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다과회
주인공군과 함께 3번 격납고에 도착했다.
1번과 2번 격납고가 출격을 위한 기체의 정비 격납고라면 3번 격납고는 주로 무장이나 신기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들었다.
코어의 회수율이 높을수록 자금운용이 좋아지면서 점점 이것저것 업그레이드와 개조를 할 수 있는 곳인데.. 지금 시점에서 호출을 받는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아직 1호기는 교단과 전투를 겪은 것도 아니라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개조 플랜이 없을 텐데.
주인공군이 아닌 나를 불렀다는 것도 의아했다.
일요일인데도 개발팀 직원의 대부분이 모여 있는 가운데 서있는 머리가 허옇게 샌 남자.
주인공군을 닮았지만 마냥 순해 보이는 인상이 남은 주인공군과는 다르게 세월을 지나보낸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그가 타브하의 개발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개발부장님."
그의 앞에 다가서서 인사를 건넸다.
"..왔군."
그는 인사를 가볍게 받아주다가 나의 옆에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아버지 앞이잖아. 인사는 해야지."
주인공군도 그의 아버지도 서로가 어색한 것처럼 아무말을 하지 않고있길래 주인공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쳐냈다.
"아버지.."
아직 십대인데 아버지라고 부르는구나..
어떻게 보면 일찍 철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앞의 간극을 보면 그가 자신의 아버지와 사이가 친밀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개발부장님도 마찬가지에요. 아들이 왔으면 아들 먼저 보셔야죠."
겨우 아버지를 부른 주인공군을, 그저 내려 보고 있는 개발부장에게도 아들을 먼저 챙겨달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주혁아."
개발부장은 나의 말을 듣고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친부모와 자식 간인데도 이렇게 어색한 관계가 있을까.. 그가 겪은 일은 설정너머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은 챙겨야 하지 않는가..
정말 둘이 같은 관사에서 살고 있는게 맞는 걸까 의심도 들 정도였다.
다음에 핑계거리라도 만들어서 한번 가정방문이라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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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부자상봉을 끝내고 개발부장에게 안전모를 두개 받아 머리에 쓴 뒤 3번 격납고 안으로 들어왔다.
"베타니아. 저번 전투는 기억하고 있나?"
어색한 것은 자신의 아들뿐이었는지 기지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장 어색하게 대하는 나를 개발부장은 편하게 불렀다.
"..저번 전투 말이죠."
시작형 은폐장비인 테나흐의 잎은 전부 불타버렸고. 1호기의 콕핏도 내가 뜯어버렸다..
설마 그 일에 대한 시말서를 쓰게 하려고 이 곳까지 부른 걸까.. 내 잘못이긴 했으니 할 말이 없다.
"테나흐의 잎은 죄송합니다.."
개발부장에게 질책을 받기 전에 먼저 사과를 건넸다.
"아.. 그건 상관없어. 어차피 자네가 아니면 다루지도 못할 장비였으니 말이야."
테나흐의 잎을 태워먹은 것은 잘못이 아니었나보다.
"그러면.. 1호기의 콕핏을.."
"그건 전투 중 파손된 게 아니었나?"
내가 잡아 뜯은 것이 아니라 전투중 손망실 처리로 되어있던 것 같다.
"마..맞아요! 대형 차원수 때문에 그런거에요!"
솔직하게 사과하자고 생각한 주제에 내 잘못이 아닌 걸로 넘어갈 수 있게 되자 슬쩍 넘겼다.
"그러면.. 왜 부르신 건가요?"
시말처리라면 굳이 이런 자리가 아니라 문서로 하달해도 되었을 텐데 그가 나를 이 곳에 직접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
"저번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지. 그 때 대형 차원수와의 전투는 기억하나?"
"방벽에 있던 포탑을 뜯어서 사격했었죠?"
"그 포탑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금속탄을 쏘는 포탑이 아니었나요?"
포탑을 뜯어내느라 미리 장전되어있던 탄환 한발만 가지고 싸웠던 기억이 났다.
"차원수를 어떻게 해치웠는지.. 정말 제대로 기억하고 있나?"
분명.. 광선을 쏘려는 차원수에게 코어를 직접 쑤셔박은 포탑을 들고 쐈는데...
"다시 한 번 묻겠네. 포탑은 어떤 장비였나?"
"금속탄을 한발 쏘는 장비였죠.."
"베타니아. 자네가 쓴 방법은?"
개발부장이 다시 나에게 묻는 의도를 알게 되었다.
"차원수와 같은.. 광선을.."
"그거네."
개발부장은 이제서야 그 전투상황을 이해한 나를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포탑은 어디까지나 탄환을 쏘기 위한 장비일 뿐. 광선을 쏘는 장비가 아니야."
개발부장을 따라 도착한 곳엔 내가 전투에서 사용했던 포신이 녹아내린 포탑이 격납고의 바닥에 놓여있었다.
"...자네는 코어를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사용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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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처음 쏘았던 푸른빛은 포탑에 장전되어있던 레일건의 탄환이었겠지.
그 다음에 내가 쏘아올린 백색의 광선은 코어에서 뽑아낸 힘이었다.
어제의 전투에서는 대형 차원수가 넘어오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터라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현장의 관측장비가 모두 손상된 탓에 제대로 된 영상은 남지 못했다."
- 삑
한쪽에 준비된 모니터에는 멀리서 찍은 듯 흐릿한 모습으로 아르베넷이 포탑을 옆에 낀 채 백색의 광선을 게이트를 향해 발사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코어가 발견된 지 아직 20년도 지나지 않았어.. 코어에 대해 밝혀진 것은 아직도 거의 없는 상태야."
내가 사용한 포탑을 보여주는 게 이 장소에 부른 목적 전부가 아니었던 듯 개발부장은 조금 더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코어가 가진 많은 가능성을 알려줬었지."
"그녀라면.. 영웅의 이야기 인가요?"
"잘 알고 있군.."
맥락상 사령관의 부인의 이야기겠지. 개발부장과 사령관, 그리고 사령관의 부인은 같은 연구소 출신이었으니..
- 삑
개발부장은 격납고 한쪽 문에 멈춰 서서 자기가 가진 보안 카드를 벽에 달린 단말위로 찍었다.
- 기이잉..
닫힌 문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린 후 문이 완전히 열리자 우리는 그 안에 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도보다, 아니 1호기보다도 더 긴 길이를 가지고 있는 백색의 기둥.
잠시 후 조명이 들어오자 그것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개발부장님.. 이건?"
나는 그 거대한 기둥을 그저 올려다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라자루스.. 그녀가 10년 전에 남기고 간 물건이다."
그것은 기둥이 아닌 거대한 활강포였다.
"베타니아. 자네라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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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루스. 거대한 백색의 활강포.
차원기보다도 더 긴 몸을 가진 무기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저것은 개발단계에서 취소된 오브젝트였다.
지금 폐쇄도시의 장벽 위에 있는 대포처럼 일정 구역을 넘어오지 못하게 기획한 맵 오브젝트였다.
광선을 계속 뿜어내서 인위적인 방위선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는데.. 실수로 광선이 게이트와 충돌할 경우 게이트가 사라져버리는 문제가 있던 탓에 삭제된 오브젝트였다.
삭제된 오브젝트가 이 곳에 이런 모습으로. 그것도 영웅의 업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건.. 그녀가 만든건가요?"
마치 사도와도 같은 매끈한 백색의 표면을 손으로 한번 쓸어보았으나 이 활강포는 사도와 같지 않다는것을 손 너머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설계만 알려줬을 뿐. 직접 보지는 못했어.."
영웅은 설계에만 관여한 건가..
"이 무기는 출력만으로 게이트 그 자체를 닫아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되고 있네."
"이런 게 있다면 왜 여태 사용하지 않았던 거죠?"
"누구도 다룰 수 없었으니까.."
개발부장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포의 반동을 어떤 기체도 견디지 못했어. 케루브 두 기로도 한 번의 발사를 견디지 못했지."
2세대 현용기 두 대가 달라붙더라도 포의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팔과 무릎의 관절이 심각하게 마모되었다고 한다.
"어지간한 적합자가 아니면 성능을 끌어내지도 못해.. 하지만 어제의 영상을 보고 저 포탑의 잔해를 보고나서 베타니아 자네라면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일반적인 기체라면 무리지만 사도라면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개발부장의 결론이었다.
"비록 한번 발사할 때마다 코어가 하나씩 소모되긴 하지만.. 게이트가 열려있는 것 보다는 낫겠지."
게이트라는 이야기를 꺼낼 때 개발부장의 주먹이 조금 쥐어져 핏줄이 불거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베타니아.. 자네가 맡아줄 수 있겠나."
개발부장은 나에게 중요한 것을 부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자주 봐오던 주인공군과 같은 표정.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드릴게요."
그 표정을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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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격납고에서 견학이 끝난 뒤 주인공군과 개발부장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명은 격납고를 나섰다.
견학을 끝마치자 어느새 시간은 오후를 넘겨 저녁에 가까워진 시간이 되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식사라도 같이 하고가는게 어떻겠냐는 개발부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가끔은 부자끼리 식사 하셔야죠.. 같이 드시는 일이 적으신 것 같던데."
아저씨와의 식사자리는 하루 한번이면 족하다. 점심을 먹은지 오래 되지도 않아서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고.
아버지와 식사 자리를 갖는 편이 주인공군에게 심적으로 더 도움도 되겠지.
"먼저 가볼게요. 내일 봐 주혁아."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개발부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주인공군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숙소를 향해 걸었다.
가끔씩은 두발로 걸어줘야 하는법이다.
"고작 열일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강한 여자야."
베타니아의 파일럿이 떠난 뒤 아들과 둘이 남겨진 개발부장이 나지막히 말했다.
"영웅인 그녀와 많이 닮기도 했지만.. 네 어머니 같은 모습도 느껴지는구나."
그는 자신의 옆에 서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저런 여자를 잡아야한다."
개발부장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은 뒤 아버지로서의 충고를 건넸다.
"...네."
그 아들은 아버지의 이런 모습과 격언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그저 수긍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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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분쯤 걸어서 독신자 숙소에 도착했다.
어제는 의도치 않게 외박을 했지만 오늘은 집에서 쉴 수 있다.. 점퍼를 대충 벗어던지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귀중한 주말이 벌써 6시간 밖에 안 남았을 줄이야..
- 틱.. 틱..
침대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려던 때 무언가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날벌레가 부딪치는 소리겠거니 하고 그 소리를 무시했다.
- 틱... 틱.. 틱..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 틱..
창가에 있는 것은 자그마한 하얀 새 였다.
새는 침대에서 일어난 나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창문을 쪼았다.
저 새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자..
"우왓!"
그 새는 곧바로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방안으로 날아 들어온 새는 곧바로 책상 위에 앉더니 발아래에 쥐고 있던 작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새가 발아래에 쥐고 있던 것은 두 번 접혀있는 종이 쪽지였다.
"편지..?"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닌 편지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그 종이쪽지를 펼쳤다.
[ 하늘 너머에 계신 성자님. 당신을 뵙고 싶습니다. ]
직접 손으로 쓴 듯 잉크 자국이 번진 간단한 한 줄의 문장.
그 아래에는 간략한 약도가 그려져있었다.
편지를 전한 새는 역할을 다 마쳤다는 듯 책상 위에서 다 타들어간 양초처럼 녹아내렸다..
주인공군과 내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