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트레이닝
"역시 초보군은 하면 되는 애였어.."
주인공군이 지금 시점에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훈련을 완벽하게 해냈다. 세 마리 모두 쓰러뜨리는데 최소 2주일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걸 삼일만에 해낼 줄이야.
너무 대견스러워서 그의 머리를 계속 끌어안은 채 뒷목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흠흠... >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연구원의 헛기침 소리에 주인공군이 조금 놀래서 나의 품에서 떨어졌다. 계속 쓰다듬어주려던 그의 머리가 나의 손을 떠나자 조금 아쉬웠다.
<대단하군요. 짧은 기간 안에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은..>
"고맙습니다.."
주인공군은 자신의 칭찬을 듣자 조금 쑥스러웠던 것인지 방금까지 쓰다듬어주었던 머리를 살짝 매만졌다.
<둘이 사이가 다시 좋아진 건 알겠는데..>
스피커 너머로 연구원의 목소리와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옆에서 견학을 하던 류하연이겠지.
<시뮬레이션에서 그렇게 싸웠어야 할 이유가 있던 거야?>
"응?" "어?"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듣자 나도 주인공군도 조금 당황했다.
<보급은 완벽한 상태에.. 라이플과 단검 이외의 무기도 있었어.. 설마 일부러 이런 극한의 상황을 가정한 거야?>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 여태껏 놓치고 있었던 것 같은 부분이 뭔지 알게 되었다.
시뮬레이션의 목적은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서 훈련하는 것이 목적이지 이런 극한의 상황 하나만을 두고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군에게 라이플 하나만 쥐어주고 다 대 일의 전투만 고집시켰으니 시뮬레이션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본다면 이상할 만도 했다.
<저는.. 이 쪽이 데이터 수집에 더 좋을 것 같길래..>
연구원이 조금 머쓱하게 말했다. 일부러 이 훈련 상황만을 가정 할 필요가 없는데 실전 데이터 수집에 더 도움이 된다고 계속 이 상황만 두었나보다.
뭐.. 결과적으로는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왠지 허망해 보이는 주인공군의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왜 마지막에 라이플을 버리고 단검을 양 손에 쥔 거야?>
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라이플의 잔탄도 다섯발은 넘었을 텐데 라이플을 버리고 왜 그런 짓을 한거지.
"그건.. 묘월이가 단검을 잘 써서 싸우길래 나도 따라 해보려고.."
마무리로 단검을 던져 사살했던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기교니깐 그런건 굳이 따라하지 않아도 되는데..
<대체 왜 전투에서 장비를 스스로 던져버리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왠지 부끄러워졌다. 겉멋에만 치중한 근접전투가 내 스타일이었으니깐..
"..사실 그걸 따라 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조종석 앞에 달린 자그마한 마이크 모듈을 손으로 가린 주인공군이 나에게만 들리도록 살짝 말했다.
"아니야.. 그런거 굳이 따라 할 필요는 없었어. 안 해도 잘 하던데."
"고마워."
왠지 조금 머쓱한 분위기가 되었다. 아침때와는 또 다른 어색함이 느껴졌다.
---
...
<5차 테스트 종료하겠습니다.. 교전 기록 32초입니다.>
류하연의 조언을 듣고 여러 무장을 바꿔가며 테스트를 진행했다.
라이플도 한 종류의 라이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근접 사양을 대비한 산탄 계열의 총도 있었고. 근거리에서 쓰기 좋은 소형 리볼버도 있었다.
근접거리에서 견착이 필요한 라이플을 쏘려고 했었으니 제대로 실력을 내지 못했던 것 같았다. 리볼버나 산탄총으로 바꾸자 명중률이 조금 낮은 주인공군도 손쉽게 테스트를 끝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잘 맞았던 것은 총기류가 아닌 길이가 조금 되는 대검이었다.
1호기의 허리를 조금 넘는 길이의 얇은 날을 가진 대검. 사실 저게 1호기에 가장 잘 맞는 무장이기도 하다.
교단의 성체들과 싸우기는 애매할지 몰라도 가까이서 파고드는 소형 차원수를 쳐내어 날려 보내기도 좋았고 절삭력도 좋아 다방면으로 활용이 가능한 무장이었다.
"초보군."
"응? 왜?"
이제는 여유가 생긴 것인지 테스트 중인데도 나의 말에 대답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 검을 쥔 채로 오른쪽 레버 안쪽의 버튼을 꾹 눌러봐."
"이렇게?"
- 우우웅...
주인공군이 내가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누르자 들고 있던 대검에서 푸른 빛이 옅게 돌며 날 주변에서 진동했다.
"그대로 휘둘러봐."
- 파사아아앗!!
- 삐이
다가오던 소형 차원수 한마리가 대검에 휘둘려지자 사선으로 깔끔하게 절단이 되었다.
"굉장해.."
"1호기만 다룰 수 있는 무장이야. 코어가 어느 정도 되는 기체가 아니면 그냥 쇳덩이니깐."
4세대 차원기에서야 코어의 에너지 분배 효율이 개선되었으니 이런 것도 가능한 것이다.
2세대.. 대표적으로 케루브는 코어의 힘을 무식하게 기체에 전부 돌려버린 바람에 출력은 좋아도 남아도는 에너지원을 쓸 데가 없어서 오히려 소비효율이 낮았다.
<6차 테스트 종료하겠습니다.. 교전기록 31초입니다.>
아쉽게도 30초의 벽은 깨지 못했지만 삼일 전에 빌빌거리던 것에 비교하면 정말 잘했다. 내리면 또 칭찬이라도 해줄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아래에서 기다리는 류하연도 있으니 너무 오래 하지 않는게 좋겠지. 마침 시간도 17시 정도니 적당했다. 아직 오늘 강의도 못했고.
<시뮬레이션 종료하겠습니다.>
- 푸슈우..
연구원의 방송과 함께 시뮬레이션 모듈의 해치가 열렸다.
모듈 옆의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먼저 내려오고 주인공군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군이 내려왔는데 문득 옆에서 올려다보니 키 차이가 제법 큰 게 느껴졌다. 머리는 아까 계속 만진 덕분에 조금 흐트러졌네.. 미안.
"아 이거 잘 썼어. 돌려줄게."
쓴 용도라고는 사다리를 오르고 내릴 때 치마를 가린 정도가 전부였지만 계속 매고 있던 탓에 조금 구겨진 교복 마이를 돌려주었다.
"..주름진 것 같은데 클리닝 맡겨서 돌려줄까?"
허리에 매고 있던 탓에 교관석에선 계속 깔고 앉았던 탓에 왠지 그가 찝찝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어서 차라리 클리닝을 맡겼다가 돌려주는 게 낫지않나 생각했다.
"괜찮아. 어차피 내일도 입어야하고"
그렇네. 입학한지 얼마 안 된 신입생이 벌써부터 복장불량으로 돌아다니기엔 조금 그렇지.
사실 셔츠와 넥타이만 제대로 매면 적당히 넘어가주긴 해도 아직 선배들 앞에서 자유롭게 입고 다니긴 좀 그랬다.
타브하는 학년이 두개 위란 말이다! 라며 선배들에게 하극상이라도 일으키면 모를까.. 설마 주인공군이 그런 불량한 짓을 저지른다면 따끔하게 혼내 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자연스레 내가 준 마이를 받아서 위에 걸쳤다.
얼마 후 연구원과 류하연이 이쪽으로 왔고, 류하연은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한 연구원의 분석을 들으며 열심히 메모했다.
아직은 어린 그녀가 옆에서 받아 적고 있으니 직장체험 같네. 뭐 직장체험이 아니라 진짜 직장이긴 하지만.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정도네. 십분 쉬는 시간 줄테니깐 쉬고와. 아직 강의 안 들었지?"
한 달간의 트레이닝에 강의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럴 때일수록 슬쩍 넘어가는게 아니라 확실히 챙겨줘야지.
오늘 강의 내용은 류하연도 같이 들어보면 좋은 내용이었으니 들어둬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던 주인공군을 보내둔 채 화이트 보드와, 연구원에게 부탁해서 책걸상을 한 세트 더 가져왔다.
"아직 한 시간밖에 못 보셨겠지만.. 견학은 어떠셨어요 하연씨?"
보드를 세팅하며 내가 마련해준 자리에 앉은 류하연에게 어땠냐고 물었다.
기대하던 회사에 들어와 첫 출근을 한 날이더라도 영 아니다 싶으면 퇴사하거나 이직 준비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깐..
사실 나도 첫 회사를 하루 다녀보고 다음날 바로 구직사이트를 알아보고 다시 이력서를 올렸던 경험이 있었다..
"..둘이 사이가 엄청 좋아진 건 알겠어."
"미..밀착교육이니깐요.."
"..부럽네"
조금 목소리가 뾰루퉁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 같은 무서운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처음 학교에 오고나서 뭘 해야할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연구원님 옆에서 견학을 해보니깐 알겠어."
조금 뒤 그녀가 오늘 견학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퍼레이터 업무.. 생각보다 재밌을지도."
다행히 그녀가 첫 근무일에 대해 만족하는 것 같았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하연씨."
"알았어 묘월씨.."
그녀와 작게 웃으며 미소를 나누는 동안 저쪽에서 주인공군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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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긴 했지만 이론 강의는 빼놓을 수 없죠. 실전 능력만 가지고 있다고 좋은 파일럿이나 오퍼레이터가 되는 게 아니에요."
화이트 보드에 '적합률' 세 글자를 크게 적어두고 이제는 두 명이 된 학생 앞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전문 강사는 아니고 파일럿. 게다가 어디까지나 여러분들과 같은 학생이라서 저도 전부 알고 있는건 아니에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설정과 앞으로의 전개에 기반한 정보일 뿐. 실제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석한 결과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근데 적합률은 저번에도 강의하지 않았어?"
"그 때 강의한건 적합자였지 적합률이 아니에요."
수업을 부분적으로만 기억하고 있었구나.. 복습을 하고 오란 말이야.
"주말에 사령관님과 이야기가 잘 되어서 새 측정 장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빈 책상 위에 올려진 측정장비. 저번 일요일에 조금 충격을 받아 정신이 없긴 했지만 사령관에게 이야기를 꺼내 새로 받은 측정기다.
"묘월씨는 ..사령관님이랑 따로 만나는 사이야?"
"어? 그렇죠. 네"
갑작스러운 류하연의 질문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사이야?"
왠지 표정이 처음 만났을 때 처럼 무서운데..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지.
비밀 계약을 맺은 사이라고 할 수도 없고.. 비즈니스 관계라고 둘 앞에서 밝히기도 좀 그렇다.
"바..밥사주는 착한 아저씨?"
실제로 사석에서 만날 때는 식사자리인 경우가 많았으니깐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수상해"
"어..어디까지나 훈련이나 베타니아의 업무 때문에 보는거니깐요."
부연설명을 하자 류하연의 눈에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더 추궁할 생각은 없었나보다.
"아무튼.. 새 장비를 구해왔으니 측정도 다시 해볼 수 있어요."
새 제품이라 그런지 측정 장비 위쪽에 기스를 방지하기 위한 비닐도 안 떼어져 있었네. 측정장비와는 상관 없지만 왠지 거슬렸다.
- 찍
그 얇은 비닐 테이프를 단번에 뜯어버렸다.
'앗... 아아..'
조금 멀리서 연구원의 한탄이 들렸다. 왜 저러는 거지.
"자. 그러면 먼저 초보군 부터."
자리에 앉아있던 주인공군을 부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측정 장비 위에 손을 올렸다.
- 파스스..
새 장비라 그런지 저번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푸른색과 붉은색의 도트가 차올랐다.
- 삑
'15%'
금방 측정이 끝나고 모니터에는 15% 라는 숫자가 표시되었다.
"5%나 성장했네요. 잘했어요."
모니터에 나온 숫자를 보고 그에게 작게 손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고작 삼일 만에 5%나 재능을 끌어올리다니. 아직 젊은 나이라 그런 게 가능한건지, 주인공이라서 가능한건지 아무튼 대단한 발전이다.
"이렇게 금방 오르기도 하는 거야?"
"금방이 아니에요. 삼일 동안이나 코어 옆에서 훈련을 계속 했잖아요."
코어와 가까이 있으면서 코어를 다루는 연습을 했으니 금방 오를 수 있던 거였다.
"하연씨도 한번 재보시겠어요?"
"응.. 나도 해볼래."
측정이 제법 신기해 보였던 것인지 그녀도 측정장비 위에 손을 올렸다.
- 파슷..
- 삑
'5%'
적합자가 아니기 때문인 건지 빠르게 측정이 끝나버렸다.
"하연씨는 적합자가 아니니깐.. 어쩔 수 없죠. 저게 일반적인 숫자에요."
"기대는 안했는데 아쉽네.."
그녀는 낮은 숫자를 보니 조금 실망한 듯했다.
"묘월씨는 어느 정도야?"
"저는 저번에 쟀을 땐 61%였어요."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내 의지로 숫자를 줄였던 최종 숫자가 61%였다. 아마 거기서 더 변할 일은 없겠지.
"이번에는 안재볼거야..?"
"저 까지 측정을 하면 강의 시간이 줄어드니깐요. 보통 이 정도 수치에선 잘 변하지도 않아요."
또 측정장비를 깨버리면 그 땐 사령관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지도 모르니깐 내 생각을 검증해보진 않을 거다.
"측정이 끝났으니 강의를 계속 할게요. 적합률이 나타내는 숫자는 코어와의 동조율이라고 저번에 설명했었죠."
화이트보드에 마커로 5%, 15%, 61%를 적어두었다.
"이 숫자가 올라갈수록 발생하는 차이가 뭔지 알고 있나요?"
"조종 실력이 좋아진다는 것 밖에.."
저번 수업을 들었던 주인공군만 조금 대답했다.
"지금부터 설명해드릴게요. 먼저 10%. 10%는 1호기를 가동하기 위한 최소 적합률이에요. 1~3세대의 차원기는 적합률이 가동에 요구되지 않지만.. 베레시트는 조금 달라요."
보드에 차트를 그리고 10% 지점을 그린 뒤 '1호기' 를 표시했다.
"왜 10%냐면 1호기에는 조금 특수한 무기들이 들어있거든요. 허벅지에 달린 단검 두개 알죠? 그것도 적합률이 낮으면 쓸 수 없어요."
실전과 시뮬레이션에서 자주 사용했던 단검의 이야기를 꺼내자 이해한 것인지 주인공군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이 10%부터 코어와 동조하는 색상이 조금씩 변해요. 초보군의 경우에는 푸른색. 저의 경우에는 백색이네요."
"색에 따라 적합률이 나눠지는 거야..?"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류하연이 질문했다.
"아뇨. 색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연구결과에요. 단지 왜 색이 각자 다른지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그냥 캐릭터별 개성 같은 거니깐.
"20%부터 39%구간까지는 조종 실력이 올라가요. 코어를 사용하는 장비를 잘 다룰 수 있게 되고.."
20%~39% 구간에 가로선을 한번 그어 주었다.
"그리고 40%.. 이 때부터 적합자들에게 신체적 특징이 나타나요. 저 같은 경우는 머리색이나 눈 색이 다르죠?"
류하연의 경우 머리가 조금 갈색을 띄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연적인 색상. 하지만 나의 경우엔 자연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맑은 색상의 은발이었다.
40% 구간에 가로선을 긋고 '나!' 라는 메모를 같이 했다.
"그 다음은 50%에서 70%까지.. 이 구간부터는 코어를 하나 더 다룰 여유가 생겨요. 특수한 장비 같은 것을 다룰 수 있게 된다네요."
코어의 성능을 반 이상 끌어 쓸 수 있게 되는 경지. 이 때부터 파일럿은 코어를 사용한 특별한 장비를 다룰 수 있게 된다.
50%이하의 사람은 당장 다루는 코어 한개도 버거워서 추가 코어를 다룰 여유가 없지만 이 구간의 사람은 다르다.
"마지막으로 70%에서 79%.. 이 구간은 정보가 부족해요. 그래서 특징도 밝혀진 게 거의 없어요. 나라에 세 명 정도 있으면 많은 편이라네요."
이 부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주인공군 주변의 히로인도 70%는 넘지 못한다. 히로인이 주인공을 넘어버리면 주객전도인 것 같아서 그렇게 설정한 것뿐이지만.
차트 가장 윗부분에 70~79%구간을 그리는 것으로 차트의 마지막을 채웠다.
"이걸로 적합률에 대한 오늘 강의는 끝.. 질문 있나요?"
"묘월씨.. 왜 그래프가 79%에서 끝나는 거야? 그 이상은..?"
100%가 아닌 79%에서 그래프가 끝난 것을 보고 의아한 듯 류하연이 질문을 했다.
"그 이상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녀의 질문을 날카롭게 끊듯 말해버렸다.
"아.. 미안해요. 말이 좀 거칠게 나와 버렸네요. 사람에게서 80% 이상은 존재하지 않아요. 차원수의 코어를 그대로 떼어 써도 85%가 최고인걸요."
"..그렇구나"
나의 즉각적인 대답에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이어지는 설명에 알겠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보군은 질문 없나요?"
"으음.. 없는 것 같아."
떽 강의가 끝나면 질문을 열심히 해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지.
저러다 나중에 기억 못하면 그 땐 정말 주말에도 개인 교습을 할 거다.
---
"오늘 강의는 이걸로 끝.. 마침 시간도 퇴근시간이네요."
강의를 끝마치고 화이트보드를 지우면서 시계를 보자 어느새 시간이 17시 58분을 가리켰다.
"오늘은 다 같이 저녁 먹을까요? 하연씨의 첫 출근 날이기도 하니깐 제가 살게요."
"진짜..?"
저녁을 산다는 이야기에 눈이 밝아지는 류하연.
셋이 점심은 종종 먹었어도 저녁은 처음 먹는 것이기에 조금 기대가 되었나보다.
"기지에 중국요리 잘 하는 곳이 있다는데. 괜찮죠?"
"좋아.."
마침 얼마 전에 첫 급여를 받았으니 지갑이 넉넉하기도 했으니깐 저녁식사 정도는 배불리 먹여줄 수 있다.
"삼일 만에 훈련 성과를 끌어올린 초보군도 칭찬해 줘야하니깐요."
류하연의 첫 출근 기념 겸 초보군의 테스트 통과 기념 식사 자리였다.
"잘했어 초보군."
아직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그의 머리를 또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야.. 가르쳐준 게 더 고맙지."
그렇게 조금 풋풋한 십대의 칭찬을 주고받곤 연구원들과 함께 자재를 치웠다.
"먼저 나가서 김하사님께 같이 식사 어떠냐고 물어보세요. 전 마저 치우고 나갈게요."
도와주겠다는 둘을 먼저 훈련시설 밖으로 보내고 오늘 강의를 위해 화이트보드에 그렸던 그래프를 지우기 전에 한번 살폈다.
아까 그녀가 나에게 물어보았던 80% 이상의 구간..
80%를 넘는 순간 부터,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아직 주인공군과 류하연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나는 그래프를 지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