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페이라스모스
사령관님과 통화를 마치고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회의실로 다시 돌아왔다.
"무슨 통화였어?"
나의 옆에 앉아있던 덕분에 핸드폰 위로 뜬 사령관이라는 세 글자를 본 주인공군이 나에게 물었다.
아마 중요한 업무가 아닐까 생각하는 거겠지. 대부분의 업무는 지휘관을 통해 내려오니까 사령관과의 직속 연결을 주고 받는 건 이 중에서 나 뿐이다.
"학생은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네요."
2호기 이야기는 지금 꺼낼 필요가 없겠지. 마지막에 들은 이야기만 축약해서 알려주었다.
"출장을 위해 사령관님이 내거신 조건은 평균 80점 이상.. 충분히 공부했다면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라네요."
아까 전화는 끊겼지만 사령관이 보내준 문자에서 자세한 조건이 써있었다. 나와 주인공군은 평균 80점을 넘겨야 출장을 허락해주겠다고, 출장을 가지 않는 맴버들도 80을 넘기라고 덧붙여주셨다.
"80점.. 이 학교 시험수준은 꽤 어려운 편인데.. 할 수 있을까."
곧바로 자신이 없는 듯 한 주인공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역 학생이 그렇게 기가 죽으면 안 되지..
"..그래서 한동안 비상사태를 제외하고 시험공부를 할 시간을 주셨답니다."
내 사리사욕적인 목적이 껴있긴 하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잘 해두면 나중에 인생에서 선택지도 늘어나니까 열심히 해둬서 나쁠 건 전혀 없다.
"다행이야.."
이 맴버 중 가장 성적이 좋아 보이는 류하연이 안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일찍 취직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학교의 성적관리는 중요한 것 같았다.
"내일부터 시험기간 때 까지 공부모임을 가져요. 아까 이야기 했었죠?"
"모이는 건 좋은데. 어디에서 모일거야? 역시 기지에서 모이는 거면 오가는 시간이 좀 걸릴텐데.."
역시 지휘계통 답게 서예린은 시간문제를 언급했다. 그녀와 류하연은 기숙사에서 거주하니까 기지까지 오가는 시간도 신경 쓰이겠지. 기지까지 왕복 30분은 더 걸리니까..
"그거라면 딱 좋은 장소가 있어요. 사람도 적고 조용한데 학교에서도 가까워요."
하지만 그런 조건에 딱 부합하는 장소가 한 군데 있다.
"시험기간인데..? 어디 스터디룸이라도 빌리는 거야?"
그런 곳이 있다면 편하겠지만 아쉽게도 이 도시엔 그런 시설이 없다.
"어디로 가는 거야?"
주인공군도 어디인지 짐작이 안 간다는 듯 했다.
"주혁이도, 하연씨도 같이 가봤잖아요?"
"어디..?"
그 둘의 기억에 조차 남지 않았던 건가.. 그 정도의 장소긴 했으니까.
"계약서를 썼던 곳이잖아요?"
"아.."
"확실히 거기라면.."
둔한 둘도 이제서야 눈치 챈 것 같았다.
내일의 집합 장소는 그 곳이다.
---
- 챠랑
카페의 유리 문 위에 달린 먼지가 쌓여가는 차임이 맑게 울렸다.
"안녕 삼촌-"
카페의 카운터에 턱을 괴고 시간을 죽이고 있던 점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묘월이니?"
한 손을 흔들며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평소라면 서비스 미소를 보여줄 텐데 오늘은 왠지 반가워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쪽의 아가씨는 처음 보네?"
점장은 우리 뒤에 서있는 서예린을 흘긋 쳐다보며 나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누구인지 설명해달라는 이야기겠지. 이 곳에 내가 데려온 거라면 보통 학생은 아닐테니까.
"이 쪽은 학교 선배. 지휘과 엘리트 선배야. 타브하에서 일한데."
일부러 지휘과를 강조해서 설명해주었다. 지휘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며 타브하 소속이라고.
"타브하라니.. 조카는 참 발도 넓네. 이제 우리 가게도 매상이 늘어나는 건가?"
시험기간때만 올 거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모처럼 왔으니 매상은 좀 올려줄까. 언제까지 얻어 마시기만 하기엔 틴달로스에게도 미안하니까..
"편한데 가서 먼저 앉아있어요. 전 삼촌이랑 이야기 좀 하고 갈게요-"
"응.. 알겠어."
먼저 자리를 잡아두라고 이야기 하자 셋은 먼저 카페의 안 쪽으로 들어갔다.
"..왜 그렇게 태도가 불편해?"
셋이 들어간 후 웃는 미소를 내리고 점장에게 물었다.
기본적으로 접객업인데 손님들에게 친절해야지. 평소엔 장사도 안 되면서 싱글벙글 거리던 주제에 오늘 따라 묘하게 까칠하네..
"..그녀가 와있다."
"그녀?"
"무인."
선객이 와있었구나.. 상사가 업무현장에 찾아왔으니 불편해보이던 태도가 조금 이해가 갔다.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확인해보니 구석자리에서 신문을 펼쳐보고있는 검은 양복차림의 여성이 눈에 띄었다.
..내가 왔는데도 아는 척도 안하고 있었단 말이지?
틴달로스는 지금 오후의 커피를 즐기는 듯한 손에 신문을 쥐고 천천히 훑어 읽으며 다른 손에는 커피잔을 들고 있는게 제법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주 얼빠진 행동을 보여주는데 사석이 아니면 저런 느낌도 내는구나.. 뭐 지금은 서로 오프니까 편하게 내버려두는 게 낫겠지.
먼저 일행들이 잡아 둔 자리에 앉기 위해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자 멀리 앉아있던 틴달로스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조금 눈으로만 웃어주었더니 여유 있고 쿨해보이던 표정이 조금 당황으로 바뀌는걸 보였다.
...정말 내가 온지도 모르고 있었던 건가?
틴달로스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를 향해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무시는 안했으니 봐준다.
"안녕 언니."
나도 손을 흔들어 조금 떨어져있는 그녀를 향해 손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아는 사람?"
옆자리에 앉은 류하연이 내가 틴달로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아는 사람이냐며 물었다.
"삼촌이랑 아는 사람이에요."
조금 함축되긴 했지만 틀린 설명은 아니다. 이 곳은 교단의 첩보시설이고 저 분은 교단 최강의 무인 틴달로스입니다. 라는 설명은 해줄 수 없으니..
"안녕하세요.."
알고 있던 사람이라니까 히로인 둘과 주인공군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십대에게 있어서 이십대 후반은 한참 어른처럼 보이겠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주인공군만 묘한 기시감을 느낀 건지 틴달로스의 얼굴을 한번 살펴보고 있었다.
슬슬 휴식이 끝난 것인지 틴달로스는 자리를 떠나 빈 커피잔을 들고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잘 마셨습니다. 마스터."
- 차랑
낡은 차임이 한 번 더 울리며 그녀는 카페 밖으로 나섰다.
"..뭔가 멋있는 언니 같아."
"마스터라고 부르는 사람 처음 봤어.."
틴달로스에 대한 히로인 둘의 평가는 좋은 것 같았다. 사적으로 만나면 조금 얼빠져서 그렇지 비쥬얼은 멋진 언니니까.
우리들의 시선을 받으며, 붉은 셔츠를 속에 잘 받쳐 입은 검은 정장차림의 틴달로스는 카페 앞에 세워진 커다란 검은 바이크 위에 올라타 헬멧을 눌러썼다.
잠시 후 엔진이 도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카페를 떠나 다른 곳을 향해 가버렸다.
"묘월아 저 바이크.. 혹시 저번에 기지 앞에 데려다 준게 저 사람이야?"
둔한 주인공군도 바이크까지 보자 드디어 누구인지 알아챈 것 같았다.
"맞아. 그 때 데려다 준 사람이 저 언니야."
주인공군과는 몇 달 지나면 전장에서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설명하는 게 적당하겠지.
"..여자였구나."
주인공군은 왠지 다행이라는 듯 뭔가 혼자서 안도한 듯 했다.
혹시 틴달로스가 교단 사람이라는걸 알아챘을까봐 조금 걱정했는데 그런 것은 상관없는 듯 여자라는 이야기를 듣자 안도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 혼자 편해 보이니까 그러면 문제 될 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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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틴달로스는 내버려두고, 우리들의 스터디 모임은 시작되었다.
기초 과목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 배워둔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없어서 금방 술술 풀렸다.
역사는 이전 세계의 역사와 조금 다른 부분이 많았지만 내가 세계관을 짜는데 일조했으니 큼직한 내용은 전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버전이 올라가면서 달라진 점이나 세세한 사항까지는 알지 못해서 교과서를 한 번씩 더 보게 되었다.
"..10년 전 게이트가 열린 원인은 불명이며 영웅들의 희생으로 닫을 수 있었다."
역사책의 한 쪽에 10년 전에 열렸던 게이트를 찍었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십자로 찢어진 게이트.. 요 근래 발생한 게이트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크기 만큼은 정말 도시 전체를 덮어버릴 듯 거대한 크기였다.
프롤로그쯤에 한 줄 정도로 들어가 있던 설정으로 만든 것 이었는데 정식 버전으로 넘어오면서 그 중요성이 커진 것 같았다.
역사는 변경된 부분만 잘 확인해두면 시험때 몰라서 해맬 일은 없겠지.
"묘월씨.. 이 부분 어떻게 풀어야해?"
역사책을 한번 훑고 내려놓았더니 옆에서 기초과목을 풀고 있던 류하연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앞에서 배운 공식을 쓰면 쉽게 풀 수 있어요."
역사나 특수 과목은 나도 공부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기초과목은 이렇게 가르쳐 줄 여유도 있다.
"..진짜네 대단해."
"공부 꽤 잘하네..?"
우리와는 다른 2학년 교과서를 보고 있던 서예린도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묘월아 나도 물어봐도 될까?"
"가져와봐."
스터디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오히려 가르쳐주는 것 위주네..
서예린은 가르쳐 줄 수 없는 특수 과목을 보고 있느라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세 명이나 질문하면 못따라가..
...
"아니 이게 왜 틀린 거지..?"
나는 지휘 교과서를 손에 든 채 오답으로 가득한 예상기출문제를 보고 이해할 수 없었다.
모의 출제 문제에서 100점 만점 중 35점이라니.. 이건 진짜 심각한데..
내가 대충 찍어 넘긴 것도 아니고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풀었는데 35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지휘 점수만 왜 그렇게 낮은 거야?"
나의 채점을 보고 있던 서예린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이야기했다. 지휘과의 엘리트가 보기엔 이상해보이겠지..
대각선 건너 자리에 앉은 서예린이 내가 보고 있던 기출 문제를 가져가서 확인해주었다.
"중형 차원수 셋을 상대할 때 유효한 전략.. 어디 너가 쓴건.. 라이플을 던진 뒤 라이플의 탄창에 사격을 해 유폭을 일으킨다..? 뭐야 이게.."
내가 쓴 서술형 답안을 보고 그녀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지휘가 아니라 개인의 전략이잖아.. 파일럿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현장을 내려보고 있는 지휘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해.. 게다가 이런 게 되는 파일럿은 없을걸?"
"저는 될거 같은데요..?"
"뭐..?"
하지만 그녀의 지적은 합당한 지적이었다. 개인의 무력에 의존하기 보단 유능한 지휘로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게 정답이니 내가 생각한 답안은 틀렸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지휘관의 시점에서 생각해봐.. 조금 더 쉬운걸 같이 풀어보자. '차원수를 상대로 탄약도 없고 기체의 한쪽 팔도 없을 경우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합니까?'"
"차원수에게 기체를 던져준 뒤 모든 모듈을 끄고 자폭시켜버린다!"
이건 나도 예전에 직접 해봤던거다. 주인공군도 무려 옆에서 같이 봤었다구!
- 따악!
서예린의 손에 들려있던 교과서가 말아 쥐어져선 내 머리 위를 살짝 때렸다.
"아얏!"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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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지휘과의 엘리트인 서예린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자리가 애매했던 탓에 류하연과 자리를 바꿔 바로 옆자리에 붙어서 강의를 듣게 되었다.
또한 지휘를 차근차근 배우면서 현장 지휘관의 고충과 일반 파일럿의 한계를 교과서 너머로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이 집 커피가 맛이 없더라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자리만 축 내는 건 매너가 아닌 것 같아서 점장에게 가서 적당히 스무디 4개를 달라고 했다.
커피는 못하는 집이지만 스무디는 마셔줄만 하니까.. 이왕하는거 얻어마시는게 아니라 내 카드로 긁었다.
"주문한 음료 나왔습니다."
잠시 후 점장이 쟁반 위에 음료를 네 잔 가져왔다.
딸기 스무디, 키위 스무디, 바나나 스무디, ... 아이스 아메리카노? 뭐야 왜 마지막건 스무디가 아니야.
점장을 노려봤다.
"재료가 다 떨어져서 말이야.. 그래도 이번엔 세 잔 준비했다?"
저번에 스무디가 두 잔만 나와서 뭐라고 했던 게 이번엔 세잔이라고 변명을 했는데.. 결국 주문에 못맞춘건 똑같잖아.
"재료 사러 다녀올 테니까 가게 좀 보고 있어."
점장은 그 자리를 피하듯 가게 밖으로 나섰다... 진짜 경영 능력은 없구나.
"..그러면 아메리카노는 내가 고를게."
저번에 한 입 먹어본 경험으로 내가 나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 중 가장 선배인 서예린이 본인이 아메리카노를 고르겠다고 했다.
"..안드시는게 좋으실 텐데."
"괜찮아. 커피는 좋아하거든."
저도 원래는 커피를 좋아했습니다.. 이 집의 커피를 마시기 전 까진.
서예린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꽂힌 빨대를 물고 한입 쭉 빨았다.
"으윽.. 뭐야 이게.. 정비과 바닥에 흐르는 오일인가..?"
그녀는 쓰다는 것을 표정으로 충분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정비과의 오일이라는 표현은 좀 심했다.
"아메리카노 라기 보다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느낌이죠?"
"맞아..."
그 마음 나도 이해한다.. 몸소 선배답게 희생해주었으니 조금 도와주도록 할까.
"그건 내버려두고 제거 같이 드세요. 어차피 혼자 다 못 마실 것 같아요."
내 몫으로 주어진 키위 스무디위에 카운터에서 가져온 빨대를 하나 더 꺼내 꽂아주었다.
"고마워.."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꽂아 준 빨대를 통해 키위 스무디를 바로 마시는 것을 보니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역시 이 집은 커피 장사는 접어야 할 것 같다..
- 쭈웁
별개로 나도 목은 말랐으니 스무디를 마시는 서예린의 옆에 붙어서 내 몫의 빨대를 같이 빨았다.
"조..조금 가깝지 않니?"
"여자끼리인데 뭘 그런걸 신경써요."
주혁이랑 나눠 마신 것도 아니고 히로인과 나눠 마시는데 신경 쓸 이유가 있는가.
"커플같이 굴고 있어.. 정말 누구 랑도 잘 붙어다녀... 난교토끼.."
갑작스런 충격적인 별명에 나도 모르게 음료를 뱉어버릴 뻔 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토끼 별명 컬렉션에 한 자리가 추가 되는 순간이었다...
...
그 뒤로 시간이 저녁을 넘기자 류하연과 서예린을 배웅하고 우리도 기지로 돌아갔다.
첫 스터디 모임은 유익하게 끝났다. 시험이 다음 주 월요일부터 라는 문제점만 빼놓는다면..
시험까지 삼일도 안 남았다..
---
".. 저것이 2호기 입니까?"
낯선 이국의 땅의 기지에 도착한 사령관은 상황실의 유리창 너머로 격납고 바닥 아래에 놓인 천막에 씌워진 기체를 보며 관계자에게 질문을 했다.
"이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여독도 푸시지 않은 채 곧바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서 온 출장이니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저게 2호기 입니다."
두꺼운 천으로 감싸인 거인의 형상. 겨우 보이는 것은 손끝과 발 정도였다.
"조만간 직접 움직이는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기대되는군요.. 저 파일럿 슈트를 입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천막으로 덮인 베레시트 2호기의 앞에 선 붉은 파일럿 슈트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슈트는 추운 환경에 맞춰서 개량한 듯, 기본적으로도 두꺼운 슈트 위에 방한을 위한 추가 장갑판이 덕지덕지 붙어 육중하고 두꺼운 중갑옷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파일럿 슈트 위에 걸친 헬멧도 붉게 코팅이 되어있어 그 얼굴을 상황실처럼 먼 곳에서는 확인할 수는 없었다.
"2호기의 테스트 파일럿.. 미하일 입니다."
"미하일 필리스티아.."
사령관은 서류상으로 보고 받았던 파일럿의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상황실과 멀리 떨어진 격납고의 아래에서 붉은 파일럿 슈트를 입은 2호기의 파일럿. 미하일 필리스티아는 천막에 덮인 기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아직도 늦었어? 대체 정비 담당자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미하일은 2호기가 아직도 천막에 덮여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정비관을 탓했다.
"이제 정식 조립이 완료된 참이라고. 시뮬레이션으론 신나게 타봤을거 아니야?"
미하일의 옆에 서있던 정비관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한숨을 쉬며 미하일의 말에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직접 타는 거랑 시뮬레이션으로 타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잖아?"
"그건 그럴 텐데.. 우왓! 뭘 하는 거야!"
- 펄럭
미하일은 기체를 감싸고 있던 천막을 힘껏 잡아당겼다.
파일럿 슈트의 근력보조 덕분에 기체를 감싸고 있던 무거운 천막은 금방 벗겨져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타브하 베이스의 베레시트 1호기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형제기. 흑철색으로 도장 된 베레시트 계획의 2호기였다.
하지만 그 형상은 완전히 같지 않았다. 한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형제라도 그 모습은 다르기 마련이니.
"얼른 너와 함께 싸우고 싶어. 슈타임."
미하일은 2호기를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바라보며, 아직은 잠들어있는 흑철색의 거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