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페이라스모스
호텔 로비의 소파에 기대어 앉아 이 쪽을 보고 있는 것은 타브하의 사령관님이었다.
출장을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야 할 그가 어째서 이 도시에 와있는 것인지 이해는 잘 가지 않았지만 낯선 외지에서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가워져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령관은 내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설마 2호기가 누군가한테 강탈이라도 당한건가? 급한 도움이 필요해서? 짐작이 가는게 없다..
- 탁!
내 앞까지 다가온 사령관은 나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묘월양! 몸..몸은 괜찮습니까..?"
"네?"
갑자기 몸이 괜찮냐고 물어보셔도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는데.. 어깨에 얹힌 손에 힘이 들어가서 좀 아프고..
"어제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무슨 말을 하시는거에요? 일..?"
예전에 놋 베이스의 모듈을 타고 하루정도 앓았던 것 때문에 이번 시연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까 걱정이라도 하신 걸까. 하지만 나는 보이는 것 처럼 쌩쌩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디 다치거나 아픈 곳은 없어요."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던 것 같군요."
사령관님은 그제서야 뭔가 안도하신 듯 어깨에 얹어진 손에 쥐어졌던 힘이 풀렸다.
"사령관님은 왜 여기까지 오신건가요? 분명 이 도시는 기지랑은 정 반대 방향인데.."
사령관님의 질문이 끝났으면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겠지. 그가 굳이 이 먼 곳까지 직접 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교단관련 일인가요?"
근처에 선 주인공군에게도 들리지 않게 사령관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사령관에게 질문했다.
"그런건 아닙니다.. 공항에서 올라오는 방향과 같았으니 마중 나온 겁니다."
사령관님은 아까와 같은 이유를 모를 초조함을 보이지 않고 평소처럼 조금 지친 어른처럼 이야기하셨다.
"돌아갈 때 기차를 안타도 되겠네요. 고마워요."
결과적으로 기지까지 편하게 돌아갈 수 있으니 만족이다. 선물을 사느라 짐도 제법 늘었는데 차로 돌아간다면 쾌적하게 돌아갈 수 있겠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캐리어 찾아올게."
지금까지 사령관님과 나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한쪽에 서있는 주인공군에게 내가 들고 있던 짐을 맡기고 캐리어를 찾기 위해 직원을 찾아갔다.
사령관님이 주인공군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무거운 것 같은데..
둘이 나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일 텐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무거웠다.
주인공군의 아버지인 개발부장님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건가? 뭐 별일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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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 찾아와서 사령관님의 차 트렁크에 실었다.
먼 곳을 출장 다녀오시느라 그런 건지 저번 입학식 때 태워주셨던 차량이 아닌 리무진을 타고 오신 덕분에 쾌적하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리무진의 이 마주보는듯한 좌석의 느낌은 언제나 새롭단 말이지..
푹신한 리무진 시트의 느낌에 긴장이 풀려서 축 기댈 번한걸 사령관님의 앞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령관님은 주인공군에게 무언의 시선을 계속 주고계신 것 같은데.. 이 미묘한 분위기를 깨려면 내가 리드하는 게 좋겠지.
"필리스티아 베이스는 어떠셨나요?"
내가 이야기를 걸자 사령관님은 주인공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보고 입가에 조금 미소를 띠셨다.
"추운 도시였습니다. 4월에도 겨울옷을 챙겨갈 줄은 몰랐습니다."
"고생하셨겠네요.. 영원히 얼어있는 땅의 근처니 어쩔 수 없겠죠."
필리스티아 베이스는 영구동토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기지. 4월에도 얼어붙는 듯 한 추위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견학은.. 즐거웠습니까?"
견학.. 아. 학교에는 출장이라고 할 수 없으니 견학으로 올려뒀었지.
"네. 재밌었어요. 디블라임 교수도 만났고 사진으로 보내드린 것 처럼 시연도 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어제 사령관님에게 시뮬레이션용 슈트를 입고 케루브 2의 디스플레이 모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드렸던 걸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케루브2는 잘 나오긴 했는데 아직 개선점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금방 양산하긴 힘들겠죠.. 뭐 개인 소감이지만요."
좋은 기체이긴 했지만 교수의 말처럼 100%는 되지 못하고 아직 30%정도의 개선점이 남아있었다. 그 점을 개선해야 정식 양산이 가능해지겠지.
"묘월양처럼 유능한 파일럿의 소감이라면 현장에서도 참고가 될 겁니다."
어디까지나 사견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사령관님은 나의 평가를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듯 했다.
"..그래서 타브하에는 케루브2가 언제 쯤 들어올까요? 올해 말? 내년 초?"
이제 막 시작한 3세대 양산 계획이니 곧바로는 힘들더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들여올 수 있겠지?
"3세대 증설 계획은.. 이미 타브하에는 4세대 플랜인 베레시트가 있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겠네요. 조금 아쉽다."
4세대 기체인 베레시트를 운용하고 있는데다가 곧 한대 더 들어올 텐데 여기에 3세대 까지 가져오겠다는건 현실적으로 힘들겠지..
"그래서.. 시연을 참조하면 1호기에도 개선점이.."
어제의 경험을 살려 사령관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려고 .. 했는데..
점점 졸음이.. 와서... 잠들어 버렸다..
...
널찍한 리무진의 좌석에 타브하의 사령관과 1호기의 파일럿이 서로를 마주한 채 앉아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주혁군."
"네.."
멀리 외국에서 출장을 다녀오느라 아직 피곤함이 남아있는 사령관의 얼굴은 조금 지쳐 보이긴 하더라도 절대로 약해보이지는 않았다.
그것도 지금 그의 앞에 마주 앉아있는 젊은 소년의 앞에서는 더더욱.
"아버지는 잘 계시나요?"
"넵.."
사령관은 평소와 같이 사람이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눈가만큼은 웃고있지 않았다.
"어제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사령관은 여전히 형식적인 미소가 걸린 입만 움직여 눈앞의 소년에게 일갈하듯 질문을 던졌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무릎 위에 주먹을 말아 쥔 채 경직된 자세로 사령관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마치 고해성사의 자리처럼. 도로 위를 달리는 검은 리무진이라는 고해성사실에서 사령관은 소년에게 맹세를 요구했다.
"정..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굳이 저에게 주혁군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겠죠."
사령관은 소년을 향해 조금 기울였던 자세를 고쳐 앉고 안도한 듯 푹신한 시트에 기대어 앉았다.
"네.. 제가 사령관님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소년도 긴장된 분위기가 풀어지자 경직된 자세를 점차 풀었다.
"알겠습니다.. 믿도록 하지요."
"고..고맙습니다.."
"어제 저녁은 잘 드셨나요?"
"네 룸서비스로 나온 걸 먹었어요."
"방은 불편하지 않았나요?"
"네 워낙 좋은 방이어서.."
"묘월양은 어디에서 잤습니까?"
"침대에서 잤어요."
"주혁군은 어디에서 잤습니까?"
"저도 침대에서... 앗.."
여러 번의 질문을 통해 소년의 긴장이 풀었을 때 사령관이 질문을 던지자 소년은 반사적으로 솔직히 대답했다.
"..한 침대.. 말입니까..?"
사령관의 팔이 올려져있던 시트의 팔걸이가 조금 떨리듯 흔들렸다.
"치..침대는 같이 썼지만 아..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게..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저..정말이에요.. 침대가 넓어서 서로 떨어져 자느라.."
필사적으로 해명하는 소년의 표정이 절박해보였다.
사령관은 소년의 표정을 보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만약 소년이 정말로 무슨 일을 저질렀다면 솔직하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을까..
어줍잖은 거짓말로 어른을 속일만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소년의 아버지와의 오랜기간 거친 교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조금 침묵이 감도는 리무진 안의 경직된 분위기가 서서히 해소되려는 듯 말없이 소년을 바라보던 사령관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려던 때..
"주혁아.. 너무 큰데.."
소년의 옆에서 잠들어있던 소녀의 잠꼬대가 정적을 깨듯 표정을 약간 찌푸린 작은 입에서 새어나왔다.
"오..오해입니다!!!"
소년은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기지까지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동안 인생에서 가장 필사적인 변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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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리무진을 탄 것과 사령관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것 까진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기지까지 도착했다.
어제 푹 잔데다가 아침에 목욕도해서 피로가 싹 가셨을 텐데 이렇게 기절하듯 잠들 줄은 몰랐다.
피곤이라는 건 산산이 부숴버려도 바닥아래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마련이다..
"저..저는 여기에서 내리겠습니다.."
잘 잤던 나와는 다르게 주인공군은 긴 거리를 오는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한 듯 밤새 야근이라도 한 것 같은 직장인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젊더라도 장거리 출장은 역시 힘들었던건가..
"잘 가. 학교에서 봐."
자기 짐을 챙기고 관사 지역을 향해 걸어가는 주인공군에게 리무진 창문을 조금 열고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었다.
"묘월양도.. 숙소로 모셔 드리겠습니다."
한숨도 잠들지 못한 것은 사령관님도 마찬가지였던 건지 항상 초췌해보이는 그의 표정이 한결 더 피곤해보였다. 역시 2호기 인계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으셨을 텐데 이 먼 곳까지 나와 주인공군을 위해 직접 나와주셨을 줄은.. 답례라도 해드려야.. 아. 답례.
"사령관님께 선물을 전해드린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트렁크에 실어둔 캐리어와는 다르게 따로 쇼핑백에 담아두었던 과실주를 꺼내 사령관에게 한번 보여드렸다.
"뭘 드려야할지 몰라서 사봤지만.. 좋은 술이라고 해요."
이 것은 좋은 것이다. ... 아마도.
"고맙습니다. 선물을 바라고 보내드렸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받아보니 기분은 좋군요."
내가 건네 드린 술병을 확인한 사령관은 기쁜 듯한 표정을 지며 시트 옆에 술병을 내려놓았다.
"혼자 마시긴 조금 적적 하겠지만.. 내일이 휴일이니 쉬는 겸 잘 마셔 보겠습니다."
그런가.. 사령관의 성격이라면 누구를 초대해서 같이 마실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다.
"적적하시다면 제가 같이 있어드릴게요."
"네?"
"좋은 술이라면 혼자서 드시는 것 보다 이야기 상대라도 있는 편이 즐겁지 않을까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사령관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있으니 선물을 건네준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쉬시는 편이.."
"차로 마중나와주신 덕분에 쌩쌩해요. .. 잠도 푹 잤구요."
부모도 아닌데 남 앞에서 푹 자버렸다는게 양심에 찔리기도 했으니 잠든 시간만큼 서비스 하는 정도는 괜찮다.
"좋은 술에 말벗이라.. 감사합니다."
리무진은 독신자 숙소를 향해 가던 방향을 바꾸어 관사를 향해 이동했다.
사령관님이 기거하는 관사라고해서 화려하거나 어느 정도 수준이 높은 건물일 줄 알았지만 직위에 비해 엄청나게 검소한 느낌의 작은 주택이었다.
사령관님의 집에 들어가 집 안을 조금 살펴보자 따로 관리를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집안은 깔끔했으나 어딘가 남자 혼자서 지내는 집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옷 갈아입고 계세요. 그동안 주방좀 빌릴게요."
술자리니 안주라도 준비해두는게 좋겠지. 자기가 준비할 테니 쉬고 있으라는 사령관님을 억지로 옷방을 향해 밀어낸 다음 부엌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봤다.
... 실례되는 말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몇 가지 반찬거리가 전부에 과일만 몇개있는 정도였다. 밖에서 식사하는 일이 잦다보니 집에서 뭘 해 드시는 것 같진 않아보였다. 아마 이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 직접 준비하겠다고 하신걸지도..
어쩔 수 없이 과일만 깎아 접시에 담은 뒤 아까 같이 샀던 과자를 꺼내 포장을 뜯어 올려두었다.
"화려한 술상이군요."
평소 늘 보던 양복차림과는 다르게 간소한 옷을 입었지만 풀어진 아저씨의 모습이 아니라 조금 멋을 낸듯한 편한 사복으로 갈아입은 사령관님이 안주가 준비 된 자리에 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기 전에 장을 좀 볼걸 그랬어요."
사령관님의 냉장고를 빌리느라 어쩔 수 없었지만 조금 따뜻한 것도 없이 찬 과일과 과자만 내놓은 상을 보고 화려하다고 말해주시는게 조금 머쓱했다.
"잔은.. 선반에서 찾아 꺼냈는데 써도 되는 거죠?"
부엌 선반에 있는 글라스 두 개 중 많이 사용한 흔적이 보인 한 잔을 꺼내 사령관님에게 건네 드리고 같이 찾은 오프너로 과실주의 마개를 열고 글라스를 채웠다.
"묘월양도 한 잔 어떻습니까."
"저는.. 미성년이라서요."
나이보다는 어제 고작 두잔 마시고 자기를 주체하지 못한 게 기억이나자 조금 부끄러워져서 다시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제 룸서비스로 들어온 와인은 마시지 않았습니까?"
"아하하.."
사령관님은 조금 웃으며 그 이야기를 꺼냈다.. 청구는 안되었더라도 술이 나간 건 알고 계셨나보네..
"어른이 건네주는 한 잔 정도는 마셔도 괜찮습니다."
어제 내가 주인공군에게 해주었던 이야기.. 연장자가 권해주시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그러면.. 조금만 받을게요."
남아있는 글라스를 가지고 오자 조금 주춤하던 사령관님은 나의 잔에 과실주를 절반 정도만 따라 주셨다. 이 정도면 취하지 않겠지.
"..건배 할까요?"
말없이 들이키는 것 보단 잔이라도 부딪치고 마시는 게 좋겠지.
"좋습니다. 무엇을 위해 건배하겠습니까?"
자기 잔을 든 사령관님은 무엇을 위해 건배할지에 대해 물었다.
"타브하를 위해.. 정도로만 할까요?"
이 잔에 올릴 수 있는 이름은 무수히 많지만 지금은 그냥 타브하 라는 것만으로 일축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아직 등장하지 못한 다른 이들을 위한 건배는 의미가 없겠지..
"타브하를 위해."
사령관이 그 결정에 동의한다는 듯 잔을 앞으로 들어올렸다.
- 챙
"타브하와 아이들을 위해."
건배사에 다른 아이들을 담곤 잔을 부딪친 뒤 한 모금을 조금 넘겼다. 포도와는 다른 과일로 빚은 술이라 그런지 약간의 과일향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미하일은 어땠나요?"
한 모금 마신 잔을 내려놓고 사령관에게 필리스티아 베이스의 일에 대해 물었다.
"훌륭한 실력이었습니다. 왜 그가 젊은 나이에도 파일럿으로 뽑혔는지 알 수 있더군요.."
"미하일과 이야기도 나눠보셨나요?"
"멀리서는 지켜봤지만 직접 만나진 못했습니다.. 항상 두꺼운 파일럿 슈트를 헬멧까지 눌러쓰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그렇군요.."
파일럿의 실력을 보러간 것이 아닌 베레시트 2호기의 인수인계를 위한 작업이니 사령관이 직접 파일럿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고 해도 이해가 갔다.
파일럿의 관리는 지휘관의 책임. 사령관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체적인 결제 업무를 담당한다.
"파일럿이 아닌 2호기는 어땠나요?"
"필리스티아 베이스에서 자체 개발한 유닛들도 볼만했습니다. 다목적 병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점은 높이 사줄만 했습니다."
"하지만 1호기 보다는 못하죠? .. 2호기에는 그게 없으니까."
사령관은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잔을 비웠다.
"2호기의 코어는 결국 양산품.. 진짜가 들어간 1호기와는 다르겠죠."
"베레시트 계획의 핵심은 1호기니 어쩔 수 없습니다.."
"네 이해하고 있어요.. 1호기는 제가 지킬 테니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사령관의 비워진 잔에 과일주를 한잔 더 채워주며 그를 향해 조금 미소 지었다.
1호기 안에 든 비밀은 제가 지켜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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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가벼운 이야기를 몇 번 나누고 잔을 채워드리자 사령관님이 어느 정도 취하신 듯 얼굴이 붉어진게 보였다.
"늦은 시간이군요.. 슬슬 돌아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취해있을텐데도 나를 걱정해주시는 모습이 고마웠지만 지금은 내가 그를 챙겨주어야 할 때 같았다.
"아직 많이 늦지도 않았고.. 뒷정리만 하고 돌아갈게요."
"괜찮습니다.. 그대로 두고 가셔도..."
나의 행동을 막으려는 듯 일어선 사령관님은 다리가 조금 비틀거리는 게 취기가 도는 것 같아보였다.
"그러면.. 적어도 방에 눕혀드리고 갈게요. 이대로 두면 어디 쓰러져서 주무실 것 같아요."
"하하.. 그래 보였습니까..?"
몸이 작아 사령관님의 몸을 전부 지탱해주긴 힘들었지만 적어도 넘어지지는 않게 부축해서 그를 침실까지 옮겨주었다.
...
침실도 별다른 물건은 없이 옷장 하나와 침대와 작은 탁자 하나 뿐인 소박한 구조로 이루어져있었다.
"똑바로 누우세요. 돌아누워서 자면 몸에 별로 안 좋데요."
침대에 누운 사령관님을 제대로 눕혀드린 뒤 이불을 덮어드리려다가 문득 침대 옆 탁자에 있는 낡은 액자가 눈에 띄었다.
"..부인과 함께 찍었던 사진입니다. 이제 남은 사진은 저거 한 개 뿐이군요..."
내가 액자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눈치 챘던 건지 사령관님은 고개만 조금 돌린 채 액자를 바라보았다.
"봐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그의 허락을 구한 뒤 액자를 가까이에서 바라보자 젊은 시절의 사령관님과 그의 옆에 팔짱을 끼고 가까이 붙은 검은 머리의 여성이 찍혀있었다.
예전에 내 머리가 부인의 머리와 닮은 은색이라고 들었는데..
"십 년 전만 해도.. 적합자가 거의 없던 것과 마찬가지라.. 눈에 띄지 않게 머리를 검게 염색 했었습니다.."
사령관은 나의 의문에 대답하듯 부인의 머리가 검은 이유를 말해주었다.
"사진과 함께 묘월양을 보니.. 정말 둘이 많이 닮았군요.. 자매처럼.."
머리는 검지만 사진속의 여자는 사령관님의 말 처럼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아마 지금의 몸이 몇 년 정도 더 지나면 사진속의 그녀와 비슷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액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사령관님의 부인.. 나는 이 여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꿈에서..
관 위에 앉아 있던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