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케필 · 레브 (120/152)



〈 120화 〉케필 · 레브

요란한 합체가 이루어졌지만 베헤못은 이 쪽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걸어 나가고 있었다.

대형 차원수 베헤못.


나타날 때부터 다른 중형 차원수를 발로 뭉개어 터뜨릴 만큼 크기부터 압도적인 차원수지만 그 행동은 느리며 둔하다.

베헤못의 행동도 그저 한 방향으로 계속 걷는  뿐. 더럽게 두터운 갑피는 일반 무기로는 상처를 입힐 수도 없었다.


굴착장비라도 가져온다면 모를까 폭격기를 통한 폭격에도 외부 갑피만 조금 떨어져나갈  별다른 대책이 없다.

베헤못을 상대로 유효한 대책은 경로 상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대피시키는  뿐.

대피만으로 해결이 될까 싶었지만 베헤못의 발생 자료를 찾아봤더니 의외로 유효한 해결법이었다.

베헤못은 정말 앞으로만 걷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 걷다보면 언젠가 바다에 도착하게 되고. 바다를 향해 걷다가 스스로  아래에 잠겨서 죽게 된다.

...하지만 걸어 나가는 동안 길목을 전부 밟아 부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할  있는 일은 최대한 공격을 퍼부어서 진로를 바꾸게끔 유도하는 것 뿐.


다른 2종의 대형 차원수에 비하면 상대하기 편한 차원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도시는 산간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바다와 거리가 제법 멀었다는 것과, 그저 밟혀 부서지기엔 아까운 장비나 자료들이 이 연구소에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저번 폐쇄도시에서 대형 차원수에게 유효한 피해를 입혔던 아르베넷이나 라자루스 둘 중하나라도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승산이 있는 싸움이 되었을 텐데 지금 이 곳에 있는것은 연구지원비를 횡령해 만든 정크...


코어는 4개나 박은 주제에 두개밖에 쓸 수 없는 폐품이었다.


심지어 그 두개는 파일럿 한명에게 몰아넣어서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다룰 수도 없는 그런 물건을  혼자서 다루고 있었다.



"..."

동시에 두개나 되는 코어와 싱크한지 시간이 지나자 조금 머리가 아파지자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예전에 훈련 모듈의 코어 출력이 너무 높아져서 현기증 비슷한걸 겪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증상도 그 일종으로 보인다.

"괜찮니?"


예전에 그 증상을 눈앞에서 본 주인공군은 아래 좌석에서 나를 돌아보며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파일럿이 셋이나 있는데 조종은  혼자 담당하는 꼴이 되어서 미안한 감정에 저러는걸까.

...아니면 정말 나를 걱정해서 그런 걸까.





"후우..."


또 허튼 생각을 해버렸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쓸데없는 잡념을 떨치기 위해 머리를 조금 좌우로 흔든 후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가자."

이럴 때일수록 가장 어른이 정신을 차려야지.


여기 있는 애들 둘의 나이를 합친것만한 세월을 산 주제에 애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없지.

"출발!"

나보다 윗자리에 앉아있어서 내 표정을 보지 못한 미하일은 커다란 기체에 탔다는 고양감을 즐기는지 나의 선언에 맞추어 호응을 해주었다.

- 덜컹

거대한 삼단의 메카를 움직이기 위해 양 조종간의 레버를 잡고 당겼으나.



덜컹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이거  안 움직이지?"

덜컹 덜컹 덜컹


내가 레버를 계속 당기는 행동을 무시하듯 기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고장 아니야?"

주인공군은 레버를 계속 움직여보는 나를 대신해서 모니터 위에 표시된 구동계를 확인한 뒤 고장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었다.


합체 이후 모니터 위에 무수히 떠있는 경고 메세지를 보면 정말 기체가 고장 난 것일지도 모른다.

< 고장이 아닙니다! >

배와 정강이를 맞은 주제에 아직도 건방지게 높은 톤으로 말하는 안경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합체 이후 조종시스템을 변경했으니 새로운 조종간을 쓰셔야 합니다! >


"냉큼 꺼내.  맞기 싫으면."

< 포...폭력은 나빠요... >

조금 기세가 꺾인 목소리와 함께 잠시 후 옆의 벽이 조그맣게 열리더니 그 안에서 손잡이 비슷한 무언가가 나왔다.




- 후욱


생김새는 악력기의 손잡이와 비슷하게 생긴 그것을 잡아서 당겨보자 안에서 스틱이 쭉 딸려 나오며 거대한 기체의 팔이 움직였다.

현대적인 스틱식 조종간이 아니라 당기는 식의 조종간이라니 이래선 진짜 고전 메카물이잖아.

< 커다란 합체엔 커다란 책임이 필요한 법입니다! >

내 타들어가는 속을 모르는 것인지 스피커 너머로 기체가 움직이는 것에 들뜬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거운데... 반응속도도 늦고."


움직일 때 마다 팔이 뻐근한 게 분명 다음날에는 근육통이 생길 것 같은 구조였다.

손잡이 안쪽에는 정말 악력기마냥 커다란 버튼이 달려있었길래 눌러보자 기체의 오른손에 달린 용의 입이 덜컥덜컥 움직였다.




< 어떻습니까. 제... 아니 박사님의 위대한 역작의 조종감은! >


"최악이야."


너무해... >




상반신만 조금 움직여봤지만 기체의 조작감은 정말로 최악이었다.

 다섯 개를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별 반개였다. 사장님이 맛없고 음식이 불친절했어요의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리쪽 조종계에는 뻘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는지 손잡이와 연동해서 기존 조작계를 밟자 기체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스탠드 식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전용 전신 트래킹 슈트와 조종시스템을 넣어서 만들 수 있었습니다! >

- 따악

나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퍼억! >

통신망 너머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 아흑! >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았지만 바라는 대로 되었다.


정강이 맞은 곳을 다시 걷어찼어... 아파아... >


개발자라는 족속은 내버려두면 어디까지 폭주할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고삐를 잡아줘야 하는 법이다.

"자 다시 출발!"


"으...응."


"출발..."

조종석의 위 아래쪽에 앉은 주인공군과 미하일은 내 눈치를 살피는 듯 어딘가 조금 기운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기체의 움직임은 더러우리 만큼 육중했지만 의외로 움직임은 빠른 편이었다. 사실 기체가 크니까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움직인 면적이 넓어서 그런 거겠지만.


베헤못은 우리가 오건 말건 상관없이 그저 앞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베헤못의 발아래에는 밟아 터져버린 차원수의 잔해와 푹 꺼져버린 아스팔트의 조각이 널려있었다.


- 쿵!

조종간을 당긴 뒤 뛰어오르자 조금 아찔함이 느껴질 정도로 높은 베헤못의 등 위로 올라탈 수 있었다.


이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 보면 사람이 쓰레기처럼 작게 보일만한 높이였지만... 아래는 보지말자.



베헤못의 등 위에 올라탄 뒤 곧바로 앞으로 걸어 베헤못의 두꺼운 목 위에 도착했다.


둔한상대니까 이대로 위에서부터 목을 찍어 베어내리면 별다른 고생 없이 쓰러뜨릴  있을지도 모른다.


- 깡! 깡!

"생각보다 단단하네..."

사자의 입에 들려있던 검을 왼손으로 거꾸로 쥐어 목을 내려찍었지만 고깃덩어리를 벤다는 느낌은 없고 겨울철 얼어붙은 땅 위를 곡괭이로 내려찍는 느낌에 가까웠다.




< 당신 생각보다 비겁하네요. 3대의 마음이 한 곳에 모인 기체라면 정정당당한 정면승부가 기본 아닙니까. >

"나는 리얼리스트야. 정면에서 상대할 이유가 없잖아."

< 우웃... >


정론을 듣자 할 말이 없어진 것인지 안경소녀는 분해하는 것 같았다.




- 푸욱!

여러 번 같은 곳을 후벼내자 칼의 끝이 조금은 베헤못의  안으로 꽂혔다.

"조금 들어갔네.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그오오오오!!!

"히익"


목 위가 찔리기 시작하자 둔한 베헤못도 참지 못한 것인지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발아래에서 울렸다.

조금 놀라긴 했다. 정말 조금만...

"어쩌면 지금...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조종대신 할  있는 일을 찾은 것인지 모니터를 열심히 보고 있던 주인공군이 조금 걱정하듯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녀석이 다리를 뻗어도 등에는 절대 안닿을거야. 꼬우면 올라오라고 해."

베헤못의 목에 꽂힌 검을 조금  깊게 꽂기 위해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검의 손잡이를 밟아내자 점점 깊게 검이 꽂혀갔다.


- 그 오오!!

검이 꽂힐 때 마다 베헤못은 분노하듯 발을 쿵쿵 구르며 울부짖었지만 베헤못은 그저 울부짖는 것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꽂으면 머리를 깔끔하게 떨어뜨릴 수 있을 거야."


"마마 오늘 조금 평소보다 무서워보여..."


내 전략에 조금 겁을 먹은  미하일이 약한 소리를 했다.




- 쿠웅!

그 때 발아래에 있는 베헤못이 무언가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 철퍽!

걷어 차올려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피하자 방금 전까지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 뭔가 떨어졌다.




"저건..."


- 그 오오...

베헤못은 자신의 앞발로 중형 차원수의 무리를 차올려 자기의 몸 위로 떨어뜨렸다.




"이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등에 직접 발이 닿지 않으니 자기보다 작은 차원수를 앞발로 떠올려내듯 걷어차서 자신의 등 위로 던져버렸다.

방법이 조잡하고 거칠었던 만큼 높은곳에서 떨어진 차원수  멀쩡한 건 몇마리 없어보였지만 동료의 시체를 밟고 무사히 떨어진 중형 차원수는 이쪽을 향해 적의를 내비치고 있었다.



이 장난감으로 직접 싸우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지만 눈앞에 닥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 오른팔 쓸 수 있는 거겠지?"

기껏 반쯤 꽂아놓은 검을 다시 뽑아서 쓰는  아까우니 다른 무장을 써야했다.

용의 머리가 달린 오른팔은 생김새만 본다면 건틀릿에 가까운 이미지였지만 버튼을 누를 때 마다 머리가 열리는 것을 보니 단순한 건틀릿은 아닌  같았다.



드디어 이 기체에 흥미가 생긴 겁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무려... >


"엇차."



빠악!

레버를 뒤로 끌은  앞으로 내지르자 용의 머리가 달린 오른팔이 정면에 있는 차원수의 머리를 꺾어버렸다.

목뼈가 두둑 꺾이는 거친 소리와 함께 정권을 얻어맞은 차원수는 베헤못의 아래로 떨어져 커다란 발에 밟아 터져버렸다.

"성능 확실하구만."


제법 때리는 맛이 좋은 건틀릿이었다.

< 무슨 짓입니까! >


깔끔하게  마리를 제압한 나를 향해 안경소녀는 기가 찬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쓰는거 아니야?"

< 그런 조잡하고 야만적인 방식을... 입 안에 포구가 달려있지 않습니까! 그걸 쓰세요! >


"버튼을 눌러도 입만 열렸다 닫히던데?"


그게... 발사 버튼은 원래 담당 파일럿의 자리에 있습니다. >


"응? 나?"

지금까지 조용히 나의 눈치만 보고 있던 주인공군이 자신이 지목되자 조금 놀란  했다.

네가 나쁜  아니야. 저기 안경 쓰고 땍땍거리는 애가 나쁜 거지...



< 오른팔을 대상을 향해 겨누고 그 앞에 있는 커다랗고 빨간 버튼을 눌러보세요. >

"들었지? 준비 되면 눌러봐 주혁아."


"알았어."


 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갑각형 차원수를 향해 오른팔을 겨눈 뒤 조종석 안에서 발을 아래로 두 번 툭툭 두들겼다.



"지금이야."


"응."



- 꾸욱

버튼이 눌리자 용의 입이 열리며 안에서 굵직한 포구가 나타났다.



콰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잠시 후 엄청난 열기와 함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붉은색의 광선이 뿜어져나갔다.

우리의 앞을 다가오던 차원수 두 마리는... 순식간에 다리만 남긴 채 증발해버렸다.

---


"뭐야 이거..."

기체의 머리 사이즈만한 포구에서 나간 것은 조금 과장하자면 라자루스와 맞먹는 출력의 발사였다.


발사 범위는 좁았지만 화력은 정말 코어 하나를 통째로 쓰는 라자루스의 포격과도 맞먹는 출력이었다.




< 기존 조종계에 사용하던 코어를 화력으로 전부 돌렸습니다. 하하하! >

"으...응.  만하긴 한데... 이거 조금 무섭다..."


말도 안 되는 화력에 나 조차도 조금 쫄았다.


포격이 가해진 차원수의 시체 뒤로 연구소의 건물이 포격 모양 그대로 깔끔하게 도려낸 듯 녹아있다는게 더 무서웠다.

만약 이 연구소가 망해가는 중이 아니었다면 연구소에 있던 누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죽었을지도 모르는 출력이었다.


가장 무서운 건 반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라자루스도 발아래가 조금 덜덜 떨리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방금 전의 포격은 견착도 없이 팔을 뻗은 것에 불과했는데 아무런 반동도 없었다.

이런 파괴병기를 장난감처럼 만든 박사의 광기가 느껴지는 무기였다.

내 아래에서 버튼을 누른 주인공군도  파괴력을 실감한 듯 말없이 어깨가 떨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나도! 나도! 나는 저런 거 없어? 응?"

쇼크를 겪은 나와 주인공군과는 다르게 미하일은 파괴적인 성능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자기 자리에는 그런게 없냐며 안경소녀를 보챘다.



< 물론 그 쪽의 조종석에도 준비된 게 있습니다! >

다른 조종석에도 이런 거랑 비슷한걸 달아뒀다고...?


"...일단 그건 나중에 써보자. 베헤못부터 막아야지."


"알았어..."

미하일은 아쉬워했지만 내 말을 듣자 금방 포기하듯 나의 의견을 수긍해주었다.

솔직히 또 뭐가 나올지 몰라서 무서우니까 얼른 끝내고 이 기체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 쾅! 쾅!

목에 반쯤 꽂힌 검을 다시 왼손으로 내려찍었다.



그오 오오!

꽂을 때마다 분노에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 채 검을 계속 꽂아 넣었다.


방금 전 포격으로 베헤못을 제외한 모든 차원수가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는 듯 했다.



- 푸욱!


- 촤아아 아아악!

굴착작업과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자 어느 순간 푹 꽂히는 느낌과 함께 혈관을 찌른 듯 검이 꽂힌 틈 사이로 베헤못의 피가 솟아올랐다.


이대로 조금만 더 찌르면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 폴짝!


조종석에 앉아있던 내 몸이 위로 뛰어 올랐다.

"어?"


거대한 베헤못은  위에 올라탄 우리를 떨쳐내려는 듯 온 힘을 다해 거체를 움직여 몸을 튕겨내자 기체가 솟아오르며 그 충격에 나의 몸이 조종석 위로 튀어 올랐다.


다른 둘은 좌석을 잘 붙잡고 있던 덕분에 뛰어오르지 않았지만  둘에 비해 가벼운 나는 너무나 쉽게 좌석에서 이탈해버렸다.




이대로 천장에 부딪치는 고통이 다가올 것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리를 죄여오는 단단한 느낌과 함께 내 몸은 천장에 부딪치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천장으로 부딪치기 직전에 주인공군이 붙잡아 주었던 듯 나의 몸은 그의 팔에 붙잡혀 있었다.



"으...으응 괜찮아."

방금 전 몸이 위로 튀어 올라서 놀랐기 때문인 걸까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이 들었다.


"떨어지고 있어!"


혼란스러운 나의 정신을 일깨워준것은 미하일의 외침이었다.


베헤못이 몸을 털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올랐던 덕분에 우리가 타고 있던 기체는 공중으로 높이 내던져졌다.

 높이라면 정말 큰일일 텐데...



< 지금입니다! 소녀! 버튼을 눌러보세요! >

- 위잉


 때를 기다렸다는 듯 안경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미하일의 조종석에 달려있던 버튼이 깜빡였다.


"알았어!"

미하일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버튼을 눌렀다.


뭐가 되었건 이 위기에서 벗어날만한게 되겠지.

- 파앙!


미하일이 버튼을 누른 것과 동시에 기체의 등 뒤에서 짤막한 파열음과 함께 접혀있던 날개가 넓게 펼쳐졌다.

날개라면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는데 조금 도움이 되겠지!

그래도 떨어지는  막을  없겠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기체는 떨어지지 않았다.

"공중에... 떠있어?"

기체는 코어가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공중을 활강하듯 비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있던 박사의 장난감은 정말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


우리는 눈을 뜬 채 하늘을 날고 있는 꿈을... 꿈은 아니고 정말로 날고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을 추스른 뒤 자리에 고쳐앉고 상황을 파악했다.

기체는 거대하고 무거운 몸체를 가진 주제에 천천히 강하하듯 베헤못을 향해 날아 내려오고 있었다.

"차원기가 하늘을 날고 있어...?"

주인공군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다! 날아!"

미하일은 비행에 신난 듯 감탄하고 있었다.



둘이 놀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보조 장치나 거대한 연료탱크없이 코어만을 이용해 기체가 비행한 것은 지금 우리가 세계 최초일지도 모른다.

"이런 게 가능했으면 미리 말해줬어야지!"

< 비장의 수는 위기의 때에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

조종간을 당기자 기체는 전투기처럼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하며 높은 고도에서 천천히 내려와 아래에 있는 베헤못과 점점 가까워져갔다.




"이제 어쩐다..."

추락을 막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베헤못을 상대할 무기는 여전히 베헤못의 목에 꽂혀있었다.

이 위치에서 아까 같은 포격을 가하자니 지반 아래에 있는 시설을 망가뜨릴까봐 포격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 필살기 타임 아닙니까! 필살기! >

내 고민을 답답하게 여긴 듯한 안경소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필살기... 그래 이제 뭐가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을  같아.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무반동 포격과 공중비행. 이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을 것 같다.

후딱 끝내버리고 얼른 내려가고 쉬고 싶은 마음에 대답조차 평온하게 나왔다.

< 당신의 자리 앞에 있는 그것! 그것을 눌러주세요! >

- 위잉


한번 받아주자 신나서 떠드는 안경소녀의 말과 함께 조종 패널이 양 옆으로 열리더니 커다란 금색 버튼이 나타났다.

"그래 이걸 누르면 되는 거지?"

의심하기도 지쳐서 버튼을 곧바로 누르려고 하자...



"..."


"..."

말없이 나를 올려보고 있는 주인공군과 부럽다는 듯 위에서 내려 보고 있는 미하일의 시선이 엄청 신경 쓰였다.




"...셋이 같이 누를까?"


""응!""


기다렸다는 듯 두 명의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셋에 누르자. 하나...둘..."


"셋."

- 꾹


세 명의 손이 한 곳에 모인 뒤 커다란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 캬오오오오오!!!

기체의 가슴에 달린 사자의 입이 크게 울부짖었다. 실제로는 그 안에 달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겠지만.




슈파아아아!!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사자의 입에서 하얀 빛덩어리와 같은 것이 쏘아지더니 아래에 있는 베헤못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앙!


베헤못을 향해 날아간 빛 덩어리는 베헤못의 위에서 터진 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베헤못의 움직임을 멈췄다.

움직이지 못한다기보다  자리에 묶였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 것처럼 베헤못은 움직일 수 없었다.



차원 속박장. 코어를 사용하는 기체 간 전투에서 기체의 파손 없이 상대의 코어를 제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술이었다.


코어를 가진 차원수들이 게이트에서 이동하는 것을 역응용하여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지금의 기술단계에서 개발될만한 기술은 아니었다.


무반동 광선 포격, 비행, 차원 속박장 어느  하나 한참 나중에나 적용 될 기술을 이 기체는 전부 가지고 있었다.

박사는 정말 천재이거나 미쳐버린  틀림없다.

- 휘익! 착!

발아래에서 베헤못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 비어있는 왼손 위에 뭔가가 쥐어졌다.

손에 쥐어진 것은 조금 전까지 기체의 등 뒤에 달려있었던 새의 머리였다.

새의 목을 담당하고 있던 부분 아래로 손잡이가 나타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검?"


양 옆으로 펼쳐진 머리의 깃은 검의 가드 부분으로 변했다.

날은 없지만 이건 분명 검이었다.



- 콰과과!!!


새의 입이 열리며 그 안에서 굵은 광선이 쏘아져 나왔다.


"뭐야? 이것도 포야?"


포가 아닙니다! 검입니다! >

쏘아진줄 알았던 광선은 기체의 머리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서 출력을 멈췄다.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정말 SF에서나 볼법한 광선으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놀랄만한 것은 앞에서 본 세 가지로 끝인 줄 알았는데 네 번째 기술마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 검이라면 분명 베헤못의 두터운 갑피도 잘라낼  있다. 포격같이 예상외의 지점으로 튈 위험도 없이 대상을 반드시 양단할 수 있을 것이다.



< 필살 베기입니다! 얼른! 오래 유지는 못해요! >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던 기체가 움직이며 합체까지 보여준 데다 필살기까지 선보이려니 안경소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듯 귀가 아플 정도로 통신망에서 시끄럽게 외쳤다.

"어쩔  없지 간다!"


레버를 크게 잡아당긴 뒤 기체의 손과 오른손에 달린 용의 입으로 광선이 치솟는 검을 양 손으로  채 날개를 내려 하강하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앗!!!"""


조종하는 것은 나 혼자 뿐이었지만. 같이 탄 두 명도 이 흐름에 타버린듯 기합을 냈다.

- 서걱!


기체는 비행 가속도를 받아 아래로 내려오며.

거대한 베헤못을 수직으로 갈랐다.



레버의 끝에서 자르는 느낌이 느껴졌다.



필살 베기를 마친 기체는 공중에서 낙하 충격을 줄이려는 듯 수직으로 갈라진 베헤못을 지나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미끄러져 착지했다.




- 그 오오오오!!

거대한 짐승의 단말마와 함께 수직으로 절단된 베헤못의 시체는  옆으로 쓰러졌다.

"지...진짜 해냈어."


확신이 없는 공격이었지만 해내고 말았다.

정말 로망만 가득찬 삼위일체의 기체로.

현실의 거대한 짐승을 베어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