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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다과회 (62/152)



〈 62화 〉다과회

대형 차원수가 등장했던 게이트가 닫히고 얼마 지나서 뒤늦게 도착한 본부 지원팀 덕분에 현장이 수습되었다.

동력이 다 떨어진 채에 곳곳에 손상을 입고 조종석의 커버까지 떨어져나간 1호기는 옆에서 부축하듯 옮기게 되었지만..

트레일러가 있던 장벽의 입구까지 돌아와서 기체를 트레일러에 맡겨두고, 다시 원래 옷으로 갈아입은  주인공군과 함께 타고왔던 밴을 향해 돌아갔다.

밴의 입구에는 오퍼레이터복에서 원래 사복으로 갈아입은 류하연이 있었다.

"하연씨 여기에요."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는걸 보며 멀찍이 서있던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

- 타닷..



우리를 발견한 그녀는 우리  사이로 달려와 두 팔로 나와 주인공군을 붙잡아 안았다.


"둘 다.. 무사했구나.."

대형 차원수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인 후 통신장비가 죄다 먹통이 되어버려서 연락을 나누지 못했으니 그녀가 걱정할 만도 했다.

"네. 둘이서 멋지게 쓰러뜨렸는데 보여드리지 못해서 아쉽네요."


나와 주인공군을 안은 채 고개를 묻은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주인공군은 나처럼 류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지는 않았지만 사과가 담긴 말을 건넸다.

 그거 좀 주인공다워서 멋지다. 잘하면 주인공군과 류하연이 호감도를 꽤 쌓을지도 모르겠네.




"감동의 재회는 여기까지. 주혁이도 피곤할 테니깐 돌아가요."

철수를 준비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는 현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을 멈추고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


"네?"


"언제부터.. 이름으로 부르는 사이가 된 거야?"

방금까지의 감동스러운 분위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그녀는 고개를 올려 빛이 사라진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꽈득..

우리를 안고 있던 그녀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그..그게 훈련을 잘 끝내면 앞으로 이름으로 불러주기로 해서.."


그동안 그녀의 무서운 모습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아래에 잠들어 있던 것일 뿐 전혀 사라진 게 아니라는걸 감각적으로 느꼈다..


"..나도 오퍼레이터 훈련 받았는데?"


"하..하연씨도  끝내면 소원 들어드릴테니깐요.."

생각해보니 내 전속으로 들여서 훈련시설에서 같이 훈련을 받게 했으면서 주인공군에게만 뭔가 챙겨준건 좀 너무했지..

"..정말이지?"


"네..네 꼭 들어드릴테니깐요.."

"꼭이야.."

위기라고 생각한 탓에 제약 없는 백지수표를 건네준  같았지만.. 그녀도 심성은 착하니깐 무리한 부탁은 안하겠지..


"너는.."

하지만 류하연은 다음 타겟으로 주인공군을 나를 쳐다봤던 것처럼 올려보았다.


"..다쳤네."


그러나 머리에 감겨있던 붕대를 보곤 뭐라 말하려던 것을 그만둔 듯 그를 붙잡고 있던 팔을 놔주었다.

"환자라서 봐준 거야.."

조금 불만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지만 그녀는 주인공군을 놔주곤 용서해준다는 듯 올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고마워."


바로 옆에서 내가 추긍당하는 것을 보던 주인공군은 아무 일 없이 넘어간 것에 대해 안도하는 듯 했다.

십대 청춘들이라는 건 옆에서 보면 참 풋풋하구나.


"이제 돌아갈까요. 한숨 자고 싶어졌어요.."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 류하연을 먼저 내려주곤 주인공군과 둘이서 기지로 돌아왔다.


'2 정비반! 콕핏이랑 외장장갑 속달로 신청해!'

우리가 격납고에 도착하자 정비담당자와 작업 인원들은 바쁘게 격납고 안을 달렸다.

기체와 함께 돌아와서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2번 격납고 앞에서 인계 작업을 지켜봤다.




'대체 뭘했길래 콕핏이 뜯겨나갔어?!'

현장 정비담당자는 외장 장갑이 대부분 긁혀있고 관절이 마모되었으며 콕핏이 통째로 떨어져나간 1호기를 보고 절망했다.

대형차원수를 상대로 어디 파손된  없이 긁힌 정도로 돌아온 거면 충분히  한 것일텐데.


... 콕핏은 주로 내 탓이지만. 미안합니다..


"흐암.."


밴에서 늘어지게 잔 덕분에 몸이 덜 풀린 것 같아서 기지개를 쭉 켜곤 하품을 했다.


우리의 뒤로 현장에서 수집한 코어들이 케이스에 담긴  운송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군복을 입은 말끔한 청년이 서있는게 보였다.

가슴에 달린 지휘 특기 마크와 어깨의 타브하 소속 부대마크를 보면 아마 저 사람이 오늘의 현장 지휘관이었겠지.

오늘 도움을 좀 받았으니깐 인사라도 건네고 와볼까.




"주혁아. 잠깐 인사좀 드리고 올게."

"어..알았어."

나의 건너 자리에서 똑같이 늘어지게  덕분에 잠이  깬 그를 놔두곤 조금 한가한 듯 한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지휘관님."

군복을 말끔하게 입은 그의 앞에서 건성으로 입은 사복차림으로 선게 미안했지만 난 민간인이니깐!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


주인공군보다 키가 조금 더 컸던 탓에 나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숙인 지휘관은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아르네벳의 파일럿입니다-"

그의 앞에서 양 손을 펼쳐 보이면서 입으로 짠- 이라고 말해주었다.



"아..! 베타니아의! 오늘 작전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그는 오늘 있었던 작전을 이야기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어.. 도와드린 게 별로 없는데.."

사실 원맨아미 처럼 혼자 멋대로 행동한 게 전부였는데 뭐가 도움이 되었단 거지..



"아닙니다. 오늘 제가 지휘하는 1호기를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오늘 현장에서 1호기의 동선은 지휘관이 전부 짜준 것이다. 나는 1호기의 옆을 호위하면서 적당히 재량껏 싸운 것뿐이었지만.

"오히려 제가 더 도움을 받았어요. 마지막에 지휘 모듈을 전부 돌려서 차원수의 시선을 돌려주시기도 했구요."


대형 차원수에게 일격을 먹이기 위해 포탑을 충전하고 있을  주인공군 다음으로 가장 도움이  게 지휘관이었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솔직하게 고맙다고 이야기 해주는  좋겠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그에게 조금 방긋 웃어주었다.

웃음은 항상 좋은 비즈니스 관계의 첫 걸음이다.




"아..아닙니다. 독립기관분이 이렇게 도와주신 게 오히려 이쪽이 더 감사하다고..해야 하나.."

지휘관은  감사에 당황한  했다.


베타니아의 구성원은 나와 류하연 단 둘뿐이었지만 사실상 베타니아의 최고 톱이니깐 위에 상사가 널린 지휘관의 입장에서 내가 불편할 수도 있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지휘관님이 저보다 더 연상인데. 저는 군인도 아니구요."

나중에 서예린이 정식으로 지휘관으로 합류해도 그는 계속 타브하에 남아있을거니깐 친해져서 나쁠 건 없겠지. 인심썼다.

"..그래도 될까?"

방금 전 까지의 우물쭈물하던 태도는 어디 간 것인지 한결 편한 태도로 말하는 지휘관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기 나이보다 열 살은 어려보이는 애한테 상사 대우해주는게 불편했겠지..



"앞으로도 자주 볼 거잖아요?"

"그렇겠네. 베타니아는 타브하의 백업이니깐.. 자주 볼 거면 너도  편하게 하는게 어때?"

고작해야 20대 후반일 텐데 조금 어른인 척 재는 것이 귀여워보였으나 지금은 겉으로 봐도 내가 훨씬 어리니 맞춰주는게 낫겠지.


"알았어 지휘관 오빠."


통념상 웃어른이니 오빠라고 불러주는게 맞겠지.


저번에 쏘야  받으려고 누군지도 모르는 급양 병사에게 오빠라고 불러준 이후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불러보는 오빠였다.


부르면서 조금 저항감이라도 들 줄 알았는데 이제는 마음속도 점점 소녀가 되어가는 것인지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 맨날 업계 선배들을 성님이라고 부르고 다니다가 오빠라 부르니깐 신선한 게 재밌어져서 조금 웃어버렸다.

"오..오빠.."


나에게서 오빠 소리를 들은 지휘관은 뭔가 조금 당황한 듯 표정에 놀람이 보였다.



이런 너무 단번에 거리를 좁히려고 했던 건가.. 배드 커뮤니케이션인가..



"불편하면 다시 지휘관님으로 불러줄까?"

"아..아니야! 오빠 쪽이 듣기 좋네.. 하하."


다행히 그런 문제는 아니었던  같다.

아마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사관학교에 바로 임관하느라.. 오빠 소리 들을 일이 별로 없는 환경이었나 보다.. 불쌍하게도.

그런 사람에게 오빠라고 불러주는건 재밌을 거 같으니깐 종종 오빠라고 불러줘야겠다.




".. 막 돌아온 참인데 혹시 괜찮으면.. 같이.."


지휘관이 뭐라고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장난을 생각하고 있던 탓에 그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이야기를 놓쳤다.


오늘은 이 정도 눈도장만 찍어주면 되겠지.



"오늘은 이만 퇴근할래. 다음에 봐 지휘관 오빠."

더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이쪽을 계속 주시한 채 기다리고 있던 주인공군을 향해 돌아갔다.

"어..어.. 그래. 다음에 봐.."

지휘관은 그 뒤에 서서 멍하니 손만 흔들었다.




---



지휘관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주던 사이에 기체의 인계 작업이 끝났는지 정비 담당자  한명이 와서 서류를 건네주었다.

정비작업에 파일럿이 할 일은 따로 없고 전투 기록만 제출해주면 되는데.. 내 경우엔 정비 자체가 필요 없으니 손상된 테나흐의 잎에 대한 부분만 체크하면 되었다.


"서명 받았습니다. 바로 돌아가시는 게 아니라 간단한 건강 체크를 받고 가셔야하니깐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곧 차량이 올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주인공군은 제법 피곤했던 건지 서명을 하는 동안 표정이 조금 안좋아보였다.


정식 파일럿이 되고나서 첫 출전인데 기체를 손상시킨 게 좀 걸려서 그런건가.. 돌아가는길에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줘야겠다.


"묘월아.."

정비 담당자가 떠난  조금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던 주인공군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주혁아?"


주인공군의 이름을 불러주곤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것인가 싶어 그의 눈을 응시했다.

처음 부르려던 때는 조금 어색했지만 몇 번 불러보니깐 이제는 초보군이라는 별명보다는 이름이 입에 잘 붙었다.

"..너는 연상이 좋아?"

응? 무슨 이야기지? 오늘 실적에 대한 이야기나 전투에 대한 반성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주제가 던져진 탓에 조금 멈칫했다.



"그건 무슨 이야기야?"


이야기의 방향을 따라갈 수 없어서 되물어봤다. 젊은 애들의 대화는 가끔씩 따라가지 못하겠단 말이지.



"..."


주인공군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나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야."


그리고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연애 이야기라고 말했다.



와! 연애!

주인공군이 생각보다 일찍 파일럿으로 합류하게 되었더니 이런 것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게 되었나보다.

원래대로라면 4월까지 죽어라 훈련만 받고 차원수 잡고 교단이랑 싸우고.. 정비반에 엄청 혼나고 그럴 텐데 내가 도와준 덕에 여유가 생긴  같다.


연애이야기라니. 어른 된 사람으로써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올바른 연애관을 이야기..

뭐... 난 못해봤지만. 그래도 사회생활하면서 봐온 게 있으니깐 이야기는 해줄 수 있겠지.


그래도 이런 상담을 나에게 부탁하다니 신뢰받는 것 같아서 기쁘다.




"글쎄?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에게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게 좋겠지. 한쪽 방향에 치우친 답을 주면 그 쪽만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주인공 주변의 히로인이래봐야 동갑 혹은 연하.. 서예린이나 틴달로스 정도가 연상이다. 뭐.. 성녀님은 노카운트로 하고.



"..정말? ...... 동갑이라도?"

동갑이라면 지금 당장은 류하연 정도인가. 아까 둘이 조금 친해진 것 같았는데 그런 기미가 있을 줄은 몰랐네.


류하연과 셋이 친구니깐 동갑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망설여졌던건지 한참이나 뜸을 들여서 말한 것 같았다.



"상관없지 않아?"

"..그렇구나!"


나의 대답을 들은 주인공군의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환하게 핀  같았다.

뜬금없는 토픽이었지만 이걸로  소년의 걱정을 덜었다면 오케이다.

"타브하의 파일럿 계십니까."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격납고 입구에 기지차량이 한대 도착했다.


"네 여기 있어요."

왠지 신나 보이는 주인공군 대신 내가 손을 들어 마중 나온 직원에게 여기 있음을 알려주었다.


보호자가 된 기분이네.

"파일럿의 메디컬 체크가 내일 오전에 있을 예정입니다. 아침 일찍 시작될 거라 자택으로 돌려보내드리는 것 보단 하루 병원에서 주무시는게 나을 것 같아서 모시러 왔습니다."

주인공군 조종석 안에서 부딪친 바람에 조금 상처를 입기도 했으니 병원에서 한번 정밀 검진받아보는게 좋겠지.

"들었지?  다녀와 주혁아. 의사 선생님 말  듣고.."

나는 뭐 다친 데도 없으니깐 이대로 퇴근하면 되겠지. 얼른 돌아가서 씻고 싶다.

"예? 베타니아도 같이 가셔야합니다."

"네?"

나는 왜?

"타브하 파일럿의 메디컬 체크이지 않습니까.."


"아..."


나도 일단은 타브하 산하 소속이지..



결국 주인공군과 둘이 차를 타고 기지 내 병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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