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다과회 (66/152)



〈 66화 〉다과회

엘에게 녹아내린 새의 성분을 분석하도록 부탁했더니 검출결과 밀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성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마 교단의 관계자... 그리고 밀랍..

 생각할 것도 없이 이 편지를 보낸 것은 교단의 간부 란테고스다.



아마도 그는 폐쇄 도시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봤었을 것이다.

이제 곧 4월. 앞으로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그는 이 도시에 직접 나타날텐데..나를 직접 보겠다고 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성자' 라고 나를 집어 지칭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이 세계에서 나의 존재인 사도를 부르는 교단의 언어.. 그와 만나보면 사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있을지도 모른다.



어쩔  없이 내일은 학교를 하루 빠져야 할 것 같다.. 란테고스는 편지에 날짜를 지정하지 않았지만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는게 좋겠지.

내일 다시 만나자는 주인공군과의 약속은 출장 관계로 지킬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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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었다.


오늘의 출장을 굳이 주인공군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기지버스가 떠난 시간에 맞추어 기지 정문으로 나섰다.


혹시나 주인공군이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지만 다행히 그는 바로 학교로 간 것 같았다.


기지 정문에서 미리 부른 택시를 찾은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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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테고스를 만나기 전 시내에서 볼 일을 마치고 오후 한시를 넘겨 학교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왔다.


"안녕 삼촌."


"어서오.. 뭐냐 세례자."


나를 보고 곧바로 세례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르바이트 생은 없고 카페에 나와 점장 둘 뿐인  같았다.


"여전히 장사는 안되나 보네.. 이래서 월세는 낼 수 있겠어?"

백화점의 로고가 찍힌 쇼핑백을 내려놓고 카페의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대 쉬었다.


"..학교는 어쩌고 여기에 온 거지?"

카운터에서 나온 점장은 나를 불신의 눈으로 쳐다봤다.

교단의 일원인 그에게 알려진 나의 정보는 1호기 파일럿과 타브하의 감시. 그 뒤에 자신의 상사인 틴달로스가 있다는  정도다.

 임무를 내버려둔 채 쇼핑을 마치고 온 나에게 제대로 할 일은 하고 있냐며 핀잔을 주는 거겠지.


"그 소년은 하루 정도 내버려둬도 괜찮아. 감시는 잘 하고 있어.. 시원한거 하나만 가져다주라.."

".. 그 분은 뭘 믿고 너를 받아준건지.."


점장은 짧은 불만을 말했지만 카운터에서 적당히 음료를 하나 만들어 가져다주었다.


"고마워."

바나나 스무디. 마침 식사도 하지 않았으니 적당히 배를 채우기도 좋은 음료였다.

색감이 어제 녹아내린 밀랍의 새가 생각나서 주춤했지만.. 장사는 안 되는 가게라도 실력이 없는건 아니었다.




"오늘 나의 임무는 감시가 아니야.. 다른 간부와 만나고 오는 일이 오늘의 임무."

음료를 반쯤 마시고 여전히 불신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점장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해주었다.


"그런 임무라면 내가 가도 되는 건데, 어째서 너를 보내는 거지?"


학교는 학생의 나이에 맞는 내가 가지만 그 외의 임무는 대부분 점장을 직접 보내게 되어있다.. 감시 임무에서 나를 다른 곳에 돌려쓰는 게 의아했겠지.

"그 간부가 나를 지목했어."


"..세례자를?"



"음료 잘 마셨어. 윗쪽 방좀 쓸게."

"마음대로 해라."



전부 마신 컵을 내려놓고 쇼핑백을 들고 창고로 쓰이는 카페의 윗층 방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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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는 것 같아 삼촌?"


잠시 후 나는 흰색의 원피스와 하얀 가디건으로 갈아입고 점장 앞에 서서 그에게 옷차림을 보여주었다.


카페에 들리기 전 먼저 들렸던 백화점에서 직원의 추천을 받아 구매한 옷이었다.

하얀 원피스가  은발과 어우러지듯 깔끔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어울리긴 한데. 그 복장에 의미가 있나?"


"아까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만나는 건 상대에게 실례잖아. 교복을 입고가기엔 좀 그렇고.."


새하얀 원피스. 지금부터 만날 란테고스에 맞추어 갖춰 입은 의상이었다.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서 상대에게 호감을 살만한 옷을 입고 가는게 비즈니스 매너가 아니겠는가.

예전 같았다면 정장이었겠지만 지금은 소녀니까 깔끔한 옷을 갖춰 입는  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입고 왔던 옷은 맡겨둘게.  정도는 괜찮지?"


"상관없다."

비즈니스 자리에 군짐을 잔뜩 들고 갈 수는 없으니까 오늘 입고 왔던 옷은 카페에 맡겨두기로 했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뭐지?"


옷을 갈아입으려고만  것이면 굳이 이 곳에 들릴 필요가 없었다.

백화점에서 구매하고 바로 갈아입은 뒤 코인락커에 적당히 쑤셔박아두면 그만이었으니까.



"..약속 장소까지 태워주세요 삼촌.."


란테고스와의 접선 장소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필요했다.

교단의 일이니 김하사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고...


"하아.. 알겠다."

결국 점장은 한숨을 쉬면서 카페를 닫고 나를 약속장소 까지 태워주었다.


조카를 데이트 장소까지 바래다주다니. 점장은 좋은 삼촌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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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의 업무용 차량으로 한참을 달려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란테고스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시 바깥쪽에 있는 버려진 건물.



"고마워 삼촌. 기다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먼저 돌아가~"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여기까지 태워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주었지만 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장사가  되는 카페라도 장시간 비워두긴 힘들었던 듯 그는 곧바로 차를 돌려 돌아갔다.

약속장소는  건물의 옥상.

... 버려진 탓에 엘레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아 한참이나 계단을 올라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발이라도 편한 것을 신고 올걸. 괜히 단화를 신고  바람에 한참 걸려 옥상 문 앞에서 숨을 조금 고르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금이 생겨 갈라진 바닥 위로 자란 잡초들 사이에 자그마한 티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였다.


테이블 너머로 조금 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건물 너머에 있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등 너머로 건네는 나의 인사를 들은 그는 가볍게 뒤를 돌아 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늘 너머의 성자님."

고급스러워 보이는 백색의 정장을 갖춰입은 청년은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해주었다.


"멀리서 뵌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나보니 더욱 아름다우시군요."

"칭찬 고마워요."


일부러 그의 드레스 코드와 맞추어 하얀 원피스를 입고 온 보람이 있었다.  인상은 괜찮게 넘긴  같네.


"자리에 앉아주시죠. 성자님."

란테고스는 옥상 가운데에 놓여있던 고풍스러운 티 테이블에서 의자 하나를 나를 향해 빼주었다.

비즈니스 자리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덕분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차라도 한잔 드시죠."


그는 어디에서 꺼낸 것인지 찻잔을 두개 꺼내어 그  한잔에 차를 채워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에게 받은 찻잔을 살짝 들어  모금 넘겼다.


"좋은 차를 준비했네요."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차는 잘 모르지만 적당히 이렇게 말하며 웃어주면 대부분의 상대는 좋아하기 마련이다.



"성자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왔습니다. 입맛에 맞으실지 걱정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군요."

그도 나의 맞은편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은 뒤 같이 준비한 다과를 테이블 위에 올려주었다.




"배려 고마워요. 란테고스."


"..역시 하늘너머에 계시더라도 성자님이시군요. 저의 세례명까지 알고 계셨을 줄이야."

그의 세례명을 불러주자 조금 당황한  했으나 성자라는 이유를 들어 납득하는  했다.

"..그래서 하늘 너머에 있는 저를  자리에 불러낸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가 준비한 비스킷을 하나를 쪼개어 반을 먹은 뒤 그에게 질문했다.

"잠시 머물고 있던 버려진 도시에서 성자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도시는 저번 주말에 주인공군의 훈련을 위해 들렀던 폐쇄 도시겠지.. 그 곳에 그가 자리 잡고 있을줄은..


"그렇다면 하늘 위에 문을 열었던 것도 당신인가요?"

대형 차원수가 부분적으로나마 나타났던 게이트. 교단의 간부인 란테고스라면 직접 게이트를 연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연 것이라면 주인공군을 상처 입힌 것도...



찻잔을  나의 손이 작게 떨렸다.

"그건 아닙니다. 그 문은 어디까지나 자연적으로 열렸던 것입니다."

"당신이 한게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굳이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지.

게이트를 연 것이 그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자 손의 떨림이 멈추었다.


"성체와 비슷한 반응을 느껴서 우연히 보러 갔을 뿐입니다."




- 사아..


그가 손을 허공에 뻗어 살짝 젓자 테이블 위에 작은 모형 도시가 나타났고, 모형 위로 작은 크기의 1호기가 나타났다.


작은 크기이지만 제법 리얼하게 만들어져서 그 모형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것은 어디까지나 성체를 흉내  듯한 가짜일뿐.. 지켜 볼 가치는 없었습니다."


- 파악

작은 1호기는 녹아내려 모형 도시 위에 펼쳐진 땅에 스며들었다.




"그대로 돌아가려던 찰나.. 위작이 아닌. 우리의 성자님의 육신과 같은 모습을 한 성체를 보았습니다."

녹아내려 사라진 1호기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 작은 백색의 거인.

나의 사도. 아르베넷이었다.


"문 너머의 이물을 직접 제압하시는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봤습니다."

작은 아르베넷은 한  팔에 포탑을 끼고 허공을 향해 쏘아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성체에서.. 직접 내려온 성자님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쓰러진 1호기 안에 갇힌 주인공군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도에서 내린 모습을 본 듯했다.



"비록 하늘 너머라지만 이 곳에서도 성자님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에게 목격담을 이야기하는 란테고스의 눈에는 감동을 느낀 것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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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당신의 증언을 말하려고 이 자리에 저를 부른 것은 아니겠지요."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 조금은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성자님."


그는 겉보기에도 그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나에게 공손한 태도를 유지한 채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란테고스."

 찻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와 함께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란테고스의 제안은 나를 교단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바로 거절했다.

"..어째서인지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굳이 제가 교단에 함께 있어야 할 이유를 오히려 묻고 싶네요."


"비록 계신 곳은 하늘 너머지만 우리를 이끌어주셨던 성자님과 같은 자리에 계신 분이라는 것을  수 있었습니다."


교단의 성자. 간부들에게 성체를 나누어준 성찬식의 주인 되는 자.


교단에서 가장 신성한 자와 나를 동등하게 여길 줄은 몰랐다.

그의 태도가 공손했던 것도 아마 나에게 보여준 태도라기보다는 교단의 성자와 같은 예우를 해준 것뿐이겠지..



"곧 무너질 이 세계에 성자님을 홀로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란테고스는 이 세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었다.

"제 몸 하나 정도는 제가 지킬  있어요."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그의 제안을 다시 한 번 거절했다.



"..우리가 이 세계에 문을 열고 미물들을 풀어 파괴하려해도 말입니까?"


그는 연이어 온 제안을 거절한 나를 조심스럽게 응시했다.




"교단은 이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서 하늘 위에 문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진짜 목적은..."


- 사아아..!

그 순간 내가 앉아있던 의자의 등받이가 녹아내리더니 나의 팔과 다리를 결박했다.



"거기까지 알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란테고스는 한 순간 표정에 당혹스러움을 보였다.

"우리의 목적까지 알고 계신다면.. 성자님을 더욱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교단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방금까지 앉아있던 의자는 지금은 나를 구속하는 구속구가 되어 고작 손가락을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그만두는 게 좋을거에요. 란테고스."


움직일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 일어선 그를 올려보고, 충고했다.


"성체도 없이 오셨으면서 말입니까..?"

란테고스는 나의 충고를 넘기는 듯 사도를 가져오지 않은 나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의아해 했다.



"성체는 없지만. 당신이 저를 데려갈 수는 없을거에요. 풀어주세요."


"..성자님이라고 해도 성체가 없으면 그저 연약한 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이었다. 그가 말하는 성자라고 해서 특별한 초월적인 육체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비장의 패가 있다.



- 쌔애액..!

그 순간 허공이 찢기는 소리가 나와 란테고스의 사이에서 들려왔다.



- 투둑



그리고 나를 결박하고 있던 의자가 조각난  바닥으로 잘려 떨어졌다.




"그녀가 화를 낼지도 모르거든요."


찢겨진 허공에서 나타나 나의 옆에서 붉은 태도를 올려 들고 있는 검은 정장의 무인.


틴달로스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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