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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화 〉드림랜드 (108/152)



〈 108화 〉드림랜드

하늘 높은 곳에서 백색의 아르베넷은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왔다.


"성공했어... 묘월이를... 이겼어."


혼자의 힘이 아니라 엘과 아틀락 나챠의 힘을 빌려 겨우 한  먹일 수 있었던 것뿐이지만 검은 묘월이를 막을  있었다.

"얼른 마스터를 회수하러 가요!"

조종석에 같이 앉아있던 엘은 전투가 끝난 후 숨을 내쉬는 나를 보챘다.

"알았어. 얼른 가보자."

출력이 10% 밑으로 떨어져  이상 1호기를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조종간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 끼이익... 끼긱...

걸을  마다 프레임에서 거친 쇳소리가 조종석 너머로도 크게 들려왔다.

- 삑!


[[ ARON HABRIT :: □□□□ ]]




"뭐...?"

점점 아르베넷에 가까워졌을 때 모니터 위로 푸른 글자가 떠올랐다.

- 위이이이잉...!

1호기는 자기 멋대로 하브릿 시스템을 발동시켰다.



"뭐야 이거 왜이래... 어째서 하브릿 시스템이 멋대로...!"

- 틱 


스스로 켜진 하브릿 시스템을 끄기 위해 기체의 제어모듈을 하나씩 내렸다.



- 끼익... 끽!... 빠드득...!


1호기의 팔과 다리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며 모니터 위로 프레임에 연달아 붉은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력 40%... 80%... 320%?!"

모니터를 같이 보던 엘이 출력의 변동을 보고 놀란 듯 소리를 쳤다.

"하브릿 시스템이... 멈추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에요!  멈출 수 없다는거에요!"

"나도 몰라!"

기체의 모든 제어 모듈과 전원을 내렸지만... 하브릿 시스템은 멈추지 않고 기체의 출력 상승도 계속 멈추지 않았다.

- 빠지직.. 쾅! 쾅!

프레임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의 입자를 견디지 못한 상체와 하체의 장갑판이 아래로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 고오 오오...!!

상체의 장갑판이 떨어져나간  사이로 1호기의 붉은 코어가 드러났다.

붉은 코어는 푸른빛을 띄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터지기 직전의 별이 가장 밝게 빛나듯...


"엘 너라도 당장 내려... 코어를 멈출 수가 없어!"


이대로 둘이 죽는 것 보다 엘을 내보내는 편이...

"진정하거라."


"어...?"

분명 사라졌어야 할 검은 묘월이가 공중에 떠오른 채 타들어가는 1호기의 코어 앞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천사의 힘을 빌려 일시적으로 성궤를 연 것뿐인가... 어설프긴 했다만."


코어 앞에 멈춘 묘월이는 한 손을 들어 코어 위에 얹었다.




'......'


손을 얹은 뒤 나즈막히 무언가를 읊었으나 나는  것을 들을 수 없었다.

- 위이이잉!... 슈우우...


그 속삭임이 끝나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코어는 점점 푸른빛을 잃어가며 원래의 붉은 색으로 돌아왔다.


[[ ARON HABRIT :: CLOSE ]]

"출력이... 점점 떨어져가요. 0%..."

"멈췄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1호기는 폭발직전에서 멈췄다.



끼이이익...



"어?"

1호기가 멈춘 직후 아래에서 무언가 풀린 듯한 소리가 났다.




- 끼이이... 콰아앙!

장갑판을 너무 잃었던 탓인지 직립을 유지할 수 없었던 1호기가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




"아야야..."

1호기의 자세가 낮았던 덕분에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좁은 조종석 안에서 한번 나뒹군 꼴이 되었다...


나는 그나마 벨트를 매고 있었지만 그냥  위에 앉아있었던 엘은 나와 엉켜서... 발을 나의 가슴과 머리에 치대는 꼴이 되어 있었다.



- 퍽! 퍽!

"비켜요! 역시 당신은 얼뜨기! 반쪽자리 파일럿이야!"

나와 엉겨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엘은 맨발로 나의 얼굴과 가슴을 퍽퍽 차내었다.



"아니... 네가 비켜야 일단 일어날 수..."

이 자세면 엘의 다리사이가 싫어도 보이게 되는데... 하얀...


- 푸슈우!

나와 엘이 엉겨있던 사이 조종석의 커버가 열렸다.

내가 연 것은 아니니 밖에서 연 것일 텐데...



"...나는 거절한 주제에 나의 모습을 배낀 엘과는 놀아나고 있구나."


검은 묘월이는 조종석 밖에서 나를 경멸하는  한 눈으로 내려보았다.


"그...그런  아니라..."

"마스터 이건 그..."


검은 묘월이를 보고 엘은 나의 얼굴을 밟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농담이다. 너에게 그럴 배짱이 없는건 이미 알고 있다. ...만약 배짱이 있었더라면  그날 파과 당했겠지..."

검은 묘월이는 잠깐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파과? 그게 뭐지... 파괴는 방금 전 까지 실컷 당한 것 같은데.



"...아무튼 일어나거라. 엘도."

검은 묘월이는 엉겨있는 우리를 향해 손을 뻗어준  1호기에서 꺼내주었다.

"고마워요 마스터... 어라?"


펑!


엘의 몸이 연기와 함께 원래 알고 있던 원반 모습으로 바뀌었다.

"꿈이 끝나고 있구나."

어느새 건물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무너져버려서 가파른 절벽과도 같은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 쿠구구...


주변의 바닥도 서서히 무너져가며 점점 땅이 좁아져가고 있었다.

"날 이긴 주제에 마지막엔 자기 힘도 다루지 못할 줄이야... 아무튼 축하한다. 소년."

검은 묘월이는 흑요석처럼 빛나는 검은 관 위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발끝은 너머에 있는 관이 보일 정도로 투명해져 있었다...



"너... 발이!"

"나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거다. 내면으로 말이지..."


검은 묘월이는 자신의 몸이 사라져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결국 나를... 다시 무대 위로 올리는데 성공했구나... 그게 너의 뜻이라면 어쩔  없겠지."


조금 슬픈 눈을 한 검은 묘월이는 자기 아래에 깔린 관을  손으로 쓸어내었다.

"틀렸어."


"뭐가 틀렸다는 거냐."

"나는 너를 혼자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게 아니야... 나도 그 옆에 같이  거야."

나는 묘월이를 홀로 세상 위에 던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네가 무대 위로 오르겠다고...? 아까는 거절했으면서?"


"거절한 게 아니야. 나는 너를 대신해 오르기보다... 당당하게 같이 오르고 싶어."

혼자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게 두렵다면.

내가 그 옆에 같이 올라서 묘월이를 도와주면 된다.

"...제법 진지한 말도 할  알게 되었구나."

검은 묘월이는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빛이 없는 탁한 눈이었지만... 그래도 나를 똑바로 바라봐주고 있었다.

"...그런 건가. '같이' 오른다... 생각도 못했었구나."

말없이 묘월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 묘월이는 웃었다.

입만 웃는 거짓 웃음이 아니라... 정말 그 눈도 웃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선물을 하나 주마."


휙!


묘월이는 자기 원피스에 걸려있던 검은 안경을 나에게 던져주었다.



"나 눈은 안 나쁜데..."


 손으로 안경을 받은  셔츠 윗 주머니에 넣었다.



"나도 눈은 나쁘지 않다. 이건 그냥... 나처럼 눈매가 나쁜 사람이 눈을 가리려고 쓰는 것뿐이다."


"눈매가 나쁘다고? 예쁘기만 한데..."

조금 가까이 얼굴을 붙여 눈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꾸  실력이 늘고 있구나... 갖고 있다면 언젠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올 거다."


가까워져가는 얼굴을 피하듯 검은 묘월이는 얼굴을 조금 돌렸다.


"고마워."

용도는 모르겠지만 뭔가 받았다면 감사하는 게 맞겠지...



"...마지막으로 사라지기 전에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묘월이는 고개를 돌린 채 조금 작게 말을 꺼냈다.

"어떤 거야?"

대행자가 되어달란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겠지만... 사라질 사람의 소원이라면 들어줄  있었다.





"...안아줘."


"그래."

모든 것을 파괴하려던 검은 소녀의 마지막 소원은 단순한 것이었다.



---

검은  위에 앉은 묘월이를 품에 끌어 안아주었다.


안아보니 정말로 작은 품... 세상을 구원하겠다면서 아직 학생인 나보다 훨씬 작고 어린 몸이었다.

저 높은 곳에서 내려  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막상 안아보니 결국 작고 따뜻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흐윽... 윽..."

나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묘월이는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나는... 모두를 구할 수 있는데... 정말로..."

작은 몸이 떨리며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한테도 알려줄 수도 없어... 너에게도 계약이 없다면... 숨기는 수밖에..."

어깨 위가 점점 따뜻한 눈물로 젖어가기 시작했다.

묘월이의 사정을 모르는 이상. 내가  이상 물을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까 묘월이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것처럼... 그저 뒷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묘월이는 한참을 울었고.

나는 말없이 쓰다듬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




"...고마워."

"별 말씀을."



검은 묘월이의 몸은 점점 무릎 위 까지 투명해져갔다.



"나는 이제 나의 안으로 돌아가 보겠다...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중심이 되는 영혼이 없다면 진리는 아무 쓸모도 없을 테니 말이지."


마지막까지 어려운 말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잠든 나를 네가 직접 깨워줬으면 좋겠구나."


"어떻게 깨워야하는데?"


예전에 묘월이에게 들었던 대로 조명을 얼굴에 절대 직접 비추지 말고 어깨를 가볍게 잡고 흔들면 되는 거였나...


"...옛날 이야기에서"

"응?"

"잠든 여자아이를 어떻게 깨웠나 생각해보거라아..."

검은 묘월이는 고개를 휙 돌렸지만 왠지 모르게 귀 끝이 붉어 보였다.


"나...난 이제 가볼 거다."

조금 뒤 붉은 기운이 가라앉자 나를 한번 쳐다본  작별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비록 오늘은 싸우게 되었지만, 여태까지 있었던 일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짧게 감사를 전했다.

"별말씀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검은 묘월이는 미소를 지은 채 사라졌다.

검은 묘월이가 사라진 곳에는 그녀가 앉아있었던 검은 관만이 남아있었다.



파칵!

잠시 후 관의 뚜껑이 저절로 옆으로 빗겨 열렸다.



그 안에 잠들어있는 것은 은색의 머리를 한 채 깊게 잠에든 묘월이였다.

늘 보던 얼굴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게  얼굴은 조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몰랐을 테지만... 묘월이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알게 된 지금은  표정에 담긴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같았다.

이제는 잠든 묘월이를 깨워, 내가 그 옆에 마주서서 도와주어야 할 때였다.





그...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깨워도 되는 걸까?

옛날이야기에서 잠든 여자아이를 깨우는 방법은 분명... 본인이 허락했으니 괜찮은 거겠지?...



나는 열려있는  안에 잠들어있는 묘월이에게 다가가 그 잠든 얼굴을 향해...

- 쪽



작게 입을 맞추었다.




"당신! 마스터에게 뭘 한거에요! 잠든 마스터에게!"

- 퍽! 퍽!

공중에 떠있던 엘은 나의 뒤통수와 등을 향해 사정없이  몸체를 처박았다.


정말 아팠다...



그런데 이게 아닌가...? 반응이 없는 것 같은데...



"으음..."

방법이 잘못된 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관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엘?"


"일어나셨군요! 마스터!"



관의 위를 맴돌고 있던 엘을 가장 먼저 본 묘월이는 작은 몸을 일으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마가 따뜻한데..."


잠에서 덜 깬 듯 눈이 반쯤 감긴 묘월이는 손등으로 자기 이마를 슥슥 문질렀다.

잠든 여자아이의 입술을 빼앗는 건 비겁한 것 같아서 오늘은 이마에 했지만 언젠가는...


마침내.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려던 소녀는 길고 긴 꿈에서 깨어났다.

소녀의 운명을 같이 짊어지려는 소년의 도움으로... 소녀는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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