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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베레스웃사 (93/152)



〈 93화 〉베레스웃사

표면의 도장이 붉은 불꽃에 의해 흩날리는 재처럼 벗겨지고  뒤에 드러난 것은 붉은 형상의 2호기였다.


어두칙칙한 색감이 아닌 강렬한 붉은색이 1호기와 대조되어 더욱  붉음이 두드러져 보였다.



어째서.. 2호기에 하브릿 시스템이 탑재된 것이지? 하브릿 시스템은 1호기에만 탑재되어야  텐데..


슈우..!


 순간 2호기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 콰아앙..!

1호기의 뒤에 나타난 2호기가 1호기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 ..빨라! >

1호기는 날아가기 직전 자세를 고쳐 양 팔로 2호기의 발을 간신히 막은  팔 부분의 장갑이 움푹 패인것이 보였다.

< 뭐야 방금 움직임은..! 모니터에도 잡히지 않았어..! >

통신회선 너머로 부 지휘관 서예린의 당황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나조차 시선을 놓쳤을 정도의 빠른 움직임이라면 지휘관용 탐측 모듈에는 순간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 방금 전 속도는.. 측정된 2호기의 속도의.. 3배 이상..!! >

붉은데다가 3배의 속도라니.. 엄청 사기잖아..


- 콰가각.. 각!


붉은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는 2호기는 건물을 밟고 달리며 1호기를 몰아 세웠다.


< 네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움직이잖아! 싸워! 아하트! >


고속으로 움직이는 2호기는 1호기에게 주먹을 휘둘러 1호기를 강타했으나, 1호기는 겨우 막는 것이 고작인 듯 움직임이 점차 밀리는  보였다.


크읏..! >

방금 전 까지 2호기를 상대로 우위를 갖고 있던 1호기 였으나, 하브릿 시스템이 개방된 2호기를 상대하기엔 벅찬 것 같았다.

< 빈틈! >


- 콰아아..!

 팔을 올려 공격을 막고 있던 1호기를 향해, 2호기는 다리를 아래로 내질러 1호기를 걷어 차내었다.

- 콰각..쾅!


2호기의 걷어차기에 얻어맞은 1호기는 자세를 무너뜨리며 빈 도로를 등으로 긁어 미끄러져내리다가 겨우 한 곳에서 멈추었다.


< 하아..하.. 크윽..! >

2호기의 안에서 헐떡이는 목소리와 함께 2호기의 자세가 점점 불안정해졌다. 양 주먹을 치켜들고 있지만, 투사라기 보다는 맹수에 가까운 야성적인 움직임..


저래서야 하브릿을 다룬다기 보다 파일럿이 되려 시스템에 이끌려 휘둘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싸움꾼으로는 최강이겠지만 파일럿으론 실격이다.




< 끝이다..! 아하트! >

바닥에 멈춘 1호기를 향해 2호기는 자세를 낮추고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짐승처럼 달려갔다.


"안 돼. 2호기."


- 슈우우우... 깡!


1호기에 가까이 달려들고 있던 2호기의 앞에 백색의 말뚝이 내려 꽂혀졌다.



끝은 원뿔의 모양을 가졌지만, 중간 손잡이부터 점점 원뿔의 모양을 잃듯 손잡이를 나선으로 감싼 커버가 달린 창.


2호기를 막기 위해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창을 꺼내어 던졌다.


< 다음 상대는.. 너냐! >


1호기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억지로 멈추게 한 탓인지 2호기는 나를 타겟으로 삼은  제 자리에서 뛰어올라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 쿠우우..!


방관하기만 하는 어른 주제에! >


2호기는 땅을 뛰쳐오르며 양 어깨의 분사구에서 붉은빛을 흩날렸다.

< 잡았다..! >

2호기는 어느새 사도가 있던 건물의 옥상 위 까지 도약해 주먹을 휘둘렀으나..

- 펄럭

2호기의  끝에 걸린 것은 회색의 거친 천.. 테나흐의 잎뿐이었다.

"이 쪽이야. 미하일."

< 어느새 등 뒤에..! >

2호기는 공중에서 몸을 꺾어 돌려 발을 돌려 걷어찼으나..



- 꽈아악..


그 발은 사도의 몸에 닿지 못한 채 사도의 손아귀에 잡혀 붙들렸다.



< 발이 잡혀도 아직 손이 있어! >


- 휘이익..!

2호기는 사도에 잡힌 발을 구심점으로 삼아 몸을 돌려 사도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으나..



- 콰악!


사도의 반대 팔로 그 주먹마저 붙잡혔다.



- 카각.. 깍.. 까드득..!

< 젠장..! 이거 놔!! >


한쪽 팔과 발을 붙들린 2호기는 사도의 손 안에서 꼴사납게 바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조금 머리를 식히렴."


사도의 손에 들린 2호기는.



- 슈우우우우우..!!!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던져져 버렸다!



- 콰득.. 각.. 기기긱.. 킥.. 끼기긱... 쿵!

아스팔트 바닥을 얼굴부터 착지한 2호기는 거칠게 밀려가더니 결국 1호기가 쓰러진 옆에 나란히 쓰러졌다.



움직임을 멈춘 2호기는 하브릿 시스템이 정지한  기체의 타오르는 듯 한 밝음이 점차 평범한 붉은 색으로 돌아왔다.


"이제 진정이  되었니 미하일?"

하브릿 시스템이 꺼진 걸 보면 더 이상 덤벼 들 생각은 없겠지..

"미하일."

그 아이가 통신을 무시할 성격은 아닌데.

"..미하일 필리스티아?"

< 아르베넷.. 2호기 안의 파일럿은.. 기체 안에서 기절했습니다. >


"아.. 이런.. "

2호기를 너무 세게 집어던져버렸나...




---


1호기와 2호기의 격전이 멈추자 현장 수습팀이 도착했다.




- 푸슈우..

1호기의 안에서 방금 전의 격투로 제법 타격을 입은 듯 한 주인공군이 비틀거리며 내렸다.


겉보기에 상처는 없으니.. 아마 어딘가 다친 것 같진 않은  같았다. 다행이네.



"수고했어 주혁아."

1호기와 아르베넷까지 두 대의 트레일러 트럭만 준비된 탓에 상대적으로 멀쩡한 아르베넷은 기지까지 걸어서 직접 귀환하기로 결정된 덕분에 기체에서 내리지 않고 주인공군과 통신을 이었다.



"어..응."


1호기 안에서 내린 주인공군은 조금 피곤한  아래에서 사도를 올려보며 나의 통신에 응답했다.

"왜 그런 싸구려 도발에 넘어간 거야?"


어떻게 보면 미하일의 도발은 정말 유치한 수준이었는데,  도발에 맞서 싸웠다는 게 조금 아리송했다.

내가 주인공군을 두 달간 옆에서 지켜본 걸론 나름 신중하게 판단하고 싸우는 모습이 조금 생겼던 것 같았는데..




"널 보고 약하다고 했으니까.."

"응?"

"널 깔보는 것 같아서 용서할 수 없었어."

뭐야.. 그런 이유였나. 역시 사제관계에서 스승이 모욕을 받은 건 참을 수 없었나보네.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협이 있구나 주인공군은..


"이기진 못했지만.."

"중간까진 이겼잖아? 아마 하브릿 시스템이 없었으면 네가 이겼을거야."


맨몸도 아닌 코어웨폰인 골야트의 팔을 장비한 2호기를 상대로 한번 이겼다면 그게 이긴거지.


예상하지 못한 하브릿 시스템 때문에 1호기가 몰렸을 뿐이다.

"하브릿 시스템..?"


아차.. 이건 1호기의 공식 매뉴얼에도 없는 내용인데.. 너무 일찍 알려줬나.

"비밀이야."

"뭐..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비밀이라고 애둘러 말하자 주인공군은 그거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날 위해 싸워준건 조금 기뻤어."

처음으로 누구에게 지켜지기 위한 대상이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조금 기분은 좋았다.


마치 자식이 부모님을 지켜주겠다는 듯한... 그런 감정인가? 뭔가 조금 다른  같았지만 아무튼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는  한 느낌이 들었다.

"그..그래?"


정작 나의 명예를 지켜준 주인공군은 멋쩍게 웃고 있을 뿐이었지만.

---



1호기와 2호기는 각각의 격납고로 운송되었다.

비어있던 세 번째 격납고가 2호기가 들어오게 되면서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이제 타브하에 정식으로 2호기가 합류되는구나.. 조만간 연합 공격기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미하일은 생각보다 충격을 크게 받았던 건지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기절해버려서 곧바로 병동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하는데.. 살살 던진다는 게 너무 세게 집어던졌던  같다. 이따가 병문안이라도 가야지..



파일럿 슈트에서 학교도 끝났으니 교복이 아닌 사복으로 갈아입은  2호기가 있는 격납고까지 걸어왔다.


격납고의 앞은 거대한 검은 삼각형 모양의 스텔스 수송기가 놓여있었다.

2호기만 옮긴 것이 아니라 각종 부속물자도 보내진 듯 2호기가 있는 격납고의 앞은 여러 장비로 복잡했다.




"..운송 중에 멋대로 뛰쳐나간 겁니다. 절대로 우리가 보내준게 아닙니다."


수송기의 부기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타브하의 사령관님 옆에서 아까 전 도심에 단독 강하한 2호기에 대해 해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건은 2호기 파일럿의 독단 행동인 것으로.."


"후우.. 감사합니다."


사령관님은  사정을 이해한다는  말하며 수송기의 부기장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수송기의 조종사들에게 잘못이 없음을 인정해주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사령관님은 1호기와 2호기의 싸움을 붙인 장본인이기도 했으니 할 말이 없겠지.. 적당한 윈-윈의 대처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부기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터덜터덜 수송기를 향해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사령관님."

"..묘월양."


이야기가 끝난 듯 한 사령관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곤 그의 옆에 서서 격납고 앞의 넓은 활주로를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2호기.. 검정인 줄 알았는데 빨강이네요?"

격납고 안으로 이송되고 있는 표면에 긁힘 자국이 가득한 2호기는 처음 수송기에서 뛰쳐 내렸을 때의 검정색과는 다른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2호기는 기체 표면에 테나흐의 잎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테나흐의 잎? 그건 천막이 아니었나요?"

검정 도장이 테나흐의 잎? 테나흐의 잎은 사도가 두르고 있던 천막같은게 아니었나..



"본래 테나흐의 잎은 특수 미채 도료입니다. 아르베넷에 도장을 허락해주시지 않으셔서.. 그걸 바른 장비를 드린 것뿐입니다."


"그렇군요.."

베타니아에 들어왔을 때 사도의 표면에 페인팅이나 마킹을 절대 허락해주지 않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 사실은 사도의 자동 복구 기능으로 인해 도장이나 마킹을 줘도 지워져버릴테니까 헛수고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거절한 거였지만.


"2호기 표면에 칠해져있던 테나흐의  도료가 기체 내부에 알 수 없는 과열로 벗겨져 나가 색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브릿 시스템."


알 수없는 과열 현상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사령관에게 본론을 찔렀다.




"'아론 하브릿'이 2호기에도 탑재되어있던거죠?"


"..."


곧바로 본론을 찌르자 사령관님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 이미 현장에서 내가 직접 봤으니 발뺌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하브릿 시스템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미완성이라뇨?"


"..아내와 박사가 같이 개발하고 있었던 시스템입니다.."


사령관님의 부인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하브릿 시스템이 2호기에 탑재되어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그 개발에 사령관님의 부인이 개입하고 있었을 줄이야..


"..죄송해요."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갑자기 유도해서 꺼내는 듯 한 행동이 무례하다고 생각되어 바로 사과를 드렸다.


"아닙니다. 일부러 의도하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브릿은 그 뒤로 개발이 중단되었습니다."

"개발이 중단 되었다기엔.. 엄청  움직이지 않았나요?"


"뼈대만 만들어진 시스템을  베이스에서 얼추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체에 부하가 너무 걸렸죠."


"..그렇습니다."



아까 전 싸움에서 2호기의 움직임은 엄청나게 빨랐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모습도 여러 번 보여주었다.


팔의 관절이 기본 가동범위를 벗어나는 듯한.. 너무나도 거친 움직임이었다.


"역시.. 1호기에도 들어있는건가요?"


"1호기에는  베이스의 개량판이 아닌.. 아내가 만들던  시스템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군요.. 지금 주혁이가 다룰 수는 없겠지만요."

"네.. 그렇습니다."

하브릿 시스템.. '아론 하브릿'은 적합률이 70을 넘어가는 파일럿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아직 적합률이 언더 40에 가까운 주인공군은 다룰 수 없겠지.. 후반에나 가서야 개방되는 기능이니까..



"그걸 억지로 가동시킨 2호기의 파일럿은..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한 적합률과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가진 파일럿이 바로 미하일 필리스티아다.

"하지만 호전적인 성격이.. 조금 걸리는군요."

"귀엽지 않나요?"


"예?"

귀엽지 않냐는 나의 말에 사령관은 의아한 듯 대화가 잠깐 끊겼다.

"그 나이대의 아이 같잖아요. 지기 싫어하고.. 분하면 바로 날뛰고. 애들은 원래 그래요."

"..이런 말을 해도 되는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묘월양도 비슷한 나이가 아닙니까?"


"그건 그러네요.. 후훗."

아이를 보고 아이답다고 말하는 아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아이는 지금 어느 병동에 있나요?"

엄청 분해하고 있을 그 아이를 위로해주러 가야지.

---

사령관님과의 대화가 끝난 뒤 지휘부에서 나온 서예린과 류하연, 그리고 주인공군과 함께 미하일의 병문안을 가기로 정했다.

"조금 마찰이 있긴 했지만. 앞으로 우리와 함께 일할 한 식구니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첫 만남부터 도그 파이트에 가까운 싸움을 건 상대지만 어쩌겠나. 앞으로 정말 끝까지 함께  한 식구인데..




"미하일.. 외국인이야?"

"네. 조금 추운 땅에서 온 파일럿이에요. 나이는 우리와 같은 열일곱."

"..통신 들어보니 불량할  같아."

류하연은 조금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히로인 강탈자의 이명이 이런 식으로도 영향을 주는건가..




"..난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데."

주인공군은 조금 삐딱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싸운 당사자다보니 선입견이 좀 생겼겠지.



"...그래도 너 한테 사과했으니. 아까 그건 잊을 거야.  지내봐야지.."


조금은 남자다워졌구나. 사나이답게 털어낼 줄 알다니. 솔직히 조금 감격했다.



"주혁아.."

"묘월씨.. 또 눈이 부모님같아.."


"어딜 봐서 어머니 같다는거에요.."


이러면 내가 주인공군을 치마폭에 싸고 다니는  처럼 들리는데.. 난 그 정도의 극성맘은 아니다!

시시한 잡답을 나누며 기지  병원 시설에 도착한 후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병실 앞에 도착했다.

파일럿 전용 독실.. 내가 저번에 검사 때 썼던 병동이네.



- 똑똑

"미하일군. 안에 있지?"



- ...


노크를 했으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아직도 기절한 건가?



"들어갈게?"

미리 말을 하고, 조금 여유 시간을  뒤.



- 드르륵

병실 문을 열었다.

- 휘이이..

병실  쪽에 놓여진 침대 위에는 붉은 파일럿 슈트가 아무렇게나 어질러져있었다.

빈 침대를 향해 열려있는 창문은 바람을 들여보내며 침대 위의 하얀 이불을 펄럭일 뿐이었다.


- 위이잉..


- 삑

나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전화를 꺼내 수신 버튼을 눌렀다.



'묘월양..'

"네 사령관님.."

'미하일군이..'


"...도망쳤네요."


이불 위에 얹혀진 종이 조각.

그 위엔 '찾지마!' 라고 외국어로 써 갈긴 종이가 바람을 타고 바닥을 굴렀다.



.. 주인공군이 가출하는 이벤트를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대신 미하일이 가출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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