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폐쇄 도시
훈련을 마친 후 주인공군과 류하연, 그리고 김하사님까지 넷이서 기지 안에 있는 중국집에 왔다.
주인공군이 성공적으로 훈련을 마친 날이기도 하고, 류하연의 첫 출근일이기도 한데 저녁을 잘 먹여서 돌려보내야 부모님들께도 좋은 상사를 두었구나 하는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김하사는.. 뭐 업무적으로 상하 관계는 아니지만 아직 면허를 딸 수 없는 나 대신에 카풀해주는 분이니 이럴 때 잘 대접해드리면 좋다.
"메뉴는 음.. 각자 방금 말해준대로 해주시구요. 탕수육이랑 양장피랑 칠리새우까지 주세요."
각자 취향껏 식사를 하나씩 고르게 하고 요리를 세 개 시켰다. 이 정도면 넷이서 먹는데 충분하겠지.
"묘월씨.. 부자야?"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내겠다며, 그것도 같은 나이의 고등학생이 시키는 것을 보자 주인공군과 류하연은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부자까진 아니더라도 이런 정도는 대접해드릴 수 있다구요."
예전에 격납고에서 칼로리 스틱만 까먹던 빈곤한 삶은 이제 끝이다!
"따지고 보면 초보군도 많이 받지 않나요?"
오퍼레이터인 류하연이야 일반적인 직장인 월급.. 사실 많은 편이긴 한데 파일럿 직군인 주인공군은 아마 두 배 가까이 받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관리해주신다고 하셔서.. 받는 건 용돈이 조금 오른 정도야."
미성년자에게 거금을 전부 맡길 수 없어서 그런 건가. 그의 아버지라면 현명하게 잘 관리해주시겠지.
"묘월이는.. 부모님이 관리하신다고 안하셔? 아니면 용돈으로 많이 주시는 건가..?"
내가 이렇게 선뜻 낼 수 있는게 따로 부모의 관리 없이 직접 받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떼어주는 비율이 많아서 넉넉해보이는 것인지 궁금했던 듯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 저 부모님 없어요"
- 싸아..
당연히 이 세계에는 부모님이 안계시니깐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다들 엄청 조용해졌다.
류하연과 김하사는 주인공군을 향해 무언의 시선을 주고 있었다. 졸지에 나쁜 놈을 만들어버렸네.
"10 년 전에.. 여기까지만 이야기 할게요. 아무튼 저는 제가 직접 관리하고 있어요."
10년 전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셋은 얼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 이라면 이 세계에서는 한 가지 사건 밖에 없다. 대형 게이트의 오픈.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이 때 가족을 잃은 사람이 제법 많았다. 사령관의 부인이나 주인공군의 어머니도 그 때 잃은 거기도 하니깐..
"식사 나왔습니다."
분위기가 조금 어두워졌을 때 각자 주문한 식사가 하나씩 나왔다.
"옛날 얘기는 넘어가고. 식사부터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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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에 딸린 식당 치고는 제법 괜찮았다.
돈 값 못하면 다시는 안와야지 했는데 제법 괜찮은 게 가끔씩 데리고 오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나왔습니다."
내가 주문한 기스면을 조금 먹고 있을 때 같이 주문했던 요리 중 양장피와 칠리새우가 나왔다.
양도 제법 푸짐한 게 군인이나 연구원 돈을 받는 식당 치고는 양심적인 장사를 하는구나 싶었다.
"묘월씨.. 생각보다 많은 것 같은데 다 먹을 수 있겠어?"
당연히 조금씩 나올 줄 알고 시켰는데 제법 많아보였으니 저런 이야기가 나올 만도 했다.
예전에 개발을 끝마치고 회식할 때처럼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모임이면 모를까. 지금 모임은 작은 여고생 둘에 남학생 하나, 20대 남자 하사 하나 였으니깐.
"괜찮아요. 만약 못 먹더라도 초보군이 다 먹어주겠죠."
"어? 나?"
짜장면을 먹고 있던 주인공군이 그 이야기에 잠깐 놀래서 내 쪽을 쳐다보았다. 입가에 묻히기나 하고. 점심도 걸렀으니 어지간히 배가 고팠겠지.. 돌아갈 때 까지 저 꼴이면 슬쩍 닦아줘야겠다.
"원래 이런데서 남으면 막내가 다 먹는 검다. 제가 도와줄테니 걱정 마십쇼."
김하사가 주인공군에게 친근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서로 얼굴을 보고 지낸 기간이 일주일이 넘어가니 제법 친해진 느낌이네.
- 부엇
양장피 위에 겨자 소스를 쭉 뿌리곤 젓가락으로 무쳤다.
"여기 초보군꺼."
빈 그릇에 적당히 옮겨담아서 식사를 하고있던 그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그리고 하연씨."
"고마워 묘월씨."
각자에게 건네주고 김하사님 쪽을 슬쩍 쳐다봤다.
"김하사님도 떠드릴까요?"
"제가 가져가겠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 몫을 덜어서 가져간 뒤 한 젓가락 먹었다.
"읏..!"
실수로 겨자가 좀 덜 풀어졌던건지 매운 부분을 먹게되어서 코 끝이 아찔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행동을 보고 있었던 건지 옆자리에 앉아있던 주인공군이 물을 한컵 건네주었다.
"..고마워."
항상 양장피를 먹다보면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이지..
"탕수육 나왔어요."
점원의 말과 함께 마지막 요리인 탕수육이 나왔다.
엥 특이하게 소스에 같이 볶아주는게 아니라 소스랑 따로 내어주네.
번거롭게.
- 부엇
나는 점원이 떠난 뒤 탕수육 소스를 탕수육 위에 바로 부었다.
"어.."
"어라..?"
"엇.."
탕수육 소스를 탕수육 위에 붓자 다른 셋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 것 같은 표정이 나에게 꽂혔다.
"뭐해요. 식사 안하시고?"
"응..."
모두 나의 행동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식사를 안 하냐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다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보통 회식가면 부장님이 갑자기 부어버리던데 왠지 모르게 나도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이것이 바로 권력의 맛..
법인카드를 쓰는 것도 아니고 내 돈으로 결제하는 거니깐 이 정도 폭거는 용서 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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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내어준 과일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넷이 다 먹을 수 있겠나 싶었는데 다들 잘 먹는 덕분에 보는 내가 흐뭇해졌다.
나도 많이는 먹지 못했지만 즐길 만큼은 먹을 수 있었고.
'그래서 ..다니깐 어이가 없어서..'
다들 식후의 노곤함을 즐기고 있었는데 홀 근처의 방 안에서 조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 드르륵
방의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선 조금 취기가 도는 듯한 얼굴이 붉은 군인 몇이 나왔다.
대위 계급장과 가슴 쪽에 달린 조종 특기 마크.. 아마도 파일럿인 것 같았다. 단지 어깨에 견착된 부대마크가 타브하와는 다른 것이 외부 인원 같아보였다.
월요일부터 취하다니 대단한 배짱이네. 다음날 출근 괜찮은 건가.
"내가 왜 그런 애송이한테 자리를 내줘야 하는 건데.. 뭐하러 여기까지 불려온거냐고"
소리가 시끄러웠던 탓에 홀에 있던 손님들이 흘긋 바라보기까지 했다. 우리도 그쪽을 향해 시선이 가기도 했고.
"..잠깐. 저 애 아니야? 얼굴 보니깐 맞는 것 같은데.."
취해있던 대위를 옆에서 부축하던 다른 군인이 주인공군과 시선이 마주쳤다.
대위 계급장의 남자는 그를 한번 바라보더니 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 이런 애송이가 첫 출격에 차원수를 열 마리나 잡았다고?"
주인공군의 옆에 있던 나 까지 술 냄새가 확 풍겨오는 것 같았다.
"너 같은 민간인이 1호기를 탈취해서 내 꼴이.."
거의 인사불성이 되듯 취한 대위 계급장의 남자가 주인공군의 옷을 붙잡으려고 했었던 찰나..
"아저씨.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돌아가 주세요."
대위 계급장의 남자의 가슴팍을 손으로 밀쳐 그가 다가오려는 것을 막았다.
"넌 또 뭐.."
그 남자는 자신의 가슴아래에 밀쳐진 손과 나의 얼굴을 보더니 행동을 멈췄다.
"아주 대단하네.. 최연소 파일럿에 벌써부터 여자까지 끼고 다니고 말이야..."
행동은 멈췄지만 비아냥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다른 간부나 군 가족도 많은 이 곳에서 계속 소란이라니. 어떻게 보면 대단한 배짱이네.
"너 아까부터 뭐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방 안에서 나온 군복을 입은 여자가 나와 그 남자를 뒤에서 붙잡았다.
"이거 놔..! 아직 이야기가..!"
"나이 서른 가까이 쳐먹고 취해서 애들 앞에서 뭘 하는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
군복을 입은 여자는 대위 계급장의 남자를 끌고 돌아갔다.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결국 그 남자가 식당 밖으로 끌려 나가자 다시 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참 정신이 없었네요."
다행히 폭행도 소란도 없게 끝났으니 다행이었다.
"죄송함다.."
어른으로써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김하사가 나에게 사과를 건넸다. 어쩔 수 없지. 상대는 대위니깐.. 만년 하사 짬으로는 버거운 상대였다. 군복도 입고 있었으니깐.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여차하면 사령관님을 부르면 됐었죠."
그랬더라면 주간사고사례에 적히는 정도가 아니었겠지만.
"묘월아 저 사람 혹시.."
방금 전의 사건을 겪은 당사자인 주인공군이 나에게 생각이 가는게 있는 듯 말을 꺼냈다.
"생각하시는 게 맞아요. 저 사람이 원래 베레시트 1호기의 파일럿... 으로 예정 되었던 사람이에요."
방금 전 까지 소란을 피운 대위 계급장의 남자.
젊은 나이에도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기지에서 넘어오기로 되어있던 파일럿이었다.
설정상에나 한줄 지나갈법한 이야기를 가진 저 남자를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그 남자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날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제 돌아갈까요?"
마무리가 조금 어수선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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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우리는 학교가 끝난 뒤 셋이 모여 기지로 출입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평일에는 강의 한 시간과 시뮬레이션 한 시간.
이제 조종이 제법 능숙해진 주인공군은 혼자서 시뮬레이션 모듈에 탑승하게 두고 류하연의 작전 모듈을 다루는 법을 봐주고 같이 실습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벌써 훈련이 3주차 금요일에 접어들었다.
- 파스슷..
- 삑
'25%'
일주일에 한 번씩 측정하는 측정장비에 주인공군이 손을 올리자 모니터에 표시되는 숫자는 25%로 올라있었다.
"대단하네요. 훈련을 막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10%였는데."
"두 배 넘게 오를 줄은 몰랐어.."
나는 약속했던 대로 그의 적합률과 조종실력을 단기간에 엄청나게 올려주었다.
그가 미약하게 적합자로써의 자질을 갖고 있는 것도 있지만 노력하는 자세가 그의 성장을 도왔다.
하지만 3주차에 접어들자 성장이 슬슬 느려지는 게 보였다. 2주차 까지만 해도 10%에서 20%로 두 배 가까이 뛰었는데 이번 주는 겨우 5%로 오른 정도에 그쳤다.
예전에 훈련시설에서 달리기를 시켰을 때 미약하게 적합률이 올랐던 것처럼 감정과 상태에의한 변화가 아니고선 25%라는 숫자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이제 시뮬레이션 모듈을 돌리면서 성장할 수 있는 성장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두 분 모두 내일 하루 정도 시간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나? 난 상관없는데."
"나도.."
강의를 마무리 지으던 중 주인공군과 류하연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계속 훈련만 받으면 답답하잖아요? 내일은 주말이니깐 실습을 나가보려고 해요."
저번 주에 사령관에게 미리 이야기도 되어있었으니 둘의 동의만 받으면 나갈 수 있었다.
"실습이라면 어디로 갈거야? 훈련장?"
예전에 내가 사도의 테스트를 했던 것과 같은 훈련시설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성장은 똑같이 더디겠지.
"아뇨. 기지 밖으로 나갈거에요."
"기지 밖? 어딜가려고?"
계속 훈련을 기지 안에서 할 줄 알았는데 나가겠다는 이야기를 듣자 어디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듯 했다.
"이 기지 북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폐쇄 도시로 갈거에요."
실습을 위해 나갈 곳은 차원수의 침략을 이기지 못하고 버려진 봉쇄 구역.
폐쇄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