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다과회
나의 결박을 풀어준 틴달로스는 란테고스를 향해 태도를 겨누었다.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란테고스.."
그녀는 마치 나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적의를 자신의 동료를 향해 뿜고 있었다.
"진정해 틴달로스."
자신의 동료에게 적의를 뿜고 있는 그녀에게 손가락을 뻗어 무방비한 옆구리를 푹 찔렀다.
"히약!"
틴달로스의 입에서 조금 귀여운 목소리가 나와 버리고 태도를 든 손이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그..그대를 도와주러 온 것인데.."
그녀는 나를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기껏 멋지게 등장해서 도와줬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행동을 말리면 무안해지겠지..
비록 저번에 그녀와의 통화를 좋게 끝내지 못했었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보니 반가웠다.
이 세계에 오고나서 처음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와 개발자군의 아이다. 조금 미운 짓을 했더라도 얼굴을 보면 사소한 잘못 정도는 용서해줄 수 있었다.
"성자님은 사냥개와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까."
자신의 속박이 틴달로스에 의해 손쉽게 풀린 것을 본 란테고스는 내 옆에 선 그녀를 조금 경계했다.
"그녀는 하늘 아래에서 저를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입니다."
말 그대로 하늘 위에서 솟아나서 태도를 휘두르며 나타나긴 했지만. 교단 관계자들 중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
"성자님에겐.. 계속 놀라게만 되는군요. 방금 전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란테고스는 방금 전 속박에 대해 사과하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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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님을 교단으로 모시는 것은 포기하겠습니다. 사냥개인 그녀가 묵인하고 있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란테고스는 다시 의자에 앉고 한 손을 움직여 무너진 의자를 녹여내곤, 나의 앞에 다시 만들어 주었다.
이 쪽은 두 명인데 의자는 하나라..
"앉아. 틴달로스."
손에 들고 있던 붉은 태도를 거둔 그녀의 정장 옷자락을 잡아 그 의자에 먼저 앉혔다.
"성자님이 앉아계시라고 만든 것이었는데.."
"그녀도 당신과 같은 간부. 마냥 세워 둘 수는 없잖아요."
"배려가 넘치시는군요. 하나 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 풀썩
의자에 앉은 틴달로스의 무릎 위에 올라타서 앉았다.
"그..그대 ?!"
나의 돌발 행동에 틴달로스는 당황한 듯 양 손을 어디에 둬야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손을 허공에서 허둥댔다.
"제 자리는 틴달로스군의 무릎 위로 충분해요."
갈 곳 없는 그녀의 양 손을 잡아 내 무릎 위에 얹어주었다.
저번 영구동토에서 서로 끌어안기도 한 사이였는데 고작 이 정도 접촉으로 당황하는 그녀가 조금 웃겼지만 둘 만 있는 자리도 아니니 웃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로 친하다는 과시를 란테고스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를 견제하기도 좋았다.
나는 교단과 오래 전 부터 접촉하고 있었고, 나를 아는 상대는 너가 유일한 게 아니다.
란테고스는 그런 나와 그녀를 흥미가 있는 듯 유심하게 쳐다보았다.
"냉정한 사냥개가 성자님 앞에서는 애완견 같군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애완견? 그래도 그 표현은 조금 너무하네. 지금도 당황하고 있는 그녀가 귀엽긴 하지만..
"얼마 전 우리 곁으로 돌아온 형제를 기억하나? 란테고스."
"형제라면.. 은익의 비야키를 말하는 건가?"
"그래. 얼마 전 영구동토의 밑바닥에서 발견 된 사라진 성체."
그녀는 어느새 나를 두고 당황했던 태도를 거두고 진지한 자세로 란테고스에게 설명해주었다.
"그 형제를 우리 곁으로 되돌려 준 것이 바로 이 분이다."
그녀는 당당하게 란테고스에게 나의 업적을 소개했다.
"그렇다면 하늘 너머에 성자님이 계시다는 것을 쭉 알고 있던 건가..?"
"..이 분이 성자님이라는 것은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 입으로 설명하진 않았어도, 영구동토 밑에서 발견 된 관의 조각을 본 나의 반응을 보고 스스로 파악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틴달로스는 성자가 떠난 이후 성찬식을 받은 간부였으니 잘 몰랐을 수도 있겠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래서 실망했어?"
머리를 조금 뒤로 기대자 뒷머리가 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나랑 다르게 푹신하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하늘 너머에도 성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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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테고스도 조금 진정한 것 같으니 다시 이야기할게요. 저는 교단의 목적은 알고 있지만.. 방해할 생각은 없어요."
아까 교단의 목적을 이야기 한 것 만으로 란테고스는 나를 속박했지만 비야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라 그런지 목적을 다시 입에 담아도 별 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곳에서 나타난 이형의 마물들은 처치하겠어요. 그 것에 문제는 없죠?"
"네. 그렇습니다."
나의 제안. 교단의 일은 방해하지 않되 그 곳에서 나온 마물.. 차원수들은 해치우겠다는 말에 란테고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교단과 직접 적대할 일은 없어요. 하지만 타브하는.. 그 사람들의 행동을 막지 않을 거에요."
".. 직접 손을 더럽히시지 않겠다는 것 아닙니까?"
직접 방해는 하지 않더라도 타브하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어선 교단을 방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전장에서 공정한 대결은 인정해드리겠어요. 교단이 타브하에 손을 대더라도 간섭은 하지 않을게요."
"호오.."
교단의 편도, 타브하의 편도 들지 않겠다는 중립 선언이었다.
직접 싸울 대상은 차원수에 한정하겠다는 약속을 란테고스에게 선언했다.
"그 대신 부탁이 하나 있어요. 제가 아끼고 있는 아이들의 목숨은 빼앗지 말아주세요."
"성자님이 눈여겨보고 있는 아이가 있는 겁니까?"
"네. 교단의 성자님이 당신들을 사랑해 주셨듯 말이에요."
"..그렇습니까."
교단의 성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란테고스는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틴달로스와 다르게 직접 성자를 만나본 적이 있었을 테니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어느정도 이해한 듯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불리한 조건인 것 같습니다."
"저와의 약속을 잘 지켜주면. 가끔씩 타브하와 관계없는 일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어요."
"교단을 돕겠다는 겁니까?"
"네 부분적으로 도와주겠지만요."
나중에 교단을 도와주겠다. 그 정도의 약속이면 이제 충분 할 것이다.
교단도 타브하와 똑같은 소중한 자식들이니까..
"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때는 직접 성체에 올라타 교단으로 가겠습니다. 모든 것을 부숴주겠어요."
사도가 가지는 파괴력의 일부를 직접 본 란테고스 였을테니 적대한다면 얼마나 힘든 상대인지 스스로 가늠할 수는 있을 것이다.
교단의 성자가 나와 같은 사도라면.. 그의 사도.. 육신을 나누어 받은 성체의 힘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성자님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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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님의 뜻이 그렇다면.. 저도 성자님을 믿겠습니다."
회담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테이블과 의자는 그대로 녹아내려 사라져버렸다.
"성자님이 계신 곳 까지는 어떻게 돌아가실 겁니까? 필요하시다면 탈 것이라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란테고스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방금 녹아내린 테이블과 의자가 하나로 뭉쳐져 형태를 이루어갔다.
- ...
테이블과 의자가 사라진 곳에서 말의 형태를 한 생물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생물의 눈에는 빛이 없고 숨을 쉬지 않았다.
결국 만들어 낸 것에 영혼은 깃들지 못하는 건가.
"멋진 재주네요.. 하지만 이걸 타고 가기엔 너무 눈에 띄는걸요."
만들어진 말의 갈기를 한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왠지 올라타면 사도나 케루브를 몰던 것처럼 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기지 앞을 말로 질주하는 소녀라니.. 그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저를 에스코트 해줄 기사님도 오셨는걸요."
말의 갈기를 쓰다듬던 손을 내리고 옆에 선 틴달로스의 손을 잡자 그녀도 조심스럽게 나의 손을 쥐었다.
"알겠습니다 성자님.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뵐것 같군요."
"이번 주에 말이죠?"
"..성자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 우드득..
란테고스가 몇 걸음 뒤로 걷자 그와 나의 사이에 경계를 나누듯 옥상의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드드득..
금이 가 갈라져가는 건물의 반쪽은 녹아내리기 시작하더니 곧 하나의 형태로 뭉쳐졌다.
나의 사도와는 다르게 유백색을 띄는 거대한 거인.
그 형체는 고풍스러웠다. 마치 박물관의 관람실에 전시되어 있는 비밀을 간직한 오래 된 예술품처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성자님."
란테고스의 성체.
유백의 란테고스의 안에 올라탄 란테고스는 그대로 성체와 같이 녹아내려 사라져버렸다.
"잘 가요 란테고스."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돌아갈까 틴달로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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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만나자고 한 건물의 절반이 란테고스의 성체가 바뀐 모습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만들었다면 엘레베이터도 안에 깔아주지 그랬냐..
"..여길 언제 내려가."
고층 건물을 천천히 내려갈 생각에 조금 한숨이 나왔다.
"그대.. 아니.. 성자님은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편하게 부르랬지 틴달로스."
성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왠지 거리를 두는듯한 틴달로스의 태도가 마음에 안들길래 옆구리를 다시 한 번 찔렀다.
"힛!"
옆구리가 약하구나.
"그..그대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건가"
"응. 그런데?"
"그런 거라면 쉽게 도와줄 수 있다."
- 휙.
무릎 아래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더니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자세히 보니 틴달로스의 팔이 무릎 뒤에 들어와 나를 안아 올렸다.
"틴달로스군..?"
"꽉 잡고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를 안아 올린 틴달로스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 휘유우우우..
"꺄아아아악!!!"
사람은 십 미터의 높이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고 했나.
아니다. 그 배의 배는 되는 높이에서도 공포는 더더욱 커질 뿐이었다!
귀를 울리는 바람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 높이라면 나도 그녀도 잘게 다져질 텐데..!
지금 보는 풍경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 탁.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굉장히 사뿐한 소리로 땅에 착지했다.
어떻게 된 거지..?
눈을 조심스럽게 뜨자 머리 위에 찢겨진 게이트가 있는 것이 보였다.
"나의 능력을 쓰면 이 정도의 거리는 쉽게 오갈 수 있다."
뛰어내린 순간 게이트를 열어서 이동한 거구나..
그녀는 손이 덜덜 떨리는 나를 땅 위에 내려 주었다.
"아까 그대를 란테고스의 마수에서 구한 것처럼. 나는 그대에게 도움이 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우쭐거리며 자랑하는 틴달로스.. 나는 여전히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바.."
"감격이라도 한 건가? 그대가 감격해서 떨림이 멈추지 않는 듯한.."
"바보야..!!!"
- 슈파아악..!
"흐끄윽..!"
떨리는 손을 꾹 움켜쥐어 주먹을 만들어 틴달로스의 옆구리에 제대로 꽂아 넣었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육탄전을 옆구리로 맞이한 그녀는 그대로 땅 위에 쓰러졌다.
"하아..하.."
혼신의 일격을 꽂아 넣자 숨이 헐떡이며 나왔다..
그대로.. 떨어져.. 죽는 줄 알고 아래에 힘이 풀려.. 아니.. 다행히 풀리진 않았지만...... 조금.. 조금이지만..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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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진정된 뒤 틴달로스도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점장에게 그대가 외진 곳에서 내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찾아온 것이었다."
건물의 아래에는 검은 색의 멋진 오토바이가 있었다. 아마 이걸 타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겠지.
가본적도 없는 장소를 대상으로 게이트를 여는 건 위험한 행동이니까..
"멋진 취향이네.. 그런데 빨간색은 아니네?"
그녀가 입은 셔츠나 그녀의 성체. 붉은 틴달로스 처럼 붉은 색일줄 알았는데 의외의 선택이었다.
"성체가 붉다고 해서 빨간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의외네. 새빨간 2호기의 파일럿은 악세사리도 전부 빨갛게 맞추던데.. 틴달로스는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손으로 작은 게이트를 열더니 그 안에서 헬멧을 꺼내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대가 원하는 곳 이라면 어디든 데려다 주겠다."
먼저 검은 바이크에 올라타고 헬멧을 쓴 그녀는 나에게 뒷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타브하 앞 까지만 데려다줘."
바이크 뒤에 올라타 그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나의 가는 팔이 그녀의 옆구리에 닿자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아까와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믿는 듯 바이크 위에 발을 올렸다.
"맡겨다오."
그녀가 잡은 바이크의 엔진이 점차 달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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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달로스의 주행 실력은 생각보다 터프했다..
마치 그녀를 폐 격납고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신속하고 날카로운 주행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규정 속도를 지켜가며 운전하는 게 더 놀라울 정도..
차원기나 워커는 괜찮았는데 바이크는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내가 운전하면 모를까 뒤에 타는 건 조금..
"..데려다 줘서 고마워 틴달로스."
기지 정문 앞에 도착해서 바이크에서 내리고 틴달로스에게 헬멧을 건네주었다.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다음부터는 부하가 아닌... 나에게 직접 부탁해도 좋다."
"고마워..!"
한창 바쁠 때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내어줄 수 있다는 틴달로스의 말에 감격해서 한쪽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그녀의 목을 끌어 당겨 안아주었다.
그녀는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헬멧 너머로 얼굴이 가깝게 닿아오는 거리였다.
"틴달로스.. 노란 옷의 왕을 조심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그녀에게만 전해주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의 품에서 떨어지자 틴달로스는 혼란스러워하는 듯 했으나... 나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 다음에 봐."
바이크에 다시 올라타 떠나가는 그녀를 향해 뒤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 것으로 다시 란테고스가 나타나기 까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내일부터 다시 학교도 가보고.. 곧 타브하에 들어올 서예린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겠지.
"..묘월아."
기지의 정문 앞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나즈막히 들려왔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 주인공군이 틴달로스가 떠나간 자리를 배웅하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혁아."
교복을 입은 그와는 다르게 그에게 보여준 적 없던 하얀 원피스 차림..
그에겐 비밀로 다녀온 출장이었는데..
"..방금 그 사람은 누구야?"
아무래도 해명하긴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