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트레이닝
- 기이잉..
가상으로 구현된 화면 속의 1호기였지만 구성이 완료되자, 조종석과 레버 너머로 얼마 전 1호기를 탔을때와 똑같은 느낌이 전해져 왔다.
곧이어 모니터 앞에 소형 차원수 세 마리가 서서히 랜더링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1차 테스트야. 목표는 소형 차원수 세 마리."
"이 정도야 쉽겠네. 저번에도 세 마리는 잡았었잖아."
주인공군은 첫 교전 때를 생각하고 이 정도면 쉬운 상대가 아니냐며 자신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어떨까."
주인공군은 자신만만해하지만 과연 어떨까..
< 시작하겠습니다. >
차원수에 이어 시가지 배경의 렌더링이 완료되자 시뮬레이션 모듈을 담당하는 연구원이 시작을 알렸다.
- 삐이
곧 이어 비프음이 한번 울리더니 생기가 없이 가만히 멈추어있던 차원수들의 어깨가 안쪽으로 움츠러들었다.
- 그르르륵..!
짧은 울음소리와 함께 세 마리가 동시에 덮쳐오기 시작했다.
"하..한번에?!"
세 마리 중 가운데 한 마리는 정면, 오른쪽의 차원수는 오른팔, 왼쪽의 차원수는 왼쪽 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와앗..!!"
- 꾸득 빠득..
어떻게 손을 쓸 틈도 없이 가상의 1호기의 팔과 다리가 붙잡혀 뒤틀린 채 가운데의 차원수가 머리를 씹어 뭉개기 시작했다.
- 까드득.. 드득..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야?"
아직 시작한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압도적으로 차원수에게 몰리는 모습을 보자, 지켜보기만 하려는 게 조금 참견을 해버렸다.
"무기.. 무기가."
이미 오른팔이 통째로 씹혀가면서 들고 있던 라이플은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저번에 썼던걸 써보는건 어때?"
시뮬레이션상의 충격이 모듈에도 그대로 전해져오는 탓에 양 다리를 뻗어 교관석의 제어함을 발로 꾹 밟아 흔들림을 참아냈다.
"저번이라면.. 아!"
이제야 생각이 난 것인지 그는 레버 쪽에 달린 근접 무장의 버튼을 눌렀다.
- 파샷
1호기의 오른쪽 허벅지가 아래로 열리더니 그 안에서 짧은 손잡이가 튀어나왔..으나
- 까앙.. 까가강..
오른팔이 차원수의 턱에 붙잡혀있던 탓에 손에 쥐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뒹굴어버렸다.
"왼쪽.. 왼쪽이라면.."
근접무기를 쥐는데 실패하자 조금 패닉이 온 것 같아보였으나 침착하게 왼쪽 허벅지 안쪽의 무장을 꺼내려했다.
- 파.. 가각..각
하지만 왼쪽 다리가 계속 물려있던 탓에 허벅지 부분이 끝까지 열리지 못하고 차원수의 머리만 밀어내려다가 되려 더 깊게 붙잡혀버렸다.
"떨어져!"
모든 무장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인공군은 발버둥으로 레버를 당겨 1호기의 오른팔을 흔들었다. 차원수가 1호기의 팔힘에 그대로 딸려 올라간 채 흔들렸으나..
- 삐이이이이!
[ LOST ]
< 1차 테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교전 기록 30초 입니다. >
모듈 안의 조명이 붉게 빛나다가 연구원의 말과 함께 모듈 안의 진동이 멈추었다.
---
"뭘 잘못한 건지 알겠어? 초보군?"
첫 테스트가 30초라는 유래 없는 짧은 시간만에 끝나버렸지만 그는 말 그대로 초보였기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에게 질문을 했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달려들어 소형 차원수 세 마리에게 제압이 된 것이 믿기지가 않았는지 주인공군은 이전 교전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이제는 흔들리지 않게 된 조종모듈 위에 양 다리를 올리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때는.. 너가 옆에 있었었지."
"정답이야."
설마 맞추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한 번에 문제점을 알아챈 듯 했다.
"그때는 우리가 둘. 상대가 셋. 소형 차원수는 생각하는 게 동물이랑 비슷해. 제압해야 할 상대가 여럿이면 누구를 먼저 노려야 할까 고민해.."
1호기의 첫 교전때는 후반 직전까지 둘이서 상대를 했으니, 1호기 혼자서만 상대해야하는 지금과는 달랐다.
"하지만 상대가 하나라면 누구를 노려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
그래서 10초도 안되어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게 된 것이다.
"상대가 달려오는데도 제자리에만 있었으니깐 30초도 안 걸려서 패배한거야."
"..그렇구나"
나의 분석을 들은 주인공군은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았다.
"인정하고 다음에 이기면 되는 거야. 그게 어른의 특권."
어딘가의 대령과 같은 이야기를 했으나 지금 상황에는 얼추 맞는 조언이었다. 다음에 같은 실수만 안하면 되는 게 아닐까.
아 주인공군은 아직 어른이 아닌 미성년자지만..
"왠지 심오한 말이네.. 알았어. 다음엔 이겨볼게!"
그래도 이 조언이 얼추 통한 것인지 의욕이 다시 솟는 듯 했다.
"연구원님. 2차 테스트 준비해주세요."
< 네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잘 할 수 있겠지?
---
...
< 2차 테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교전 기록 35초 입니다. >
시작하자마자 뒤로 몸을 빼내었으나 건물이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탓에 빌딩에 등이 부딪쳐버려 1차와 똑같이 제압당해버렸다.
"괜찮아. 같은 실수는 안할 수 있지?"
"응! 다음엔 똑같이 당하지 않을 거야!"
...
< 3차 테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교전 기록 37초 입니다. >
2차 테스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곧바로 위로 호버하였으나 건물보다 높게 뜨지 못해 차원수에게 양 다리를 물린 채 땅에 내던져졌다.
"아쉽네. 거의 도망쳤는데."
"그..그러게.."
...
...
< 6차 테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교전 기록 24초 입니다... >
한 번도 차원수에게 유효타를 먹이지 못한 채 6차 테스트까지 끝나버렸다. 심지어 6차에 와선 교전시간이 1차보다 더 줄어들어 버렸다..
< .. 7차 테스트 시작할까요? >
테스트가 종료된 이후에 내가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자 연구원은 나에게 테스트를 계속해야하냐고 물어보았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 ..네 준비 되면 말씀해주시길. >
"초보군."
"으..응."
"초보군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어?"
"..응"
"뭘 잘못했는데?"
"그건..."
뒷좌석에서 나의 질타가 들어오자 나를 돌아보고 대답하던 주인공군은 뭔가 말하려다가 답변하지 못하고 내 시선을 피했다.
아. 이렇게 돌려서 말하는 건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직접 알려주고 말지.
"아니야 모를 수도 있지.. 뭘 잘못했는지 알려줄게."
- 삑
교관석의 버튼을 누르자 1차부터 6차까지의 교전기록이 재생되었다.
1호기가 차원수들에게 도망치려다가 유린당해버리는 영상들의 모음으로 총 3분길이도 안되는 분량이었다.
"정답은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야."
여섯 번의 교전기록의 공통점은 그가 들고 있는 무장을 바로 쓰려고 하기보단, 먼저 공격을 받고 당할 때야 쓰려고 했다는 점이다.
결국 라이플도 단검도 한 번도 쓰지 못한채 패배했지만..
"왜 먼저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은 거야?"
마구잡이로 허공에 사격이라도 했다가 패배했으면 그러려니 했는데, 한 번도 싸우지 않은채 패배한게 조금 의아했다.
"..일단 도망치고 거리를 두고나서 싸우려고 했어."
지금은 시뮬레이션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키보다 두 배는 큰 괴물이 덤벼오는 것이니 겁이날만했다. 일단 안전거리부터 벌리고 싸우는 타입인걸까.
"하지만 도망치지 못했지?"
"응.."
그의 전략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6번의 결과가 말해주었다.
"예전에도 이야기 했을 거야. 일단 적이 보이면 먼저 머리부터 깨부수라고."
내가 역 앞에서 교전하고 있을 때 1호기를 타고 등장했었던 주인공군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다. 적이 보이면 먼저 제압부터 하라고.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적이 나타나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원래 시나리오보다 일찍 파일럿으로 들어왔어도 전투경험은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인걸까. 아니면 내가 첫 교전에서 차원수를 반 이상 잡아주어서 교전경험이 적었기 때문일까.
주인공군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듯 목소리가 조금 작아져선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고개는 숙이지 마. 잘못한건 없어."
내 앞에서 죄라도 지은 것 처럼 고개를 숙이는 그를 내버려둘 수 없어서 교관석에서 내려와 그의 머리에 양 손을 올려 고개를 들어주었다.
"보통이라면 패닉에 빠져서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당할 수도 있었으니깐. 움직이기라도 한건 잘 한거야. 아까도 말했지? 다음에 잘 해내면 된다고."
"맞아.. 다음에 이기면 된다고."
기운이 죽은 주인공군의 눈을 바라본 채 말해주자 주인공군이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게 보였다.
“..그치만 오늘 더 연습하긴 늦은 것 같고.."
시계를 확인하자 벌써 오후 5시 40분이 가까워졌다. 곧 있으면 연구원들도 퇴근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되겠지.
"연구원님 마지막으로 테스트 한번만 더 해봐도 될까요?"
< 한번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
"충분해요."
다행히 한 번 더 작동시킬 정도의 시간은 주어진 듯 했다.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
한 번 정도 가능하다는 연구원의 답변을 듣자 주인공군은 과연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방금 응원까지 받았으면서 또 패배하면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겠지.
"아니. 이번엔 내가 할 거야."
"너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초보군을 위해 시범을 딱 한번 보여줄게."
---
"시간도 얼마 없으니깐 그냥 같이 앉을게."
이 좁은 시뮬레이션 모듈에서 교관석과 조종석을 바꿔 앉으려면 한참을 꾸물거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체구가 작은 지금의 나라면 조종석에 같이 앉는 것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었다.
조종석에 앉은 주인공군의 무릎 위에 마치 처음 1호기를 같이 탑승했을 때처럼 앉았다.
하지만 1호기의 조종석이 아닌 시뮬레이션 모듈의 좁은 조종석이어서 완전히 주인공군의 배에 등을 맞대고 붙는 듯 한 자세가 되버렸다.
"역시 좁긴 좁네.. 조금만 뒤로 가봐."
"아..알았어."
같이 타는 게 처음도 아닌데 여전히 어색하게 굴길래 한소리 해주려다가 시간이 없어서 참았다.
"연구원님. 바로 테스트 부탁드릴게요."
< 알겠습니다. 곧바로 7차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
- 기이잉..
테스트가 7차나 반복되었던 덕분에 차원수의 렌더링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 그르륵..!
"라이플은 가까이 있을 때는 쓰기 힘드니깐.. 근접했을때의 대처법을 보여줄게."
- 타악!
라이플을 버리자 거친 소리와 함께 라이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파스스..
1호기의 어깨에 달린 미익에서 하얀 빛이 나와 옆으로 은은하게 퍼지며 출력 속도가 올라갔다.
여태껏 뒤나 위로 피했던 주인공군과는 다르게, 나는 레버를 앞으로 밀어 차원수와 거리를 좁혔다.
"먼저 가운데에 있는 놈부터 노리는게 좋아."
- 카아악.. 칵!
가운데 있던 차원수의 목을 움켜쥐곤 발아래의 패달을 강하게 밟아 출력을 올리자 차원수를 붙잡은 채 다른 두 마리와 거리를 제법 벌렸다.
"그리고.. 이렇게."
- 파아악!
차원수의 목을 움켜쥔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세워 잡고 있던 차원수의 가슴 아래를 단번에 꿰뚫었다.
"붙잡아 죽인 녀석은 다시 내던지기 좋아."
- 휘이익.. 퍽!
차원수의 가슴 아래를 꿰뚫은 채 레버를 뒤로 당겼다 앞으로 강하게 밀자 달려오는 다른 두 마리 중 한마리에게 명중하자 시체더미와 함께 땅을 굴렀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멈추지 않고 이쪽을 향해 곧장 달려왔다.
"거리가 조금 있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 캐액!
아래로 밟은 페달을 위로 올리자 1호기의 허벅지가 당겨져 올라가며 달려드는 차원수를 위로 걷어차올렸다.
"저 녀석은 날개가 없으니깐."
- 파샷
1호기의 허벅지가 열리며 그 안에 들어있는 단검이 꺼내지고 자동 시퀀스에 따라 차원수의 피에 젖은 오른손에 쥐어졌다.
나는 그 단검을 손에 쥔 채 공중을 향해 올렸다.
- 기이잉..!
손잡이만 있는 단검에 하얀 빛의 무리가 모이더니, 단검보다는 조금 긴 하얗게 타들어가는 빛의 검날이. 주인공군이 쓰던 파란색과는 다른 색의 날이 나타났다.
- 캬아아악!!
공중에 무방비하게 올려졌던 차원수는 자세를 제어하지 못한 채 단검에 그대로 떨어져 몸이 반으로 갈라져 나뉘어졌다.
"남은 한 마리는 이렇게."
방금 전 공중에 던져졌던 차원수를 뚫은 단검을 쥐어 다른 차원수의 시체를 치우고 달려든 차원수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 푸욱!
단검이 머리에 꽂힌 차원수는 이쪽을 향해 몇 발자국 더 걷지 못하곤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 삐이!
< 7차 테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교전 기록.. 15초 입니다... >
테스트를 종료하는 연구원의 안내와 함께 시뮬레이션 모듈 안의 조명이 밝게 돌아왔다.
"참고가 됐어?"
좁은 모듈에서 둘이 붙어서 있던 탓에 조금 더워져,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를 살짝 손으로 밀어내곤 뒤를 돌아서 주인공군을 보고 물었다.
"저걸..."
나의 완벽한 시범을 본 주인공군이 감격에 벅차오른 것인지 등 뒤로 붙어있는 그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걸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겠네.
"... 저걸 어떻게 따라해!!!!!"
어라..?
"못해!!! 못한다고오!!!!"
주인공군의 절규가 좁은 시뮬레이션 모듈안을 가득 울렸다.
"...엣"
주인공군이 망가져버렸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