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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화 〉트레이닝 (52/152)



〈 52화 〉트레이닝

"저런걸 따라할  있을 리가 없잖아!"

완벽한 시범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 찰나 나의 뒤에 붙어 앉아있던 주인공군이 화를 냈다.




- 달칵! 달각!

"저런! 움직임을! 어떻게! 따라 하냐고!"

아직  손을 조종간에서 내려놓지 않았는데 나보다 큰 주인공군의 손이 내 위에 겹쳐진  조종간을 잡고 거칠게 탁 탁 당겨냈다.




"지..진정해.."

항상 순둥이나 쑥맥같아보였는데 이렇게 격분하는 모습을, 그것도 바로 등 뒤에서 느끼니깐 엄청 놀랬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십대 소년의 격노는 삼십대인 나를 쫄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후..."


소리를 치며 거칠게 조종간을 움직이던 주인공군의 손이 멈추자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내 손을 빼낼  있었다.


"초..초보군?"

이렇게 소리칠 줄 알았으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를 교관석에 앉혀뒀어야 할 걸 그랬다.

하필 그의 무릎위에 앉아있던 탓에 어디 몸을 뺄 구석도 없고 지금은 그저 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입장이었다.


소리를 치던 그의 팔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리는게 등 뒤로 느껴졌다.



"... 갑자기 소리 질러서 미안해."

"아..아니야.."


아까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한 사과를 했지만 뭔가 미련이 남은 듯한 목소리였다.

- 푸슈우




< 시뮬레이션 모듈 사용 종료하겠습니다. >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던 때 슬슬 종료시간이  것인지 시뮬레이션 모듈의 해치가 열렸다.

나도 주인공군도 말없이 시뮬레이션 모듈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저기.."

훈련시설의 녹색의 우레탄 코팅이  바닥을 밟은 채 주인공군과 어색하게 마주서 있자 어색함을 깨듯 주인공군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 굉장했습니다. 베타니아의 파일럿씨. 15초 교전완료에 기체의 조종 실력을 응용한 순수 격투라니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달려온 연구원의 들뜬 목소리에 그 이야기는 이어지지 못하고 바로 끊겨버렸다.


"아..아니에요. 애초에 오늘은 제 테스트가 아니었는데..."


나보다는 주인공군의 교전에 대한 감평을 해줬으면 하는데..



"이런 전투 보통은 교전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소속은 다르시더라도 앞으로도 부디 베레시트의 데이터 수집을 위해 도와주셨으면.."


나의 발언과는 상관없이 전투기록에 들뜬 연구원이 반쯤 흥분한 채 말을 계속했다.



"..난 먼저 들어가 볼게."


조금 떨어져 서있던 주인공군이 먼저 들어가 보겠다는 말과 함께 뒤를 돌아 연구시설의 밖을 향해 걸어갔다.



"자..잠깐만! 오늘 저녁이라도 같이.."

이대로 주인공군을 먼저 돌려보내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좌절감만 준 채 보내버릴  없었기에 그의 팔을 붙잡으려고 해봤다.




"..괜찮아."

그의 팔을 붙잡으려던 나의 손은 닿지 못한 채 허공에서 놓쳐버렸다.


"아.."




주인공군은 빠른 걸음으로 시설 밖을 먼저 나가버렸다..

---


"어? 왜 오늘은 혼자심까?"


잠시 후 연구원을 떼어놓고 시설 밖으로 나왔으나 주인공군은 어디 간데 없고 중사를 달지못한 김하사만 승용차 앞에 서있었다.




"먼저 나갔을 텐데..  보셨나요?"


"어어.. 제가 방금 와서 모르겠슴다.."



김하사도 방금 도착한 것이었는지 주인공군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조금 낙담했다.


잊고 있었다. 조금 의젓하더라도 어른이 아닌 10대 청소년.. 그것도 갓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파일럿이 되어 혼란스러운 때일 텐데.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해내지 못한 것을 쉽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이래서야 기만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실력을 보여주고 나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차근차근 설명해주려고 했었는데..




"그런가요..."

전화로라도 사과를 할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주인공군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업무용 스마트폰이고 이 세계에서 연락처를 등록한 사람은 사령관이랑 틴달로스 정도...


사령관에게 부탁하면 월권으로 번호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는 건 좋지 않겠지.. 어떻게 번호를 알았냐는 질문에 권력으로 얻었다고 하면  환멸할지도 모른다.

"저.. 베타니아씨 돌아가시겠슴까..?"


낙담한 나의 표정을 살피던 김하사가 돌아가겠냐고 물었다.


"..네"

마음 같아선 나도 혼자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는건 나와준 김하사에게 예의가 아니었기에 그의 차에 올라탔다.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원래 시나리오에서도 주인공군에게 비슷한 일이 있긴 했다.

주인공군이 드디어  사람 몫을 조금은 해내는구나 하고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나타난 2호기와 그 파일럿.


자신과는 다른 완벽한 2호기 파일럿의 조종 실력을보고 여태까지 자신이 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서 며칠 정도 가출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설마 지금 내가 그 이벤트의 트리거를 건드려버린게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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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군과 헤어진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 낮이 되었지만 계속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쉬려고해도 나의 사소한 기만으로 인해 주인공군이 정말로 파일럿을 그만둬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어서 주말에 뭘 하려고 했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났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교단 사람과 접선이라도 하거나, 훈련에 지친 주인공군에게 무언가 작은 상이라도 주거나 조종팁이라도 알려주려고 했는데.


내가 시나리오를 크게 엎질러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침부터 그냥 멍하니 침대에만 걸터 앉아있었다.


만약 그가 정말 이대로 탈주해버리면 남은 시나리오는 어떻게 해야 하지.. 교단이랑 다른 히로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세계는 어떻게 해야 하지..




[마스터.. 식사라도 하셔야 하지 않나요?]

"어..응?"


계속 침대에 앉아 고민하고 있던 나를 걱정하듯 엘이 주변을 맴돌며 내 정신을 깨웠다.

계속 생각에 빠져있느라 몰랐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창가에 벌써 해가 내려가고 있었다.

항상 모든 일에 계획을 세워두고 실천하는 나의 버릇. 그러나 그 계획이 망가져 버리면 다른 대안을 찾는데 한참의 시간을 소비하고 만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한 고민이 저녁까지 계속 될 줄이야.




"됐어.. 그냥 잘래.."


[마스터..]

엘이 나를 더 부르려고 했으나 머리를 너무 쓴 탓에 그냥 누워서 쉬고 싶어져서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린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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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베레시트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될 겁니다."

기지 안에 있는 골프 하우스와 가까운 식당의 룸에서 사령관이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일요일도 누워서 보내고 싶었지만 사령관과의 선약이 있다는 엘의 말에 겨우 씻고 머리만 빗고 옷도 구겨진 교복을 계속 입을 수는 없어서 그냥 청바지와 티셔츠만 적당히 걸친 채 나왔다.

"묘월양?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건.."

하루를 통째로 식사를 걸렀던 탓에 조금 배가 고파 겨우 숟가락만 들어 차려진 음식을 조금 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사령관이 나를 걱정하듯 말했다.



"몸이 아픈  아니에요.. 그러면 2호기도 곧 테스트가 끝나겠네요.."

비즈니스 자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실수다. 냅킨으로 입가를 조금 닦곤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사령관과의 이야기를 이었다.


"무언가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뇨 그런 게.."



신경 쓰이는 일이 맞긴 하지. 십년 가까운 세월을 준비한 베레시트 계획을 겨우 궤도상에 올린 사령관의 앞인데


'1호기의 파일럿이 탈주할거 같아요 어쩌죠 데헷~'


같은 이야기를  수는 없었다.


"고민이 있으신 것 같군요."

"...네"

아무리 내 나이가 삼십이 넘었어도 나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온 어른인 사령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나보다.


결국 그의 앞에서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이 되었다.




"조금  미더우실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묘월양보다 오래 살아간 어른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비공식회담이나 다름없는 비즈니스 자리에서 사령관은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분명 저번 대화 때 내가 무례하게 먼저 사령관실을 나섰는데도 저런 포용력을 가지다니.. 역시 진짜 어른은 다르구나..


"..1호기의 소년에게 미움 받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포용력에 마음이 약해져서 이실직고 해버렸다. 이러다가 정말로 베레시트 계획이 엎어지면.. 사도를 써서라도 도울  있는데 까지 도우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의 테스트 결과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네"


역시 알고 있었구나. 계획의 총 책임자 답게 이미 그에게도 테스트 결과가 보고되었나보다.


"어째서 그 소년이 묘월양을 미워할 거라고 생각한겁니까?"

"제가 그의 앞에서 잘난 척 실력을 보인게.."

내가 기만했으니깐...

"그게 아닙니다."

나의 대답에 사령관은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분명 그 소년은 자기 자신에게 분해서 그럴 겁니다."

"역시 제 잘못이지 않나요.."


"가끔은 저보다 어른다운 면모를 보이시면서도 이런 부분에선 나이에 걸맞은 소녀 답군요.  소년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사령관은 나에게 조언을 해주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주려다가..


"아.. 그렇게 된 거군요.. 후후"

말을 멈춘 채 웃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뭔가요..?"


사령관이 왜 말을 하려다가 만 것인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끊다니, 그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눈을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이유는.. 아마 곧 알게 되실 겁니다."


"...  소년이 지금 파일럿을 관두고 도망쳐 버릴 것 같은 데도요?"

결국 내가 품고 있던 가장 큰 고민. 나의 실수로 주인공군이 파일럿을 도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사령관의 앞에서 조심히 꺼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믿어도 되는 거겠죠?"

"예. 믿으셔도 좋습니다."


사령관은 왠지 자신에 찬 표정을 짓곤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전 슬슬 일어나 봐야겠습니다. 말씀하셨던 대로 2호기 관련으로 바빠져서 말이지요.."


그렇게 미소만 짓던 사령관은 먼저 나가봐야겠다는 말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식사 즐거웠습니다. 가끔은 일이 아닌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군요."


"..네 다음에 뵐게요."

사령관을 따라 일어나려 했지만 그는 나에게 식사는 마저 하고 떠나라며 일어나려는 나를 자리에 앉혀두었다.


과연 사령관이 그렇게 자신을 갖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왠지 고민이 조금 가벼워진 듯 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식긴 했지만 마저 식사를 하며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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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이 되어 나는 등교를 위해 버스 정류장에  있었다.


정말 주인공군이 오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며 땅을 바라보곤  끝으로 땅바닥을 툭툭 찼다.

그렇게 땅만 차고 있을 때 머리 위로 조금 큰 그림자가 졌다.



"...안녕."

주인공군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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