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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드림랜드 (105/152)



〈 105화 〉드림랜드

1호기를 엘과 함께 올라타고 조심스럽게 건물을 향해 다가갔다.


아틀락 나챠는 드림랜드와 원래 세계를 잇는 문을 열 때 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무기는 마지막 전투  장비했던 대검이 유일한 무장이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가진 채 멀어보였던 건물에 점점 가까워지자 건물 아래에 있는 검은 기체가 눈에 띄었다.




"저건... 아르베넷?"

건물 아래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검은 기체는 내가 알고 있던 묘월이의 아르베넷과 닮아 있었다.



"마스터의... 하지만 모습이 달라요."


아르베넷의 머리 위에는 들짐승의 뿔처럼 거대한 뿔이 머리 앞을 향해 뻗어있었고, 팔은 더욱 거대해져서 예전에 봤던 2호기의 무장처럼 땅에 끌릴 듯 거대했다.

"...엄청 강해 보이는데."


가장 이질적이었던 것은 눈앞의 검은 아르베넷은 차원기가 아닌 살아있는 생물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과연 저 아르베넷을 상대로 아틀락 나챠가 부탁한 시간 끌기를 할 수 있을까...


"저기에! 마스터가 있어요!"

검은 아르베넷을 견제하던 나와는 다르게 조종석 시트 뒤에 서서 모니터를 통해 밖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엘은  지점을 가리켰다.



엘이 가리킨 곳에는 묘월이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에서 자그마한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찻잔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묘월이의 머리는 평소와 같은 은발이 아니라 검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  적 없었던 안경까지 끼고 있었다.



"헉!"


방금 분명히 모니터 너머로 묘월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우연이겠지?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검은 머리의 묘월이는  쪽을 똑바로 응시한 채 입술을 작게 움직였다.

'안녕.'

저건 분명 묘월이를 처음 봤던 강당에서 들었던 인사...

"사념이 아니라 본인이 아닐까?"

머리만 검고 차려입은 옷만 다를 뿐 내가 알던 묘월이랑 검은 머리의 묘월이는 전혀 다를  없어보였다.



"...아니에요. 마스터는 저렇게 웃지 않아요."


하지만 나의 옆에 서있던 엘은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아요."

엘의 말을 듣고 카메라를 확대해 검은 머리의 묘월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정말 엘의 말대로 검은 머리의 묘월이는 입은 미소 짓고 있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붉은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둘이서만 험담이라니.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건가? >

통신회선 너머로 묘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통신 회선을  적이 없는데... 어떻게!"

모든 통신을 닫고 있었는데 검은 머리의 묘월이는 아르베넷에 타지도 않은  나와 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 내려 오거라. 이야기를 나누자. >

검은 머리의 묘월이는 자기 자리 앞에 놓여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내려올 것을 권유했다.

"함정이 아닐까?"


"수상하게 느껴지긴 해요..."

엘과 나는 서로를 돌아보고 화면에 비치는 검은 머리의 묘월이를 의심했다.

그렇게 강한 아틀락 나챠를 만신창이로 만든 실력자인데 뭐가 아쉬워서 나에게 이야기를 권유한 걸까.

아니면 거미에게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싸워줄 수도 있다만. >



- 쿠구우...


검은 묘월이의 말과 함께 검은 아르베넷이 서서히 몸을 일으켜  다리로 땅 위에 올라섰다.

...어느 쪽을 고르겠나? >


"...내려갈게."

나는 결국 검은 묘월이의 대화에 응했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면 교섭의 여지는 있을지 모른다. 아틀락 나챠가 부탁한 시간 끌기를 돕기 위해서라도 전투를 미루는  좋겠지.




---

검은 아르베넷과 조금 떨어져 마주보는 자리에 1호기를 세운  엘과 함께 조종석에서 내려왔다.


"나의 부름에 응해주었구나. 소년이여."


우리를 부른 검은 묘월이는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나를 향해 두 팔을 뻗어 펼쳐보였다.


"묘월아...?"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는 묘월이의 모습을 보고 의문을 담은 채 이름을 불렀다.




"곧바로 이름을 속삭여주다니. 부끄럽구나."

평소라면 보여주지 않았을 반응. 다른 것은 머리색뿐만이 아니었다.


늘 입고 다니던 교복이 아닌 회사원 같은 검은 양복에 안경까지 쓴게 평소에도 어른인채하던 묘월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워보였다.




"역시 당신은 마스터...? 아니야. 전혀 다른 사람인데 나는 어째서... 같다고 생각을..."

검은 묘월이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엘은 혼란스러워 하는  했다.



"섭섭하구나 □□."


검은 묘월이는 엘을 바라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내 이름! 그 이름을 어떻게 마스터가...!"

"뭐? 무슨 이야기를 한거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어."


엘은 그 단어가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쩔  없다. 너 처럼 평범한 인간인 소년에게 이 신성한 말은 들리지 않을 테니."


"인간... 너는 인간이 아닌 거야?"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검은 묘월이에게 조심스럽게 그 심기를 거슬리지 않도록 물어보았다.

"나는 알레프이자 타브.  에메트다."

"알... 타브하?"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의미를 모를 단어가  개나 지나가버렸다.



"...'사도'. 지금의 너에겐 이 정도로만 밝혀두지."

검은 묘월이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도... 그런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묘월이는 어디에 있어?"

검은 묘월이가 아틀락 나챠가 말했던 것처럼 본인이 아닌 사념체라면 진짜 묘월이의 행방을 찾아야했다.



"진리에 범접할 순간 앞에서 신성이 아닌 인간을 찾기를 선택했구나... 저번과도 똑같이 말이지."


검은 묘월이는 나의 질문에 조금 아쉬워하는 듯 했다.


"저번?"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알 생각이 없었던 쪽인가... 네가 알고 있는 그녀. 나의 본체는 저 관 속에 잠들어있다."

검은 묘월이가 손을 뻗어 가리킨 곳에는 검고 은은하게 빛나는 관이 놓여있었다.




"저 안에... 묘월이가 잠들어있다고?"

"억지로 쉬게 한 것뿐이다. 누군가 억지로 눕히지 않으면  본체는 정말 죽을  까지 일만 할지 모른다."

갈라져나온 사념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으나 검은 묘월이는  안에 잠든 것이 자신의 본체라고 이야기했다.

"묘월이를 해치려는 게 아니었어?"

"내가 나의 몸을 해할 리가 없지 않는가?"

검은 묘월이는 나의 걱정이 쓸모없는 것이라는  태연하게 대답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내재된 욕망을 나타내는 대리자. 꿈이라는 공간을 빌어 헌신했을 뿐이다."

"욕망이라고?"


욕망이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사악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는데 내 앞에 있는 검은 묘월이는 어른스러워보이기만 할  아틀락 나챠의 이야기처럼 사악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 네가 나의 엘에게 품은 욕망같이 말이다."


- 홀짝

검은 묘월이는 찻잔에 담긴 차를 한잔 마시며 나의 옆에 서있는 엘의 옷을 위에서부터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 후 엘을 훑어보는 것을 끝낸 검은 묘월이는 엘에게 저런 복장을 입힌 게 나의 욕망에 충실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시선을 보냈다.



"나...나는 그런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뭐..뭐가 아니에요! 당신이 이런 모습을 바란게 아니었나요!"

나의 항변과는 다르게 엘은 이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에게 따져들기 시작했다...


"신성한 의복인 성가복을 저렇게 짧게 고칠 줄이야... 십대 소년의 성욕은 무섭기 그지없구나."

검은 묘월이는 나와 엘의 이야기를 흘려듣곤 찻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들었죠! 검은 마스터가 보기에도 이 옷은 정상이 아니에요!"

엘은 방금 전까지 검은 묘월이를 의심하던 태도는 어디로 간 건지 더 기세등등하게 따졌다.




"그런 옷이 취향이라면 나도 입어주마."

"네?"

검은 묘월이의 말을 들은 엘은 의문을 담았다.


- 슈우욱!


검은 묘월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양복이 검게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엘이 입은 짧은 민소매 원피스와 비슷하지만 치맛단이  짧아 미니스커트라 불릴법한 검은 원피스가 돼 버렸다.

"매... 맨다리."

검은 원피스 밑으로 곧게 쭉 뻗은 새하얀 허벅지를 보자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되었다.



"보...보면 안돼요!"


엘은 작은 키로 폴짝 폴짝 내 앞에 뛰면서 손바닥으로 나의 눈을 가리려고 했다.

하지만 눈이 떨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묘월이가 저렇게 짧은 옷을... 조금만 움직이면 원피스 안이 보일 듯한...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꿈속에서 까지 세세하게 차려입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검은 묘월이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말해버렸다.



"뭐...? 안에 아무것도? 그...그러면..."


"절대 보지마세요!!! 당신도 마스터의 몸을 가지고 그런 음란한 짓은 그만두세요!"



- 꾸우욱...

엘은 나의 시야를 가리는데 실패하자 나의 몸을 억지로 밀어 거리를 때어내려는 듯 손바닥으로 밀기 시작했다.

---

"옷 따위야 아무러면 어떠겠느냐. 언제까지 여자를 기다리게 할 셈이냐. 냉큼 자리에 와서 앉거라."


나와 엘의 실랑이를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곤 검은 묘월이는 자신의 넓은 소파에 먼저 앉았다.


"그...그래."

저 짧은 옷에 시선이 잠깐 팔렸지만 아직 아틀락 나챠의 준비도 끝난 것 같지 않으니 검은 묘월이의 기분을 맞춰주며 시간을 벌어야했다.


묘월이가 앉은 소파와 작은 테이블 앞에는 나무 의자가 한개 놓여있었다. 자리라면 여기를 말하는 거겠지...

"그 쪽이 아니다."

검은 묘월이는 나무 의자에 앉으려던 나를 지적했다.

"여기가 아니면 바닥밖에 없는데..."


설마 바닥에 무릎 꿇고 앉은 채로 자기와 이야기를 하자는  아니겠지...



"이 쪽이 비어있지 않느냐."


검은 묘월이가 가리킨 곳은 자신이 앉은 소파의 오른쪽 옆. 겨우 비집어 앉을만한 공간이었다.




"같이 앉자고...?"

평소에도 거리감이 없이 다가오는 묘월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가까운데...


"남도 아닌 우리 사이에 왜 거리를 두려하느냐."


- 쉬익!

검은 묘월이의 아래에서 그림자가 뻗어 나와 나의 팔과 허리를 붙잡아 당겼다.

- 툭

그림자는 나를 소파에 앉힌 후 다시 묘월이의 발 아래로 사라졌다.

"너는 나의 우편에. 이 정도 거리감을 갖고 싶구나."

"어...엄청 가까운데..."


검은 묘월이와 나는 허벅지가 옆으로 맞닿아서 서로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붙어 앉게 되었다.



"우편을 내어준 것으론 불만이더냐? 예전처럼 무릎위에 올라타면 되겠나? 1호기에 처음 탔을 때처럼 말이다."

검은 묘월이는 곧바로 나의 다리 위에 올라탈 것처럼 나의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아... 아니야! 이 정도면 괜찮아!"


내버려두면 정말 나의 무릎 위에 올라탈  같았기 때문에 급하게 손을 들어 막았지만 나와 묘월이의 추억을 알고 있었다는 게 조금 걸렸다.

정말 닮은 것뿐만이 아닐지도...


"단순히 닮은 게 아니다.  역시 그녀다. 모든 기억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지."

검은 묘월이는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것처럼 입이 열리기도 전에 대답을 먼저 해주었다.

"생각을 읽은 거야...?"


"그런 능력은 없다. 네 표정은 언제나 읽기 쉬운 것뿐이지."


검은 묘월이는 살짝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1호기에 탄 너를 구해준 것도. 인형사에게 무모하게 달려들던 날 꾸짖은 것도. 그런 너를 용서해준 것도 전부 나다."

"정말로... 묘월이야?"

검은 묘월이는 묘월이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기억을 서서히 읊었다.


"훈련시설의 샤워실에서 나신을 보인 것도. 침대에서 같이  것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마스터랑 그런 짓을..."


건너편의 빈 나무의자에 앉은 엘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사고였을 뿐이야!"

마지막 두개는 내 의지로 그런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고와 우연이니까...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욕망일 뿐. 이 꿈에서 잠시나마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욕망이 해소된다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겠지."

검은 묘월이는 자신이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했다.




"욕망이 해소되다니? 스트레스 같은 거야?"

"스트레스...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것은 원죄와도 같이 무거운 것이니 말이다."

검은 묘월이는 스트레스라는 말에 적절한 단어라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녀는 신성하며 전능하지만 홀로 완전하지 못하다. 네가 이 세상을 구하겠다는 것 보다 더 큰 고민을 혼자 품고 있지."


세상을 구한다는 말에 나는 잠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묘월이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나만의 작은 맹세를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네가 1호기에  것도. 파일럿이 되려는 이유도. 전부 10년 전 트라우마의 연장선이지 않는가?"

"...맞아."


"불쌍한 아이..."


검은 묘월이는 왼손을 들어 위로해주듯 나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의 고민보다도  큰 고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실수를 저지를까봐 두려워하고 있지."


"두렵다니?"

모든 일에 자신 있게 나서던 묘월이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자기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어..."

"언제나 미소 아래에 숨기고 있었으니 눈치 채지 못할법도 하구나... 언제나 그림자 속에 숨어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 묘월이의 발아래에서 꿈틀이는 검은 그림자와 원피스가 그 욕망을 색으로 나타내는 것처럼 검어보였다.


"묘월이가 숨고 싶다니..."


내가 그동안 보고 있던 묘월이의 모습 아래에 이렇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숨고 싶다는 욕망은 과거의 것. 지금은 관 아래에 숨어버린 자기를 대신해서 무대 위에 나서 줄 사람을 원하고 있다."

검은 묘월이는 이전까지의 욕망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너를 원하고 있다."

검은 묘월이는 관 아래에 잠든 묘월이를 대신한 대변자로써 이야기했다.



"나를... 원한다고?"

정말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것 같은 묘월이가... 자신을 대신해줄 사람으로 나를 원하고 있었다고?




"그래. 나는 너를 원하고 있다."


묘월이는.


나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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