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페이라스모스 (82/152)



〈 82화 〉페이라스모스

유백의 란테고스와 전투가 끝나고 며칠 뒤 경계태세도 내려가게 되었고 전투로 어지러진 도심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경계가 풀렸다는 이야기는 다시 사회활동이 재개된다는 이야기. 다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주인공군과 함께 기지 버스를 타고 도시에 도착해 버스정류장 앞에 내리자, 이전에 있던 정류장은 전투중 파괴되어 부서진 잔해만 남아있었다.


단지 그 자리에 남아있는 표지판 한 개만이 이 곳이 정류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걸까."

버스에서 내리자 주인공군은 조금 침울한 목소리로 표지판만 남은 정류장을 보고 씁쓸하게 말했다.




"기운 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도심에서 전투가 일어나면 이 정도의 손실은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인명피해는 없었으니 다행이 아닌가.


"그래도.. 조금만  잘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껏 위로해줬는데도 침울해 보이는 주인공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팔꿈치로 허벅지를 툭툭 쳐냈다.




"인형사를 내버려뒀으면 도시가 사라졌을지도 몰랐을 거야. 어차피  정류장.. 낡은데다가 관리도 안 해서 마음에 안들었는데 이 김에 새로 지어주면 좋겠네."

자잘한 피해는 결국 부수적인 것 일뿐 주인공군은 란테고스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지금 시점에서 그 정도만 해내더라도 충분히 잘 해준 것이다.



부서진 정류장을 보고 침울해하는 주인공군의 교복 상의를 손으로 집고 지하철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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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주일만에 나온 학교는 오랜만이라 그런지 지루한 수업도 재밌게 느껴졌다.


학교에 나오지 않은 며칠 동안은 라자루스의 출력 세부조정이나 A3장비를 분해하는 것을 견학하는 정도.. 결국 일뿐이었으니까 이렇게 배우러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저번에 안면을 익힌 반 남자애들이랑 인사도 건네고 시시한 이야기를 몇  나누기도 했다.


애들이랑 친해질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조종수업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지휘 수업 때는  혼났다.



비행형 차원수 무리를 상대로 유효한 전략을 연구할 때 대검 두개를 들고 가장 먼저 달려드는 녀석의 날개를 베어낸 뒤 다음 녀석에게 대검을 던져 벽에 꿰어버리면 된다고 하니까 그런 게 가능한 파일럿은 없을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걸 왜 못하는 거지?

 후 종례시간에는 내일부터 체육관에서 체육수업이 시작될 거니까 체육복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돼?"

건너  자리에 앉은 주인공군이 나에게 오늘 일정을 물었다. 인형사와의 싸움도 끝났고 1호기는 정비에 들어갔으니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싶겠지.


"한동안은 자율 스케쥴이야. 가서 훈련을 해도 되고 쉬어도 괜찮아."


파일럿으로써 조금 더 성장해준다면 좋겠지만 너무 훈련만 시키면 지칠  있으니 조금 쉬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너는 기지로 돌아갈 거야?"


"아니. 오늘 하연씨랑 선배님이랑  일이 있어서.."

"볼 일?"


아쉽게도 오늘은  둘과 선약이 잡혀있었다.




"체육복도 사야하고 옷 사러 갈건데..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여자들끼리의 쇼핑에 끼는 건 힘들겠지. 간만에 일찍 집에 돌아가서 혼자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다.

"따라가도 괜찮아?"


"응? 지루할 텐데?"

돌아오는 대답은 먼저 돌아가겠다가 아니라 따라와도 괜찮냐는 이야기였다.


"나도 간만에 외출좀 하고 싶어서.."

한창때의 청소년이 맨날 기지 안에만 있으면 지루할 만도 하겠지.. 시내라도 구경하면서 숨이라도 돌리려는 생각이었나 보다.



"좋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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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앞에서 서예린을 만나 네명이서 시내의 종합 쇼핑몰에 도착했다.

일단 가장 급한 체육복은 교복점에서 금방 살 수 있었다. 학교 체육복이라기에  안팔리는 원단과 괴상한 색상을 쓴 찰흙덩어리 같은 옷일 줄 알았는데 일반적인 트레이닝복과 비슷한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사이즈가 스몰인건 슬프긴 했지만..

그리고 나온 김에 옷가지도  개 사기 위해 옷가게에 들어갔다.

"이거랑.. 이거랑.. 이거."


들어가면서 보였던 티셔츠 몇 개랑 청바지를 금방 집어 바구니에 담았다.

"..너무 적당히 보는거 아니니?"


옆에서 자기 옷을 보고 있던 선배가 나의 픽을 보고 적당히 보는  아니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이즈는 외워뒀으니까 괜찮을걸요?"


옷이야 사이즈만 맞으면 그만 아닌가.


비즈니스를 위해 TPO에 맞는 옷을 고를때는 조금 고심하고 점원의 도움을 빌렸지만, 사복으로 입을 옷이라면 적당히 골라도 그만이었다.


"계속 비슷하게 입고 다니는 것 보다.. 이런건 어때?"


티셔츠와 청바지만 담은 나에게 서예린이 권해준 것은 원피스와 반바지였다.


확실히 곧 있으면 봄도 끝나고 여름도 오기 시작할 테니 저런 옷을 입는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예전에야 출근을 위해 늘 티셔츠 청바지였지만.. 모처럼의 기회니까 입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이런 것도 있어.."

류하연도 기세에 가세하듯 여러 옷을 집어 가져와주었다. 흰색의 민소매 상의.. 민소매라 노출이 조금 있긴 한데 위에 뭔가 겹쳐입으면 괜찮겠지.




"우와아.."


선배가 든 것도, 류하연이 든 것도 모두 입어봐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



결국 그녀들이 가져온 옷을 전부 입어보게 되었다.

인형사 란테고스는 교단으로 돌아갔는데 정작 나는 인형이 되어서 옷을 하나씩  입혀보고 있네..



체형이 슬림한 덕분에 옷 라인 자체는 잘 살았다. 그래서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며 옷을 엄청 들고와서 문제였지..

여섯 번째로 골라준 옷인 하얀 원피스와 허리에 둘러지는 얇은 벨트를 두르고 탈의실에서 나왔다.

"너가 보기엔 어때 보이니."

여자들 무리에 껴서 혼자 동떨어져있는 주인공군에게 소감을 물었다.


"어..음..예쁜거 같은데.."


나도 솔직히 지금 복장이 어떤지 몰라서 소감을 물은건데 어중간한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공군도 나처럼 선택장애가 있나보구나.. 시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게 그 증거일거다.



"..앞에 입어본 다섯 벌까지 전부 주세요."


 고르기엔 피곤할  같아서 결국 앞에 입어봤던 옷들까지 전부 사버렸다.


이거로 끝일 줄 알았지만 이번엔 류하연과 서예린의 옷을 골라 주어야했는데.. 패션엔 일가견이 없어서 그다지 도움은 못되었다.



결국 나도 주인공군처럼 옆에서 적당히 괜찮지 않냐는 이야기를 해주는 수 밖에 없었다.



---



쇼핑이 끝나자 양 손에 쇼핑백이 한 가득이었다. 오늘 가장 많이 구매한 나와는 다르게 류하연과 서예린은 한개 정도만 들고 있었다.


나야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옷이 얼마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묘월씨 잠깐만.."

쇼핑몰을 걷던 도중 문득 류하연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속옷은 안사?"

주인공군이 있어서 배려해준듯 가까이 다가간 나의 귀에 대고 속옷은 사지 않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음.. 오늘 안사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속옷은  혼자서 적당히 구매하면 되니까 굳이 지금처럼 짐이 많을 때 살 필요는 없겠지.


"..오늘 입은건 검은색이던데 오늘  옷들은 밝아서 속이 비쳐 보일  있어.."

현실적인 조언이 다가왔다. 하얀 컬러 위주의 옷을 샀으니 평소처럼 까만 속옷 위에 입으면 비쳐 보일  있겠지.. 역시 나온김에 사야할까.

"알았어요. 다녀올까요."

"..응."


저번엔 혼자서 고르느라  모르기도 했으니 또래의 도움을 받으면 편하게 고를 수 있겠지.



"주혁아. 피곤하지? 잠깐 여기서 쉬고 있을래?"

나의 쇼핑백 몇 개를 거들어 들어준 덕분에 조금 피곤한 게 보이는 주인공군에게 잠깐 여기서 쉬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더 보러갈거 아니야?"

"여자들끼리 잠깐 들릴 데가 있어서.."

"어떤 거야?"


눈치 없는 질문이 들어오자 다른 두 명의 따가운 시선이 주인공군에게 꽂혔다.. 선택지를 잘못 골랐구나.

"속옷 사러 갈 거야.. 따라 오고 싶으면 와도 되긴 하는데.."


눈치가 없다면 직구로 던지는 수밖에 없겠지. 잘못된 선택지를 고른 주인공군을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여..여기 있을게."

이제야 우리들 끼리 다녀오겠다는 이유를 눈치 챈 것인지 쇼핑백들과 함께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해주었다.


...

히로인 둘과 같이 속옷을 고르러 오니 조금 뻘쭘한 느낌이 들었다. 사이즈는 저번에 측정해서 알고 있으니 적당히 흰색만   사면..

"너는 옷 고르는데 엄청 무심하네.."

적당히  벌을 집자 서예린의 아쉬운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판이 좋으니까 조금 더 골라보는 것도 좋을  같은데."


"맞아.. 이런 거같이.."

류하연이 걸려있던 것  몇 벌을 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밝은 백색을 기조로  것부터 조금 은은한 파스텔톤의 속옷들.  개는 레이스가 달린 것도 있었다.


"밝으니까 검정처럼 비쳐 보일 일도 없을거야.."


삼십 넘게 이런데 무심했던 사람보다는 그녀들의 안목이 정확하겠지. 적당히 그녀들의 선택에 맞춰주면 편하게 고를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입어보고 올게요."


그녀들이 골라준 속옷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와 거울 앞에서 교복 블라우스를 벗어 내리고 가져온 속옷을 가슴 앞에 대보았다.




이제 두 달이 되어서 그런지 브래지어를 차는 손길도 제법 자연스러워진 게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간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슴은 거의 평평해서 예전의 삶과 다를 게 없어보였다. 성장할 가능성이 없구나..

손으로 옆구리 밑부터 살을 모아 올려봤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아주 약간의 볼륨감만 생겼을 뿐

"하하..."


성장하면 좋겠지만.. 아마 성장 가능성이 없겠지...

왜 이런걸 신경 쓰고 있는걸까.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위쪽만  개 시착해보고 밝은 컬러로 몇 벌 샀다. 사는김에 그냥 사고 싶어져서 검정도  세트 샀다. 기왕 살 때 넉넉하게 사는 게 좋겠지.

"고마워요 하연씨. 선배님.. 둘도 한 벌씩 골라봐요. 제가 사드릴게요."


오늘 같이 어울려준데에 대한 보답으로 류하연과 서예린에게도 속옷을 한 세트씩 고르라고 말해주었다.

"아..아냐. 오늘은 네 걸 봐주러 온거고.."


"나도.. 괜찮아."


"평소에 도움 받은 것도 많고. 오늘도 도와주셨으니까  벌씩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그녀들은 사양했지만 오늘 그녀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또 혼자서 밋밋한 옷들만 골랐을 것 같았다..




몇 번 더 권하자 그녀들도 결국  벌씩 고르고 시착을 했다.


류하연은 나와 비슷한 사이즈라 내가 고른 것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골랐는데.. 서예린은 사이즈가 전혀 달랐다..


역시 선배는 다른 곳도 선배구나..




"역시 선배야.."

그 모습을 보며 나와 류하연은 묘한 패배감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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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도 구매하고 나자 쇼핑백이 더 늘어버렸다.

시간이 제법 걸렸는데 쇼핑몰  가운데 있는 휴게공간에서 벤치에 앉아서 짐을 지키는 주인공군이 보였다.

주인공군을 너무 방치해두고 있는 것 같아서 먼저 조금 쉬고 있겠다며 히로인 둘을 내버려둔 채 벤치로 향했다.

"오래 기다렸지?"

피곤이 조금 쌓인 건지 졸려보이는 주인공군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주인공군이 앉은 벤치 옆에 앉았다.

"아니야. 옷은 잘 샀어?"

피곤해보여도 우리를 배려해준건지 오래 기다렸냐는 이야기에 고개를 저으며 쇼핑은 잘 했냐고 나에게 물었다.



"..어떤거 샀는지 궁금해?"


인사치레로 건넨 말이었겠지만 왠지 놀려주고 싶어서 일부러 떠보듯 말했다.




"아..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방금 전 까지 피곤해하던 모습은 어디로  것인지 당황해서 어쩔  모르는 표정이 재밌어보였다.

"농담이야."

"휴.."


그 모습이 재밌어서 조금 웃으며 농담이라고 말하자 그 때서야 진정된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어차피 또 너한테 보여질 거 같은데."


안도의 숨을 쉬는 주인공군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계단 위에서도 그렇고, 샤워실에서도 그렇고 벌써 두번 넘게 일어난 일이니 세번째가 있어도 이상할  없다.



"그..그때는 사고였으니까.."

"..나라서 넘어가주는거야."


속옷이 보여진 대상이 나여서 다행이었지 다른 히로인이었으면 얄짤도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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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돌아갈게. 기숙사 외출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그 외에 필요한 쇼핑을 하는 사이 시간이 금방 지나버려 저녁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쉽네요.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훈련도 없잖아? 외출 연장은 힘들 거야."


평소엔 공적으로 외출을 한 것이니 여유 있게 돌아갈 수 있겠지만 오늘은 타브하의 훈련도 없어서  이상 늦게 돌아가긴 힘들거다.

"어쩔 수 없죠. 식사는 다음에 다같이 해요."


"잘 가.. 묘월씨."

그녀 둘을 배웅해주고 나와 주인공군 둘만 남았다.

"이제 기지로 돌아갈까?"


무거운 쇼핑백  개를 대신 들어주고 있던 주인공군이 슬슬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결국 여자 셋의 쇼핑에 어울려주느라 모처럼 쉬는 날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그가 안쓰러워보였다.


그런 그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잠깐 저기좀 같이 들리자."


돌아가자는 그의 손목을 잡고 끌고 들어간 곳은 적당한 남성 의류 매장이었다.



"여긴 왜?"

지금의 내가 입을 일이 없는 옷을 파는 곳이니 이 곳에 데려온 게 의아하겠지.




"가만히 있어봐. 허리 펴고."

질문을 하는 주인공군을 내버려두고 적당한 셔츠를 하나 집어 그의 등 뒤에 대봤다.

"사이즈는.. 이 정도면 될까."

"..뭐하는 거야?"


주인공군의 넓은 등짝에 셔츠를 몇 벌 대보고 고민하자 그에게서  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 사주려고 그런다."


하루 종일 지루한 쇼핑에 끌려다닌데다가 다른 히로인에게도 선물을 해줬으니 주인공군에게도 이 정도 선물은 해줘야겠지.

"괜찮아. 집에 옷도 많고.."

"하루 종일 끌려다녔잖아. 하연씨랑 선배에게도 하나씩 선물해줬으니까 너도 사줄 거야. 들어가서 입고 와봐."

사이즈를 어림짐작해서 셔츠 두벌을 건네주고 주인공군에게 갈아입고 오도록 시켰다.


맨날 교복 아니면 나처럼 어중간한 사복이었으니 이렇게 사줄 기회가 있을 때 괜찮은 옷을 몇  입혀주고 싶었다.

좀  꾸며야 히로인들이랑도 친해질게 아닌가.




- 드륵..



주인공군이 갈아입고 오길 기다리고 있자 처음 골라준 하얀 셔츠를 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어떤거같아?"

내가 골라준 셔츠를 입고 온 주인공군이 나에게 감상을 물었다.. 어림짐작해서 건네줘서 그런가 조금 허리와 어깨가 붕 떠보였다.


양 팔을 조금 들어 허리를 돌려 거울 앞에서 핏을 확인하고 있는 주인공군의 허리에 손을 얹어 주었다.



"조금 큰걸 골라줬나.."


그의 허리와 어깨선에 손을 올려  라인을 맞춰주었다. 파일럿 훈련덕분에 조금 성장한 건가 제법 탄탄한 촉감이 셔츠 위로 손 끝에서 느껴졌다.




"묘..묘월아?"


"한 사이즈 작은 게 낫겠네. 이거로 입고 와."


방금 것과 같은 디자인에서 한 사이즈 작은 셔츠를 꺼내 주인공군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잘 맞겠지.


조금 기다리자  셔츠로 갈아입고 온 주인공군은 옷 핏이 제법 괜찮았다.


역시 주인공이라 그런지 체형도 깔끔하네.


"잘 어울리네요. 여자 친구가 골라줘서 그런가보다."


등 뒤에서 점원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셔츠를 입은 주인공군에게 옷이 어울린다며 이야기 해주었다.

하지만 정정할건 정정해주어야겠지. 내가 그의 여자 친구는 아니니까..


"여..여자 친구 아..아니에요.."

당당하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왠지 말이 조금 헛나와 버렸다. 왜 이러지..


"아..아무튼 저거 살게요. 이것도 같이.."


사이즈는 알았으니 어울릴법한 셔츠를 몇 벌 더 골라서 바구니에 담고 계산대 근처에 있는 속에 받쳐 입는 면티도 몇개 넣었다.


"..역시 내가 살게."


옷을 많이 골라줘서 그런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지갑을 꺼낸 주인공군의 손을 막았다.

"저번에 잘 해준 거에 대한 선물이니까 그냥 받아줘."


"남자 친구분 좋겠네~"

"..그..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점원의 오해를 풀려고 했지만 이미 듣지도 않는 눈치였다.


결국 선물을 받기로 한건지 지갑을 내린 주인공군 대신 나의 카드를 받은 점원이 일시불로 결제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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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이제 돌아가자.."


선물이라고 사준게 오히려 짐이 되어서 주인공군의 양 팔을 무겁게 만들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플백이라도 가져올걸 그랬나..



"아니야 선물도 받았고."

내가 마지막에 사준 옷이 마음에  건지 피곤한 모습이 사라진 듯 솔직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으면 서운하겠지. 그리고 이 경험이 언젠가 히로인 이벤트 때도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니 그를  단계 성장시킬 기회기도 했다.

짐이 많았던 덕분에 택시를 잡고 기지 정문 앞에 내린 후 독신자 숙소를 향해 걸었다.

주인공군이 개발부장님과 함께 지내는 관사와는 방향이 정 반대일텐데  짐을 들어주겠다고 옮겨주는게 고마웠다.

십분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걷자 금방 독신자 숙소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너가 지내는 곳이구나.."


"응. 나중에 놀러.. 아 남자는 못들어오네.. 미안해."


독신자 숙소니 이성의 출입은 금지다. 몰래 들였다가 쫒겨나는 경우도 있으니까..


"오늘 여러모로 도와줘서 고마워. 여긴 너가 못들어오니까 다음에 내가 관사에 놀러갈게."


"우..우리 집에?"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둘만 지내는 집안 환경이 신경쓰이기도 하고, 한번쯤은 직접 방문해서 그가 지내고 있는 곳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리 잘 해놔."

"그..그래.."


불시에 찾아갈테니 잘 치워두라고 이야기하면 평소에도 깔끔하게 관리하겠지.



"그럼 내일 학교에서 봐."

주인공군의 손에 들려있는 쇼핑백을 들고 숙소를 향해 걸어가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란테고스가 물러간 이후 맞이한 평온한 하루가 지났다.


아직 거미가 이 땅에 깔리기 까지 주어진 평화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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