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페이라스모스 (87/152)



〈 87화 〉페이라스모스

전날 회식이 끝나고 바로 돌아가서 짐을 챙겼다. 하루 숙박을 염두에 두었더니 이것저것 챙겨서 작은 캐리어 하나 정도의 짐이 나왔다.

일찍 잠들려고 했지만 기대하고 있었던 탓인지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아서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학교를 정식으로 빠진다는 이 충실감만큼은 좋았다.

옷은 저번에 산 옷들을 꺼내 입고 왔다. 비즈니스 자리니까 양복이라도 입고 가야하는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누구와 만나서 거래를 틀 것도 아니니 사복이면 적당했다.

지금부터 갈 곳은 4월 말이라도 초여름과 비슷한 날씨였으니 봄 패션보다는 조금 얇은 차림이 적당했다.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오는 반바지에 민소매 셔츠,  위에 얇은 가디건을 한 벌 걸쳤다. 추위보단 더위를 더 타니 이 정도만 입으면 적당 하겠지.



캐리어를 세워두고 기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자 저 멀리에서 주인공군이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내가 저번에 사줬던 셔츠를 윗 단추를 푼  자연스럽게 입고 오는 모습이 잘 어울렸다. 아직 어린 티가 조금 나긴해도 과연 주인공인만큼  핏도 잘 살리는게 사준 보람이 있었다.



"늦었잖아!"


하지만 나보다 늦게 나왔다는 점은 감점 요소였다.

"..십분 일찍 나왔는데?"

"난 삼십분 일찍 나왔어!"

만나기로 한 시간이었던 일곱 시 삼십분 보다 일찍인 일곱 시 이십분에 도착했지만 나보다 늦게 왔으니 지각이다.




"옷 잘 어울리네.."

말을 돌리려는 것처럼 주인공군은  패션을 한번 슥 훑어보곤 칭찬을 해주었다. 누가 그러면 넘어갈 줄 알고..



"그래보여..?"


조금 고민했던 조합이었는데 어울린다고 해주었으니 이번엔 특별히 넘어가주겠다.




...

아직 기지 버스가  시간은 아니어서 미리 콜택시를 불러두었더니 정확히 30분이 되자 기지 정문 앞에 택시 한대가 도착했다.

"어디 휴가라도 가나봐?"


"네 모처럼 휴가를 받아서요."

택시기사가 친근하게 말을 걸자 나는 적당히 넘기려고 했지만 주인공군이 대신 답변을 해주었다.

이 시간대에 사복을 입고 캐리어까지 챙긴걸 보니 학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했다. 주인공군을 아마 일찍 임관한 하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오빠가 착하네. 휴가 때 동생도 데리고 나가고."


주인공군을 동생을 데리고 외출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데..?

"..동생 아니에요."


"어 아니야? 그러면 여자친구?"

".. 그것도 아니에요. 그냥 친구에요."

왠지 조금 부끄러워졌지만 아닌건 아니라고 정정해줘야겠지. 신체나이는 어리더라도 동생 취급 받는 건 별로다. 여자친구는 글쎄.. 여자인 친구니까 얼추 맞지 않을까?


"친구였다가 여행 다녀오면 바뀌기도 하던데?"

능글맞게 웃는 택시기사는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딱히 다녀온다고 우리의 관계가 바뀔 것 같진 않은데..




"하하.."

주인공군이 멋쩍게 웃는 사이 택시가 금방 목적지에 도착해서 택시비를 지불한 후 내렸다.




---



도착한 곳은 평소 기지 버스가 내리던 정류장이지만 오늘 들릴 곳은 지하철이 아니라 같은 역사에 있는 기차역이다.


일부러 등교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등교중인 반 애들과 마주치지 않게 시간을 짜 놨다. ..놀러가는게 들키면 조금 민망하니까.

기차표는 사령관님이 호텔 숙박권과 함께 미리 준비해주셨다.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거였는데 직접 챙겨주실줄은.. 정말 돌아갈 때 뭐라도  사가야겠다.


"아침 먹고 왔니?"

아직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30분은 남은 것을 보고 주인공군에게 식사는 하고 왔냐고 물었다.


"아니.."


"가려면 두 시간은  걸릴 텐데 뭐라도 먹고 가자 배고프겠다."


작은 역은 아니었던 덕분에 조금 살펴보자 먹을 곳이 여러 군데 보였다. 그 중에서 눈에 띈건 우동을 파는 곳이었다.. 저 정도면 먹고 갈 여유는 되겠네.

"우동 괜찮지?"

"응."

선택장애가 있는 애는 이렇게 먼저 골라주면 잘 따라와줘서 좋았다.


우동집에 들어가서 기본 우동을 두개 시키곤 가디건에 국물이 튈까봐 가디건을 벗어서 갠 후 캐리어 위에 걸쳐두었다.



"그 옷, 소매가 없네?"

가디건을 두르고 있어서 몰랐구나. 목부터 가슴 부분까지 레이스가 좀 달려서 민소매 셔츠라곤 생각하지 못했겠지.

"응. 원래 이런 옷이야. 교복도 이렇게 시원하면 좋을 텐데.."

평소엔 긴 셔츠를 입고 다니느라 햇빛을  받았던 팔을  뻗어서 기지개를 키자 주인공군은 왠지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이 옷에서 보이는 노출은 어깨나 겨드랑이밖에 없을 텐데..?

류하연이 골라줬던 옷이었는데 생각보다 편해서 좋았다. 다음에도 골라달라고 부탁해볼까..


기지개를 켜고 조금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기다리고 있자 얼마  우동이 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우동을 먹었다.


주인공군은 겉으론 내색 안하더니 배가 고팠던  정말 잘 먹고 있었다.


"잘 먹네.. 내 것도 좀 덜어줄까?"

"괜찮아."


가격이  만큼 양은 얼마 되지 않은 우동을 금방 비우고 다시 캐리어를 끌고나와서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는 열차에 탑승했다.

"바깥 구경하고 싶어. 창가 쪽에 앉아도 돼?"

예전엔 항상 기차에 타면 통로 쪽에 앉았는데 이번엔 창가 쪽에 앉아보고 싶었다. 이 세계에서  기차여행이니까 조금 들뜨는 것도 있었고.



"그래. 내가 통로 쪽에 앉을게."

주인공군은 자리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건지 흔쾌히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헤헤 두 시간 동안 바깥 구경 열심히 해야지. 이 세계의 풍경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나는 열차가 출발하고.. 20분 만에 잠들었다..



...


'.. 열차는 잠시 후 - 역에 도착합니다.'

방송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창밖을 구경한다고 했는데 어느새 잠들어 있었을줄은..


하늘의 구름은 자기 몸이 뜯겨 나가는 것도 모른다고 했었던가.. 분명 기차에 탔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도착했다는 결과만이 남아버렸다.

의자 시트와는 조금 다른 감촉이 느껴져 머리를 들어보니 주인공군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있었다.. 무거웠을 텐데.. 미안하네..



"..이번 역은 과거야? 미래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안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잠이 덜 깨서 그런지 비몽사몽으로 아무 소리나 해버렸다.


푹 자고 일어난 덕분에 기분은 상쾌했다. 반면 주인공군은 한숨도 못잔 건지 피곤해보이는게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내 머리가 그렇게 무거웠던 건가.. 방해된다면 옆으로 치우지..


"나 침  흘렸지..?"

입가를 손등으로 슥슥 닦긴 했지만 내리자마자 침자국이  늘어져있는건 부끄러우니 주인공군에게 확인해달라고 얼굴을 조금 가까이에서 보여주었다.

"깨..깨끗해."

"다행이네.. 내리자."

명목상 출장을 나온 것이니 칠칠맞은 모습은 보일  없지.

캐리어를 들고 내리자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 곳의 날씨는 4월 치곤 조금 더웠다.. 이 세계는 아니지만 예전에 출장을 갔던 도시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햇빛도 조금 뜨거운 게 선크림이라도 발랐어야 했나..


역에서 컨퍼런스가 열리는 회장까지 거리가 제법 멀어서 택시를 한  더 잡았다.




---



컨퍼런스 회장과 사령관님이 잡아주신 숙소는  반대방향이라 숙소에 먼저 들리는  보다 회장 근처에 있는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맡긴 후 둘러보는  좋을 것 같아서 곧바로 회장에 도착했다.


컨퍼런스 회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게 아니라 그런지 칙칙하고 간결한 안내판만 붙어있었다. 일반인은 돌아가라는 듯 한 업계의 분위기가 나의 기분을 고조시키기엔 딱이었다.

"..정말 이런데가 좋아?"


"일반인은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오는 곳이야."



회장 입구에 보이는 건 양복이나 군복을 입은 관계자와 사진기를 들고 있는 기자, 이따금씩 보이는 20대 학생들이 전부였다. 학생들은 아마 소속 대학의 교수를 따라서 오거나 대외 활동 기록을 만들려고 온 거겠지.

"들어가자."

"응."


미리 준비해두었던 신분증을 입구에서 보여주자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걸친 뒤 컨퍼런스 회장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컨퍼런스 내용이 내용이라 그런 것인지 회장은 격납고 보다 큰 수준이었다. 기체가 쉽게 운송될  있게끔 만들어 둔 것 같다. 외부에 있는 넓은 공터도 직접 운행시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겠지.

사람도 제법 많은  자칫하면 일행을 놓쳐 보이기 쉬웠다.


"사람이 많네.. 길 안 잃어버리게 손 잡아줄까?"

나야 그럴 걱정이 없지만 주인공군이 미아가 될지 몰라서 손을 내밀어서 잡을 거냐고 물었다.


"괘..괜찮아. 애도 아니고 잃어버릴 일은.."

그래도 역시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길을 잃어버릴까봐 손을 잡는 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길 안 잃어버리게 잘 따라와."

입구에서 안내원이 나눠준 팜플렛을 받아서 펼쳐보고 천천히 회장 안을 걸었다.

".. 이전의 1세대는 사실상 상용이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2세대 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덕분에.. 투자 자본이 모여서 3세대 개발 계획이 시작된 거야.. 듣고있어?"

"하..하하.."


"케루브2는 카탈로그 스펙상 케루브 1보다 무려 30%나 더 출력이 높데!"


분명  이야기의 절반도 못알아들었을거다. 하지만 원래 이런 자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데려와서 주절주절 설명해주며 귀찮게 만드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적어도 오늘 출장이 끝날 때  주인공군은 케루브의 매력에 대해 알게 될 거다!


막상 들어와보니 관계자 컨퍼런스 치고는 재밌어보이는게 많았다.

당연히 양복쟁이들만 모여서 명함만 주고받을 자리일  알았는데 케루브 1을 직접 체험해  수 있는 간이 시뮬레이션도 있고..




군수 개발처의 마스코트 인형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어정쩡한 데포르메.. 아마 작년 행사에 쓰던 인형탈을 윗분이 쓰라고 해서 억지로 쓰고 나온 거겠지.

아이가 없는 자리라 그런지 그 인형탈은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고 양복장이들 사이에서 처량하게 회장 안을 맴돌고 있었다.



"주혁아 나 저거랑 사진 찍어줘."

인형탈이 불쌍하기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싶으니 찍어볼까.

"알았어. 핸드폰 줘 볼래?"

"네 걸로 찍고 보내줘 그냥."

힘이 빠진 듯 걷고 있는 인형탈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방금까지 힘이 빠진 태도는 어디로 간 건지 금방 활기차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찍는다."

- 찰칵


인형탈 옆에서 한 손을 브이로 올리고 있자 금방 사진이 찍혔다.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고 인형탈을 쓴 직원에게 손을 흔들어 감사인사를 전하자 한 손을 흔들어주었다.

"너는 안 찍어도 돼?"


"난 괜찮아."

이런데 놀러오면 저런 거랑 한번씩 사진도 찍어보는건데.. 즐길 줄을 모르네.



"잘 찍혔어? 보내줘봐."

제법 집중해서 찍고 있던걸 보면 잘 찍혔겠지?

"잘 나왔어. 그런데 보내려는데 번호를 몰라서.."

어? 여태까지 번호 알려준 적이 없었나.. 매일 만나다보니 딱히 번호를 교환할 필요를  느끼고 있긴 했다.




"줘봐. 번호 찍어줄게."

"여기."


주인공군이 건네준 핸드폰에  번호를 찍고 통화를 누르자 금방 전화가 걸려왔다.



"고.. 고마워."

"뭘 이런걸 가지고. 찍어준게  고맙지."

번호 정도야 언제든지 줄 수 있는 건데 뭘 고마워 하는지 모르겠다.


잠시  전송받은 사진은 그럴싸하게 잘 찍혔다. 사령관님에게도 보내드릴까.



---

"케루브 2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회장 한 바퀴를 전부 돌았지만 어디에도 케루브2는 볼 수 없었다.. 오래 걸었더니 발이 아파온다.. 모처럼 신발을 편한걸 신고 왔는데도 아프네..



"케루브2의 공개는.. 오후부터라는데?"


팜플렛을  손에 쥐고 있던 주인공군이 이벤트 발표 순서를 읽어주었다.



"뭐..? 괜히 일찍 왔네.."


너무 들떠서 일정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내 잘못이었다. 그래도 다른 것들 보는 재미도 제법 있었다.. 방위산업체의 신형 장비 공개 같은 건 참고해둘  했다.

내 손엔 그 부스를 돌며 받아온 유인물로 가득했다..


"주혁아. 점심 먹고 올까?"

출발 전에 간단히 우동을 먹긴 했지만 오후부터 힘내려면 뭔가 먹어두는게 좋겠지.




"그래."


주인공군도 배가 고팠던 건지 아니면 회장이 지루했던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을 나와 걸어보니 규모가 큰 곳이라 그런지 식당이 제법 많았다.


이런 자리는 점심 식사를 하면서 접대자리도 종종 이루어져서 그런지 식당들의 퀼리티도 제법 높아보였다.


학생 돈으로 오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라인업이지만 직장인 수준에선 그렇게 비싼 정도는 아니라 어디나 무난한 정도였다.


"오전엔 내가 먹고 싶은거 골랐으니까 오후엔 너가 먹고 싶은걸 고르렴."

식당의 수가 조금 많아서 그런지 주인공군은 어딜 가야할 지 고민을 하고 있는  같았다.

"난 아무거나 잘 먹어. 국밥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골라."


보통 여자애랑 뭔가 먹으러 나오면 입맛이 까다로울까봐 가게를 고르는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던데  그럴 염려가 없으니까 주인공군도 편하겠지.




"그러면.. 날도 좀 더운데 냉면이라도 먹을까?"

"오전에도 면인데 오후에도 면이야..?"

".. 별로야?"

"당장 가자."


난 면요리를 좋아한다.



키오스크에 나온 가게 위치를 보고 찾아가자 덥다는 생각을 한  우리가 끝이 아니었는지 가게에 사람이 넘쳐났다.

"자리 없겠는데.."


겨우 빈자리가 몇 개 보여 점원에게 물어봤지만 예약석이라고 했다. 그렇지.. 보통 이럴 땐 예약해두지..


"다른 데라도 가볼까?"

모처럼 주인공군이 주도적으로 골라줬는데 아쉽게 되었다. 다른데로 가보는 수밖에..


"묘월?"

발을 돌려 다른 가게로 향하려던 찰나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회색의 여성용 정장을 걸친 금발의 여교수.. 디블라임 교수가 가게의 앞에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디블라임 교수님."

갑작스럽게 마주쳐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쪽에서 먼저  알아챘으니 인사를 해야겠지.



"..안녕하세요."

주인공군도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미스 묘월도 컨퍼런스에?"


"출장 차 나왔어요."

"올  알았다면 미리 스케쥴을 비워 뒀을 텐데요."

"잡지를 보고 갑작스럽게 잡은 출장이라서요.. 아하하.."


잡지 인터뷰에서 3세대 양산 계획이 그녀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  본인이 회장에 올 줄은 몰랐다.

보통 이름만 빌려주고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으니까.



"역시 3세대 계획에 관심이 있었나보군요?"


"네. 케루브 2를 보려고 타브하에서 왔어요."

가게 앞에서 서서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식사를 하고 있던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자리에 오래 있으면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서 귀찮아질  같은데.

"괜찮으면 합석 하시겠나요? 예약은 해두었는데 공교롭게 혼자 오게 되어서요."


"그러면.. 그렇게 할까요? 괜찮지?"

"괜찮아."


교수와 나만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 그런지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주인공군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아까 보았던 예약석 중 하나는 그녀가 잡았던 자리였는지 외부와는 단절 된  안으로 들어왔다.


"교수님 일행은 없으신가요?"

"수행원이 한명 있는데 다른걸 먹겠다고 자리를 비웠어요. 혼자서 점심을 때울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아는 얼굴을 만날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우리와 만난 것이 기쁘기라도 한듯 조금 웃으며 메뉴판을 읽었다.


냉면인데 외국인 입맛에 맞으려나.. 그래도 그녀가 직접   보면 별 문제는 없나보다.


어색한 자리에 조금 얼어있는 주인공군을 챙겨주듯 적당히 주문을 마치고 식기와 물컵을 앞에 깔아주었다.

"역시 제네시스 플랜의 소년과는 그런 관계인가요?"

나와 주인공군을 보고 있던 디블라임 교수가 이 쪽을 보며 물었다.

"그런 관계라뇨? 사제관계 말인가요?"


저번에 보여주었던 모습은 스승과 제자였으니 이런 자리에 데려온 건 가르침의 연장선이라고  수 있지 않을까?


"아뇨. 연인관계냐는 질문이에요."

교수는 그 말을 하고 뭐가 즐거운 것인지 히죽 웃었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질문이다. 이제 한번만 더 같은 질문을 들으면 세 번째다..




"..."

부정만 하기도 질려서 대답을 하지 않고 히죽거리는 교수처럼 그냥 생글생글 웃어줬다. 이제 그냥 알아서 오해 하라지.

이번엔 아무 말도 없이 웃고 있자 주인공군이 나 대신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나야 주인공군이 자식 같아서 그런 오해를 받으면 조금 곤란한 기분이 드는데, 주인공군은 한참 히로인들과의 관계가 시작  시점에서 히로인도 아닌 나와의 관계에서 오해를 사는  그 나름대로 곤란하겠지..


식사자리에서도 주인공군의 앞일을 걱정해주는 사이에 주문한 냉면이 나와서 면 위에 식초를 뿌리곤 가위로 면을 잘랐다.

주인공군은  먹고 있나 슬쩍 쳐다봤더니 식초도 안치곤 그냥 먹고 있었다.. 먹을 줄 모르네.


"주혁아 잠깐만."


- 부엇

밍숭해보이는 그의 냉면 그릇에 식초를 조금 쳐주곤 가위로 면을 잘라주었다. 아직 어린애라 그런지 손이 많이가네. 이제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일부러 식초를 안친 게 아니라 잊고 있었던 건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모자 관계였나요?"

내 행동을 본 교수가 젓가락을 멈추곤 나에게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오해람..



...

"오전에는 허탕만 쳤는데.. 오후에는 케루브2를 볼 수 있겠죠?"

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육수를 마시며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쯤이면 전시장에 설치가 끝났을거에요."

점심시간대에 사람이 줄은 사이에 설치하는 건가.. 오픈 전에 미리 설치해뒀더라면  좋았을 텐데..




"직접 실물로 보는 게 기대되네요.. 직접 움직이는 시연은 없는 건가요?"


모처럼이면 직접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야 멀리서 온 보람이라도 있지 않을까.


"디스플레이 모델이라 움직이는 건 무리입니다. ..디스플레이 모델이 아니더라도 이런 좁은 회장에서 움직일 수 없어요."

"그런가요.."

아쉽게도 오늘 컨퍼런스에 설치되는 것은 디스플레이 모델.. 조종 모듈이 분리된 전시용 기체뿐이다. 이렇게 좁은 회장에서 움직이는 것도 무리일테고.. 가까이에서 실물을 볼 수 있는것에 만족 하는 수밖에..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실제 조종 유닛만 떼어왔어요."

시뮬..레이션..? 케루브..2의..? 실 기종이라고..?

"때마침 시연을 위한 파일럿 자리가 한명 비는데.."


앗..아아..




"..어떤가요?"

교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향해 미끼를 던졌다.

"할게요!!!"


..나는  미끼를 바로 물었다.

오늘 출장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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