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드림랜드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자 일렁이는 공간감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색채가 가득 펼쳐졌다.
위도 아래도 길고 짧음도 구분이 되지 않을 듯한 어지러운 공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녹색의 거미들이 그 안에서 실을 짜내어 길을 이어둔 덕분이었다.
"저건..."
주인공군은 문득 모니터 아래로 비추어지는 푸른 광경을 보고 조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잠들어 있는 도시야..."
어지러운 풍경 아래로 선명한 푸른색을 띈 도시가 하나 있었다.
"잠들어있다고?"
"네 저 곳은... 우리들의 고향입니다."
아틀락 나챠는 드림랜드와 차원의 틈 사이에 머물러있는 푸르게 잠든 도시를 조금 슬픈 눈으로 내려 보았다.
푸른 도시는 아무도 살지 않은 것처럼 움직임이 없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지만 도시와 차원의 틈 사이에 두개의 빛이 이어져 도시를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다시 떠오를 날이 멀지 않았어... 힘내렴."
이제 두개의 다리가 놓아졌지만. 나머지 다리가 모두 놓아진다면 머지않아 저 잠든 도시는 정말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위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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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시 뵙겠습니다. 성자님... 그리고 소년도."
게이트를 빠져나가기 전 아틀락 나챠와 그 성체를 적당한 곳에서 내려주자 렝의 거미들이 몰려와 아틀락 나챠의 성체를 옮기기 시작했다.
성체가 사라진 후 아틀락 나챠는 나를 향해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자리를 떠났다.
"이제 우리도 돌아가자."
"게이트를 마음대로 나갈 수도 있는 거야?"
"교단의 것은 일반적인 게이트랑 다르니까 가능한 거야... 이번엔 휘말렸지만 절대로 먼저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마."
자연적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교단이 인위적으로 여는 게이트와는 다르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게이트는 위험성이 높다.
- 쐐애액...
공간이 일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곧바로 게이트는 사라져버렸다.
아르베넷의 발아래에 보이는 것은 어수선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였다.
< ... 아르베넷! 발견했습니다! >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곧바로 타브하의 통신회선이 잡히며 통신이 들어왔다.
"아르베넷. 그리고 베레시트 1호기 귀환 완료했습니다."
통신망을 올려 타브하의 회선에 답신을 보냈다.
"시간은 얼마나 지났지... 어? 한 시간 밖에 안 지났네?"
분명 드림랜드 안에서 하루를 긴 시간을 보냈었는데 모니터 위에 표시되는 시간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를 보냈는데?"
"4일을 보냈는데?"
"뭐?" "뭐?"
나와 주인공군이 보낸 시간은 각자 다른 것 같았다.
역시 일그러짐이 심한 공간이라 시간도 뒤틀려있었던 건가...
전투는 이미 끝난 듯 우리가 한 시간동안 사라져있던 동안 혼자 열심히 싸운 2호기는 거미형 차원수의 체액으로 더러워진 채 회수반의 트레일러에 실리고 있었다.
솔직히 오늘 한 일이라곤 하루 종일 잠만 잔 것 같지만 이상하게 피곤한 기분이 들어서 얼른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가장 지쳐있는건 내가 깨어나기 직전까지 격전을 치룬 주인공군이겠지만...
- 탁
고철이 되어버린 1호기를 트레일러 위에 올려두고 아르베넷에서 내렸다.
- 톡
"오늘 고생했어. 이제 들어가서 푹 쉬어..."
아르베넷에서 내린 뒤 주인공군의 팔을 주먹으로 톡 쳤다.
"내일 봐."
주인공군은 조금 피곤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돌아보았는데...
"잠깐만... 너 눈이 왜..."
"눈이 어때서?"
주인공군의 눈이...
"눈이 왜 빨갛게 변했니...?"
주인공군의 눈은 나와 같은 붉은색으로 변해있었다.
"뭐...?"
정작 본인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 지잉
옆에 있던 엘이 허공에 반사막을 만들어 주인공군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진짜다... 빨간색..."
자신의 얼굴을 본 주인공군은 눈가에 손을 얹은 채 놀란 듯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마 너... 각성한 거야?"
적합률 40을 넘지 못한 주인공군이... 적합률 40을 돌파했다고?
아직 가을도 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론 하브릿을 열어버린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계기가...?
"각성..."
적합자는 적합률 40%를 돌파한 순간 신체의 색소에 변화를 가지게 된다.
나와 서예린 그리고 미하일이 특이한 머리색이나 눈 색을 가진 것 처럼.
"아...아무튼 돌아갈까..."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운송차량을 향해 먼저 걸어갔다.
원래대로라면 각성은 축하해줄 일이지만 ...지금은 주인공군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주인공군이 각성을 하게 되는 계기는 호감도가 가장 높은 히로인과 관계가 깊어졌을 때...
계속되는 싸움 속에서 지켜야할 소중한 대상이 생겼을 때 주인공군은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히로인의 신체적 특징을 이어받아 히로인과 같은 머리색이나 눈 색을 가지게 되는데...
지금 주인공군의 주변에 있는 붉은 눈은... 그렇다면...
나는 왠지 모르게 붉어져가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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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뭐야. 한참 헤엄쳐서 왔는데 여기가 아닌가봐."
어딘가 시끄러워보이는 먼 외국의 시끄러운 수산시장. 갈색 피부의 소녀는 간이식당의 의자에 앉아 발을 흔들고 있었다.
"주인님이 감만으로 가신다고 한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내 감은 예리한 걸?"
"...자전축의 정 반대에 있는 곳에서도 한참 먼 곳으로 오셨습니다."
"에헷 실수."
갈색 피부의 소녀는 자신의 옆에 떠있는 하얀 원반체의 말을 웃어넘겼다.
"...이렇게 불결한 인간들 사이에 끼어드실 생각을 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주인님의 몸이나 다름없는 걸 저런 더러운 물 밑에 두고서..."
원반체는 수산시장 너머 부둣가 아래에 잠들어있는 하얀 거신을 생각하며 자신의 주인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곳도 재밌잖아. ...고작 얼마 못가서 죽을 생물들이 아득바득 살아가는 건."
갈색 피부의 소녀는 한 쪽에서 열심히 요리를 하는 가게의 주인을 보며 조금 웃었다.
[..어차피 세상의 더러움은 우리를 어지럽히지 못해.]
갈색 피부의 소녀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요리를 하는 가게의 주인장도, 시장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상인과 손님도 소녀에게는 그저 개미가 무리지어 가는 것 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 탁
"나왔수다."
소녀가 조금 전 까지 지켜보던 주인장은 소녀의 앞에 국수가 담긴 그릇을 내려놓았다.
"아 맛있겠다."
소녀는 자기 앞으로 나온 요리를 보고 활짝 웃으며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아가씨 굉장히 특이한 말을 쓰네. 이 주변에선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인데... 외국인이야?"
"뭐 비슷한거에요. 하하."
"우리말도 엄청 잘하네... 나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
가게의 주인장은 소녀의 대화솜씨에 놀란 듯 감탄을 내뱉었다.
소녀와 주인장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소녀처럼 이 지역에 살지 않는 것 같은 사람이 와서 가게 앞에서 조금 해매고 있었다.
그는 가게의 앞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읽지 못하는 듯 쩔쩔매고 있었다.
자기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를 쓰려고 했지만 제대로 인식이 되지 않는 듯 더 해매고 있었다.
"아 그거? -라고 읽는 거야. 응? 그래? 아저씨. 이 사람한테도 똑같은 걸로 한 그릇 내줘."
갈색 피부의 소녀는 곤란해 하는 남자의 옆에 서서 가게 앞에 붙은 메뉴를 읽어주곤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아가씨... 정말로 말이 유창하네. 어려 보이는데 정말 대단해."
소녀와 남자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주인장은 한 번 더 감탄했다.
"응? 이게 대단해?"
"우리말과 아가씨네 말, 그리고 저 외국인의 말까지 3개가 넘는 언어를 썼잖아?"
소녀는 적어도 세 가지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나한테는 전부 같은 말로 들리는데?"
"그래...? 천재라는 건가...?"
주인장은 소녀의 답변에 어리둥절해하며 남자의 주문을 받았다.
[언어가 흩어진 건 아버지에게 죄를 지은 너희들 뿐. 나는 죄를 짓지 않은 채 태어났으니까.]
갈색피부의 소녀는 눈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우와 외국인 상대로 장사하던 나도 방금 말은 전혀 못 알아듣겠어."
요리기구 앞으로 돌아가려던 남자는 방금 소녀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며 다시 한 번 놀랐다.
"요리가 엄청 맛있다는 뜻이야. 정말 맛있어."
"이거 쑥스러운데……. 하하."
드림랜드가 열린 정 반대편의 축에서.
갈색 피부의 소녀는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