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4화 〉케필 · 레브 (114/152)



〈 114화 〉케필 · 레브

초여름에 접어들기 시작했지만 날씨는 정말 좋았다. 약간 선선하지만 낮이 되면 조금씩 햇빛에 땅이 달궈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5월 중순이었다.

도시도 게이트 발생 직후 처리로 인해 며칠정도 쉬게 되어서 어딘가 놀러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그저께 미하일과 목욕을 잘한 뒤 하루는 통째로 숙소에서 뒹굴 거리며 쉬는 휴식을 거쳤더니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점심쯤 사령관님과 점심을 먹으며 박사의 현재 위치도 알 수 있게 되자 곧바로 출장계획을 잡고 모두에게 이틀에서 삼일정도 시간을 비워달라는 문자를 보내두었다.


 결과 지금 우리는 이른 새벽시간이지만 모두 기차역 앞에 모였다.

도심 근처 학교 기숙사에 거주하는 서예린과 류하연은 먼저 도착해있었던  기차역 한 가운데 광장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컨디션 관리가 완벽해 보이는 서예린과 다르게 류하연은 새벽에 약한지 눈을 부비고 있었다.



나와 주인공군 그리고 미하일은 같은 기지에서 출발했기에 같은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멀리가게  거라고 이야기 해두었던 덕분에 다들 간단한 짐을 꾸리고 편한 복장을 입고 나왔다.

내 옆에 서있는 주인공군을 흘끗 바라보자 그 역시도 새벽엔 조금 약한지 작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주인공군은 내가 시킨 대로 안경을 잘 쓰고 있고... 저번에 사준 셔츠를 또 입고 와주었다. 사준 보람이 있네.


"...그래서 쉬는 날 갑자기 모이자고 한 이유가 뭐야?"

나도 모르게 주인공군을 한참 바라보고 있느라 이야기를 꺼내고 있지 않자 보다 못한 서예린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 정신 좀 봐...



"일이 잘 마무리  기념으로 팀 전체 등산을 가려고요. 괜찮죠?"


"등산...?"


가끔씩은 산에 올라주어서 산의 기운을 받아야 하던 일이  풀리고 다음 프로젝트도 잘 된다는 이야기...  꺼내려고 하자 모두 표정이 어두워졌다.


"흠흠... 등산은 농담이에요."


농담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두워지기에 재빨리 등산 이야기를 취소했다.


물론 나도 등산은 싫다.



"오피셜적으론 출장이지만... 다 같이 친목을 다질  여행을 가보려고 해요."

"여행?"


등산이야기가 사라지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까와는 상반된 분위기가 되었다.

"짧으면 일박 이일... 길면 이박 삼일 정도   같은데 숙소도 미리 잡아두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서  꾸리라고 한거구나..."

박사의 현재 거처가 이 곳에서 제법 멀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하루 만에 다녀오는  보다 차라리 넉넉잡아 몇일정도 보내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숙소도 미리 잡아두었다.


"네. 이럴 때 타브하 돈으로 놀아봐야죠.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만 했어요."


"비용도 무료야?"


"그럼요. 숙소랑 식비까지 이미 타브하 이름으로 지불이 끝났어요."


이번 출장은 출장을 명목으로 삼은 공짜여행이기도 했다. 새로운 맴버가 들어오고 서먹했던 팀 분위기를 살리는데 가장 좋은 게 여행 아닐까?



"완전 무료라... 나쁘진 않네."

서예린도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출장에 대해 기대하는 듯 했다.

... 전 날 까지 미하일의 짐을 챙겨주느라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나도 여행이 기대되긴 마찬가지였다.



"늦겠어요. 얼른 기차 타러 가요."

자세한 설명은 기차 안에서 해줘도 되겠지. 일단 이른 시간에 나온 만큼 기차 시간을 놓치지 않는게 먼저다.

---



우리가  목적지는 북쪽에 있는 산이 많은 지역...

왜 산이 많은 곳이냐면 격오지일수록 연구소나 시설을 지으면 지원금이 제법 나온다고 한다.

도심과는 다르게 게이트에 대한 대비도 힘들기 때문에 안전문제가 있긴 하지만  만큼 부지 값이 저렴하니 차원기 관련 개발 시설을 짓기 좋은 입지였다.

앞으로  목적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전에, 인원이 다섯 명이어서 기차에 어떻게 앉아야할지 애매했는데.

특등석으로 예약한 덕분에 자리가 둘 둘씩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쪽 창가에는 두 자리, 다른쪽 창가에는  자리로 나뉘어져있어 애매한 인원으로 나눠앉기 좋았다.




서예린과 류하연이 한쪽 떨어진 자리에 마주 앉았고.


"나는 창가에 앉을래!"

"나는 아무데나 괜찮아."

미하일을 창가에 앉힌 뒤 나는 그 왼쪽 자리에, 그리고 주인공군은 미하일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인공군의  자리에 공석이 생기긴 했지만 이른 시간에 동떨어진 곳으로 가는 기차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서 누가 앉을 것 같지도 않았다.

돌아올 때는  자리에 다른 한명을 앉히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저번에 주인공군과 단 둘이 지방에 출장을 다녀온 뒤로 기차는 두 번째로 타보는구나.


저번엔 타자마자 잠들어서 기차를 즐기지 못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모처럼 특등석이 아깝지 않게 기차여행을 최대한 즐겨봐야지!


"미하일! 혹시 내가 잠들면 깨워주렴!"


"알았어 마마!"


기차가 출발하기 전 창가에서 밖을 보며 신나있는 미하일에게 혹시나 졸면 깨워달라는 당부도 해두었다.



준비만전이다!


...



"푸아아..."


"..."

"둘이 정말 잘 잔다..."

타브하의 부지휘관이자 이 맴버중 가장 연장자인 서예린은 열차가 출발한지 이십분만에 잠든 두 소녀를 보며 웃었다.


"그러게요. 피곤했나 보네요..."


소녀들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검은 머리의 소년은 눈가에 걸린 안경을 고쳐 쓰며 그 둘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너 원래 안경 썼었나?"

서예린은 소년이 쓰고 있는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 안경을 보고 의아한 듯 잠깐 쳐다보았다.

"원래 쓰진 않았는데... 그저께 부터 쓰기로 했어요."

"눈 나빴어?"

"아뇨 그런건 아니지만..."


선배의 말에 소년은 멋쩍게 웃으며 질문을 넘겼다.



"예전보다 철들어 보여..."

조용한 기차 속에서 책을 읽고 있던 오퍼레이터 소녀는 책을 잠깐 덮은 채 소년의 얼굴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래? ... 엇."

소녀의 말에 조금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던 소년은 눈앞에 있는 잠든 소녀 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응? 왜 그러니?"

"아...아뇨 그게..."


소년은 그 이유를 곧바로 설명하지 못하고 조금 얼굴만 붉힌 채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한 듯 고개만 돌릴 뿐이었다.


"아..."


 지휘관은 소년이 얼굴을 붉힌 이유를 금방 알  있었다.

이 모임의 구심점이 되는 하얀 소녀가 편하게 좌석에 늘어져 잠들어있던 탓에 원피스 아래의 맨 다리가 벌어져 그 안이 조금 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 역시   들었어."

오퍼레이터 소녀도 그 이유를 파악한 뒤 소년을 한번 째려본  자기 무릎에 얹고 있던 담요를 펼쳐 하얀 소녀의 무릎 위에 얹어주었다.

"이...일부러 본건 아니야."


소년은 자신의 시선에 대해 변론을 늘어놓았으나...



"...변태."


하얀 소녀의 입에서 들린 작은 중얼거림으로  변론은 무너져버렸다.



"깨...깨어있었어?!"

"으음..."


하지만 소녀의 중얼임은 깨어있던 것은 아니었던 듯 잠 중에 낸 소리였을 뿐이었다.



"잠꼬대였구나..."


소년은 하얀 소녀의 꾸짖음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란 것을 알게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둘이 자주 같이 다니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러다가 미움 받을지도 몰라."

그 광경을 바라보던 부지휘관은 소년과 다른 한숨을 내쉬었다.


"미움 받다뇨?"

소년은 선배의 조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



"... 아무것도 아니야."

하얀 소녀는 자신이 잠든 사이에 자신을 두고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를 것이다.



---



"도착했다!"

도착이다! 기차의 끝엔 오직 도착이란 결과만이 남는다!

... 이번에도 기차에서 푹 자버렸다. 정말 잠이  드는 여행을 하려면 내가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수밖에 없겠네.


왠지 모르게 담요가 무릎에 얹혀있어서 그걸 말아서 옆구리에 끼고 나왔다.

깨워달라고 부탁했던 미하일도 잠들었던 건지 기차에서 내려도 표정이 여전히 몽롱해보였다.

"정신 차리렴 미하일."


- 문질문질

"으부으..."


허리를 낮게 숙이고 걷는 미하일의 뺨을 양 손으로 잡아서 조금 정신이 들도록 문질러주었다.


"마마... 목말라."


혈액순환이 되도록 뺨을 문질러주었지만 여전히 잠은 덜 깬 듯 칭얼거리길래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입에 물려주니 잘 마셨다.




"그래서... 정말 놀러만 온건 아니지?"


원래 기차에서 설명을 해줬어야 했지만 내가 잠든 탓에 설명을 하지 못하자 서예린이 이번 여행의 목적에 대해 물었다.



"네. 타브하에 필요한 분을 만나러  거에요. 여행은 어디까지나 덤..."

"역시..."


류하연도 이렇게 될 거란걸 예상했던 것인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푸하아... 마마 언제나 바빠 보이는걸."


나에게 급수를 받던 미하일도 물병에서 입을 때곤 입가를 손등으로 한번 슥 닦았다.



"그런 거였어?"

모든 히로인이 이번 여행에 대해 납득한 가운데 유일한 청일점인 주인공군 혼자서만 얼빠진 소리를 했다.


... 정말 순수하게 놀러온거라고 생각한 거니.

"... 넌 정말 몰랐어?"


"응..."

전투는 제법 프로가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하는 행동은 열일곱 소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주인공군이다.


다른 똑부러진 히로인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청일점이다.


이렇게 칠칠맞은데 주인공이라니... 정말 내가 옆에 붙어서 챙겨주는 수밖에 없겠네...


- !

혼자서 잠깐 폴짝 뛰어 올라버렸다.


아니 또 무슨 생각을 한거야...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을 종종 해버린다. 어디까지나 보호자로써 걱정이 되서 그런 거다... 보호자로써...

"왜 그래?"

혼자 당황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예린은 잠깐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단 짐부터 내려놓으러 갈까요? 짐 끌고 놀러다니긴  그렇잖아요."

요즘 들어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을 억눌러두곤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가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



숙소까진 택시로 금방 이동 할  있었다.


이번엔  두개를 잡았다. 여자 넷이 쓸 큰 방 하나와 주인공군 혼자 쓸 작은 방 하나.


비수기라 직접 현지에 와서 잡아도   같았는데, 출장 이야기를 꺼내자 사령관님이 직접 숙소를 잡아주셨다.

그리고 여러 차례 숙박업소 관계자에게 확인 전화를 거는   수 있었다. 애들도 아니고 알아서 잘 할 텐데 무슨 걱정을 하신거지...




네명이서 같이  방은 제법 넓었다. 저번 스위트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방이다.


무엇보다 출장비용으로 처리되어서 사비가 들지 않는게 가장 매력적이다.



"짐만 내려두고 바로 점심먹고 일 하러 가볼까요?"

출장 첫  부터 놀 수는 없으니 점심을 먹고 곧바로 연구소로 가보는게 좋겠지.



"배고파 마마..."

평소엔 똑부러지면서 유난히 나와 있을 때만 자주 칭얼거리는 미하일이 배고프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한창 자랄 나이니까 많이 먹어둬야지. 좋은 마음가짐이야."


배고플  솔직하게 배고프다고 말해주는게 인원을 관리할 때 가장 편한 법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올바른 식단을 통해 잘 자라야 하기도 하고.

"... 미하일 보다 묘월씨가 아직 한참 커야할 것 같은데."

짐을 내려놓은 류하연은 나와 미하일을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남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이 맴버를 키순으로 정렬해놓으면 1,2열에 설 듯한 나와 류하연... 그래도 내가 2위다.



"그래도 내가 묘월씨보단 커."

"어? 그럴 리가요. 한번 등 대봐요."


그래도 내가 최단신이라는 건 인정할 수 없다. 로리계 히로인을 넘어 더 작은 키라니!

곧바로 류하연의 등에 바짝 붙어 등을 마주 댔다.


"보세요! 제가 더 크죠?"

우리의 키 재기를 보고 있던 서예린에게 공정한 판정을 요구했다.



"...둘이 비슷비슷한데."

"둘 다 작아!"




- 푸욱


미하일의 악의 없는 순수한 평가가 가슴을 찌른다.

"...그래요 키는 비슷할 수 있어요. 적어도 가슴은 내가 하연씨 보다..."

키로써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여성스러움은 내가  앞서가지 않을까?

가소롭다는 류하연의 시선이 나의 가슴위에 꽂혔다.



"음..."


이 맴버 중 여성스러움이 가장 앞서는 서예린은 말을 아꼈다.

 뭐가 어때서. 딱 봐도 내가 크지 않을까.


"가슴도 둘  작아!"

- 푸욱 푸욱

미하일의 악의 없는 순수한 평가가 다시 한  나와 류하연의 가슴을 찌른다...

"...미안해요 하연씨."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결국 최강자 둘이 보기엔 도토리  재기 수준이었구나...

나와 류하연의 상처뿐인 도토리  재기는 이렇게 화해의 악수로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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