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6화 〉케필 · 레브 (116/152)



〈 116화 〉케필 · 레브

우리는 먼저 앞서간 안경소녀를 따라 조금 떨어져 뒤를 걸었다.


"영입하러 온 사람의 조수에게 무례하게 굴어도 괜찮은 거야?"

나와 안경소녀의 대담을 말없이 지켜보던 서예린은 이제서야 나에게 아까 전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괜찮아요."


"무슨 자신감으로..."


"우리가 데려오려는 사람은 엄청나게 자만한 사람이에요. 그 자존심을 조금 꺾듯 도발할 필요가 있어요."

이쪽에서 와달라고 고개를 숙여봐야 오히려 그 고개를 땅으로 더 밀어낼 사람이 바로 박사다.

그러니 굽히기보단 오히려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자신이 있으면 그 쪽이 와보라고 도발하는 게 오히려 더 알맞은 영입방법이다.

...물론 시나리오 시간대에 맞추면 알아서 들어올 인재지만 지금은 1호기가 완파에 가까운 상태니까 어쩔 수 없는 전략이다.

"일부러 그랬다는 거지?"


"네."


"...만약 거절당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러면... 미하일을 시켜서 제압한 뒤 묶어서 데려가야겠죠."

"나 그런거 잘해!"


제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미하일은 공중에서 주먹을 쉭쉭 휘두르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냈다.



"여차하면 부탁할게 미하일."

발꿈치를 들어 올려 조금 높은 위치에 있는 미하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기뻐보였다.



"...너도 정말 생긴 거랑 다르게 무섭구나."

약간 질색하는  한 서예린을 뒤로한 채 계속 안경소녀를 따라 걸어 나갔다.



...


연구동을 나와 굳게 닫힌 격납고 앞에 도착했다.


안경소녀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여러 겹으로 둘려진 쇠사슬 끝에 달린 자물쇠를 열려고 했지만, 옥외에서 비를 맞아 녹슨 것인지 제대로 열리지가 않았다.

"또 내가 열까?"

미하일이 저번처럼 킥으로 문을 열려고 자세를 취했다.

미하일의 힘이라면  될 건 없어보이지만... 남의 연구시설 문을 함부로 부수는 건 조금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 부스럭

미하일과 둘이 자물쇠를 지켜보고 있던 도중 안경소녀는 가운 아래로 허벅지 옆에 매여 있는 공구 주머니에서 큼직한 스패너를 꺼냈다.


- 까앙! ... 스스슥


그리고 녹슨 사슬을 스패너로 한번 크게 내려치자 녹이 슨 부분이 부서지며 사슬이 주르륵 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힛..."

조용한 격납고 앞에서 크게 울린 철과 철의 마찰소리에 류하연은 깜짝 놀란 듯 조금 작은 소리를 내었다.

"뭘 멍하니 보고 있어요. 얼른 들어오세요."

문을 연 안경소녀는 격납고의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간  우리를 돌아보았다.

---


격납고의 안은 거의 한 달 정도 방치된 것처럼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천장 높이 달린 조명 아래로 두꺼운 천이 뒤집어 씌워져있는 물건이나 출고작업이 완료된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들이 널려있었다.



차원기를 격납하는 행거로 보이는 곳엔 시험용 프레임도 제법 널려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던 것은 케루브의 골격으로 보이는 프레임에 서브암을 두개 더 단 것이나, 다리 부분에 휠을  것도 있었다.



다양한 환경에서 운용을 염두에  듯 기존 2세대 프레임을 개량하던 작업이 방치되어있는게 보였다.

"저건..."


"A3 유닛이네."


1호기가 파손되기 직전까지 알뜰하게 사용했던 A3 유닛의 어깨 장갑판도 보였다.


"...타브하에 그런 낡아빠진 게 아직도 있어요?"


나와 주인공군의 이야기를 들은 듯한 안경소녀는 조금 질색하는 표정으로 한번 A3 유닛을 올려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저 긴 격납고의 복도를 걷다가 한 쪽 구석에 갈색 천으로 둘둘 감긴 출고 직전의 인간형의 프레임이 눈에 띄었다.

그 아래에는 자그마한 명패가 달려 있었다.


[H.S.A - GOMER frame]



"고멜 프레임?"

천으로 감겨있어 그 실루엣밖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여태까지 봐오던 프레임들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실루엣 아래에 있는 것은 기계라기 보단 약간 더 사람의 형상에 가까운... 얼핏 보면 교단의 성체와도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허리 부분을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격납고에 오기 전에 들었던 이름인 케필·레브 처럼 내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다...

4세대? 아니면 5세대 프레임 개발 계획에 쓰이는 건가?



"다른데 시선 팔지 마세요! 제가 보여드릴 건 저런 것 보다 훨씬 뛰어나다구요!"

그 앞에 멈춰 서서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했지만, 안경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정체불명의 프레임의 실루엣만 보더라도 케루브보다 훨씬 진보한 수준인데... 박사가 만들던 건 얼마나 대단한 거지?


...



격납고의 안쪽으로 도착하자 격납고안에 커다란 개폐식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가장 엄중한 곳에 보관할 만큼 밖에 널려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물건은 아닐거란 예감이 들었다.

안경소녀는 패널 앞에 서서 보안단말에 손바닥을 얹고 홍채를 스캔하는 등 엄중한 보안절차를 거쳤다.

아까처럼 스패너로 내려찍진 않는구나.

"보통 연구원에게 저 정도 권한까지 줘?"


"글쎄요."

서예린의 질문을 적당히 넘겼다.

보안이라고 해봐야 적당히 1q2w3e4r이나 1qa2ws3ed를 쓰는 곳도 많은데 저 정도면 엄중한 거지.

- 삐익 ...철컹

잠시 후 보안인증이 완료된 듯 짧은 비프음과 함께 철문이 위 아래로 열리기 시작했다.




- 폴짝

철문이 거의 다 내려갈 때 쯤 철문을 가볍게 폴짝 뛰어 넘었다. 몸이 가벼우니 이런걸 거리낌 없이 뛰어넘을 수 있는건 좋네.


나를 따라 주인공군과 미하일도 가뿐히 철문을 뛰어넘어 들어왔지만 나머지 세 명은 이 정도도 넘어오지 못하는 것인지 철문이 마저 내려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점프 뛰세요. 부 지휘관과 오퍼레이터님.



나머지  명이 들어온 후 한 쪽에 조명이 들어오자 눈앞에 거대한 형상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 강철로 이루어진 프레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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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안경소녀가 다른 프레임에 정신이 팔린 나를 보채서 데려온 이유가 있었다.

"대단해..."

눈앞에 보이는 푸른 강철로 이루어진 프레임을 보고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프레임이야 말로 베레시트에 쓰인 4세대를 뛰어넘는... 4.5세대의 프레임이라 볼  있었다.



"이게 바로  연구소의 역작이에요! 10년 전에 만들어진 조잡한 카피와는 다른 완전한 오리지널! 쉐모트 프레임!"


나의 옆에  안경소녀는 저 강철의 프레임... 쉐모트 프레임을 자신만만하게 자기 업적인  마냥 자랑을 늘어놓았다.



"과연... 베레시트의 다음에 오는 것은 쉐모트지."


굉장히 건방질 수 있는 이름이지만 베레시트를 만든 사람이 만든 다음 작품이니 쉐모트의 이름을 써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박사가 이 프레임만 겨우 챙겨 타브하에 먼저 합류하게 되는 흐름인데. 시나리오에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개발이 막 끝난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시점이면 1호기뿐만 아니라 2호기도 일찍 개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게 어디가 대단한 거야?"

감상에 빠진 나와 다르게 정작 나의 옆에 선 주인공군은  프레임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았다.


"직접보고도 몰라?!"

"이걸 보고도 모른 다구요?!"

나와 안경소녀는 그 얼빠진 소리에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뭐...뭐가 다른 거야?"

"잘 봐봐. 프레임에서 쓸데없이 무게를 차지하는 공간은 절삭이 되어있어. 허벅지 안쪽이나 팔 상박 안쪽 같은데..."

"저것만으로 무게를 30%는 줄일  있죠."

내가 주인공군의 옆에 서서 프레임을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자 안경소녀가 이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저 부분. 자세히 보면 여러 부분을 용접한 게 아니라 통째로 사출했어... 프레임이 단순한 뼈대의 역할에서 그치는  아니라 외장의 역할도 하는거야."

푸른 강철의 프레임. 쉐모트 프레임은 뼈대의 일부가 외장 장갑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끔 어깨나 허벅지 부분의 장갑의 일부로 유용되어 있었다.

"모노코크 구조를 운용한거에요."

"...대단한 거야?"


여전히 설명을 들어도 정작 주인공군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와 같이 기술 박람회까지 다녀왔으면서 아직도 기초 프레임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건가...

"엄청 대단한 거야!"


"이 프레임에 담긴 철학을 아시겠어요?"

의외로 얘랑 죽이 잘 맞네. 역시 닥터페퍼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구나.


"마지막으로... 어깨와 골반쪽을 보면 조인트 결합이 느슨하게 설계되었어."

"느슨하면 위험한 게 아니야?"

"오히려 반대야. 작동이상이 생겼을  곧바로 분리할 수 있고... 이걸 응용하면 전투 중에도 새로운 부품으로 바로 교환할 수 있어."


기존 베레시트 프레임은 골격이 너무 꽉 물려있던 탓에 팔이나 일부 장갑에 기능마비가 생기더라도 곧바로 분리할  없었다.

하지만 이 프레임을 사용한다면 예전에 유백의 란테고스와 싸웠을 때처럼 꼼짝도 할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비 교체가 오직 격납고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혁신적인 개선점이다.



"으음..."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지만 정작 설명을 듣는 당사자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번에 2호기... 골야트의 팔을 장비했을 때 격납고에서 장비하고 출격한 거지?"

"맞아. 마마."


"...마마?"


안경소녀는 미하일의 마마 발언에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저 프레임을 사용하면... 골야트의 팔을 필요에 따라 전투 중에 바로 장비할 수도 있는거야."

옵션 유닛을 사용하기 위해 일단 정비반에 돌아와서 교체할 필요 없이 현장 조달만으로 다양한 유닛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느슨한 결합이 오히려 프레임의 강한 종속성을 막아주어 자유로운 유닛 교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단한 거구나."

 파일럿은 영혼 없이 대답했지만 나는 이 프레임의 가치를 높게 샀다.


그래 이런걸 만들려면 긴 시간동안 은둔할 만도 하지. 하루이틀 걸려 만들어질 프레임이 아니다.

"대단하죠? 굉장하죠?"


안경소녀는 쉐모트 프레임 앞에 서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적당히 도발하고 박사만 채가려고 했지만 이런걸 만들었다면 인정해줄 수밖에 없겠네.



"네 확실히 대단하네요. 아까의 발언은 사과드리겠어요."


사과했지만 별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럼  프레임을 적용한 시험기도 물론 있겠죠?"

"물론이죠! 그게 바로 케필·레브 프로젝트에요!"



- 삑

안경소녀가 의기양양하게 손에 들린 스위치의 버튼을 누르자. 가장 안쪽의 조명이 들어왔다.


이게... 쉐모트 프레임이 적용된 시험기라고?



"어때요! 이 우아한 디자인! 할 말을 잃으셨죠?"


안경소녀는 의기양양해 했다.


나는 확실히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우리 모두가  말을 잃었다고 밖에  수 없다.

...박사는 내가 생각하던  이상으로 정신이 나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명이 들어오고 그 아래에 보인 것은...

금색의 철갑으로 이루어진 사자였다.


그래. 라이언.

말 그대로 거대한 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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