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유백의 란테고스
유백의 란테고스를 지키듯 빚어진 거인 둘. 그것은 분명히 케루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저건.. 케루브? >
주인공군의 당황이 섞인 목소리가 통신 너머로 들렸다.
"틀려. 자세히 봐봐."
거인은 분명히 케루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라이플이나 단검같은 표준 무장을 들고 있지 않았다. 한 기는 메이스를, 다른 한 기는 한 손 도끼를 들고 있었다.
가장 이질적인 것은 국방색이나 검은색이 아닌 유백의 색이라고 할 수 있지만..
거인들은 조종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조종석 대신 붉은 코어가 녹아 붙은 채 심장처럼 뛰어오르고 있었다.
< 차원수 같은 생물이야? >
"아니야 저건 어디까지나 인형.. 영혼이 없어."
저 것은 차원수도, 차원기도 아닌 그저 술자의 지시를 따르는 인형일 뿐이다.
- 철퍽.. 철퍽..
유백의 란테고스가 손을 들어 1호기를 가리키자 두 거인 중 메이스를 들고 있던 거인은 1호기를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슈우우.. 철퍽..
거인은 등에 달린 버니어를 분사하는 움직임을 모방하듯, 버니어가 있어야 할 자리를 꿈틀거리며 1호기를 향해 달려 나갔다.
"절대로 가까이 붙지 말고. 사격으로만 끝내."
< 사격만..? 알겠어. >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 그 이상 간섭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 탕! 철퍽.. 탕! 철퍽..
1호기는 어깨에 짊어졌던 라이플을 들어 메이스를 든 거인을 향해 발포했다.
1호기의 탄환이 명중하자 메이스가 들리지 않은 거인의 한쪽 팔이 바닥으로 철퍽이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나갔다.
- 철프억.. 찰박..
떨어져나간 팔은 거인의 다리에 뭉쳐 붙더니 뭉친 덩어리가 몸통으로 올라가며 다시 팔을 만들어냈다.
- 스윽.. 슉..
호흡을 하듯 헐떡이는 거인은 메이스를 들고 1호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 탕! 탕! 탕! 빠각..!
거인의 움직임은 차원수보다도 민첩하지 못했던 덕분에 1호기가 몇 번 사격을 가하자 가슴에 드러난 코어에 피탄하며 코어가 깨졌다.
- 철벅.. 사아아..
거인은 메이스를 떨어뜨리더니 그 자리에서 다 타오른 양초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무너지며 질척한 잔해를 남겼다.
< 한 기 해치웠어! >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과 기계 중간점에 있던 거인 하나를 해치우자 주인공군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차원수를 제외한 그의 첫 격추 기록이었으니 자랑하고 싶었겠지.
"다른 한 기가 있잖아? 집중해. 계속 거리를 유지하고."
자랑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눈앞의 적에 집중해야 할 때 였다.
- 사아아..!
메이스를 든 거인이 무너진 것을 보자 도끼를 들고 있던 거인이 달려들었다.
방금 전 과는 다른 민첩한 움직임.. 아마 메이스를 들고 있던 쪽은 1호기의 성능을 보기 위한 시험용이었겠지.. 란테고스는 신중하니까.
- 후우욱..!
거인은 1호기의 앞에서 날카로운 손 도끼를 휘둘렀다. 1호기가 뒤로 물러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도끼를 든 팔이 아래로 쳐졌다.
- 탕! 탕! 철퍽..!
그 틈을 노리듯 1호기의 사격이 도끼를 든 팔에 명중하자 팔이 아래로 떨어져 철벅이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 이 틈에 코어를..! >
- 철컥.. 파샤아아..!! 파칵..!
1호기는 아까 전 란테고스의 차원수 인형을 반으로 갈랐던 대검을 들고 가까이 붙은 채 거인의 코어에 바로 쑤셔 박았다.
'1호기! 아까의 거인과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베타니아의 지시대로 거리를 유지하세요!'
통신 채널 너머로 지휘관의 경고하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 괜찮아요! 금방 해치울 수 있어요! >
방금 전 거인 하나를 잡았기 때문인 걸까 자신을 믿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붙지 말라고 했잖아!"
나의 경고를 무시한 1호기는 거인에게 가까이 붙어 거인의 코어를 쪼개고 있었다.
< 코어가 거의 깨졌어! >
"안 돼..! 얼른 대검을 버리고 도망쳐!"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주인공군에게 당장 도망치라고 외쳤지만..
- 파카각.. 슈우우욱..
이미 늦었다.. 거인의 코어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철퍽...철벅..
방금 전 자신을 쓰러뜨린 1호기를 감싸듯 거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밀랍은 1호기를 덮쳐왔다..!
< 뭐야 이거..! 달라붙고 있어!! >
당황한 주인공군의 목소리.. 1호기는 밀랍 속에 점점 갇혀가며 움직임이 둔해져가고 있었다..
< 움직일 수가 ..! >
밀랍 덩어리들은 코어가 사라지자 점점 크기가 줄어들어갔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듯 1호기의 관절 틈을 매꾸듯 굳어져갔다..
"그래서 내가 바로 도망치라고..!"
'1호기! 바로 현장을 이탈하세요! 소속 불명기가..!'
나와 지휘관의 목소리가 같은 통신 채널에 겹치며 그에게 거듭 주의를 주고 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그에게 좀 더 주의를 주지 못한 나의 잘못이기도 하다. 일단 이 자리를 수습해야..
그러나 1호기에게 도망칠 수 있는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관절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게 된 1호기의 바로 앞에 유백의 란테고스는 화승총을 겨눈 채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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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님이 눈여겨보고 있던 어린양이 고작 이 정도인가.."
성체 안에 있는 란테고스는 움직이지 못하는 위작을 내려 보며 실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혼자서도 교단을 부술 수 있다고 말한 그녀에게 아낌 받는 주제에 이 정도라니..
게다가 배신자의 성체와 비슷한 형상을 한 신성모독의 증거는 볼 때마다 구역질이 치솟았다.
"아름답지 못한 위작은 이 자리에서 끝내주겠다."
- 철컥..
란테고스가 조종간을 움직이자 화승총의 위에 달린 작은 해머가 뒤로 움직였다..
< 거기까지입니다. 란테고스. >
위작을 파괴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그의 성체 안으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성체에 교신을.. 성자님?"
유백색의 란테고스의 안에 달린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하얀 성체의 손바닥 위에 서 있는 성의를 갖춰 입은 은발의 소녀였다.
< 저와 한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죠? >
란테고스의 처형을 막아서듯 소녀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에게 조용히 경고를 전했다.
"하지만 이 자는 우리의 형제를 모욕하는 듯한.. 불경한 것을 타고.."
이 말을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는 듯 란테고스는 분함을 참아가듯 목소리가 떨려왔다.
< 하지만. 슬슬 시간이 되었잖아요? >
하얀 성체 위에 올라 선 은발의 소녀. 성자는 손을 들어 하늘 위를 가리켰다.
푸른 하늘을 십자로 찢어놓아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게이트.. 차원수가 전부 사라졌지만 게이트는 여전히 지상을 향해 그 흉터를 드러내고 있었다.
"... 알겠습니다."
- 철걱..
유백의 란테고스는 위작을 향해 겨누고 있던 화승총을 거두었다.
- 탕!
위작을 향해 사격을 하는 대신 유백의 란테고스는 하늘을 향해 화승총을 발포했다.
- 사아아...!!
그 순간 충격파가 엄청난 바람과 함께 발산되었다.
잠시 후 바람이 멎자, 유백의 란테고스와 하늘 위에 열려있던 게이트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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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백의 란테고스는 게이트와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란테고스가 사라진 이후에도 1호기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1호기의 주변이 타브하의 인원들에 의해 통제구역으로 봉쇄되고 있었다.
"구성을 알 수 없는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방호복의 기밀성을 꼭 체크할 수 있도록.."
전신을 감싸는 주황색의 오염 방지 방호복을 입은 작업 인원 몇이 통제구역의 입구 앞에 모여 1호기를 감싼 물질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게이트 너머에서 온 물질.. 자칫하면 오염이 발생할 수 있으니.."
1호기 회수 작전에 대해 브리핑하는 선임 요원의 방호복 얼굴에 달린 유리 안으로 달린 마이크에서 쉭쉭이는 숨소리가 들렸다.
"저 선배님."
브리핑을 듣던 요원 중 한명이 오른손을 든 채 질문을 요청했다.
"질문은 브리핑이 끝난 뒤에 받겠다."
선임 요원은 질문 요청을 한 요원을 보고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아닙니다.. 지금 현장에 들어가고 있는 인원이 있는데.."
"뭐..?"
접근 금지를 나타내듯 건물 사이로 둘러진 노란 테이프를 무시하듯 전신에 달라붙는 하얀 바디슈트를 입은 소녀가 테이프를 손으로 치운 채 들어가고 있었다.
"..저것도 방호복 입니까?"
요원은 소녀가 입은 남사스러워 보이는 바디슈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소녀의 몸이 빈약했기 때문에 다행이었지, 성인이 입었다면 아찔해보였을 의상이었다.
"저런 의상이 방호복일리가 없지 않나! 경비팀은 뭘 하고 있던 거야!"
선임 요원은 들고 있던 지휘봉을 내던진 채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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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헉.. 이 앞은 통제 구역입니다.. 오염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적어도 방호복이라도.."
나의 앞에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현장 요원 둘이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1호기를 향해 다가가려는 나를 막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몸에 시선을 두지 못하는 듯 똑바로 정면을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조금 돌렸지만 말은 제대로 전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전투를 보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테나흐의 잎을 두르고 올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지나가겠습니다."
평소 같다면 현장요원에게 저 물질은 독성이 없는 단순한 천연 밀랍이라고 설명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졌다.
"베타니아님..!"
나를 제지 하려는 듯 한 그들의 손길은 두꺼운 방호복 덕분에 둔했다. 쉽게 그 손길을 피해 재빠르게 접근금지 테이프 너머로 들어와 1호기를 향해 걸었다.
1호기는 꼴사납게 바닥에 주저앉은 채 관절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 상이 된 그대로 였다.
말이 주저앉았다지, 실제론 엎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기에 쉽게 1호기의 조종석 커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 삑
조종석 커버 아래쪽에 달린 긴급 구출용 단말에 ID카드를 찍어 사용자를 인증하자 안에서 작은 손잡이가 나왔다.
- 푸슈우..
그 손잡이를 잡고 위로 힘껏 당기자 1호기의 조종석이 위로 슬라이드 되어 열렸다.
..그 안에는 조종간을 잡은 채 분한 표정을 지은 주인공군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젠장."
1호기의 커버가 열리며 바깥 공기가 조종석 안으로 들어오자 주인공군은 짧게 혼자 주절이며 이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왜 지휘관과 나의 지시를 무시했어?"
한심하게 앉아있는 주인공군을 향해 다가가 걷곤 그에게 질문을 했다..
"이길 수 있었어.."
주인공군은 나에게 변명을 했다.
"이탈하라고 했잖아. 지휘관도, 나도."
주인공군은 미리 인형의 위험성을 알고 붙지 말라는 조언을 해줬던 나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탈하라는 지휘관의 명령 양 쪽을 무시했다.
"조금만 더 하면 그 소속 불명기 까지 잡을 수 있었는데..!"
아깝게 놓쳤다는 것처럼 주인공군은 분한 듯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짝!
나는 오른손을 뻗어 한심한 그의 오른 뺨을 후려쳐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당황만이 가득 담긴 주인공군의 얼굴.
"..실망이야."
그 한심한 얼굴을 1초라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발을 돌려 1호기의 조종석 밖으로 향하자 방호복을 껴입은 현장 요원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듯 그저 발만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연히 그가 돌아가지 않았으면 넌 이미 죽었어."
조종석 아래로 뛰어내려 현장 요원들을 지나쳐 아르베넷을 향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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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테고스는 나의 말을 듣고 순순히 물러가주었다.
직접적인 데미지를 입은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나 주인공군이 다쳤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급하게 1호기를 향해 달렸다.
.. 하지만 1호기 안에 있던 주인공군의 얼굴을 보자 나는 그를 혼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신이 혼자서 해낼 수 있었다는 듯 한 자만이 섞인 표정..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자만하는 얼굴..
젊었을 때 내가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가장 싫어한다. 그 표정을 지었던 사람은 곧 실패해버리고 마는 것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군을 손찌검 해버렸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인공군이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여러 번 실패해버린 어른이니까...
- 꾸욱..
"..나는 역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어..."
방금 전 주인공군의 뺨을 후려쳐버린 손목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베타니아..!"
"묘월씨..!"
멀리서 현장 지휘관과 류하연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먼저 돌아갈게요."
그러나 나는 둘을 지나친 채 사도를 향해 걸었다.
< .. 마스터. >
사도에 도착하자 사도 안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엘이 말을 걸었다.
"..미안해 엘. 잠깐만 혼자 생각하게 해줘."
사도의 조종석 문을 닫고, 나는 무릎을 모아 작게 웅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