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5화 〉케필 · 레브 (115/152)



〈 115화 〉케필 · 레브

그 후 점심은 숙소를 나와 근처 식당에서 막국수를 먹었다. 큰 쟁반에 가득 담겨져 나오던데 내가 먹기 좋게 가위로 전부 잘라주었다.

가위를 들고 자르는 나를 다들 한참이나 쳐다보던데  잘라줘야 하는 건가 싶어서 한번씩  잘라주자 그 시선을 거두어주었다.

역시 다 같이 즐기는 식사는 좋구나.


그 후 다시 택시를 잡아서 사령관님이 알려주신 박사의 연구소 까지 갔지만...



"...여기가 맞아?"


택시에서 내린 우리를 맞아준 것은 평일인데도 대문이 닫혀있고 경비조차 없는 썰렁한 연구소 입구였다.

분명 국내에서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연구소라고 들었는데...

"오늘 휴가인가?"


"그건 아닐거에요. 쉬는 건 어디까지나 타브하 주변 뿐..."

대문이 닫힌 연구소를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멀리 박스를 들고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어? 아가씨들 이런 외진 곳에 무슨 일이야?"

박스를 들고 있던 것은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아가씨들이라니... 엄청 낡은 아저씨들이나 쓸 법한 말이네.

"여기 일하는 분을 만나 뵈러 왔는데요."

"여기에...?  연구소에 이제 남은 사람이 없을 텐데?"

아저씨는 품에 든 박스를 내려놓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남은 사람이 없다뇨?"

"대부분 그만 뒀거든."


"...네?"

아저씨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국내에서 손에 꼽힐 규모의 연구소를 대부분 그만두다니. 오지에 있더라도 연구원들이라면 앞 다투어 들어가고 싶은 곳일텐데?


심지어 그 '박사'가 연구소장으로 있는 곳이라면 따라 갈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텐데...

"나도 오늘 두고 온 짐이 있어서 잠깐 가지러 온 것뿐이야. 아가씨가 찾으려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마 없을걸?"

지금 보니 아저씨가 들고 있던 박스 안에는 사무실에서 쓸법한 잡다한 용품들이 들어있었다.


"그럴 수가..."


설마 박사도 진작 그만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여기까지  이유가...




"누굴 찾아온 건데? 이래봬도 내가 오래 근무했으니까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알아."


상심한 나의 표정을  아저씨가 선심을 쓰듯 이야기를 꺼냈다. 확실히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알겠지...



"혹시... 박사라고 아시나요?"

"박사? 박사 누구? 여기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


스크류 드라이버를 들고 다니는 박사나 조그마한 폭탄 로봇을 두개 데리고 다니는 박사는 아니고... 연구소니까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니다. 나의 질문이 잘못되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냥 '박사' 라고 불리는 사람인데요."


내가 찾아 온 것은 그냥 '박사'다.


"... 아가씨 설마 연구소장님 찾는 거야?"

방금 전 까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아저씨는 연구소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다.

"네 아마  분이 맞을거에요."

사령관님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일반 연구원이 아니라 이 연구소의 소장이라니 아마 연구소장이 맞겠지.




"... 그 괴짜를 뭐 때문에 찾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엮이지 않는게 좋을 거야."

아저씨의 말은 정중했지만 표정엔 조금 혐오가 담겨있었다. 나에 대한 것은 아니고 아마 연구소장... '박사'에게 향하는 혐오겠지.





"난 충고했어... 연구소장님이라면 안에 계셔."


"고맙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저씨는 내려놓은 박스를 들고 저 멀리 걸어가 버렸다.

딱 봐도 수석 연구원급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 진저리를 치고 그만두다니... 대체 박사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


'박사'... 연구소장님은 이 안에 계시다네요."

아까 그 연구원은 박사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우리에겐 친절하게 연구소장실 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었던 덕분에 연구동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이상한 사람일  같아..."


류하연은 아까 입구에서 들었던 박사의 이야기 때문에 조금 불안해보였다.



"원래 연구원들은 조금 괴팍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에요... 설득이 끝나면 금방 나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연구기관의 탑을 스카웃하러 가는데 전문 헤드 헌터도 아니고 고등학생 다섯이 가다니... 웃기는 조합이긴 했지만 타브하의 사람은 입구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지금처럼 아무도 남지 않는다면 막무가내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연구동 내부는 생각보다 빈 곳이 많았다. 마치 방학을 맞은 대학의 연구동처럼 아무도 없고 썰렁한 돌바닥의 냉기만 조금씩 올라올 뿐이었다.

보통 이런 전문 연구단지는 사람이 드글거리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사람이 없었다기 보다는 원래 많았지만 계속 빠져나간 듯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연구동의 앞에는 문이 굳게 닫힌  자물쇠가 걸린 격납고도  개씩 보였다.

"정말 이런 곳에 우리가 찾는 사람이 있는 거야?"


"처음부터 아무도 없던 곳 같은데..."

생각보다 더욱 어수선한 풍경을 보고 다들 당황한  의심을 품었다.


"그 아저씨 말을 믿어봐요. 분명 이 안에 한명쯤은 있겠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역시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 자존심 높은 박사가 이런 푸대접이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얌전히 지낸다고?


누가 약점을 잡더라도 스패너로 후려쳐버리고 도망칠 기인이 자기 자존심을 꺾어가면서까지  일이라도 있는 건가...?



 복도를 걸어 가장 안쪽에 있는 연구소장실이 보이기 시작하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 끼익


그 기인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하던  연구소장실의 문이 먼저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서류가 가득한 박스를 들고 있는 자기 몸집보다 커다란 하얀가운을 입은 검은 머리의 소녀.

우리 또래로 보이는 소녀의 코끝에는 거의 미끄러져 벗겨질 듯 한 큼직한 안경이 걸쳐져 있었다.

그 소녀는 우리를 보지 못한 듯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무거운 서류 박스를 들고 걷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힛!"



촤악!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던 소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소녀는 깜짝 놀란 듯 당황하는 게 보이며 서류 박스를 놓쳤다.


"조심하세요!"

안경을  소녀가 바닥에 넘어지면서 박스가 하늘로 솟아오르며 안에  서류뭉치가 흩어질  했으나...



- 슈슉 슉

주인공군과 미하일이 떨어지기도 전에 곧바로 서류뭉치와 박스를 회수했다. 역시 적합률이 오르니까 운동신경도 오르는구나...




착착

"자 여기."


서류를 회수한 미하일은 주인공군이 들고 있던 빈 박스에 서류를 담아 주었다.

"괜찮으세요?"

주인공군은 서류박스를 안경소녀에게 다시 건네주며 소녀를 일으켜 주었다.

"고... 고맙습니다. 사람이 있는지 몰랐어요."


안경소녀는 자신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주인공군에게 조금 얼굴을 붉히며 서류 박스를 받았다... ...

"이런 곳 까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안경소녀는 조금 진정한 듯 우리를 향해 용건을 물어보았다. 아무도 없는 연구소에 십대 애들이 찾아온 게 이상해보이겠지.



"'박사'를 찾으러 왔어요."


"박사라면 저희 연구 소장님..."


안경소녀는 입구에서 박사를 물어볼  박사가 한 둘이 아니라고 대답해주었던 선임 연구원과는 다르게 곧바로 연구소장을 말하는 것을 알아챈 듯 했다.

"저 안에 계세..."

'자네도 해고야!'

"히익!"


안경소녀가 박사의 거처를 말해주던 중 조금 열린 문 틈 사이로 중년 아저씨의 큼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하하... 이제는 전 연구소장님이네요..."


안경소녀는 순식간에 해고를 당해버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태도로 이야기 했다.


"괜찮니?"


순식간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소녀를 향해 주인공군은 조금 위로를 담아 이야기를 건넸다...




"괜찮아요. 이제 제가 마지막 연구원이었을 거예요... 멀리서 와주신 것 같지만... 연구소장님 기분이 지금 아주 별로이신 것 같은데... 다음에 찾아와주실  있을까요?"


안경소녀는 정중하게 우리에게 이 곳에서 돌아가 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어쩌지 묘월아?"

주인공군은 난처한 듯 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까지는 혼자 알아서 다 잘하더니 이제와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네...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진 않으실 거죠? 차라도 내주세요."


"차 정도라면..."


곧바로 돌아가 달라는 안경소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조금 더 눌러앉기로 정했다.

그 쪽에서 우리를 환영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가 눌러앉아있으면 되겠지.



---



안경소녀를 따라 어수선해 보이는 응접실로 따라 들어왔다.

소파도 어질러진 채 치워지지 않았고 여러 집기도 비워져있는게 임대계약이 만료되어서 방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무실 같았다.


"내어 드릴만한게... 닥터페퍼랑 닥터페퍼랑 닥터페퍼 뿐이네요."


안경소녀는 응접실의 냉장고를 가득 채운 검붉은 캔 다섯 개를 꺼내서 늘어놓았다.

"네?"

안경소녀의 선정 메뉴에 서예린은 질린 듯한 표정을 보였다.

손님에게 내주는 음료로 커피나 차도 아니라 닥터페퍼라니. 역시 연구원의 음료라는 건가...



"믹스커피나 녹차같은거 없나요...?"

서예린은 희망을 놓지 않은 듯 다시 한번 물어보았으나...

"조금 남아있긴 했는데... 선임연구원분이 나가시면서 전부 들고가버리셨어요..."

정말 부도직전의 회사랑 다를 게 없네. 사무실 집기마저 들고 가버리다니...

결국 우리 앞에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다섯 개의 검붉은 닥터페퍼 캔이었다.


- 치익

뭐 난 닥페 좋아하지만.

닥페를 따서  모금 들이키자 목을 넘기는 알싸한 체리향이  음료의 묘미다. 호불호는 갈린다지만 적어도 나에겐 호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불호였는지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왜 그래요? 표정이 못 마실걸 마신 사람 처럼..."

"아니... 너 혼자  마시는  아닐까."

주인공군도 다른 셋 처럼 닥터페퍼는 입에 맞지 않은 건지 안경 너머로 눈이 조금 찌푸려지는게 보였다.

"마마... 이거 이상한 단물절임같아..."


미하일. 음식을 가리면 못쓴단다.




"...이상해."

"탄산은 조금... 죄송합니다."

류하연과 서예린도 마시지 못하겠던 건지 책상위에 한모금 마신 캔을 그대로 올려두었다.


결국 날 빼고 다들  모금 정도만 마시고 캔을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나를 제외하면  음료를 대접해준 안경소녀만 잘 마시고 있었다. 역시 연구원답네.



"...여러분은 무슨 일로 소장님을 찾아오신 건가요?"


"그게..."


"타브하의 일 때문이에요."

안경소녀에게 사연을 설명하려던 주인공군 대신 내가 먼저 선수를 쳐서 대답했다.


어차피 타브하의  때문에 온 거라면 직설적으로 나가는게 서로에게 편하겠지.




"타브하라면... 베레시트 1호기가 있는 곳이군요."


안경소녀의 눈 끝이 살짝 떨리는  보였다.


"네 맞아요. 베레시트를 시작으로 4세대 시험기를 운용중인 테스트 부대... 였죠. 요즘은 조금 달라진  같지만요."

"...타브하가 연구소장님께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요."

안경소녀는 타브하의 이야기를 꺼낸 나를 조금 경계하듯 안경을 고쳐 쓰곤 나를 조금 노려보는 듯 했다.




"연구소장님... '박사'가 참여했던 베레시트 계획의 1호기 말인데요."


"아. 1호기 말인가요?"

1호기의 이야기를 꺼내자 안경소녀의 조금 표정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이 소녀에게도 1호기의 이야기는 넘겨들을  없는 주제였던 것 같다.


"1호기의 정비에 조금 도움이 필요해서요. 아무래도 개발에 참여한 분이 도와주셨으면 해요."

"그건 어렵겠네요."


안경소녀는 나의 이야기를 듣자 고민도 없이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연구소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거지.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소장님께 여쭤봐도 같을거에요. 소장님은 타브하의 사령관이란 분을 아주아주 싫어하시거든요."


안경소녀는 반쯤 남은 닥터페퍼 캔을 책상위에 비스듬히 세워 굴리다가 마저 한 모금을 마셨다.


"어째서 사령관님을 싫어하시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소장님은 늘 10년 전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야기는 거기까지. 아무튼 소장님이 타브하로 가실 일은 없을거에요."


안경소녀는 마치 자신이 연구소장의 의견을 대표하듯  잘라 이야기를 마쳤다.


기껏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박사' 본인이 아닌 대리인의 선에서 거절하다니. 굉장히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럴 수가..."

나와 안경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곳에 온 이유가 자신의 1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 주인공군은 거절답변에 조금 침울해보였다.

"박사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아. 아까 이야기 했던 1호기 있죠?"

"네. 1호기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안경소녀는 눈 끝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거 부서졌어요. 산산조각으로."

"...네?"

안경소녀의 안경이 주륵 흘러내려 코끝에 간당간당하게 걸쳐졌다.


---


"팔 다리가 떨어지고 머리도 뚝 떨어져서 토르소가 돼 버렸네요. 뭐 몸통도 멀쩡하다곤 못하겠어요."


"...대체 1호기가 왜 그렇게  거죠?"

파괴된 1호기의 이야기를 꺼내자 나의 이야기를 듣던 안경소녀의 눈이 조금 매섭게 변했다.


자칫 잘못 대답하면 저 소녀의 화를 돋굴 위험이 있어 보였다.

"그건 제가..."

"글쎄요. 1호기가 워낙 허접하게 만들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주인공군이 뭔가 말하려고 할 때 나는 그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비웃었다.

"묘월아!"

"묘월씨...!"


나의 도발적인 말투를 들은 주인공군과 류하연은 놀란  소리쳤다.

"... 지금 뭐라고 하신 거죠?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  말해주시겠어요?"

안경소녀는 안경을 고쳐쓰고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틀린 말을 한건 아니잖아. 내장된 하브릿 시스템을 견디지 못해서 부서지는 기체라니. 허접한게 맞잖아?"

손에 들린 닥페를 여유롭게 한 모금 목으로 넘기며 당연한 듯 이야기를 꺼냈다.

"필리스티아 베이스에서 건조된 2호기와 다르게 결함기가 맞아."

"맞아! 2호기는 강해!"


나의 이야기를 옹호해주듯 옆에서 미하일이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감히... 1호기를... 소장님이... 만드신걸... 결함품이라고 하는건... 굉장히 무례하네요..."

안경소녀는 손에 들린 닥페캔을 한 손으로 우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왜 우리를 만나지 않으시는 건가요. 무서워서 숨은거겠죠? 자기 밑천이 드러나니까 직원을 자르고 있는거고."


1호기를 비난한데 이어서 연구소장... 박사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까지 곁들였다.



"돌아가자 주혁아. 이런 곳에 더 이상 볼일은 없어."

캔을 책상위에 내려놓고 일어나서 주인공군의 셔츠 옷자락을 쥐어 자리에서 일으켜주었다.




"묘월아..."


평소와 다른 당돌한 나의 행동에 당황한  한 주인공군은 어쩔 수 없이 나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주인공군이 일어나자 다른 히로인들도 나의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품질 보증이나 부탁하려고 왔는데... 이래선 안 되겠네요. 그냥 필리스티아 베이스에서 하나 더 찍어달라고 하는  낫겠어요."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연구동을 나서기 위해 문을 열었다.



"역시 1호기는 2호기에 비해  없이 모자란 결함품이네요."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비아냥을 가득 담아서 한마디 더 던져주었다.


"...취소해."

문을 열려던 찰나 등 뒤에서 안경소녀의 이가 갈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걸려들었다.


"뭘 취소하라는 거죠?"


"1호기가... 연구소장님의 실력이 허접하다는 걸... 취소해요!"

안경소녀는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싫어요."

안돼요. 취소 안해줄거에요.  발언은 소중해요. 취소  할거에요.


타브하를 대표해서 찾아온 우리를 먼저 모욕한 것은 저 쪽이다. 모욕엔 모욕으로 대답해주는 수밖에.



"어째서... 못하겠다는 거죠?"

"박사의 실력을 믿지 못하겠으니까요. 결함품만 찍어내고 최근엔 활동도 없었잖아요?"

단순히 국방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외부에 개발 포트폴리오가 공개가 되지 않은 것뿐이지만. 군과 관련없는 제 3자가 보기엔 박사는 1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나 다름 없었다.


"...아니에요! 연구소장님은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계셨다고요!"

"거짓말 아닌가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기엔 아무도 없잖아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면 한창 많은 인원이 움직일 때인데 이 연구소에는 '박사'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이미 완성되었으니까  필요 없어진거에요! 케필·레브 프로젝트의 매력을 모르는 멍청이들 따위!"

안경소녀의 외침을 듣고 잠깐 주춤했다.


케필·레브...? 그런 프로젝트도 있었나? 급조했다고 하기엔 너무 장황한 이름인데...


하지만 여기에서 동요를 보여선 도발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게 잘난 프로젝트라면 우리에게도 보여주실 수 있겠죠?"


"네! 보여드리겠어요! 프로젝트 케필·레브는 차원기 개발 모토를 바꿀 새로운 시대의 플랜이에요!"

"좋아요. 그렇게 자신 있다면 봐드리도록 할게요. 안내하세요."


안경소녀는 나의 도발에 순순히 넘어가서 길 안내를 위해 먼저 문을 나섰다.


어디 한번 봐볼까.

내가 모르는 박사의 역작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