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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화 〉드림랜드 (109/152)



〈 109화 〉드림랜드

"일어나셨군요! 마스터!"

머리 위를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엘을 아직 반쯤 감긴 눈으로 보며 몸을 일으켰다. 숙소에 있던 내 침대 치고는 비좁고 벽이 있는게 내 숙소는 아닌데...

"아흐음..."


정말 오래간만에 푹 잠들었다는 기분을 느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어느 회사원처럼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2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 것도 아닌데 몸이 가뿐했다.




"아 여긴... 드림랜드..."

눈을 부비며 하늘을 올려보니 마치 유화로 치덕치덕 쳐댄 것 같은 회색빛의 하늘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분명 그 까망이가  붙잡고  안에 밀어 넣었는데...  엘은 왜 여기 있고..."


분명 건물 안에서 나의 욕망이라는 까망이와 마주쳤었고... 아틀락 나챠가 왔었고... 나는  안에 밀어 넣어졌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에메트... 이름이 허세 가득한 느낌이라 귀찮으니 앞으로 까망이.

까망이와 아틀락 나챠는 보이지 않았고 엘이 어느새  곳으로 돌아온데다가 원반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변을 돌고 있었다.



"엘... 내가 얼마나 잠들었어...?"


"하루 정도 주무셨어요!"

하루에 5-6시간 정도만 잤었는데 4배 가까이 자다니... 정말 오래 잠들긴 했구나.

"다행이다... 잠든 사이에 13년 정도 휙 지나간 건 아니었구나..."

"그렇게 오래 잠드셨을 리가 없잖아요."


긴 잠에서 깨어나니 내 목엔 폭탄이 달린 목걸이가 채워지고 나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 스르르...


관에서 몸을 일으켜 빠져나오자 관은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져버렸다. 결국 저 관은 뭐였던 거지...




"...주혁이는  여기 있어?"

하루만의 숙면을  취하고 나서 이질적인 꿈속의 풍경에서 가장 이해할  없었던 것은... 내 눈 앞에 주인공군이 서있었다는 것이다.

권장 수면시간보다 너무 푹 잔 나머지 드림랜드에서 발생한 버그인가?

엘은 나와 같이  세계로 떨어졌으니 꿈을 같이 공유했지만 주인공군은 나의 꿈속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설마 까망이가 모습을 바꾼건가?


쭈욱

손을 뻗으니 주인공군의 얼굴이 닿는 거리에 있길래 뺨을 꼬집어보자 조금 쫀득하다기 보단 살짝 탄탄한 느낌이 드는 뺨이 집혔다.


"아야 야야야..."

얼굴을 꼬집힌 주인공군은 마치 진짜 본인처럼 반응을 보였는데...

"...진짜 주혁이니?"


"그래 모월아... 아프니까  놔줘..."


"으흠흠... 엘. 어떻게 된 거야?  주혁이가  꿈속에 있어?"


나의 손끝에 집힌 주인공군의 뺨을 놔주고 조금 헛기침을 했다. 버그나 까망이는 아니었구나.

"다른 꿈속에서 해매고 있던걸 제가 데려왔어요."


"그렇구나... 원래는 내가 구하러 갔어야 했는데."

원래 예정은 나의 꿈속을 조금만 돌아보고 주인공군을 구하러 갈 생각이었지만 입장이 반대가 된 기분이었다.


엘이 대신 해결해줬으니 걱정은 하나 덜었구나.




"너는 정말...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생각뿐이구나."

주인공군은 나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곤 조금 안쓰러운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응? 그게 왜?"

여태까지 늘 하던 일이 아닌가. 이제와서 새삼스럽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주혁이랑 엘은 돌아왔고... 나챠는 어디로 간거지..."

까망이는 중요하지 않으니 내버려두고, 잠들기 직전까지 같이 있었던 아틀락 나챠가 보이지 않았다.




"나챠?"




- 움찔!

잠기운에 실언을 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몸이 조금 떨렸다. 주인공군의 앞에서 교단 간부를 너무 친근하게... 그 이름까지 불러버렸다.

"나챠는 저 쪽에 있어."

추궁이 이어질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주인공군은 그 이름이 누구를 뜻하는 건지 알고 있는 듯 방향을 가리켰다.




"나챠가 누군지 알아...?"

"같이 힘을 합쳐 싸운 전우니까."


주인공군은 나의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전우... 겨레에 늠름할 듯한 울림이구나...



"잠깐만... 뭐를 상대로 힘을 합쳐서 같이 싸웠다는 거야?"


서로 싸워야 할 주인공군과 아틀락 나챠가 서로 싸우지 않고 같이 힘을 합쳐 싸웠다고? 원래 예정된 시나리오에는 그런 이벤트가 없었는데?


"아르베넷이랑 싸웠어. 엘과 함께 해서 셋이서."

"아르베넷이랑...?"

나의 뒤편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는 아르베넷은 전투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말끔한 백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잠들기 전과 달라진 점은 까망이에게 잠식되어있던 그림자가 사라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정도다.

정말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거지...



"오랜만입니다 성자님..."

주인공군이 가리키고 있던 곳에서 안색이 초췌해진 녹색 메이드복의 소녀. 아틀락 나챠가 이 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어...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려다가 문득 주인공군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내가 교단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얼추 알아차렸을 것 같긴 한데...

같이 싸운 사이라니까 아는 척해도 괜찮겠지...?


"잘 지냈나요. 나챠군. 고생한  같네요."


자느라 조금 흐트러져있던 옷을 가볍게 정리하고 나서 결국 아틀락 나챠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드림랜드의 제어권을 되찾느라 힘들었습니다..."

아... 분명 까망이에게 제어권을 빼앗겨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당황했었지... 잘 했으니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까.

"고생했어요. ...머리라도 쓰다듬어 드릴까요?"

에메트도 사라진 것을 보니 결국 아틀락 나챠가 제어권을 도로 가져온  같은데... 칭찬을 해주려니 마땅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 사악

"...아뇨 성자님의 사념체가 떠올라서...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아틀락 나챠는 어느새 주인공군의 등 뒤로 숨어 나의 얼굴을 힐끔 보고 있었다.


같이 싸운 전우라고 해도 서로 적이었던 사이었는데 가까이 붙을 만큼 제법 가까워졌구나...


"나챠군."


"네...넷."


조심스럽게 주인공군의  뒤에 숨은 녹색의 소녀의 이름을 부르자 아틀락 나챠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 제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이 자리에서 사라진 까망이의 행방도 궁금하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들을 시간이 필요했다.


---


엘과 주인공군, 그리고 아틀락 나챠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림자에 잠식된 아르베넷과 싸우게 되었는데... 셋이 힘을 합쳐 아르베넷을 조종하던 그림자를 게이트의 밖으로 던져냈다고 한다.

참으로 심플하면서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셋 모두 지쳐있는 것을 보니 보통 전투는 아니었던  같다.


그 후 까망이는 나의 안으로 돌아가 보겠다며 사라졌는데... 분리된 욕망이 내 안으로 돌아온 것 까진 좋았지만  기억까지 나에게 돌아오진 않았다.



"모두 고생했어요..."

사고를 막기 위해 내가 따라온 것이었는데 내가 가장 큰 사고를 쳤을 줄이야...


셋이서 잘 해결했길 다행이었지 여기서 더 나빠졌다면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파져 조금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르베넷의 맞은편에 활동을 멈춘 아틀락 나챠의 성체를 보니 아르베넷과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었는지  수 있었다.

1호기의 대검으로 내리쳐도 튼튼하던 서브암이 전부 부서지거나 빠져버린 데다가 지금은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까망이가 아틀락 나챠의 목을 조르면서 했었던 말처럼 아틀락 나챠의 성체는 모든 다리를 잃어버린 채 정말 배로만 땅을 기어 다니는 꼴이 되어 있었다.


"성체는 알겠는데... 그 옆에 있는 고철은 뭔가요?"


거미에서 애벌레가 되어버린 아틀락 나챠의 옆에 있는 완파에 가까운 고철 더미가 신경 쓰였다.

"1호기야."


아틀락 나챠를 대신해서 주인공군은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뭐?"

고철더미라 생각한 덩어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다 부숴져가는 프레임에 1호기의 머리와 붉은 코어만 달려 있었다.

가슴 아래에 남은 붉은 코어와... 팔 다리는 거의 다 떨어져나가서 제대로  부분이 남아있질 않았는데 장갑판도 전부 떨어져버려서 정말 고철더미나 다름없었다.

"... 내가 이렇게 되도록 부순 거야?"

까망이가 또 다른 나라고 해도 일단은 내 잘못이니 주인공군의 눈치를 살폈다.


대형 차원수나 인형사를 상대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부서지진 않았는데... 정말 코어만 남기고 전부 부순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었다.

잠든 나대신 까망이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져서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뭐가 잠에서 깨어나면 원하던걸 얻는다는 거야... 돌아오는건 전부 내가 저질렀다는 무언의 압박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물론 조금 부수긴 했지만 이렇게 망가진 이유는... 내가 하브릿 시스템을 작동시켜서 그래."


"뭐? 아론 하브릿을? 어떻게?"


하브릿 시스템을 가동시켰다고? 아직 가을도 아닌데? 지금은 적합률이 40보다 낮을 텐데?

"...기합으로?"

"그게 뭐야..."

주인공군 본인도 하브릿 시스템을 어떻게 가동시켰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는 것 같았다.


- 쿠구구...

"앗..."

조금 더 자세하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땅 아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꿈에서 깨어나실 시간입니다. 성자님.  있으면 성자님의 꿈이 무너질 것 입니다."

나와 주인공군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틀락 나챠는 이제 드림랜드에서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서있던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땅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일단 돌아갈까."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 일단은 드림랜드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




고철이 되어버린 1호기와 애벌레가 되어버린 취록의 아틀락 나챠를 아르베넷의 양 옆에 낀 채 하늘에 열린 게이트를 향해 날아올랐다.



"좁아..."


혼자 탔을 때는 몰랐지만 나와 주인공군 그리고 아틀락 나챠  명이 아르베넷의 조종석에 올라타자 엄청나게 비좁았다.

나의 무릎 위에 다른 두 명을 앉힐 수 없으니 주인공군을 좌석에 앉히고  허벅지 하나씩을 나와 아틀락 나챠가 나누어 앉자 어떻게든 앉을 수 있었다.



물론 조종은 내가 담당하느라 주인공군은 지금은 나와 아틀락 나챠의 등받이 시트에 불과했다.


자리가 좁아진 만큼 지금은 자신의 전용석에 장착  엘이 가장 부러웠다.




"아르베넷의 안은 이렇게 생겼구나..."


주인공군은 투박한 강철의 조종석이 아닌 대리석으로 인테리어를  듯 한 백색의 공간을보자 감탄하며 겨우 뻗을  있는 손으로 조종석 안을 만져보았다.



"조금 흔들릴 거야."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없으니 공중에 떠있는 잔해들을 밟고 여러 번 도약을해야 하늘 위에 열린 게이트까지 닿을 수 있었다.


- 쿵

뛰어오를 때 마다 기체 안이 조금 흔들렸다.



- 꾸욱

바닥에 아르베넷의 발이 닿을 때마다 몸이 뒤로 쏠려서 엉덩이로 주인공군의 몸을 누르게 되었다.






- 꾹

"히익!"


아르베넷에 올라탄 뒤로 조용히 앉아있었던 아틀락 나챠가 뭔가에 놀란 듯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 들려온 비명에 혹시 상처가 벌어지거나 어딘가 다친 게 아닌가 싶어 조종을 잠깐 멈추었다.



"서..성자님....그...그게..."


녹색의 소녀는 나를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린  덜덜 떨고 있었다.

"아...아래에 뭐...뭔가 닿고 있습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붉게 물든 녹색의 소녀는 도움을 요청하는 하듯 나의 얼굴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닿다니 뭐가...... 아.

뒤를 돌아보자 주인공군이 나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었고... 좌석이 여러 차례 흔들린 탓에 아틀락 나챠의 하반신이 주인공군의 하반신을 꾹 누르고 있었다.

"..."

아무리 둘이 친해졌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선 조금 자제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기체간의 싸움이나 불가사의한 그림자의 힘도 없이 오직 인간의 육체만으로 아틀락 나챠를 겁먹게 만든 주인공군을 째려보았다.




"부...불가항력이야..."


 당사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 젊은 나이니까 이성... 그것도 적이라고 생각했던 미소녀가 자기 위에 올라 앉아있으면 어쩔 수 없겠지.



"나챠군... 조금 불편하겠지만 내 위에 앉으세요."


결국 자리를 바꿔 주인공군의 다리 위에 내가 앉은 뒤  비좁아졌지만 아틀락 나챠를 나의 무릎 위에 어떻게든 앉혔다.

"...너는 그 것 좀 줄여."


"..."


줄이라고  한다고 줄어들 것 같진 않았지만...



"가...감사합니다. 성자님..."


아틀락 나챠는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달래준 뒤에 게이트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따금 등 뒤로 느껴지는 악의 없는 그것은 나도 조금 무섭긴 했다...



- 쌔애액...



무너져가는 나의  기억의 장소를 뒤로한 채 게이트로 뛰어들자  뒤에 있던 게이트는 순식간에 닫혀버렸다.

드디어 길고  꿈과 과거의 기억으로 빚어진 드림랜드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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