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베레시트 계획
"잘 지냈어? 사냥개군."
나의 인사를 들은 전화 상대는 잠깐 숨을 삼키듯 말을 멈추었다.
'..그대인가.'
타브하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처음 하는 연락이니 제법 오래간만에 나누는 대화였다.
항상 그녀와의 접선은 그녀가 먼저 격납고로 찾아왔었으니 내가 직접 대화를 시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방송 잘 봤어. 공들인 티가 좀 나던데"
'그런가.. 우리들의 결의나 다름없는 발표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 아저씨 보다 틴달로스군이 방송에 나왔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말인가? 나는 그처럼 언변에 대한 재주는 없다..'
나의 칭찬에 조금 쑥쓰러운듯 말하지만 치켜세워주니깐 기뻐하는 게 티가 나는 대화였다.
"그야 저런 숨이 꽉막혀 보이는 아저씨 보다 틴달로스군 같은 미인이 나오는 쪽이 훨씬 보기 좋은걸?"
'무..무슨..! 그대라도 농담이 지나치다..'
한 번 더 띄워줬더니 당황하는 게 보여 재밌어졌다.
"틴달로스군이 선전포고 했다면 난 바로 항복했을지도?"
'그대는 정말..!'
업무적인 것으로 칭찬해주면 큰 내색을 하지 않고 좋아하지만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면 당황하는 반응이 역시 재미있다.
여자가 아닌 무인으로 칭송받길 원하는 이유 때문에 정말 성체가 폭발할 위기가 아니면 기체에서 내리지도 않으니깐.
"안부인사는 여기까지. 이제 일 이야기를 해볼까."
'일이라면 어떤 이야기인가?'
그래도 업무 이야기로 넘어가니 곧바로 진지해지는 게 어른이구나 싶었다.
"오늘 이 도시에 나타났던 간부. 누군지 말해줄 수 있어?"
'..그대라면 이미 알고 있을 줄 알았다만.'
"뭐든지 알고 있는건 아니야. 저번에도 그랬잖아?"
영구동토에서의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그 때는 살짝 정신적으로 몰리는 경험을 했었지만 그녀 덕분에 멘탈을 잡을 수 있었지.
굳이 오늘 게이트에 나타난 간부를 묻는 이유도 혹시나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게 있을까 확인이 필요했다.
'비밀까진 아니니.. 그대에게 알려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과연 누가 왔을까.
'란테고스다.'
"역시 그랬구나.."
역시. 시나리오의 변경점은 없는 듯 해서 살짝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노란 옷의 왕은 연설을 준비하느라 여기까지 올 여유는 없었을 것이고, 틴달로스는 아직 성체의 상태가 불완전..
만약 투신이라면.. 게이트만 열고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전투를 보고 덤벼왔겠지.
아마 그랬더라면 정말 역의 절반이 무너지는 정도로 안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의 다른 간부들은 이쪽이 아닌 다른 곳에 나타났을 것이다.
'역시라니.. 그대는 누가 올지도 알고 있던 건가?'
"그 질문은 또 똑같은 답이 나올 것 같으니깐 거기까지만."
만능처럼 보여야 하는데 자꾸 허점이 보이면 신뢰를 잃을 수 있으니 적당히 말을 끊었다.
전지전능해보이지만 자신에게 가끔 의지를 해준다는 모습이 보여야 지금의 불완전협력자로써의 관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을 위해 열심히 일한 틴달로스군에게 중요 정보가 있습니다."
'중요정보? 어떤 것인가?'
"성체의 카피. 위작에 대한 정보입니다."
'...!'
지금부터 그녀에게 넘길 정보는 베레시트 계획의 시작 1호기와 그 파일럿인 주인공군에 대한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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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령관에게 넘겨주었던 교단의 정보는 원래 시나리오상 한참 나중에야 풀리는 정보다.
그 전까지는 교단에 대한 정보도, 그들이 차원기와 비슷한 성체를 쓴다는 것도 현재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복잡해질 일을 없애기 위해 부분이나마 사령관에게 교단의 정보를 넘겨주었다.
그렇다면 교단에 베레시트 1호기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정보를 한 쪽만 가지고 있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생기지 않는가.
그러니 타브하의 정보를 아주 조금만. 틴달로스에게 알려줄 계획이었다.
'내가.. 직접 찾아가도 되겠는가?'
중요한 이야기라 생각해서 그런지 이 곳에 오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틴달로스.
"그건 곤란하겠는데. 여긴 그 위작의 본거지거든."
'그대는 교단의 적이 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곳에 있는 건가.'
나의 위치를 듣자 조금 배신감을 느낀 듯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물론 교단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도와주지도 않을 거고."
"그건 내가 지금 있는 타브하에게도 마찬가지야."
'.. 그대는 교단뿐만 아니라 하늘 너머에 있는 자들의 편에도 들 생각이 없다는 것인가.'
"네 정답입니다."
'...'
나의 말을 듣자 그녀는 할 말이 없는 듯 말을 멈췄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속한 교단과 타브하를 두고 어느 쪽 편도 아니라면서 서로 깊게 발을 들이고 있으니 나의 말을 믿지 못할 만도 했다.
하지만 난 누구의 편도 들어줄 생각은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래서 듣고 싶지 않은 거야? 위작에 대한 정보."
'..그건 꼭 들려줬으면 좋겠다만..'
"위작은 성체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이 세계의 기술로 만들어진 모조품이나 다름없는 모습."
"그것을 여기선 베레시트라고 불러. 아 이건 이미 알고 있던 정보인가?"
2월에 카페에 찾아갔을 때 첩보요원인 박쥐도 다 알고 있던 이야기니깐 여기까진 그녀도 알고 있을 이야기였다.
"오늘 도심에 나타난 차원수 열마리를 잡은 것도 전부 베레시트의 업적."
사실 반 이상은 내가 잡았지만. 사도를 쓰지 않았으니 노카운트로 치자.
공식 교전기록도 베레시트의 격추수로 들어가있기도 하고, 현장에 교단 사람도 없었으니깐.
'단신으로 열마리를 말인가.. 성체가 아닌데도 뛰어난 능력이군..'
"성체가 아니다? 음.. 글쎄. 본질적으론 같을걸?"
'성체와 본질적으로 같다..?'
교단에서 조사하고 있던 미지의 차원기가 사실은 성체와 본질적으론 같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긴장하는 듯 했다.
신성한 성체가 이 쪽 세계에서 비슷한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니.. 어떻게 보면 그녀의 신앙심이 시험당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겉보기엔 다르긴하지. 생긴 것 부터 전혀 다른걸."
"핵심.. 이 곳에서 흔히 코어라 부르는 부위 만큼은 성체와 똑같아. 저급한 차원수들의 코어를 가공한 게 아니야."
'성체와 같은..!'
타브하의 베레시트 계획의 기체들과 교단의 성체는 케루브 같은 양산기 처럼 차원수의 코어 같은 저급한 코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베레시트 시리즈의 코어에는 교단의 성찬식과도 같은 비밀이 담겨있다.
"그래도 역시 성체와는 다르다고 생각해.. 일단 위작에 대한 정보는 여기까지. 아 그리고 위작의 파일럿 말인데. 열일곱 짜리 남자애야."
'하늘 너머에서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싸움에 나서는 것인가..'
"날 봤을 땐 그런 생각 안했어?"
솔직히 열일곱이라 보긴 힘든.. 신체 나이는 열다섯이니깐 내가 더 어린편인데 열일곱이란 이야기를 듣고 동요하다니.
'.. 그대는 강자이기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얼굴을 본 것도 네 번이 넘는 대련 끝이 아니었는가.'
내 모습을 모르고 싸우고 나서 알게 된거니깐 그런건가.
'그렇다면 그 소년도 그대와 같은 강자인가?'
"아니 그 아이는 평범한 고등학생. 지금은 특별한건 없는 그냥 애야. 뭐 장래가 기대되지만."
'그렇다면 그 싹이 트기 전에 먼저 없애버리는것도 방법 중 하나..'
리스크가 커지기 전에 미리 그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틴달로스"
나는 말에서 웃음을 감췄다.
"그와 전장에서 싸우는 건 상관없어.. 그것에 대해선 방해하지 않기로 했으니깐."
"하지만 만약 네가 이 정보를 이용해서 암살 같은.. 그래. '쇼고스' 같은걸 보내면."
"내 손으로 교단을 전부 부술 거야."
"무인은 항상 정정당당히."
"알겠지?"
'...실언을 했다.'
"역시 착한 아이네. 이해가 빨라."
그녀가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자 다시 옅게나마 말에 웃음이 생겼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역할을 잊고 그런 음습한 짓을 하려 했었으면 정말 실망했을 것이다.
나와 개발자군이 만든 이야기를 완전히 깨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으니깐.
그게 나와 개발자군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그럼 오늘 알려주는 정보는 여기까지. 내일 학교가려면 일찍 자야하거든. 다음에 봐."
왠지 더 이야기 하고 싶어지지 않아서 멋대로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무인으로 만든 그녀가 그런 생각을 잠깐이라도 가졌다니.
마치 자식의 모르는 일면을 보게 된 부모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반성했으니 오늘은 넘어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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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둑한 기지 내부의 인도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서 독신자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은 거의 23시가 다 되어갈 시간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우선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닌 덕분에 지친 몸부터 씻기로 결정했다.
교복을 적당히 벗어던지고 속옷도 던져둔 채 샤워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을 맞으니 생각이 조금은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류하연의 오퍼레이터 영입, 베레시트의 데뷔전, 예상보다 빠른 주인공군의 영입, 교단의 선전포고..
분명 내일이면 교단의 항복요청을 거절하겠다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방송을 탈 것이다.
그 대답에 교단은 당장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대규모 게이트를 여는데는 많은 준비도 필요하고, 잊혀져 갈 때쯤 치고 들어오는 게 교단의 무서운 점이니깐.
두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4월 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류하연과 정식 계약을 마치고 오퍼레이터로써 기초를 길러주고..
주인공군은 1호기의 운용과 전투방식을 가르쳐줘야하고..
서예린도 정식으로 타브하에 들어오게 될 텐데..
그리고 교단에 있는.. 그 녀석은..
안되겠다. 하루치 피로가 전부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잠이 쏟아져오는 느낌이 들어서 빠르게 씻곤 물기만 닦아낸 채 침대에 엎어졌다.
추위도 느끼지 않으니깐 이런다고 감기에 걸리진 않겠지.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게 맞는 걸까.
1화의 내용은 내가 조금 개입해버린 탓에 약간이나마 변해버렸을 것이다.
내가 먼저 멋대로 행동해서 원래 시나리오를 비튼 주제에 틴달로스에게 화를 낸건 이기적이지 않았을까.
주인공군도 틴달로스군도 둘 다 자식 같은 아이인데 왜 주인공군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해버린 걸까..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녀에겐 사과해야겠다.
개발자군도 만약 같이 왔었더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금방 잠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1화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