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베레스웃사
사령관님의 집에서 부인이 찍혀있던 사진이 걸린 액자를 본지 며칠이 지났다.
사진을 본 날은 사령관님을 침대에 눕혀드리고 서둘러 나왔지만 그 사진 속에 있던 여자는 잊을 수 없었다.
꿈속에서 등장한 검은 관들 중 금이 가있던 세 번째 관 위에 앉아있던 그녀. 사진속의 인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분명히 나를 보고 누구냐고 묻던 꿈속의 여자가 맞았다.
꿈속의 여자는 정식 버전으로 넘어가면서 추가 된 '사도' 중 한명.. 내가 정말 잘못본게 아니라면 사령관님의 부인은 사도중 한 명이다. 아마 세 번째..
새로운 요소인 사도가 시나리오의 시작 전인 십년 전 부터 개입하고 있었다면 정말 내가 알고 있던 시나리오와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베레시트 계획의 1호기는 사령관의 부인이 이 세계에 넘어오면서 타고왔던 시험 기체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기체다.
만약 그녀가 타고 왔던 기체가 격납고에 있는 나의 사도와 같은 기체라면..?
하지만 두 달간 지켜본 결과 1호기는 내가 알고 있는 1호기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외견도 내부 스펙도 정식 버전 이전의 1호기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로 세 번째 사도라고 해도 이미 십 년 전에 실종된 사람이니 지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문제라 사도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엘에게 상의해보았지만..
[ 다른 사도 말인가요..? 그런 정보는 없어요. ]
자기는 다른 사도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오히려 다른 사도가 있다는 그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시점에서 사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영구동토의 밑바닥에서 발견된 관의 조각과 사령관님의 부인 뿐..
교단을 설립한 것도 사도.. 그리고 세 번째 사도로 추측되는 사령관님의 부인.. 과연 나 외에 몇 명의 사도가 더 존재하고 있는걸까.
독신자 숙소의 침대 위에서 다른 사도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
"안녕 주혁아-."
일요일은 간만에 숙소에서 푹 쉬느라 버스 정류장에서 이틀 만에 보는 그의 얼굴이 조금 반가웠다.
"안녕.."
푹 쉬고 온 나와는 다르게 어딘가 지쳐 보이는 듯한 주인공군의 얼굴이 보였다. 생각보다 출장이 많이 피곤했었나보네..
"아버지가 선물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출장을 보내준데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개발부장님에게 전해드렸던 과실주가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나도 조금 마셔봤을 때 괜찮다고 느꼈으니 분명 좋은 술이겠지.
"뭘 내가 더 고맙지. 혼자 갔으면 더 힘들었을 거야.. 늦겠다 얼른 가자."
때마침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
"..학교 빠지고 출장 재밌었어?"
금요일날 학교를 빠진 것이 여전히 불만이었던 듯 옆자리에 앉은 류하연은 조금 토라진 듯 했다.
"재..재밌었어요."
그녀의 기분을 맞추려고 별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지..
"..사진도 찍었어?"
"네. 정식으로 제출해야 되는 것도 있어서.. 몇 장 찍었어요."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를 열자 컨퍼런스에서 찍은 사진이 한가득했다..
적당히 찍는다고 찍은 게 이백장이 넘게 찍었을 줄은.. 제출할만한 사진을 고르는 것도 일이 되겠네.
"케루브2 말고도 볼 게 많더라구요."
아침에 역에서 먹은 우동부터 컨퍼런스 회장 입구 등.. 여러 사진이 넘쳤다.
"아 이거 귀여워.."
컨퍼런스 회장에 막 도착해서 마스코트와 찍은 사진을 본 류하연은 마스코트가 귀엽다고 했다. 어중간하게 생긴 것 같은데 의외로 여고생한테 먹히나보네.. 뭐 나도 신나서 같이 찍었으니 할 말은 없나.
"차원기만 한가득.."
그 뒤로 찍힌 사진은 각종 부스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새로운 설계에 대한 단면이나 구동부의 샘플이 가득했다.
이런걸 보려고 간 거였으니 이런 사진이 한 가득할 수밖에 없겠지..
"..역시 안가길 잘한 것 같아."
지루한 사진들만 계속되다보니 사진을 넘기는 그녀의 얼굴도 흥미를 잃어가는 듯 넘기는 손가락이 빨라졌다.
"응..?"
그렇게 사진을 넘기다가 케루브2를 찍은 사진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게 뭐야 묘월씨?"
류하연은 그 사진에서 손가락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케루브 2에요. 멋있죠?"
다른 사진을 지루하게 넘기던 그녀가 이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는 것은 드디어 그녀도 3세대 양산 계획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건가 싶어서 기체명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걸 묻는 게 아니라. 둘이 이 앞에서 뭘 하고 있냐고 묻는 거야.."
그녀는 케루브2의 발치에 내가 주인공군과 팔짱을 낀 채 찍힌 부분을 확대하며 물었다. 신나서 찍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찍었었나..
"기념사진을 찍은 거니까요.. 둘 다 나와야 의미가 있는 사진 아닐까요?"
출장을 둘이 같이 갔는데 사진에 계속 나만 나오면 둘이 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교수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이다.
"..둘이 왜 이렇게 가까워?"
"한 포커스에 담으려면 어쩔 수 없어서 같이 찍은거에요.."
3세대 양산 계획에 대해 설명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진에 대한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사진을 몇 번 더 넘기며 케루브2의 시뮬레이션용 파일럿 슈트를 입은 내 사진을 한번 훑어봤다.
"..밖에선 상식적인 슈트를 입는구나."
내가 평소에 입는 하얀 슈트는 대체 얼마나 일반적인 상식에서 어긋난 것이길래 저런 평가를 받는 걸까..
"숙소 좋아 보여.."
류하연은 숙소 안을 찍은 사진을 보며 감탄했다. 무려 일박 팔십만원의 방이니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지. 숙소에선 뭐 둘이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니 지적을 받을 일은..
"..여기."
사진을 넘기던 그녀의 손이 내가 욕실을 찍었던 사진에서 멈춰있었다. 사진에는 욕조와 욕실 말고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은데?
"네?"
"이 부분.."
"..왜 한 방에 둘이 같이 찍혀있어?"
확대된 것은 한쪽에 찍힌 거울.. 그 안에 주인공군과 내가 같이 담겨 있었다. 아마 숙소를 촬영 할 때 주인공군이 뒤에 서있던 탓에 찍혔던 것 같다.
"촤..촬영할 때 우연히 같이 찍혔나봐요."
"..같은 방에서?"
보통 숙소를 따로 써야 할텐데 같은 방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만도 했다.
"그..그게 오버부킹이 되버려서 어쩔 수 없이 한 방을 썼어요.."
그녀의 이어지는 심문에 나는 갑작스럽게 비를 맞은 것이나 직원의 실수로 오버부킹이 되버려서 특실 하나로 퉁 쳤다는 이야기를 설명하게 되었다.
"...둘이 같이 한 방을 쓴 거야?"
"네."
"..둘이 같은 방에서 뭐 했어?"
"그냥 씻고.. 밥 먹고 피곤해서 바로 잤어요."
더 설명한 것도 아니고 덜 설명한 것도 아닌 적당한 설명이다.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는 게 이상한 오해를 피할 수 있겠지?
..물론 술을 마신건 비밀이다.
"잠은 따로 잔거야?"
"..."
여기까지 물어볼 줄은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히로인에게 주인공군과 한 침대에서 잤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어서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내 설명을 전부 들은 류하연은 평소처럼 쏘아대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그저 보고 있던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히로인인 자기 대신 주인공군과 하루를 같이 보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건가..
"..원나잇 토끼."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히로인 류하연은 입을 열었다.
"..네?"
저번에 이어서 상상도 못할 별명이 붙었다.
"..이런 짓을 하는 토끼인줄 알았으면 나도 따라갈걸 그랬어.. 정말 문란해."
"무..문란하다뇨.. 그런 일은 없었어요!"
그런 별명을 붙여버리면 내가 마치 주인공군과 지난밤에 뭔가 한 것같이 들리는데.. 주인공군과 뭔가 한다니.. 그.. 그런걸 가지고 있는 주인공군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얼굴. 왜 빨개진 거야? ..정말 아무 일도 없던게 맞아?"
"아...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해명해야 하는데.. 그 날 아침에 봤던 그게 다시 떠올라버려서 말이 자꾸 헛돌았다..
---
류하연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여러 번의 심문과 대답 끝에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게 밝혀져서 오해는 풀렸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본인도 꼭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둘이서만 다니는 것 보다 여럿이서 다니는 게 이상한 오해를 피할 수 있겠지..
이런 위험한 심문을 받았던 것도 모르는지 주인공군은 쉬는 시간마다 아주 속편하게 책상위에 엎어져서 자고있느라 교실을 이동할 때 마다 깨우는 건 내 몫이 되었다.
그 뒤로 학교가 끝나고 다 같이 오랜만에 기지에 모여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듯한 주인공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인공군도 저번 주 금요일날 빠진 것에 대해 남자애들에게 질문을 좀 들었다는 것 같다.
적당히 설명을 해서 빠져나왔다곤 하지만 같은 날 내가 빠진 덕분에 뭔가 소문이 도는 것 같다고 하던데.. 점점 학교생활이 복잡해져가는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기지에 오니까 느낌이 새롭네.. 출장은 잘 다녀왔어?"
"네. 잘 다녀왔어요."
학년이 다른 덕분에 좀처럼 학교에서는 마주치기 힘들었던 서예린과 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선물로 사온 과자를 다 같이 나눠먹었다.
서예린도 기체에는 흥미가 없는지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기만 했었다. 주인공군도 나도 파일럿인데 기체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 아직은 우리 둘 외에 아무도 없다니.. 조금 슬프다.
교단의 두 번째 간부가 나타나기 전 까지 아직 시간 여유는 남아있으니 적당히 대기실에서 잡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류하연은 책을 읽고 있고 서예린은 지휘교본을 보고 있고 나와 주인공군은 적당히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각자 따로 노는 분위기였지만 뭐 하루 종일 이야기만 나눌 수 없으니 이런 휴식도 필요한 법이다.
"저번 주에 시험도 끝났으니 이번 주는 별 일 없겠지?"
나와 비슷하게 의자에 늘어져있던 주인공군이 고요를 깨듯 말을 한마디 던졌다.
"야.. 너 그 말.."
꼭 쟤가 뭔가 말을 꺼내면 일이 터지..
- 에에에에엥!!
이럴 줄 알았다.
기지 방송망을 통해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렸다..
< 도심 인근에 소형 게이트 발생을 확인! >
정말 쟤는 무슨 한가하다는 말만하면 씨가 돼 버리네..
"너 앞으로 내가 입단속 시킬 거야."
"미..미안해.."
모처럼의 휴식시간이 다시 업무시간으로 바뀌어 출격을 위해 주인공군을 한번 쏘아보고 격납고로 달려갔다.
...
유백의 란테고스 이후로 정말 오랜만의 출격이었다.
아직 교단이 오기 전 까지 여유가 남아있으니 교단은 아닐 테고, 소형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아마 자잘한 차원수가 나타난 거겠지.
게이트가 열린 위치도 도시 한 가운데가 아닌 적당히 아무것도 없는 외곽에 나타났다는 게 그 증거였다.
우리가 비번일 경우 도심 방호를 위해 할당된 파일럿이 출격하게 되지만 주인공군이 있을 경우 4세대 기체 테스트를 위해 1호기가 최우선으로 출격하게 된다.
왜 어른을 놔두고 소년을 가장 먼저 전장으로 보내는가에 대한 대답이 대부분 4세대 테스트로 귀결이 된다.
나도 교단이 아니면 전투를 피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라자루스를 제외하고 사도만으로 간만에 전장에 나섰다.
지휘관의 지휘모듈을 통해 탐측된 것은 소형 몇 마리와 중형 몇마리.. 게이트가 열렸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평범한 조합이다.
소형이야 이전과 같은 종류의 차원수였지만 이번에 나타난 중형은 조금 달랐다.
- 구우우..
지네와 비슷한 중형 차원수와 다르게 네 발로 걸으며 짧은 앞발을 가진 채 전신이 두꺼운 갑피로 덮인 차원수였다.
갑각형이 나타날 때가 된 건가.. 주인공군은 고생 좀 하겠네.
뭐 나는 상관없지만.
- 철퍼억!
사도의 날카로운 손톱이 중형 차원수의 갑각을 파고들어 그 안에 자리 잡은 코어를 뽑아냈다. 역시 3세대 계획이니 뭐니 해도 나에겐 사도가 최고다.
- 탕! 탕! 철퍽! 철퍽!
내가 중형 차원수 한 마리의 코어를 뽑아내는 동안 주인공군은 소형 차원수를 전부 사격으로 제압했다.
달려드는 작은 차원수가 공중에서 뭉개져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바닥에 끈적끈적한 혈액이 흘러내렸다.
파일럿이 된지 고작 두 달 만에 소형을 바로 제압할 정도로 실력이 늘어난 듯 했다.
갑각형의 내구를 알아보기 위해 한 마리는 직접 잡았지만 나머지도 전부 잡아주는 것 보다 주인공군이 직접 상대하면서 경험을 쌓는 게 좋겠지.
"남은 중형 두 마리는 스스로 잡아봐."
바닥에 떨어진 차원수의 시체에서 건질만한 코어를 뽑아 정리해주며 남은 중형 차원수 두 마리의 상대를 맡겼다.
< 맡겨줘. >
자신은 가지고 있지만 자만하지는 않은 목소리. 신중함이 생긴 듯한, 어른이 되어가는 저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잘 지켜보다가 위험해질 때 쯤 도와줘야지.
- 구우우..
주변에 있던 소형 차원수가 전부 제압되어버리자 천천히 땅을 걷던 중형 차원수 한 마리와 1호기의 시선이 마주쳤다.
- 탕! 파캉!
1호기는 중형 차원수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사격을 가했지만 단단한 갑각형의 외피에 탄환이 명중하자 금방 튕겨나가버렸다.
"사격으론 갑각형의 피부를 뚫기는 힘들 거야.. 코어웨폰이라도 다루지 않으면 힘들걸?"
< 코어 웨폰? >
사격이 통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리는 주인공군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1호기에도 있잖아. 어깨에 짊어진 그거."
1호기의 기본 탑재 무장은 아니지만 두 번째 출격이후로 주인공군이 계속 사용하고 있던 대검을 가리켰다.
라자루스나 카이나벨의 커스텀무장 같이 고출력의 무장은 아니지만 저 대검도 적합률이 어느 정도 되어야 쓸 수 있는 코어웨폰이다.
허벅지 안쪽에 수납된 단검도 일종의 코어웨폰이긴 하지만 길이가 짧으니 중형 차원수를 상대하기엔 나쁜 무기다.
< 이게 코어 웨폰이었구나.. >
- 위이이잉..!
1호기는 어깨의 무장 랙에 짊어졌던 대검을 꺼내 손에 쥐자 대검의 검신을 따라 푸른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너 매뉴얼 안 읽었니..?"
여태까지 쓰면서 저게 코어웨폰인지 몰랐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그냥 감으로만 휘두르고 있었던 건가.
< 그.. 그게.. >
"하아.. 돌아와서 이야기 하자. 일단은 그걸 써봐."
저번 A3장비 때는 매뉴얼을 너덜해지도록 읽길래 당연히 1호기의 매뉴얼도 읽은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돌아가면 시험공부 시키듯 읽게 시켜야지.
- 슈우우..! 파칵!
커다란 대검을 양 손에 쥔 1호기가 갑각형 차원수의 틈으로 파고들어 차원수의 다리와 몸통의 틈에 대검을 박아넣었다.
- 구우 우우우!!
갑피 사이에 대검이 박힌 차원수는 날뛰듯 앞발과 머리를 흔들어 1호기를 쳐내려는 듯 했다.
갑각형이 조금 날뛰는 것만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가고 주변 건물이 덜덜 떨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 슈우.. 캉!
1호기는 어깨의 분사구에서 빛을 흩뿌리며 대검의 손잡이를 쥔 채 발을 땅에서 차올려 갑각형의 등 위로 타고 올랐다.
"코어는 어디에 있을까? 잘 찾아봐."
건물의 옥상 위에서 1호기와 갑각형의 싸움을 지켜보며 남아있는 한 마리와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
1:1은 괜찮을지 몰라도 2:1이 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양쪽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 코어는.. >
- 구우욱.. 우우우..!!
날뛰는 갑각형의 등 위에서 대검을 깊게 찔러 넣은 1호기는 잠깐 움직임을 멈추다가 갑각형의 외피가 열린 틈을 포착했다.
< 여기다! >
드디어 갑각형의 코어를 찾은 듯 한 주인공군이 갑각형의 다리에 박힌 대검을 뽑아내 그 틈으로 박아 넣었다.
- 카가 가각... 파칵!
푸른빛이 어린 대검의 날이 갑각형의 등 쪽 외피를 파고들어 깊게 들어가자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갑각형의 움직임이 멈췄다.
- 짝짝
"잘했어. 짧은 시간 안에 잘 찾았네."
일반 무기로 정면에서 공격을 퍼부어도 쓰러뜨릴 수 없는 중형 차원수의 약점을 등 위에서 찾은 주인공군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 고마워. 남은 한 마리도 내가 상대해도 될까? >
칭찬을 받은 주인공군은 자신이 생긴 것인지 다른 한 마리도 상대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응. 기대하고 있을게 잘 해봐."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나서는 걸 막을 이유는 없다. 위험해지면 이 쪽에서 도와주면 그만이니까 지켜보도록 할까.
- 구우우우..!!
다른 차원수가 모두 사라진 것을 알게 되자 남아있는 갑각형 한마리가 울부짖으며 1호기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 슈우우우우..
그 순간.
1호기와 차원수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상공 200m 위에서 소속 불명기의 신호를 감지..! 아니. 소속 불명기가 아닙니다! 이 신호는.. >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 회선을 통해 들어왔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점점 작은 점에서 큰 형체로 변하며 지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 슈우우..!!
검은 형체는 자신의 몸 보다 큰 팔을 단 채 내려오고 있었다..
- 카앙!
거친 소리가 나며 검은 형체의 어깨 뒤에 달려있던 고정 핀이 떨어져나가며 거대한 팔에 긴 망치로 보이는 것을 거머쥐었다.
< 고유 식별코드를 확인! 식별코드는.. 필리스티아 베이스? 필리스티아 베이스의 차원기입니다! >
검은 기체는 자기의 몸체보다 큰 팔을 지닌 채 양 손에 거대한 망치를 들고 공중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 지직.. 직..
< 하아아아앗..!! >
주인공군과는 다른 낯선 소년의 기합소리가 타브하의 공용회선에 끼어들어왔다.
- 구우 우욱..!!
- 파카가 가각..!! 콰아아아아..!!
검은 기체의 손에 들린 망치가 갑각형 차원수의 등의 정중앙을 타격하자 차원수의 등이 망치를 중심으로 완전히 뭉개져버리며 두 덩어리로 나뉘어져 버렸다.
- 샤아아아아..
마지막 남은 차원수가 사라지자 공중에 작게 열려있던 게이트도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 탈칵 탁.
그 높은 공중에서 떨어진 검은 기체는 망치의 손잡이를 중심으로 곡예라도 보이듯 가속도를 지워내기라도 한 것처럼 안정적인 자세로 방금 자신이 쓰러뜨린 차원수의 시체 위에 올라탔다.
< 검은.. 1호기? >
주인공군의 목소리가 통신 회선 너머로 나즈막히 들려왔다.
차원수의 검붉은 피를 뒤집어 쓴 흑철색의 거칠고 러프한 이미지의 차원기.
1호기와 닮은 형상의 기체.. 주인공군이 검은 1호기라고 말한 것도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1호기가 아니다.
< 안녕 아하트. >
통신 회선이 안정된 듯 거친 노이즈가 사라지며 외국 억양이 섞인 젊은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왔구나.. 2호기의 파일럿.
아니, 히로인 강탈자. 미하일 필리스티아.
차원수의 시체 위에 선 검은 베레시트 2호기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