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폐쇄 도시
음란토끼... 해프닝이 있던 뒤 류하연에게도 엘을 소개해 주자 진짜 사람이 조종하는 것이 아닌지 툭툭 쳐보기도 했었다.
엘이 화를 내려는 것을 말리느라 고생을 좀 했다.
한 달 만에 사도.. 코드네임 아르네벳의 조종석에 앉게 되었다.
앉게 되자 조금 몸을 시원하게 감싸오는 느낌이 자동 정화기능이 작동된 듯 했다.
내가 그동안 세속에 많이 찌들어있던 거구나..
< 잘 들려? >
주인공군도 1호기에 탑승을 끝낸 듯 통신이 들려왔다.
"응 잘 들려."
통신상태를 확인하고 지휘부와 류하연과의 통신 상태도 점검을 끝냈다.
조종 레버를 움직이자 조금씩 사도가 걸으며 사도의 겉에 두른 테나흐의 잎이 바람을 타고 조금씩 흔들렸다.
< 베레시트 1호기와 아르네벳. 지금부터 장벽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지휘부에서 들려오는 통신과 함께 입구 쪽에 준비된 무장 컨테이너를 각자 하나씩 들은 뒤 장벽의 문 앞에 섰다.
< 네 거는 컨테이너가 더 크네.. >
1호기가 든 컨테이너와 다르게 두 배는 될만한 컨테이너 하나를 어깨에 걸치자 주인공군의 신기하다는 통신이 들려왔다.
"내 기체는 손이 좀 커서. 일반 장비는 쥘 수도 없어."
천막 아래로 잠깐 손을 꺼내 1호기를 향해 보여주었다.
1호기의 손 보다는 네 배는 큰듯한 사이즈의 주먹. 근접 특화기체라서 이렇게 큼직한 거겠지. 덕분에 일반 사격장비는 쥘 수조차 없다.
프로그래밍 제어를 이용하면 발사는 할 수 있겠지만 견착도 안되니깐..
< 특이하네.. >
- 위이잉 !!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장벽의 문 위에 달린 비상등에서 붉은 불이 반짝이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엔 또 문이 있었다. 혹시나 차원수가 빠져나가게 될까봐 마련해둔 이중문이겠지.
- 탁 ! .. 위이잉
문 안쪽으로 들어오자 우리가 들어간 쪽의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 앞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군데군데 깨져있는 아스팔트 도로의 바닥. 깨진 틈 사이로 식물이 자라 주변 건물에도 가지가 엮여 하나의 숲이 되어있는 공간이었다.
< 지금부터 장벽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일정 구역까지는 장벽 위에 설치 된 대포가 엄호할 수 있지만.. 구역 밖에선 엄호가 힘들어지니 조심하세요. >
장벽 위를 살피자 거대한 강철의 대포가 몇 개 눈에 보였다.
지금도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포는 일정 간격으로 기수를 돌려 움직이는 게 이 곳에서도 보였다.
아마 화약을 이용한 탄환을 사용하는 것 같진 않고 레일건인 것 같았다. 저 정도의 크기라면 코어를 이용한 무기겠지..
- 탓
문 안쪽의 도시로 들어오고 마지막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확인하곤 나는 바로 고층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 묘월아..? >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이 생긴 듯 통신이 들려왔다.
"내 역할은 백업. 같이 싸워주는게 아니니깐 이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게."
방치된 지 십년은 더 지난 건물이었지만 아직 골격은 튼튼한 것이었는지 8m에 달하는 거체로 옥상을 디디고 있어도 흔들림이 없었다.
"위험해지면 바로 내려와서 도와줄 거지만.. 조심히 움직여. 알겠지?"
< 알았어. >
혼자 가야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듯 했지만 내가 지켜보고 있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안심한듯 등에 장비한 무장 컨테이너에서 라이플을 꺼낸 주인공군은 1호기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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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슈욱..
나도 무장 컨테이너를 내려놓은 뒤 컨테이너의 버튼을 사도의 발로 밟자 컨테이너가 열리며 대형 라이플이 나타났다.
원거리 보조용 대구경 라이플.
원래는 방아쇠가 작아 손에 쥘 수도 없었지만 정비팀의 개조 덕분에 옆구리에 견착하면 보조 그립과 버튼을 통해 발사할 수 있었다.
고층건물에서 주저앉아 라이플을 옆구리에 낀 뒤 아래를 내려 보자 차원수 몇마리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새로운 침입자가 나타난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인지 소형 차원수 몇 마리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마 10년의 세월동안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겠지.
다행인 것은 저 차원수들이 장벽을 넘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이 곳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장벽을 넘으려고 하는 것들은 레일건 대포에 박살났겠지.
- 푹! 푹! 푸슉!
아래에선 주인공군이 이따금씩 만나는 차원수를 상대가 눈치 채기 전에 소음기를 단 라이플을 통해 사냥하고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쌩 초보였는데 3주간의 훈련 덕분에 어느 정도 전투에 감이 잡힌 것 같았다.
벌써 두 마리나 해치우다니.
"잡은 차원수 위에 소형 마커를 남겨놔. 나중에 회수팀이 회수해갈거야."
차원수의 육체는 그저 썩어가는 고깃덩어리이지만 그 안에 있는 코어는 다르다. 각종 산업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물건이니 돈이 될 것은 챙겨두는게 탄약값도 벌 수 있겠지.
< 응. >
두 마리를 잡은 주인공군은 방금 발사한 탄환의 마커 기능을 켜 위치 정보를 남겨두었다.
그 후에도 이따금씩 마주치는 소형들은 잡기 쉬웠다.
3:1 혹은 5:1 까지 트레이닝을 마쳐본 주인공군이니 더 이상 소형의 무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 달각. 빠아악!
< 탄약이 다 떨어졌네.. >
어느덧 열 마리를 넘게 사냥하자 기본 라이플의 탄약이 떨어진 듯 쓰러진 차원수의 확인사살을 하려던 주인공군은 개머리판으로 차원수의 머리를 뭉갰다.
효율적이긴 한데 저런 잔인한 처리방법은 누구에게 배운 거지.. 아 나구나..
"보충 보내줄게."
내가 짊어지고 왔던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손에 쥔 뒤 발로 걷어차 날렸다.
- 슈우우욱... 콰악!
약해진 콘크리트 바닥을 깨며 탄약 컨테이너가 주인공군의 옆에 박혔다.
< ..깜짝 놀랐어. >
< .. 세 방향에서 소형 무리가 세 마리 씩 접근 중.. >
방금 컨테이너를 던져보낼 때 발생한 소음 때문인지 세 방향에서 차원수가 접근중이라는 류하연의 관측결과가 들어왔다.
공중에 일정 거리를 두고 띄워져있는 비행 관측장비. 아마 저걸 통해 이 쪽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거겠지.
지휘관이 적합자여야 다룰 수 있는 장비인데. 지금 실습에 파견 된 지휘관은 적합자의 소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세 무리면 혼자선 힘들 텐데 조금 도와줄까.
- 슈우욱... 까아앙!
류하연이 마킹해준 방향을 향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대구경 라이플을 쐈다.
멀리서 강철이 때려박히는 소리와 함께 마킹되어있던 세 마리 중 두 마리의 마킹이 동시에 사라졌다.
"남은 일곱 마리는 직접 잡을 수 있지?"
< 해볼게. >
아홉은 힘들더라도 일곱에선 배우는 게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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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주인공군은 세 마리와 세 마리,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를 훌륭하게 격파했다.
처음엔 라이플로 거리를 두고 대처하다가 가까이 왔을 때는 어깨에 장비하던 근접용 산탄총을 사용해 격파했다.
예전엔 부족해보였던 사격실력도 시간이 지나니 향상되는 것 같았다.
"정말 실력이 늘었는데? 이제 초보군이란 딱지는 벗겨줘도 되겠어."
< 정말? >
근접전으로 들어갈 일도 없이 소형 차원수 사냥을 잘 해내는 것을 보자 조금 대견했다.
하지만 소형만 잡을 거라면 이 곳에 올 필요가 없었지.
- 까드드드득.. 그르르륵..
조금 멀리서 콘크리트 바닥이 갈리는 듯 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이 정도 소란이 있었으면 오는구나. 라이플은 소음기를 꼈었지만 산탄의 소음은 감출 수 없었기도 하고..
멀리서 중형의 크기를 가진 네발로 달리는 차원수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중형 세 마리 정도를 혼자 잡으면 정말 인정해줄게 초보군.
여태 보았던 지네형과는 다른 타입의 중형 차원수.
네 발로 걷지만 가슴 쪽에는 작은 갈퀴와 같은 팔이 두개 달려있었다.
- 탕 ! 탕 ! 탕 ! 가아아아악 !!
공중에 높이 뜬 차원수는 1호기의 사격을 옆으로 피했다.
- 파악! 팍!
산탄총도 몇 발 쐈으나 겨우 옆을 스칠 뿐 빠른 속도를 맞추긴 힘든 것 같았다.
- 푸시익..
사격은 그만둔 것인지 어깨에 거치해두었던 대검을 꺼내 오른손에 장비한 1호기.
- 우우웅..
주인공군은 근접에서 곧바로 처리할 생각인지 대검의 검신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 샤아아아악 !!
중형 차원수여서 그런지 네발로 땅을 딛고 있음에도 1호기의 전고와 비슷한 크기의 짐승이 울부짖었다.
- 슈우욱 !!
1호기의 양 어깨에 달린 미익이 푸른빛의 입자를 날리며 차원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 카아아악!!
근접해온 1호기를 가슴에 달린 양 갈퀴가 쳐내었지만 품 안으로 정확히 파고든 덕분에 한쪽 갈퀴가 잘려 땅에 떨어지자 갈퀴로 가려졌던 코어가 내비쳐졌다.
- 푸욱.. 기이이잉!!
갈퀴를 자른 틈으로 1호기가 대검을 아래에서 위로 수직으로 꽂아 올리자 적색의 코어가 갈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그륵.. 극..
차원수는 입에서 검붉은 피를 쏟더니, 곧 그대로 형태가 무너져 주저앉자 대검의 끝이 차원수의 등을 뚫고 나온 채 움직임을 멈췄다.
짧은 교전시간안에 불리한 사격을 포기하고 근접전으로 파고들어 바로 제압하다니. 이제 정말 초보는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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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그런 애새끼 뒤처리나 하러 온 거란 말이야? >
같은 시각. 주인공군이 떠난 곳에서는 검은색 케루브 3기가 소형 차원수의 시체에서 코어를 채취하고 있었다.
< 꼬마의 뒷처리라니.. 우리 셋도 갈 데까지 갔구만. >
다른 케루브에서도 한탄하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 둘 다 조용히좀 해. 백업으로 왔다는 거 알고 온거잖아. >
마지막 한 기에서 들려오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 후우욱..!
방금 목소리가 들려온 검은 케루브는 코어를 꺼낸 차원수의 시체를 한쪽에 쌓아둔 후 어깨에 장비한 화염 방사기를 통해 그 시체를 소각했다.
< 잠깐만.. 탐지 모듈에 뭔가 잡히는데. >
두 번째로 통신이 들려왔던 케루브의 등 뒤에는 거대한 원반형 레이돔이 장착되어 있었다.
< 아무래도 그 꼬마가 중형과 교전하고 있나본데? >
지휘관의 탐지모듈이 없더라도 감지가 되는 듯 정찰 모듈을 달고 있던 검은 케루브에게서 보고가 들려왔다.
< 베레시트 1호기 만세라는 건가.. 그건 원래 내 것이어야 했다고 >
- 쾅!
다른 케루브와 다르게 머리에 지휘관용 추가 통신모듈인 뿔을 달고 있는 검은 케루브 에서 조종석 안쪽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1호기와 천을 둘러싸고 있던 백업 기체와는 다르게 이 팀은 현장에 지휘관, 정찰, 백업 모두 이루어졌기에 별도의 지휘관과 오퍼레이팅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 오.. 벌써 처치한 모양인데? 정말 프로파간다용이 아닌 실력자인가 봐. >
정찰 모듈을 달고 있는 케루브의 파일럿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 칫.. 이봐 그 전투가 있던 구역이 어디야? >
< 좌표는 A32.. 거기는 왜? >
- 슈우욱..
지휘관용 모듈을 달고 있던 케루브는 공중으로 오르더니 고층 건물 위로 올라갔다.
< 그렇게 잘 나신 파일럿이라면.. >
- 위이잉...
지휘관기가 들고 있던 라이플의 끝에서 주황색의 빛이 모였다.
< 다섯 마리 정도는 거뜬히 잡아보실 수 있겠지? >
- 샤아아악..!
라이플의 끝에서 주황빛의 레일건이 쏘아지더니 저 멀리서 명중한 듯 작은 폭발이 보였다.
그리고 폭발 속에서 날개를 가진 다섯 마리의 중형 차원수가 뛰쳐 나왔다.
< .. 정말 우리 대장은 악취미라니깐. >
< 시끄러. 우리가 저런 애새끼를 지키러 온 사람이야? >
< 못 말려. >
검은 케루브 3기로 이루어진 독자 행동권을 가진 놋 베이스 소속의 에이스 팀.
카이나벨.
그들의 통신망 안에서 세 명의 웃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