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드림랜드
묘월이는 내가 엘과 함께 1호기에 탑승할 때 까지 기다려주었다.
1호기에 탑승한 뒤 엘을 앉힐 자리가 없어서 무릎 위에 앉히게 되었다.
아까 같았으면 죽어도 앉지 않겠다느니 차라리 내리겠다는 이야기를 할 법도 했는데 상황이 심각해지자 아무 말 없이 나와 같이 1호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 기이잉...
유일한 무장은 드림랜드에 떨어질 때 가지고 있었던 대검 한 자루가 전부...
- 철컥
대검을 양 손으로 쥔 뒤 검은 아르베넷을 견제하듯 자세를 취했다.
묘월이는 아르베넷의 안에 타지 않은 채 검은 아르베넷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있을 뿐이었다.
< 선공은 양보해주마. 덤벼봐라. >
기체 안에 타지도 않았을 텐데 1호기의 통신망을 통해 조금 무겁게 들리는 묘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묘월아!"
저 검게 변한 아르베넷을 이 자리에서 막지 않으면 안 된다.
묘월이의 사념은 어딘가 뒤틀려있다.
- 슈우우...!
1호기가 땅을 차올라 달리기 시작하자 어깨에서 푸른빛의 입자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 카아앙...! 까드득...
아르베넷의 어깨를 노려 검을 쳐 내렸지만 아르베넷의 거대한 손에 금방 막혔다.
대검의 날에 둘러진 푸른빛과 아르베넷의 손을 감싼 검은 그림자가 서로를 상쇄하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 너의 결심은 고작 이 정도의 힘 밖에 되지 않던 거냐. >
- 기이익...
1호기의 양 손으로 대검을 쥐어 움직였지만 아르베넷은 한 손으로도 거뜬하게 막아 올리며 점점 팔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지금이라도 나를 섬기겠다면 용서해주마. >
"그런 비틀린 마음은... 따라줄 수 없어!"
- 채앵!
조종간을 꺾어 돌리자 아르베넷의 손아귀에서 대검을 빼낼 수 있었다.
< 여전히 입만 살아있구나. >
- 쿠웅!
대검을 빼낸 순간 아르베넷의 주먹이 이 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겨우 대검의 가드 부분으로 막아내었다.
"으윽..."
하지만 막는 것만으로 벅찬 듯 1호기의 발꿈치가 조금씩 지면 아래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쌔애액!
< 성자님! 원래 세계로 돌아가 주십시오! >
서브암 4개를 갈고리처럼 펼친 아틀락 나챠의 기체가 아르베넷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 싫다. >
- 휘이익... 쾅!
아르베넷은 한쪽 발을 땅에 댄 채 몸을 크게 돌려 길어진 다리로 아틀락 나챠의 서브암을 걷어 차내었다.
- 으드득... 득
거대한 서브암 두개가 조금 찌그러져가는 소리를 내며 덜덜 떨리는 것을 모니터 너머로 볼 수 있었다.
< 둘이 덤비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느냐. >
- 쿠우웅!
아르베넷의 주먹과 발이 1호기와 아틀락 나챠의 차원기를 멀리 걷어 차내었다.
"나챠! 부탁한대로 시간은 벌었어! 대책은 있는 거지?"
< 친근하게 줄여 부르지 마세요! ... 저 뒤의 게이트로 성체를 던져버리면 드림랜드의 밖으로 추방할 수 있어요! >
"저 밖으로..."
아틀락 나챠가 가리킨 곳에는 건물이 있던 자리를 집어삼키듯 붉은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저 곳으로 아르베넷을 밀어붙일 수만 있으면...
< 그런 계획에 내가 손쉽게 당해줄 것 같더냐. >
우리를 밀쳐 낸 아르베넷은 이 쪽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성공해보겠어!"
< 이 것부터 막고나서 계속 이야기 해보거라. >
- 삐이!
"얼뜨기군! 피해요!"
가만히 앉아있던 엘이 무언가 느낀 듯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 콰아아아아아...!
아르베넷의 머리 위에서 적색의 광선이 쏘아지는 것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 슈우우...
방금 전 까지 1호기가 서 있던 자리는 얼음이 녹아내린 것처럼 지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만약 저걸 정면으로 맞았다면 지금쯤 나와 엘은...
< 동작이 너무 큽니다! 성자님! >
적색의 광선이 쏘아진 직후 아틀락 나챠는 아르베넷을 향해 오른쪽의 서브암 두개를 세워 날처럼 벼린 뒤 아르베넷의 옆구리를 향해 내질렀다!
- 키이이이잉! 으득..득
분명 날카로운 서브암 두개는 막히지 않은 채 아르베넷의 몸체를 찔렀지만 전혀 뚫지 못했다.
< 어째서... 분명히 정면으로 들어갔을 텐데... >
< 힘을 나누어가진 주제에 온전한 하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
"하나로 이길 수 없다면 둘이 덤비면 되는 거야!"
아틀락 나챠가 틈을 파고드는 동안 대검을 세워 반대쪽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 키기기기긱...! 득.. 으득
동시에 두 대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인지 아르베넷의 몸체에 조금씩 갈려들어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 틀렸다. 너희들은 둘이 아니라 일십 일백이더라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
- 까드득... 빠직!
아르베넷은 한 팔로 몸을 파고들던 서브암 하나를 쥔 뒤 비틀어 꺾어 버렸다.
- 드득.. 챙!
다른 팔로 자신의 옆을 파고들던 대검의 날을 쥐어 꺾어버리자 대검의 날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검이 없더라도 주먹이 남아있어!"
아르베넷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자 아르베넷의 거대한 팔이 조금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 저도 계속 싸울 수 있습니다! >
아틀락 나챠는 기체를 틀어 붙잡힌 서브암을 떨쳐낸 뒤 무릎으로 아르베넷의 다른 팔을 차올렸다.
< 날벌레 같은 것들이...! >
1호기와 아틀락 나챠의 맹공이 이어지자 묘월이의 목소리 끝이 조금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강한 파일럿이라도 동시에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둘을 상대하기엔 한계가 있는게 틀림없다!
- 철컥... 기이이잉...!
아르베넷은 우리를 향해 왼 주먹을 한번 휘두른 뒤 왼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손 위에 덮혀있던 장갑이 아래로 내려가며 붉은 수정이 드러났다.
"장갑을 내렸어! 저 틈을 노리면...!"
< 제가 팔을 붙잡겠습니다! 소년! >
기체의 장갑이 열린 틈을 노리면 저 손을 못 쓰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그러나 순간 머리의 신경속을 전기가 흐르는 듯 한 느낌과 함께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슈우우..!
발아래의 페달을 강하게 내려밟고 조종간을 뒤로 당기자 어깨의 분출구에서 분사가 거꾸로 일어나며 1호기가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나챠... 피해!"
나의 통신을 들은 아틀락 나챠는 달려들던 방향을 바꾸어 아르베넷을 빗겨가듯 옆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 너희들이 거절한 힘의 위력을 보여주겠다. >
- 사아 아아아...
아르베넷의 손등위로 드러난 붉은 수정이 타오르듯 빛나기 시작했다.
- 콰아아아아!!!
아르베넷의 주변이 폭발하듯 강한 열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을 불태웠다.
---
아르베넷의 손등 위에서 뿜어져 나온 고열의 파동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 슈우우... 쿵!
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한 듯 1호기의 팔과 어깨 장갑의 일부가 녹아내려 이음판이 땅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 허억...헉... 저는 여기까지 입니다... 소년. >
겨우 몸을 피한 아틀락 나챠 또한 완전히 피하진 못했던 것인지 다리 두 쪽이 녹아내려 상체를 지면 위로 끌고있을 뿐이었다.
"나챠...!"
- 슈우우... 쿵!
아르베넷의 손등의 붉은 수정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멈추더니 다시 두꺼운 장갑이 올라가며 수정을 가렸다.
손등을 가린 아르베넷은 곧장 1호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깡!
"크윽!"
장갑이 녹아내린 1호기의 어깨로 아르베넷의 주먹을 막는 것은 힘들었던 듯 1호기의 어깨 장갑이 찌그러지며 땅 아래로 떨어졌다.
< 주먹 하나도 막을 줄 모르는 주제에. >
- 쾅!
아르베넷의 주먹이 내질러질 때 마다 1호기의 장갑은 조금씩 땅 아래로 떨어졌다.
< 나를 막아보겠다고? >
어느새 1호기의 팔은 금속의 프레임이 드러날 만큼 남은 부위가 적어졌다.
아르베넷의 어깨 위에 올라탄 묘월이는 담담하지만 분노에 찬 듯 한 말투로 나를 몰아붙였다.
"이걸 쓰세요! 얼뜨기군!"
- 쌔애액!
1호기와 아르베넷의 사이에 작은 백색의 게이트가 열리며 백색의 창이 나타났다.
"고마워 엘!"
- 카드드득...
백색의 창의 손잡이와 날을 쥐어 아르베넷의 주먹을 막았다.
< 나의 힘은 거절한 주제에 엘에겐 힘을 빌리는 것이냐! >
- 채앵!
내질러진 주먹을 향해 창의 손잡이를 검처럼 들어 쳐내자 아르베넷의 주먹이 빗겨 나갔다.
< 뭣...? >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고 옆으로 빗겨나가버리자 묘월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 쿠웅! 챙! 챙!
몇 번 더 묵직한 주먹이 내질러졌지만 백색의 창을 들어 올려 막자 주먹은 제대로 질러지지 못하고 옆으로 빗겨나갔다.
"이 창을 부술 수는 없는 거구나!"
- 끼이익.. 끼득..득..
창의 손잡이를 쥐어 아르베넷의 팔을 향해 찌르자 긁히는 듯 한 소리가 났다.
- 파카앗!
창날이 지나간 아르베넷의 팔위에 검은 표면을 긁어지워낸 듯 하얀 몸체가 드러났다.
"효과가 있어요!"
백색의 창이 검은 아르베넷을 몰기 시작하자 엘이 기쁜 듯 외쳤다.
창이 아르베넷을 파고들수록 그림자가 찢겨나가며 점점 백색의 몸체가 드러났다.
- 그 오오...!
하얀 몸체가 드러날수록 아르베넷의 안에서 낮게 우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 그림자로 묶어두는 것도 한계가 온 건가... >
- 고오오...
뒤로 몸을 뺀 아르베넷의 머리 위로 붉은 입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고리...?"
아르베넷의 머리 위에는 이전에 폐쇄도시에서 잠깐 보았던 고리가 붉은 색을 띈 채 떠 있었다.
- 슈우우...!
"아르베넷이... 날고 있어?!"
고리를 띈 아르베넷은 순식간에 하늘 위로 높게 날아올랐다.
< 묶어둘 수 없다면 이제 끝내주겠다. >
- 철컥!.. 철컥!..
하늘 위에서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 아르베넷의 손등 장갑이 열리며 붉은 수정 두 쌍이 드러났다.
- 사아아아아아...!
거대한 뿔 사이에 자리 잡은 붉은 수정과 함께 세 개의 수정이 공명하는 듯 한 소리가 울렸다.
< 사도의 힘을 보여주마. >
공명하던 수정 사이로 붉은 빛이 빛나며 수정 사이를 서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 !
"윽...!"
다시 머리 안을 내지르는 듯 한 느낌과 함께 바닥 아래의 페달과 조종간을 동시에 당겨 1호기를 급하게 움직였다.
- 콰아아아아!!
잠시 후 수정 사이를 오가던 붉은 빛은 사방으로 퍼져 지상 위로 내려 꽂혔다.
---
붉은 빛이 내려 퍼진 땅은 처참했다.
겨우 남아있던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지 위에는 붉은 상흔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었다.
- 빠드득.. 끼익..
기체의 움직임을 넘어선 무리한 가동을 한 탓에 1호기의 다리 프레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같은 공격을 받게 되면 이번엔 정말 피하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올 레인지 공격... 아르베넷에 제가 모르는 저런 힘이 있었을 줄이야..."
지상 위로 쏘아진 무수한 광선이 가라앉자 엘은 녹아내린 땅을 보며 허망하게 말했다.
"이제 마스터에게는 제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엘은 저 높은 곳에 있는 아르베넷을 올려보며 위로 손을 뻗어 올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네?"
- 고오 오오...
포화를 마친 아르베넷의 손등에서 하얀 연기가 흩날리며 동체에서 낮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거는 없지만... 분명히 묘월이에겐 너나 나... 우리 모두가 필요할거야."
"예?"
나의 근거 없는 주장에 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감이야."
"...마스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네요."
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웃었다.
< 시시한 이야기는 끝났느냐. 운 좋게 살아남은 것 같구나. >
"운이 좋은 게 아니야. 실력이 좋은 거지."
죽음과도 같은 붉은 빛에서 겨우 피했지만 일부러 여유를 담아 통신망에 답변을 들려주었다.
< ...그 실력이 두 번째 까지 갈 수 있나 보도록 하겠다. >
- 철컥... 철컥...
아르베넷의 손등 위가 다시 열리며 수정이 드러나며 붉은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난감하네... 이번에 맞으면 정말 죽을 것 같은데... 저 위까지는 점프해도 닿지 않을 거리야..."
저 높은 곳에 홀로 떠있는 아르베넷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창을 던지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지금 1호기의 상태로 창을 던지면 팔이 빠져버릴 위험이 높았다...
< 소년! 이걸 쓰세요! >
- 휘익!
건물의 잔해에 숨어있던 아틀락 나챠가 이 쪽을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 탁!
아틀락 나챠가 던진 것을 1호기의 손으로 받아 쥐었다.
"이건..."
아틀락 나챠의 등에 달린 거대한 서브암 두개를 이어 붙여 그 끝에는 은빛의 실이 걸려 있었다.
"활?"
크기는 1호기와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지만 이 것은 분명 거궁에 가까운 활이었다.
< 그 무기라면 저 높은 곳 까지 닿을 수 있을 겁니다! >
"하지만 화살이... 아!"
화살이 없이 활을 쏠 수가 없다고 생각하던 찰나 발아래에 꽂힌 백색의 창을 들었다.
침착하게 왼 팔로 활대를 잡고 오른팔로 활시위에 백색의 창을 걸었다.
- 꽈아악...
백색의 창이 걸린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 하늘에 있는 아르베넷을 향해 올렸다.
- 기이잉...
하늘을 향해 팔을 높게 올렸지만 점점 1호기의 팔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
"팔 프레임의 손상이 너무 높아요! 출력도...!"
엘은 모니터 위에 떠있는 파손 표시와 출력을 번갈아 읽으며 하늘을 향해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젠장... 하필 이럴 때..."
전투와 무리한 기동으로 인해 1호기의 손상이 겹친 나머지 더 이상 기체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끌어 쓸 수 있으면..."
"힘..."
나의 말에 엘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걸 써보세요! 저번에 2호기의 파일럿이 썼던 거 말이에요!"
"2호기...? 미하일이?"
"2호기가 빛나면서 썼던 그거 말이에요!"
"하브릿 시스템...!"
베레시트 시리즈에 내장 되어있는 '하브릿 시스템' 써본 적은 없지만 지금은 그런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 고오오오오...!
어느새 아르베넷의 주먹과 머리 앞에는 붉은 빛이 모였다.
이제 더 이상 피할 곳은 없었으며 피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해볼 수밖에 없다.
"하브릿 시스템 가동!"
- 위이잉!
[[ ARON HABRIT :: OPEN ]]
모니터 위로 푸른 글자가 지나갔다.
- 기이이잉...!
1호기의 프레임 사이로 푸른빛이 넘쳐흐르듯 뿜어져 나왔다.
장갑 위로 푸른빛이 타오르는 듯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출력 상승중! 20%...40%...80%...160%!"
모니터 위를 확인한 엘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1호기의 출력률을 보고 소리쳤다.
- 꽈아아악...
아래로 쳐졌던 1호기의 팔과 아틀락 나챠의 활이 하늘 위에 있는 아르베넷을 향해 겨누어졌다.
< 성궤를 열었다고...? 혼자서? 나를 내버려둔 채 앞으로 나아갔다는 거냐! >
푸르게 빛나는 1호기를 확인한 듯 한 묘월이의 목소리가 분한 듯 외치는 게 들렸다.
"혼자 나아간 게 아니야. 네 덕분에 성장한 거지."
백색의 창을 건 활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져 아르베넷을 겨누었다.
< 나를 무대 위에 홀로 내버려두고... 너는!!! >
- 콰아아아아...!
붉은 빛이 이 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 파아아아앗...!!
활시위 끝에 걸렸던 백색의 창이 붉은 빛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 파샤아아아앗...!
백색의 창은 붉은 빛을 해쳐내며 곧게 쏘아져 올라갔다.
- 콰드득...! 카아아아아앙...!!
- 그 오오오오...!
붉은 빛을 뚫어낸 백색의 창은 아르베넷의 몸을 꿰자 창의 끝을 중심으로 검은 그림자가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 슈우우...
백색의 창은 아르베넷을 감싼 검은 그림자를 그 끝에 꿰어낸 채 게이트의 저 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 기이잉...
아르베넷의 위에 있던 붉은 고리가 사라지며 점점 땅 아래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 위잉...
[[ ARON HABRIT :: CLOSE ]]
기체의 모니터 위로 푸른 글자가 다시 한 번 떠오르며 1호기를 감싸던 타오르는 푸른빛이 점차 사라졌다.
- 팅!
백색의 창을 쏘아낸 아틀락 나챠의 활 역시 자기 임무를 다한 것처럼 현이 끊어져 팔 아래로 떨어졌다.
"해냈다..."
하브릿 시스템이 종료되자 제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1호기를 움직여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철걱...
1호기가 땅을 딛자 무릎의 프레임이 마모되는 소리가 울렸다.
- 끼익...끽...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라는 것처럼 1호기의 프레임에서 거친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나는 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무대 위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하는 묘월이를 맞이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