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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막간 : 황금의 잔 (61/152)



〈 61화 〉막간 : 황금의 잔

폐허가 된 도시의 상공을 낮게 이동하는 검은 케루브 3기.

한쪽에 있는 케루브만 장비가 다른 두 기에 비해 가볍다는 것을 빼면 별 다른 손상이 없어 보이는 상태였다.

< 대장. 그 장비 엄청 비싼 거였다고.. >

다른 두 기에 비해 경장을 하고 있는 케루브에서 한숨이 섞인 통신이 들려왔다.

< 시끄러. 그 정도는 필요경비였다고 생각해. 대형을 피한데 그 정도면 운이 좋았던 거지. >

그런데 우리 일단은 백업 요원인데 이렇게 이탈해도 되는 거야? >

미사일 컨테이너를 장비한 케루브에서 통신이 들렸다.


< 괜찮아. 어차피 내 재량으로 철수할  있는 권한을 받았으니깐 그런 일은 도망치는 게 상책이지. 개죽음 당할 일이라도 있나? >


< 타브하에는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고? >


< 어차피 원래 계약이었던 1호기의 테스트 의뢰를 깬 것도 그쪽이야. 별 소리는 못하겠지. >

< 뭐 잘 넘어가면 좋겠지만. >




- 삐빅


그들의 대화를 깨듯 통신망 안에서 작은 알림소리가 들렸다.


도착한 것 같네. >


< 우리의 임무는 애송이의 백업이 아닌 이 쪽이니깐. >


검은 케루브 3기는 알림이 울린 곳에 멈춰서 기체를 정지시켜 땅 위로 내려앉았다.


그  뿔이 달린 케루브의 조종석 안에서 파일럿 복을 갖춰입은 남자가 내리고 미사일 컨테이너를 짊어진 케루브에서는 파일럿복을 입은 여자가 내렸다.

"너는 여기서 남아서 계속 경계 하고있어."


< 예 예. 다녀오십셔 대장. >


경장을 하고 있는 케루브는 알겠다는 듯 라이플을 쥔 채 조종석 안에 남았다.


낡은 건물.


이전에 이 곳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기 힘든 건물이었다.


관공서였을까. 아니면 병원이었을까.

건물의 한쪽 벽면은 아까 뿔이 달린 기체의 사격에 직격한 듯 한쪽면이 무너져 내려있었다.

"아까 일부러 여길 노려서  거였구나."


"내가 아무데나 쏴 갈긴 건줄 알았어?"


"평소에 좀 믿기는 짓을 했어야지."

"이 주변에 있던 중형 10체를 내쫒기 위한 사격이었다.. 뭐 절반 정도는 애송이들이 잡았지만."

"아 그래서 쏜거였구나. 난 또 생각 없는 짓이라도 한줄 알았는데"

"자꾸 그러면 하극상으로 올릴거다."

건물의 입구에서 두 남녀는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곤 남자는 손전등과 권총을. 여자는 기관단총을 든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탁.. 탁..

오래전에 전기가 끊겨 어두운 건물의 계단을 타고 파일럿복을 입은 남녀는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곳에 사령관이 부탁한 물건이 있다더라고."


"사령관이면 타브하의?"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리 사령관 이야기야."

"아아.. 그 고지식한 아저씨."


"좀 고지식하긴 해도 책상 앞에 앉아있던 샌님이었던 타브하보단 낫지."

"그건 그래."




어느 정도 계단을 타고 내려온 그들은 격벽 앞에서 멈췄다.


"열 수 있겠어?"

"이건 저 위에 있는 애가 잘 할 텐데.. 뭐 나도 못하는건 아니니깐."


여자 파일럿은 파일럿복의 주머니에서 작은 단말을 꺼내선 격벽 옆에 달린 패널에 연결했다.


"오래전에 버려진 곳이니깐 금방 열릴 거야."


- 삑! 위잉..

조금 지나자 패널에서 녹색 불이 점등하곤 격벽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 안에 차원수가 있는건 아니겠지?"

"이렇게 좁은  까지 들어오진 못했을 거다."


- 쿠웅..


격벽이 완전히 위로 올라가자 쌓여있던 먼지가 조금 아래로 흩날렸다.


"역시.. 교수가 말했던 그대로네."



격벽이 열린 방 안에는 이전에 이 곳의 용도가 연구실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듯 버려진 컴퓨터와 각종 장비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한몫 챙기겠다던 그거야?"


격벽을 연 여자 파일럿은 시시하다는 듯 책상 위에 먼지가 쌓인  방치된 레포트를 한번 손으로 집어 훑었다.

"그런 종이 쪼가리 따위 이미 10년 전의 낡은 정보야. 진짜는  쪽이지."

남자 파일럿은 널려있는 장비를 무시한 채 가장 안쪽의 연구실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런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듯 여자 파일럿은 손에 들려있던 레포트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비밀번호가 분명.."


가장 안쪽의 컴퓨터에 도착한 남자는 전원을 올려 단말에 뜬 비밀번호 입력란 앞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이거로 하면 금방 열리지 않아?"

여자 파일럿은 아까 전 격벽을 열었던 단말을 손에 들고 흔들어보였다.


"이것만큼은 교수가 직접 입력하라고 수첩까지 줬어. 외부 단말을 연결하면 즉시 소각된다던가 그러던데."

"참 아날로그다운 보안이네."

남자 파일럿은 수첩 안에 적혀있던 패턴을 한참 읽고 조금 시간이 걸려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 삑

비밀번호가 일치함을 확인하자 낡은 단말에서 성공을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됐다."

"이거로 뭐가 된 건데?"


"성질  급하네. 기다려봐."

- 우우웅..




잠시 후 연구실 안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더니 남자가 있던 곳 뒤의  공간에서 불투명하고 두꺼운 유리벽이 위로 올라왔다.

"..참 공대생들이나 좋아할 법한 설계네."


여자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유리벽을 보고 어이없다는  한숨을 쉬었다.


"보물을 찾았다는 보람이 있어서 좋기만 한데."

- 달각.. 푸슉..


남자는 올라온 유리벽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열렸다.


검게 코팅  케이스가 유리 안에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그 케이스 위에는 금색의 서명으로 'GOLDEN MEAD' 라는 사인이 적혀있었다.

"MEAD.. 뭐야 술? 이런걸 찾으려고 우릴 여기까지 보낸 거야?"


케이스 위에 적힌 글귀를 읽은 여자는 더 실망이라는 듯 눈을 찌푸렸다.

"물론 술이여도 좋았겠지만 이건 술이 아니야. 이건.."

< 오 대장 찾은 거야? >

"경계는 어쩌고 통신이야. 아무 이상 없는거 맞지?"


< 멀쩡해. 하늘에 열려있던 게이트도 사라진 것 같은데? >


"뭐? 그런 애송이랑 시험기가 대형을 잡았을리가 없잖아."


< 난  그대로 말하는 거라고. >


"여튼 찾았다. 곧바로 올라가마."


< 오케이 >




"..그래서 이게 뭔데? 꼭 궁금한데서 끊네."

남자는 케이스를 들어 올려 책상 위에 얹었다.

"교수가 10년 전에 여기서 연구했던 물건이야. 교수는 '황금의 잔' 이라고 부르던데.. 뭐 잠깐 열어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 탁.. 시익..



케이스가 열리자 그 안에는 밝게 빛나는 금빛의 옷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보호를 위해서인   옷은 한   투명한 케이스 안에 들어있었다.

"이건.. 파일럿복?"

"눈썰미가 좋네. 파일럿복이 맞아."




확인은 이걸로 되었다는  남자는 다시 케이스를 닫고 연구실을 나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10년 전이면 그런 구닥다리나 찾으러  거라고..?"

"보통 구닥다리가 아니야. 이건.. 10년 전의 게이트를 닫은 영웅이 입고 있던 파일럿복이다."

"거짓말..."


그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이 임무의 중요성을 깨달은 듯 말에 섞여있던 비아냥거림이  순간에 사라졌다.




"이것으로 임무 완료다. 돌아가자."

검은 케이스를 쥔 남자는 버려진 연구소를 뒤로 하곤 자신의 기체에 올랐다.

검은 케루브 3기가 공중으로 날아오른 후.


버려진 연구소는 작은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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