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케필 · 레브
- 똑똑
주인공군과 헤어진 뒤 사령관님을 만나기 위해 사령관실로 향한 뒤 문을 두 번 두들겼다.
- 네
노크를 한 뒤 조금 지나자 사령관실 안에서 힘이 빠진듯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묘월양 이군요..."
집무용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은 지금 이 기지에서 개발부장님 다음으로 가장 피곤해 보이는 아저씨... 세계를 지키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어른이다.
"거미가 쓰러졌어요."
"네... 보고는 들었습니다."
두 번째 간부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결과를 들었지만 사령관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1호기가 당분간 활동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파손되었다는 게 이번 출격의 결과보다 더 큰 손해였으리라.
"2호기가 제법 고생했겠네요."
나와 주인공군이 사라진 동안 남아있던 차원수의 상대는 미하일 혼자서 담당했을 것이다.
그 수가 많긴 해도 당장 1호기보다 카탈로그 스펙으로도 뛰어난 2호기라면 어떻게든 이겨냈겠지. 트레일러 위에 체액을 가득 뒤집어 쓴 채 실려 있던 2호기가 그 증거였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도 미하일의 공로를 인정해주듯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용 책상 앞에서 일어나 차를 타고 계셨다.
나중에 미하일을 만난다면 따로 칭찬이라도 해주자... 오늘 가장 고생했을 텐데 주인공군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타브하에서 첫출전인데 챙겨주지도 못했다.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가벼운 이야기가 끝나자 사령관님은 다과를 준비하며 이 쪽을 돌아보지 않고 제법 진지한 질문을 던지셨다.
사령관님의 부인이 게이트 안에서 실종되셨으니 게이트 안으로 휘말리는 사고에는 제법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았다.
"교단의 간부 아틀락 나챠와 전투... 1호기 혼자서 열심히 싸워줬어요."
많이 뭉개버린 사실이지만 이 정도의 설명이면 납득 시킬 수 있는 설명이었다.
드림랜드 안에서 겪은 꿈이나 내 내면의 자아 같은 이야기는 오히려 혼란과 불신을 일으킬 수 있었으니 일부러 설명하지 않았다.
"게이트의 발생과 동시에 일어난 집단 환각사건도 별 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잘 된 일이네요."
사건을 일찍 해결한 덕분에 피해규모가 줄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원래의 시나리오대로 였다면 사회가 마비된 채 1호기와 2호기를 겨우 격납고에서 아이들끼리 끌어내어 출격해야 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환각을 본 피해자들의 증언이 모두 일치했습니다."
"어떤 증언이었나요?"
" '푸른 도시' 를 보았다고 하더군요."
푸른 도시... 드림랜드의 깊은 아래에 잠든 교단의 고향.
"보고서에 썼던 것처럼 저희도 게이트 안에서 푸른 도시를 보았어요."
- 탁
어느새 내 앞에 찻잔이 놓여졌다.
"...환각 피해자들의 의식이 게이트와 연결되었단 겁니까?"
"종종 보고되는 사례잖아요? 게이트가 열릴걸 미리 꿈에서 보았다던 지 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까지 일치하진 않았습니다."
나의 맞은편에 앉은 사령관님도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환각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교단의 목적을 모르겠군요. 주요시설의 파괴나 암살도 아니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환각이라니... 마치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리 저라도 교단의 목적까지는 알지 못해요."
마치 나에게 떠보는 듯한 사령관님의 말을 적당히 흘러 넘기며 어깨를 으쓱였다.
"...심문하는 것 같아보였다면 죄송합니다."
사령관님은 내가 교단에 대한 대답을 피하는 것을 눈치 챈 듯 곧바로 사과를 했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단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했을 뿐... 그보다 주혁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할까해요."
"1호기의 소년 말입니까?"
주인공군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령관님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그 아이. 스스로 성궤를 열었어요."
"아론 하브릿을... 불가능한 일입니다."
적합률 언더 40. 현재 타브하의 세 파일럿 중 가장 적합률이 낮은 주인공군이 하브릿 시스템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자세한 이유까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성궤를 연 것은 사실이에요. 그 영향으로 각성까지 해버렸구요."
"... 각성까지 말입니까."
"네 아직 보고하지 않았지만요... 1호기 파손의 주 원인은 아론 하브릿의 발동 때문이에요."
정비반의 보고에 의하면 1호기는 외부에서 입은 데미지보다 내부에서부터 터져나간 것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지금 시점에서 1호기는 아론 하브릿에 대한 대비 설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상정되지 않은 성궤의 발현으로 인해 기체가 견디지 못한 것뿐.
"제 감독 부주의에요. 할 말이 없네요..."
만약 아론 하브릿을 사용할 줄 알았더라면 내가 막았어야 했지만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오히려 또 다른 나 때문에 성궤를 열게 만들었을 뿐...
"괜찮습니다. 오히려 각성은 축하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예상했던 대로 사령관님에게 있어서 주인공군의 빠른 각성은 나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1호기의 수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대화가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서 사령관님을 한번 떠봐야 할 차례였다.
"작업반이 달라붙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2호기의 예비 부품을 끌어다 쓴다면 당장 운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궤가 다시 한 번 열린다면 견딘다는 보장이 없어요."
"아쉽지만 지금의 작업인원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겁니다."
개발부장님과 지금 정비반 인원으로는 망가졌을 때 수리를 하는 게 전부일 뿐... 근본적인 개선은 무리였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렇지만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이 이야기가 나오자 사령관님은 조금 발뺌하듯 말을 돌리셨다.
"사령관님이 연구소장이셨던 시절에 같이 있던 그 사람... '박사'의 이야기에요."
"...역시 알고 있었습니까."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사령관님은 손에 들려있던 잔을 내려놓고 창가를 향해 걸어가 밖을 쳐다보셨다.
"박사... 그리운 이름이군요."
"그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죠."
사령관님의 옆에 서 사령부 앞의 정원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었다.
"박사는... 연구소를 떠나면서 타브하와 손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타브하와 손을 끊다뇨?"
조금 이상하다.
박사는 베레시트 계획의 초기 책임자.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인수인계를 마치고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일 텐데... 오히려 여름이되면 저절로 타브하에 합류하게 될 예정이었다.
"개인적인 다툼 때문에... 저와는 좋지 않게 해어졌습니다."
"사령관님과..."
사령관님과의 제대로 된 접점도 없었을 텐데... 정식 시나리오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설정이 생긴 건가?
"그 뒤로 여러 번 합류를 설득했지만... 제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매몰차게 거절당했습니다."
피곤한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는 창 앞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령관님이 여러 번 설득했는데도 통하지 않았다면 뭔가 깊은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렇다면 제가 찾아가볼게요."
"묘월양이 말입니까...?"
사령관님은 이 방법은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것처럼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사령관님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거라면 제가 찾아가면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을까요?"
말 그대로. 박사가 사령관님을 보고 싶지 않다면 그 대신 내가 찾아가면 그만이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타브하의 백업. 베타니아의 임무잖아요?"
"...알겠습니다. 묘월양을 믿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사령관님은 그 피곤한 얼굴 아래로 조금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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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의 소재지를 파악할 때 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일단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사령부를 빠져나왔다.
사령관님과 박사의 개인적인 일이 엮여있다면 조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는 게 좋겠지.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일을 겪었는데 이제 고작 오후 네 시라니... 그 속에선 하루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분명 차원 너머에 있는 교단도... 우리와는 시간 감각이 다르겠지.
교단의 성체가 연달아 넘어올 수 있는 제약도 있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음 교단의 침공까지는 한 달이 넘는 여유가 생겼다. 다음 상대는 '투신'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일찍 각성한 주인공군이라면 충분히 잘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남은일은 박사를 타브하로 데려와 아론 하브릿을 견딜 수 있도록 1호기를 개량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깊은 생각은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숙소로 돌아갈까...
관 속에서 하루 종일 잠들었다고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숙소에서 누워 자고 싶다...
"...마마!"
그러나 나의 기대는 사령부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금발의 소녀에 의해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미하일 필리스티아.
나와 주인공군이 이 세계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세계를 지킨 또 한명의 소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