.
"..알겠어 묘월씨."
그녀는 다행히 내 설득에 넘어가주었다.
---
"그럼.. 내일 학교에서 봐."
타브하의 요원에게 부탁해 류하연을 먼저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타브하에서 정식으로 협력 공문도 나갈 테니 그녀가 곤란해질 일은 없겠지.
이제 남은 일은 기지로 연행되어가는 주인공군을 도와줘야겠지.
열 일곱짜리 애가 연행되어 가면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
베레시트 1호기는 워커에 의해 눕혀진 뒤 다시 위장 천막을 덮어씌운 후 트레일러로 옮겨졌다.
정보통제가 들어갈 테니 출격 기록에 대해 퍼지는 일도 없겠지.
- 위이잉..
기지까지 어떻게 돌아가나 고민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타브하의 일을 할 때 쓰이는 스마트폰.
발신자는 역시나 사령관이었다.
"네 사령관님."
'게이트가 열렸군요..'
"네. 제가 처리했어요."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서로 필요한 대화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전날 견학을 목적으로 내가 참가한 이유를 나름대로 파악한 것이겠지.
'도시의 손상도 경미. 차원수는 모조리 처치. 완벽합니다만..'
직접 튜토리얼에 나선 의미가 있었다.
원래 역 레일의 절반이 날아가는 대난투가 될 예정이었는데 주인공군과 둘이 협력한 덕분에 피해를 최대한 줄였다.
'1호기를 탈취한 소년.. 알고계셨던겁니까?'
사령관에게도 곧바로 보고가 올라갔나보다. 민간인에 의해 극비 사항인 1호기가 탈취되었었다고.
"글쎄요. 그건 저도 예상외라."
여기선 잘 몰랐다는 것처럼 넘어가주자.
'당연히 직접 타실 줄 알았습니다.'
"안돼요. 저에겐 이미 저의 투사님이 계신걸요?"
원작 시나리오 때문에 타지 않은 거지만 그럴싸한 핑계를 냈다.
"그리고 1호기의 교전 기록이 있는 편이. 위원회 분들을 설득하기도 좋지 않나요?"
내가 사도를 타고 오지 않은 진짜 이유 중 하나.
오늘의 전투는 타브하의 위에 있는 위원회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프로모션이었다.
위원회는 베레시트 계획에 대해 부정적이다.
왜 안정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케루브 대신 새로운 차원기를 생산 및 운용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의 전투로 홀로 10기를 격파했다고 보고가 올라가면 위원회의 평가가 달라지겠지.
'거기까지 생각해두셨을 줄이야.. 매번 놀라게 되는군요.'
"그래서 오늘 케루브의 교전 기록을 직접 보내드린거에요. 사령관님이라면 오늘 전투기록.. 은폐해주실 수 있죠?"
베레시트 계획의 속행을 위해선 내가 케루브를 타고 차원수를 일곱이나 잡았다는 사실은 은폐되는 것이 좋았다.
2세대 기체로 이렇게 킬 카운트를 올렸다는 보고가 올라가면 베레시트 계획은 당장 모가지다.
사실 쩌는건 케루브가 아니라 내 조종 실력이지만.
'알겠습니다. 오늘 전투에 나선 것은 그 소년과 1호기 뿐... 정말 괜찮겠습니까?'
"어제 용돈도 받았으니 괜찮답니다-"
내 격추기록을 모두 넘겨주는 꼴이 되었지만 이 정도의 전과는 아무렇지 않게 넘겨줄 수 있다.
그래야 지금 건조중인 2호기도 예산을 확정 받아 완성될 수 있을거니깐.
'감사합니다.. 조만간 다시 식사라도 어떠십니까.'
자세한 보고는 나중에 직접 듣겠다는 우리 둘 끼리의 약속.
"좋아요. 거기 제법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 사령관님 그 소년의 심문. 바로 진행하실 거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참관해도 될까요?"
'심문 담당자에게 전해두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러면 나중에 봐요."
- 뚝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고 기지로 돌아가기 위해 1호기의 운송작업을 마쳐가는 현장으로 다가갔다.
앗 저 차는.. 설마 여기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 군생활을 틈틈이 함께 했던 추억의 차량.
2와 1/2의 트럭.. 두돈반이었다.
부수 자재와 무장을 운송하기 위해 차출된 듯 했다.
운전병으로 보이는 병사는 담당 간부와 함께 베레시트의 운송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기지로 돌아가시죠? 합승해도 될까요?"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합승을 이야기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던 간부에게
베타니아의 ID 카드를 보여주니 얼굴이 새하얘져선 탑승을 허락해줬다.
---
오랜만에 타는 두돈반의 승차감은 여전했다.
이 거지같이 뻑뻑한 시트의 느낌. 덜덜거리는 승차감.
짐칸에 의자를 펼치고 타면 참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체구가 작아진 덕분에 굳이 짐칸에 타지 않아도 됐다.
"도착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역에서 사령부까지 도착했고 1호기는 다른 곳으로 이송된 것 같았다.
"고마워요. 조심히 가보세요."
사령부 앞에서 내려주고 떠나는 두돈반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 사령부의 건물로 들어갔다.
지금은 사령관의 방도, 작전 지휘실로 아닌 복도를 지나 안쪽 깊은 곳의 방을 향했다.
취조를 위해 마련 된 시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병사에게 ID 카드를 보여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 솔직하게 대답해. 어떻게 너가..
- 저는..
이미 방 안쪽에선 주인공군을 상대로 심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니깐 누가 들여보낸 거야?"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살짝 열고 들어왔는데 취조실의 매직미러 너머로 심문을 지켜보던 양복 차림의 수사관이 내 쪽을 돌아봤다.
"베타니아 입니다."
담당관을 상대로 ID 카드를 보였다.
"그놈의 특별 민간 협력자.. 정말 무적의 지위구만.. 쯧."
그는 이골이 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혀를 짧게 찼다.
확실히 너무나 편리하게 기지의 모든 안건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으니 미움을 살만했다.
"저 소년. 무언가 말하던가요?"
"아무것도.. 1호기를 훔쳤다는 사실은 인정하는데 전투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어."
- 차원기를 몰아본적도 없는 고등학생이 차원수 10기를 상대로 이겼다고? 솔직하게 말해. 어디 소속이지?
취조실 너머로 취조를 진행 중인 수사관은 전투기록이 담긴 레포트를 책상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주인공군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와 애 겁먹은 거 봐. 고작 열 일곱 짜리 애를 상대로 너무 인정도 없는거 아닌가.
물론 베레시트 계획을 위해 내가 킬 스코어를 은폐한 덕분에 취조가 더 험난해진 것 같았지만..
미안 주인공군 주로 나 때문이네..
지금 시간은 20시 45분.. 아직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네.
"저 소년의 취조. 제가 해도 될까요?"
"기지 시설을 점거하다 못해 취조까지 뺏길 줄이야.. 마음대로 해. 어차피 저 소년의 조사는 끝났다."
타브하의 차원기 개발부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겠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뭐지. 베타니아."
경계가 가득한 수사관의 시선.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요청을 전달했다.
---
취조실에서 심문을 진행하던 수사관이 나간 뒤 숨을 고르는 주인공군을 매직미러 너머로 지켜봤다.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의 각박한 심문은 정신적으로 힘들겠지. 아직 애잖아.
"후우.."
조금 숨을 가다듬고 취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있던 주인공군의 시선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너는..."
"또 만나네. 초보군."
책상에 같이 묶여있는 주인공군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궁금한 게 많지?"
계속 된 심문에 지쳐있던 듯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베레시트 계획의 백업을 위한 타브하 소속의 파일럿이야."
"파일럿.. 너가?"
수갑을 풀어주자 손목이 아렸던 듯 붉은 자국이 난 손목을 매만지는 그는 여전히 의심을 가진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긴 학교에서 같이 급식이나 먹는 여자애가 파일럿이라니 믿기지 않겠지.
"직접 봤잖아. 내 실력"
"그건 그렇지만.."
아까의 전투가 생각난 것인지 의심이 섞인 시선이 조금 거두어졌다.
"어른들은 너무하네. 좋은 일을 하려고 나선건데 이렇게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몰아붙이고."
사실 범죄자가 맞긴 하지.. 절도잖아.
나의 말에 공감하듯 주인공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땐 편을 들어주며 공감해주는 것이 십대에겐 잘 먹힐 거다.
계속 심문만 당하다가 동급생이 들어오자 긴장이 풀어진 건지 아까보다 편해보이기도 했고.
- 똑 똑
잠시 후 취조실의 문이 두 번 두들겨지더니 아까까지 심문을 담당하던 사람과 다른 수사관이 들어오자 주인공군은 움츠렸다.
".. 부탁한 그거다."
수사관이 가져온 철가방 안에서 나와 심문실의 책상 위로 놓이는 뜨끈한 검은 뚝배기 두개.
랩으로 덮인 설렁탕 두 그릇이 놓여졌다.
책상위에 놓자마자 담당관은 가방을 가지고 도로 나갔다.
"배고프지? 일단 밥부터 먹자. 나도 아직 저녁 안 먹었으니깐."
"응..."
심문관이 나가고 주인공군의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다.
취조도 밥은 먹여가면서 해야지.
계속 손목이 결박되어있던 탓에 손을 떠는 주인공군 대신 그의 뚝배기 위에 덮인 랩을 뜯어주었다.
아뜨
"설렁탕 좋아하니?"
여전히 쓰린듯한 손목을 매만지는 주인공군에게 수저를 건네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