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8화 〉케필 · 레브 (118/152)



〈 118화 〉케필 · 레브

박사가 만든 말도 안 되는 장난감을 타는  나 혼자로 족했지만 미하일과 주인공군은 굳이 따라 나와 주었다.

주인공군은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푸른 용을, 미하일은 본인의 강력한 희망에 따라 붉은 독수리를... 그리고 내가 결함투성이 금색 사자에 타게 되었다.


변변한 파일럿 슈트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사복을 입고 탑승한 게 조금 걸렸지만 지금은 그런걸 가릴 여유는 없었다.

탑승 완료. >


< 나도 탑승 완료~ 생각보다 안이 넓어! >


다른 둘은 이미 각자 기체에 올라탄 듯 격납고 안의 방송망을 통해 목소리가 들렸다.

< 거기 하얀 소녀! 당신은 왜 아직도 안 타고 있는 건가요? >

서예린과 류하연과 함께 안전한 쉘터 안쪽으로 들어간 안경소녀가 아직까지 탑승하지 못한 나를 콕 지적했다.



"아니... 타라고 해도 이거 어디로 타야하는데..."

사실 나도 바로 탑승하려고 했지만... 이 금색의 사자는 조종석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 아래쪽인가 싶어서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보이는 것은 탄탄한 금속의 흉갑 뿐...




<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만들어 두었습니다! >


"가장 눈에 띄는 곳이라고 해도... 사자 머리 밖에... 아 설마."


< 그 곳이 조종석 입니다! >

정말... 저기로 들어가라고?

- 삑! 철컹!




나의 앞으로 고개를 숙인 사자의 입이 열렸다. ... 정말 저기 있긴 하네.

모두의 시선이 카메라 렌즈 너머로 느껴지는 기분이 들어서 부끄러워진 바람에 후다닥 들어갔다.




...



입구는 거지같았지만 안은 의외로 쾌적했다.

장난감이라고 해도 기본 프레임은 신형이라 그런지 베레시트 보다  쾌적한 느낌이다.



테스트 기동때 따로 제거를 하진 않았던  시트나 계기판의 비닐도 뜯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였다.


- 부욱 부욱


이런걸 보면 꼭 뜯고 싶어진단 말이야.

< 무... 무슨 짓인가요! >

"아이 해브 컨트롤."



스피커 너머로 안경소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해주고 기동 준비를 시작했다.






가운데 있는 패널 위로 손을 올리자 금방 사용자 등록이 완료되었다.

모니터 위로 CORE1 과 CORE2가 표기되었다. ...정말로 코어를 두개나 박았구나.



시동 버튼 위에 손을 얹자 잠깐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전임 테스트 파일럿이 기절해버렸다는데... 과연 내가 기동시킬 수 있을까...

- 위이잉

눈을 질끈 감고 시동 버튼을 누르자 코어가 돌아가는 소리가 조종석 안에서 작게 울렸다.


"어? 멀쩡하네?"


코어 두개의 부하를 못 견딜 줄 알았지만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 앗! 성공했어요! 이게 되네요! >

기체의 정상 제어에 성공하자 안경소녀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렸다.

기동 못할  상정해두었다니... 하드웨어 개발로는 몰라도 소프트 개발로서는 못마땅해 보이는 발언이었다.



< 이쪽도 준비가 끝났어. >

나도! 나도 이제 날거야! >


주인공군과 미하일 쪽도 다행히 기동에는 문제가 없었던  같다.




< 좋습니다! 소년 소녀들! 이제 전장으로 나설 시간입니다! >

세 기체 모두 출격 준비가 끝나자 안경소녀는 엄청 들뜬 듯 스피커 너머로 흥분한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가 끝난 건 좋은데... 여기 나갈 곳이 없지 않니?"

출격을 염두에 둔 격납고가 아니라 단순 보관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 상태로 나서기 위해선 한대씩 조심스럽게 운송용 레일을 타고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출격이 너무 늦어질 텐데...


 분씩 앞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조심히 나가신다면... >

"얘들아."

응? >

왜? >


"그냥 천장 부수고 나가렴."

< 예...? >

스피커 너머로 안경소녀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 알았어 마마! >

- 콰가가가각!!

나의 허가와 함께 미하일이 탄 붉은 독수리가 강철의 날개를 펼치고 천장을 부수며 날아갔다.



< 우와! 진짜 날고 있어! 정말 날고 있어!!! >


순식간에 격납고의 천장을 부순 미하일이 넓은 하늘을 비행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 무.. 무슨 지거리에요! >

"긴급 상황이잖아. 어쩔  없지?"

최신 프레임을 사용해 거지같은 기체를 3대나 만든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다.



< 그...그럼 나도 방금 열린 곳으로 나갈게.>


- 콰앙!


주인공군이 탄 푸른 용도 천장을 통해 나가려고 제자리에서 조심히 뛰어 올랐지만 양 어깨에 달린 긴 포신 때문에 무너진 천장이 더욱 무너졌다.



< 아... 아아... 나의 연구소가... 내 성역이... >

"연구소장님거라며?"

절망한 듯 한 안경소녀의 통신에 일부러 이죽거리며 말했다.


둘이 나갔으니 이제 나도 슬슬 나갈 때 인가...

"베타니아! 출격합니다!"


< 네?! 방금 당신 베타니... >




안경소녀는 무언가에 놀란 듯 통신 너머로 놀란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 채 격납고의 대문을 향해 달렸다.


- 콰아아앙!

이미 무너진 천장 대신 두꺼운 격납고의 철문을 사자의 머리로 들이받아 문을 부수었다.


금색의 사자는 태양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아무런 습격이 없었지만 완전히 무너져가는 격납고를 등진 채...



---




게이트가 열린 것은 연구소의 바로 위라고 들었지만 연구소 부지가 넓었던 덕분에 제법 거리가 있었다.

< 연구소 쪽엔 아무도 없으니 조금 거칠게 움직이셔도  거에요... >


격납고를 부순 나를 의식한  안경소녀가 힘없이 말했다.


"연구소장님은 대피 시키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 소...소장님은  도망치셨을거에요! 아..아하하! >

망해가는 연구소여서 아무도 없어서 누군갈 대피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게 매력적이네.


아직  멀리 있는 차원수는 우리를 인지하지 못한 듯 갑각형 세 마리가 낮게 바닥을 기고 있었다.


와아 아아아 !!! 신기해 !!! >


미하일은 벌써 조종에 익숙해진 듯 공중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었다.



< 포격 해볼까? >

중형 차원수 세 마리의 대처에 대해 고민하던 중 주인공군이 먼저 나에게 제안을 했다.


멋대로 저지르지 않는 점은 제법 어른다워졌네.


"먼저 물어본 건 잘했어. 갑각형이라 포격이 안 통할거야..."


갑각형의 갑피는 일반적인 라이플로 뚫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 폐쇄도시의 방벽 위에 올라가있던 포 정도가 아니면 제압하기 힘든 상대다.



통합니다. >


"네?"


통한다구요. >

나와 주인공군의 통신 사이에 안경소녀가 끼어들었다.

< 통한다는데...? >


왠지 모르게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다.



"...그래 그러면 한번 쏴봐. 한번 쏘고 통하지 않으면 저기 연구소 쪽으로 쏴버려."

이봐요! >


< 쏘... 쏠게. >



- 삑

결국 고민하던 주인공군은 갑각형 차원수를 향해 포격을 결정한 듯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 기이잉...

언덕 위에 올라가있던 푸른 용의 양 어깨에 달린 포신이 언덕 아래를 기어 다니는 차원수를 향해 겨누어졌다.

- 콰아아아아!


양 어깨에 달린 포신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 그오오오오옥!!!

포격에 희생  갑각형 차원수의 갑피가 그대로 녹아... 아니 증발해버렸다.




"...미쳤어."

실탄 라이플이 튕겨나가는 갑각형의 갑피를 녹여버리다니. 만약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사용하면 징계를 피할  없는 수준의 화력이다.




< 보셨죠! 통한다니까요! >

으...응 대단하네... >


주인공군은 안경소녀의 자랑을 떨떠름하게 대답해주었다.



"화력은 인정해줄게... 나머지 두 마리도 잡아봐. 움직임이 느리니까 가능할거야."

그건 무리입니다. >

"뭐?"

< 포신은 일회용이에요. >


"...뭐?"

< 모니터에 포신 위로 빨간 불이 들어왔어... >

한번 발사한 것 가지고 사용할 수 없게 되다니...



"...다른 무기는?"


< 아쉽게도  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과 예산이 있었더라면... 히힛... >

통신 너머로 안경소녀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결국 다른 무기는 없다는 거구나...

< 미안해... >

"네 잘못이 아니잖아. 사과할 필요 없어."

응... >

잘못한 것은  안경소녀인데 왜 주인공군이 사과를 하게 만든단 말인가. 점점  소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원 요청은 아직 인가요?"

< 근처 부대에 연락을 하긴 했는데... 거리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해. >

통신망 너머로 서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두 마리는 우리 손으로 해결 해야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러면 미하일은..."

주인공군이 전투 불능이라면 싸울  있는  이제 나와 미하일 뿐.


< 와아 아아아 !!! >


게이트의 여파로 붉게 물든 하늘을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붉은 독수리...


혼자서 비행 시뮬레이션을 즐기고 있구나. 완전한 비행은 불가능해서 이따금씩 땅으로 내려왔다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탓에 아스팔트 바닥 중간중간이 금이가 깨져가고 있었지만...


애초에 무장도 없는 전투기나 마찬가지인 기체니 지금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어쩔  없지. 내가 나서볼게."



---

- 철컥 철걱...


금색의 사자가 땅 위를 달린다.




원본이 된 동물처럼 네 발로 움직이는 기체지만 이 것은 동물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사람 한명이 등 뒤에 허리를 감은  같이 달리는 느낌이다.

사자탈춤을 추는 사람이 이런 느낌인걸까.


어느덧 도착한 언덕 아래로 갑각형 차원수의 등이 보였다. 맹수가 사냥할  어떤 느낌이었지? 이런 느낌이었나?



- 콰드득!


- 고오오옥!


언덕 위에서 뛰어내려 사자의 앞발로 차원수의 갑피를 긁어내리자 너무나도 쉽게 두꺼운 갑피가 찢겨나갔다.



"파워는 진짜네..."

앞발에 달린 발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던  갑각형 차원수의 외피를 확실히 찢었다.


이 발톱만으로 코어웨폰과 비슷한 수준의 출력인건가...



- 그 으윽...


하지만 치명상은 입히지 못했던 듯 외피가 찢긴 차원수와 다른 차원수가 이 쪽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반응이 없다가 공격을 받으니 경계하다니... 설마  외형이 동종의 차원수라고 착각한 건가?

- 휘이익! 퍼억!

갑각형 차원수가 몸을 돌려 두꺼운 꼬리를 휘둘렀지만 재빨리 몸을 빼낸 덕분에 피할  있었다.


기체의 특성을 모를 때는 히트 앤 런이 질릴 정도로 유효한 전략이다.


입만 산 건 아니었군요! 실력은 인정 해드리겠어요! >

이 기체로 치명상을 입히자 안경소녀는 감탄한 듯 찬사를 보냈다.



"입에 발린 말은 됐어! 다른 무장은 없는 거야?"


역시 시험 기체다보니 무장은... >

"기체엔 없더라도 연구소엔 뭐라도 있을 거 아냐! 이 기체로 죽이는건 무리라고!"


평소에 고양이처럼 네 발로 생활해봤으면 모를까. 몸에 익지 않는 특이한 조작방식의 기체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검이라도 한 자루 있으면 잡을 수 있을 텐데...



...쳇. 알겠어요. 하나 보내드릴게요. >

 녀석 지금 분명 혀 찼지?




- 끼이이이익!

나와 차원수 사이로 바퀴가 달린 녹색의 트레일러 박스 하나가 밀려왔다.


"이건?"


< 시험용 무장 운송 컨테이너에요. 박스 위의 붉은 부분을 발로 밟아보세요. >


발로 밟으라니... 이렇게?

사자의 앞발을 들어 조금 좁아 보이는 붉은 버튼을  눌렀다.

- 파칵!

버튼이 눌린 컨테이너 박스는 양 옆으로 갈라져 열리며 넓적한 대검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놀라버렸다.


- 파샤앗! 캉!


잠깐 놀라는 사이 자동 동작에 의해 사자가  위로 뛰쳐오르더니 대검의 손잡이를 입으로 물었다.



1호기가 쓰던 대검보다 무식하게 큰 사이즈의 특대검인데... 이거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 간다앗!"


금색의 사자는 대검을 입에 문  공중에서 내려오며 검을 크게 휘둘러 쳐냈다.

- 서걱!

- 고오오옥!!


갑피가 찢긴 틈 사이로 대검의 날이 파고들어가자 상처 입은 차원수는 그대로 몸이 두 덩어리로 나뉘어졌다.


"... 파워만큼은 진짜구나."

계속 결함기라고 불렀지만 코어를 두개 쓴 만큼 기체의 파워는 엄청났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뿐..."

차원수의 피를 얼굴에 뒤집어  금색의 사자는 다시  번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버어어어어드 스트라아아아이크!!! >

- 쌔애애애액!

미하일의 함성과 함께 공중에서 붉은 독수리가 솟구쳐 내려오며  발톱으로 남은 차원수의 등을 찍어 내렸다.






- 푸샤아아아악!!!

멀쩡하던 차원수의 등 갑각이 움푹 패이더니 고깃덩어리를 터뜨려 놓은 것 처럼 사방으로 몸이 터져나갔다.




< 아하하하!! 재밌어! >

마지막 차원수 한 마리는 미하일의 강하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절대 현용으로 채택될 수 없는 장난감들뿐이었지만 차원수 세 마리를 잡을 수는 있었다.

< 보셨습니까!  완벽한 성능과 파워를! >


차원수 세 마리가 모두 제압되자 안경소녀는 또 의기양양하게 통신망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 전부  실력입니다! 제가 유능해... >


< ... 게이트의 반응이 사라지지 않았어. >


계속 혼자 떠들던 안경소녀의 마이크를 가로챈 듯 류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았다니... 무슨 소리야? >

차원수의 시체를 앞발로 밀어내던 사이 연구소의 하늘을 올려보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십자형의 게이트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 철퍽... 철퍽




오히려 게이트의 틈 사이로 다른 차원수가 떨어져 내려오는 게 보였다.

< 증원? 한 게이트에서  번이나? >

< 첫 번째 게이트의 반응이 아니야... 게이트 안에서 또 다른 게이트의 반응을 감지... >

"설마..."


- 까득.. 드득...

게이트 안에서 불길한 소리와 함께 십자로 찢긴 게이트가 갈라져 가기 시작했다.


- 빠가각... 깡!

게이트는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아니. 더욱 넓어져 버렸다.


철퍼억! 푸샤아악!

- 그 오옥!

게이트의 아래로 먼저 떨어진 갑각형 차원수가 으깨져 버렸다.

차원수를 뭉갠 것은 거대한 발.



"... 거짓말이지?"

오오오...



깨져버린 게이트 안에서 나온 것은 거대한 짐승.

짐승은 낮게 울부짖는다.



 발로 걷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세상의 어느 짐승과도 닮지 않은 이형의 짐승.



대형 차원수 '베헤못'.




 세계의 이치를 벗어난 이형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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