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드림랜드
"나는 에메트. 곧 완전한 자 이니라. 너희들에게는 사도라 불리고 있지."
"그럴 수가... 하늘 너머에 성자님이 두 분씩이나?"
"아니. 나는 저 자리에 있는 행동하지 않는 위선자와 같은 몸을 공유하고 있다."
'에메트'는 나를 향해 손을 뻗어 가리켰다.
"성자님이 둘...? 아니 하나...?"
아틀락 나챠는 에메트라 주장한 검은 머리의 소녀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 너희들의 말로 옮기면 성자라고 할 수 있겠지. 너희들의 곁을 선택한 나누어진 첫 번째. 그리고 잠든 두번째와 같은 자리에 서있는 사도다."
첫 번째? 잠든 두 번째...?
"너 사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나의 감정이자 곧 나의 일부라면 어째서 내가 모르고 있는 사도에 대한 정보를 에메트가 알고 있는 것이지?
"...? 어째서 네가 모르고 있는 것이지?"
나의 질문에 에메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검지를 자기 턱 아래에 괴더니 고개를 조금 꺾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된 건가."
그리고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검지에 올린 손을 내렸다.
"뭘 혼자서 수긍하고 있는 거야... 너가 알고 있다면 알려줘!"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보도록 하여라. 분명 너의 기억 속에도 있을 것이다."
에메트는 턱에 대고 있던 검지를 자기의 관자놀이 위로 툭툭 두들겼다.
"거미여. 너희의 잠든 두 번째 성자 대신 살아있는 나를 섬겨라."
에메트는 나를 돌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한 번 아틀락 나챠에게 시선을 두었다.
"아무리 당신이 성자님이라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아래에 잠들어있는, 두 번째가 지켜낸 꿈 속 아래로 '가라앉은 도시' 때문에 그런 것이냐?"
"...그렇습니다."
'가라앉은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틀락 나챠는 몸을 조금 움찔 떨었다.
드림랜드 아래에 가라앉아있는 그 도시가... 두 번째 사도와 관여되어 있다고?
"그런 가라앉은 과거의 도시 때문에 살아있는 나를 섬기지 않겠다는 거냐."
"..."
아틀락 나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에메트의 눈치를 살폈다.
"너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다."
에메트는 아틀락 나챠의 선택을 인정한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도시를 없애면 되겠구나. 그리하면 찬양할 대상이 나 밖에 남지 않겠지."
"그럴 수가...!"
간단히 도시를 없애겠다는 에메트의 말에 아틀락 나챠는 곧바로 에메트의 발 아래로 달려가 그녀의 다리를 붙들었다.
"제...제발 부탁드립니다! 저...저는 어떻게 하셔도 괜찮지만 부디 이 아래에 잠든 도시 만큼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았기 때문인지 아틀락 나챠는 대적하려들지도 않고 비굴하게 그녀에게 자비를 부탁할 뿐이었다.
"서...성자님이 원하시는 대로 버...벗겠습니다. 모두 내려놓고 빌면... 되겠습니까...?"
"해봐라. 지켜봐주도록 하마."
아틀락 나챠는 떨리는 손으로 메이드복의 에이프런을 풀어 내리고 있었다.
"그만둬 나챠군... 아마 저 녀석은 정말 네가 전라로 빌어도 도시를 부술거야..."
정말로 옷을 벗어 내리려는 아틀락 나챠의 허리 뒤로 얹어진 손을 붙잡아 탈의를 막아주고 에메트를 노려보았다.
"역시 '나'. 잘 알고 있군. 부탁은 깨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에메트는 그 동안 웃지 않던 눈을 올려 웃으며 진심으로 즐겁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라로 꼴사납게 비는 거미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이대로 도시를 부수러 가겠다."
"멈춰...!"
우리를 떠나 사무실을 나서려는 에메트의 앞을 팔을 뻗어 막았다.
"무슨 짓이지? 어느 쪽의 편도 서지 못하는 너를 위해 한 쪽 길을 골라주려던 참이다."
"어느 쪽 편도 들어줄 수 없지만... 만약 들더라도 내가 직접 선택할거야!"
"성자님..."
바닥에 벗어져 떨어진 아틀락 나챠의 에이프런을 쥐어주고 에메트를 노려보았다.
"나챠군. 나와 너의 성체를 이 곳으로 불러와 줘. 저 녀석을 함께 막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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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성자님!"
같이 에메트를 막아보자는 이야기를 꺼내자 아틀락 나챠는 한 팔을 위로 들어올렸다.
- 우드득.. 쾅!
잠시 후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건물의 윗부분이 사라지며 하늘 위에서 두 대의 기체가 내려왔다.
하나는 취록색의 아틀락 나챠.
다른 하나는 백색의 아르베넷.
"이대로 물러나주십시오. 또 다른 성자님. 드림랜드를 빠져나갈 문은 열어드리겠습니다..."
제 자리에서 높게 뛰어 성체의 손 위에 올라탄 아틀락 나챠는 에메트를 향해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이상한 능력을 다루는 너라도. 맨 몸으로는 차원기 두 대를 상대로 이길 순 없어."
나 역시 아르베넷의 손 위에 올라탄 채 에메트를 향해 경고를 보냈다.
"아하하하하!!! 맨몸? 내가 말이냐?"
우리의 경고를 들은 에메트는 그 자리에서 크게 폭소하며 웃었다.
"이쪽으로 오너라 아르베넷. 나의 대행자여."
에메트는 손을 뻗어 그림자를 보내 아르베넷의 팔을 붙잡았다.
- 구우우우...!
내가 올라탄 아르베넷의 몸 안에서 낮게 우는 듯 한 소리가 나며 점점 에메트가 있는 쪽으로 끌려 움직이며 건물을 부수고 있었다.
"꺄악!"
갑작스럽게 사도가 이끌려가는 바람에 사도의 손 위에 있던 나는 그대로 굴러 떨어져 아직 남아있는 사무실의 바닥 위로 굴렀다.
- 우우우...!
"아르베넷..."
떨어진 나를 향해 손을 뻗던 아르베넷은 에메트가 뻗은 그림자에 완전히 삼켜져버렸다.
- 슈우우...!
아르베넷을 삼킨 거대한 그림자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 사아아...
사라진 그림자 안에서 드러난 아르베넷은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백색의 장갑은 전부 검게 빛나는 색상으로.
거대했던 팔은 모든 것을 쥐려는 듯 더욱 거대해졌으며 역관절이던 다리는 일자로 길게 뻗어 내려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빛나던 푸른 두 눈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채 거대하고 불길한 뿔 두개가 앞으로 솟아 나와 있었다.
"아르베넷...?"
더 이상 토끼라 불리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 불길한 흑색의 거인은 나의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 기이잉...! 파샤앗!
아르베넷의 머리에서 붉은 광선이 쏘아지는 것을 취록의 아틀락 나챠는 서브암을 들어 올려 막았지만 서브암 중 두개를 절단해버렸다.
- 슈우우...
"모습을 변화 시켜도 절반의 힘 정도밖에 낼 수 없는 건가..."
검게 변한 아르베넷의 위에 올라탄 에메트가 나와 아르베넷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 뭣...! >
갑작스러운 공격에 팔을 두개나 잃어버린 아틀락 나챠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아틀락 나챠를 죽일 셈이야?!"
만약 방금 공격이 서브암이 아닌 콕핏에 정면으로 명중했다면 아틀락 나챠는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죽었을 것이다.
"타브하와 교단 사이에서 고민하는 너를 위해 손쉬운 해답을 주려는 것이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 아르베넷을 돌려줘...!"
오만하게 위에서 나를 내려 보는 에메트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지금 내가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허튼 저항이군."
아르베넷을 빼앗았으면서 그 조종석에 앉지 않고 어깨 위에 올라타 아르베넷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는 아메트는 나를 보고 비웃었다.
검은 아르베넷은 다음 일격을 준비하려는 듯 거대해진 손을 뻗어 취록색 성체의 서브암을 쥐려고 다가갔다...
"돌아와! 아르베넷!"
- 우뚝!
아틀락 나챠를 향해 다가가는 아르베넷을 향해 소리치자 검게 변한 아르베넷은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
"...역시 절반은 성가의 소녀가 아닌 너에게 남아있었군."
에메트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대신 더럽혀주겠다는데 그것마저 거부하려 들 줄이야."
- 슈우우...
나의 발아래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너는 내가 모든 일을 해결해 줄 동안 가만히 있으면 되거늘..."
"내가 네 마음대로 될 줄 알아!"
- 사아아...
나의 다리를 죄여가는 그림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크게 휘두르자 그림자는 조금 흩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저 에메트의 그림자는 나와 아르베넷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림자를 거부하는 건가... 이 것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 슈우우... 쾅!
에메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르베넷의 안에서 무언가가 나와서 나의 앞에 떨어졌다.
"이건... 관?!"
나의 앞에는 흑요석처럼 검게 빛나는 관이... 뚜껑이 열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잠시 잠들어있거라. '나' 여."
거대해진 그림자는 뒤에서 나의 사지를 억지로 결박해 관 안으로 나를 서서히 밀어 넣었다.
"이거 놔!"
발버둥 치면 칠수록 그림자는 더욱 억세게 죄여가며 나를 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잠든 뒤 꿈에서 깨어나면 너는 네가 원하던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거다. 나의 선택에 의해서 말이지."
- 끼이이익...
나를 완전히 눕힌 그림자는 관의 뚜껑을 닫으려는 듯 점점 관이 나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네가 조심스러워하는 그 소년조차 말이야."
- 콰앙!
나는 힘을 쏟아 관의 뚜껑을 걷어 차버렸다.
"주인공군에게 손대지마! 가만히 안 둘...! 읍!으읍!"
외치려는 나의 입을 그림자가 재갈을 채우듯 막으며 혼신을 다해 나를 관 안으로 눕혔다.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나의 몸은 점점 더 관 안으로 붙들려 들어갔다.
- 쿵...
마지막으로 관의 뚜껑이 닫히자...
나는 꿈속에서도 더욱 깊은 꿈 안으로 떨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