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막간 : 위원회, 배신의 장소 (42/152)



〈 42화 〉막간 : 위원회, 배신의 장소

방금 전까지 소녀와 사령관이 머물고 있던 타브하의 사령관실.


소녀는 사령관을 뒤로 한 채  곳을 떠나버렸다.


소녀가 떠나 사령관 홀로 남은 곳.


그 안쪽에는 사령관을 제외한 타브하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아니 그녀라면 이 곳조차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브하의 사령관은 방금 이 방을 떠난 소녀를 생각하며 책상 아래에 숨겨진 생체인증 단말 위에 손바닥을 올리자 자신의 뒷편에 있던 벽이 열렸다.

  너머로 들어간 사령관은 계단을 타고 걸어내려갔다.


걸어내려간 곳 끝에 있던 것은 작은 난간이 달린 리프트.

고작 사람 한명이 설  있을만한 작은 철로 된 발판.


그가 자그마한 리프트 위에 올라타자 리프트는 점점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내려갔을까 그 아래에는 거대한 공동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검고 넓은 공동.

공동의 벽을 따라 꺼져있는 조명과 여러 배선들이 널려있었지만 모두 꺼져있었다.

사령관의 리프트 아래에 달린 자그마한 조명장치가 지금  곳에서의 유일한 조명이었다.

아래를 향해 계속 내려가던 리프트는 플랫폼과 같은 곳.

다른 리프트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멀리 떨어져 교차하는 곳에서 리프트는 멈추었다.




< 예정보다 늦었군. 사령관. >


어둠의 너머에서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공동을 울리듯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비어있는 리프트가 정지해 있는 곳. 그 위에는 어둠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실루엣이 있었다.

사령관과 비슷한, 혹은 더 많은 나이인 것 같은 남자의 실루엣.

"바깥의 혼란을 수습하느라 늦게 되었습니다."

사령관은 목소리가 들려온 공동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깥의 혼란이란 오늘 열린 대규모 게이트와 교단의 등장을 말하는 것일까.



< '교단'의 등장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늦은 것이지? >


방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과 다른 곳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젓번 남자와는 다른 조금 작은 체격을 가진, 왜소한 실루엣이 다른 리프트 위에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올바르게 일치하는가에 대해 검증을 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시간낭비로군 사령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언과는 한 점도 달라진 게 없었다. >


다른 리프트에서 들리는  번째 목소리. 그 목소리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있는 리프트 위에는 다른 두 남자와는 다르게 어린아이 정도의 실루엣이 보였다.



< 자네가 만든 장난감이 충분히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군. >


이 곳을 찾은 손님은 사령관을 포함한  명이 끝인 듯, 다시 첫 번째로 들려왔던 남자의 목소리가 비웃음과 함께 들려왔다.



< 그래. 베레시트 계획에 사람을 닮은 장난감을 쓴 주제에, 창세의 이름을 가져다 쓰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


비아냥이 담긴 듯한 노인의 목소리. 마른 웃음소리가 비어있는 공동을 울렸다.



< 그만. 예언에서 주어진 이름을 부정하는 행위는 이 자리에서 용서받지 못할 중죄. >

노인의 말을 부정하듯 소년의 목소리가 그 발언을 지탄했다.



< 농담일세. 예언에는 계획의 이름만 적혀 있지 않았는가? 나는 어디까지나 그의 인형놀이에 유감을 표한 것 뿐이네. >

< 신성의 모조품인 인형을 가지고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인지.. 결국은 진짜가 되지 못한 '위작' 이다. >


소년의 지탄을 넘기듯 노인은 베레시트 계획을 부정한 것이 아닌 사령관의 방식.. 1호기를 부정했다.


"저는 그 예언의 수행을 차원기로써 나타낸 것뿐입니다."

< 그렇다. 예언은 예언대로 흘러가면 되는 것. 그 역할을 수행할 형태는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다. >


남자의 목소리가 사령관의 말을 지지해주듯 말해주었다.


"이미 2호기도 생산완료에 가까워졌습니다. 적합자 또한 준비되어 있습니다."

벌써 2호기라. 너무 자신의 계획을 맹신하는 게 아닌가? >

사령관의 입에서 2호기와 적합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감탄한 듯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예언에 명시된 때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 운이 좋은 줄 알게 사령관. 오늘의 실적이 없었으면 자네가 만든 베레시트 계획의 형태는 폐기 될 예정이었다. 자네의 직위도 마찬가지로 말이야. >




소년의 목소리가 사령관에게 경고를 하듯 말해주었다.


오늘의 실적이 없었으면 베레시트 계획은 그대로 폐기. 사령관 또한 직위해제 되었을 것이라고.

그가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늘 그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시작한 덕분이었다.

< 1호기의 파일럿도 예언을 따라 소년으로 정해졌군. 자네가 의도한 것인가? >

"소년의 감시는 오래 전 부터 해왔습니다. 하지만 우연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 결국 예언은 정해진대로 흘러간다는 것인가.. 하지만 예언에 정해져있던 제물의 수는 다섯. 그 곱절이 나타났는데도 완벽한 임무의 완수라.. >


노인의 목소리는 1호기가 쓰러뜨린 수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 조금 미심쩍은 일면이 남아있긴 하지만 1호기는 혼자서 일십을 상처 없이 쓰러뜨렸다. 그렇다면 사령관의 장난감에 조금 투자해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

소년의 목소리는  의문을 덮듯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 예언을 믿고 그 첫 형태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인정해주지. 2호기의 건조 또한 허가해주겠다. >


"감사합니다."


소년의 목소리가 2호기의 건조를 허가하자 사령관은 조금 긴장이 풀린듯 난간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이 조금 덜어졌다.



"예언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한 백업.. 베타니아의 조력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 예언에는 이름만 언급되었던 베타니아 말인가.. >


< 괜찮지 않은가. 결국 예언의 수행을 돕기 위한 조력일 뿐이다. 예언 본편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해. >


목소리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베타니아를 가볍게 넘겼다.

그들에게 있어선 예언의 수행만 중요할뿐, 그것을 돕는 수단은 상관이 없었던 것이리라.




< 예언의 첫 장은 제물의 수가 조금 변했더라도. 1호기는 예언의 결과를 그대로 수행하였다. >


< 이 세계에는 우리들의 이치로 알  없는 인과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부분이나마 그 인과의 편린을 얻는데 성공했다. >

< 그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예언' >




< '시나리오 시트' >



세 목소리는 마치 하나의 목소리가  것 처럼, 아니 처음부터 하나였던  처럼 공명하여 말했다.



사령관. 두 번째 예언을 완벽하게 준비하게. >

그것을 위한 지원은 충분히 돕겠다. >

< 다가올 '승천'을 위해. >

그 말을 끝으로 플랫폼 위에 놓여있던 소년, 남자, 노인의 실루엣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세 사람의 실루엣이 사라지자 어두운 공동의 벽면에 달려있던 조명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루엣들이 사라지자 사령관은 지친 숨을 내쉬며 플랫폼의 난간을 붙잡고 땀을 비 오듯 흘렸다.

타브하의 위원회를 담당하는 저 셋은 온갖 역경을 해쳐나갔던 사령관에게도 언제나 버거운 상대였던 것이리라.


과연 그녀도 저 위원회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언급하는 예언.. '시나리오 시트' 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아내를 떠나보낸 곳에 나타난 백색의 거인과 신비한 소녀.


오늘 베레시트 계획의 성공적인 시작도 그 신비한 소녀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직 위원회는 소녀의 존재와 백색의 거인에 대한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위원회에는 그저 베타니아라는 이름의 서포트 기관이라고 설명했을뿐.

그 것이 사령관에겐 위원회를 상대로 숨긴 패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위원회 조차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녀라면.

사령관은 위원회의 감시에서 조금은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직..

그는 긴장이 풀린듯 숨을 고르고 난간에 달린 자그마한 버튼을 눌렀다.

방금전까지 꺼져있었던 공동의 조명이 서서히 빛을 밝히먀 어두운 밑바닥을 비추었다.

조명이 들어온 어두운 공동 한 가운데에는 백색의 형태가 있었다.



그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온전하지 못한 부서진 것.


형태를 잃은 채 망가져있는 백색의 거인.

그 거인의 앞에 놓여있는 흑요석 처럼 검게 빛나는 조각들.


망가진 거인의 모습은 사령관이 추모공원에서 처음 보았던 소녀의 기체와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만약 저 거인이 없었더라면 베레시트 계획은 탐사선이나, 미사일, 혹은 거대한 함선같은 형태로도 바뀌었을  있겠지..

저 거인과 아내가 타고  차원 너머의 기술이 있었기에 사령관이 계획한 형태로 베레시트 계획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추모공원에서 처음 만난 소녀를 돕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녀가 타고 있던 거인 또한 이 곳에 잠든 거인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깐.




타브하 가장 깊은 이 곳.

기적을 바라는 기지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무덤과도 같은 곳.



아겔다마.

그녀는 이 곳에 있는 거인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

만약 알게된다면  것에 대해 숨기고 있던 자신에게 실망할 것인가..


위원회와 소녀 양쪽 모두를 배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령관의 처지와 어울리는 이름의 장소였다.


기적의 장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배신.

깊은 곳에 망가진 채 잠든 거인을 확인한 사령관은 다시 버튼을 눌러 조명을 껐다.

- 지직..




조명이 사라지자 부서진 거인은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겼다.

빛이 사라져 어둠이 백색을 삼켜낸 것을 확인한 사령관은 리프트를 조작해 다시 사령관실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시트'의  번째 예언이 곧 있으면 시작 될 것이다.

 번째로 주어진 예언도 위원회가 기대하는 방향대로 성공해내야한다.


언젠가 위원회가 가지고있는 예언을 벗어나 그가 준비하고 있는 진정한 목적을 수행할 날을 위해서.

지금은  깊은 배신의 장소에 잠든 거인은 숨겨져 있어야 한다.


그 소녀에게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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