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케필 · 레브
대형 차원수 베헤못과의 전투가 끝나자 전투의 고양감에 잊고 있던 조종석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코어를 4개나 탑재한 기체답게 코어의 발열 또한 엄청났던 탓에 조종석의 안쪽은 여름철 노상에 주차되어있던 승용차만큼이나 후끈해졌다.
차이점이라면 승용차는 에어컨이나 창문이 있었겠지만 이 기체엔 냉방도 창문도 없었다.
정말 별 반개짜리 기체다운 설계방식이었다.
- 위잉...
어차피 전투도 끝났겠다. 곧바로 메인 코어 두개를 꺼버리자 아까까지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던 통증도 가셨다.
- 빠각!
코어를 꺼버리고 손에 쥐어진 레버를 내려놓으려고 하자 레버의 얇은 스틱이 꺾여져 바닥에 나뒹굴어졌다.
만약 이게 전투 중에 부러졌다면 광검이 베헤못을 대상으로 양단하는 게 아니라 연구소 건물을 반으로 갈라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짜증나. 더워."
평소라면 속으로 삼켰을법한 말이 더위 때문인지 곧바로 입 밖으로 나왔다.
후끈해진 열기 덕분에 몸은 땀투성이가 되어서 가슴위로 티셔츠가 축 달라붙어오는 것을 느끼고 손으로 펄럭였지만 전혀 시원해지지 않았다.
'...'
나의 위쪽과 아래쪽에 앉은 미하일과 주인공군은 나의 눈치를 보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따금씩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내 정신좀 봐. 애들을 그냥 놔두고 있었네... 쟤들도 더울 텐데.
"슬슬 내리자."
"응..."
"우우..."
다른 두 명도 내가 내리자는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이는걸 보니 조종은 안했지만 제법 지쳐 보이는 듯 했다.
...
코어는 꺼버렸지만 마지막 착륙때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멈춘 덕분에 별다른 도움 없이 내리기 편했다.
기체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것은 묘하게 고기 굽는 냄새가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뒤로 반으로 갈라진 베헤못의 몸이 광검의 열에 절단면이 구워진 듯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고기로 할까...
"...그래도 재밌었지?"
"응... 나쁘진... 않았어."
베헤못의 시체를 바라보며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사이 나의 뒤를 따라 내린 둘은 오늘 조종을 같이 했던 경험 덕분인지 예전보단 조금 사이가 좋아보였다.
조종 내내 불쾌감을 보였던 나를 신경 쓰는 듯 둘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걸 보니 조금 미안해졌다.
"흠흠..."
눈치를 보는 분위기를 돌릴 겸. 둘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기 위해서 일부러 헛기침을 하자 둘의 시선이 모였다.
"둘이 잠깐 가위바위보좀 해볼래?"
"가위바위보?"
"응. 이긴 쪽에겐 상을 줄게. 얼른 해봐."
둘 중 한명에겐 전투를 끝낸 나를 위해 해줘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알았어!"
미하일은 상이란 이야기를 듣자 승부욕이 생긴 것인지 곧바로 오른 주먹을 내밀었다.
주인공군도 조금 머뭇이더니 오른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 바위..."
""보!""
승부는 한 번에 났다.
주인공군은 주먹. 미하일은 보를 내서 미하일의 승리였다. 남자는 주먹이라더니 곧바로 남자다운 판단을 낼 줄은 몰랐네.
"이겼다!"
단숨에 승리한 미하일은 신난 듯 제 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전투가 끝난 직후인데 체력도 좋네.
"이긴 미하일에게는... 상으로 사탕을 줄게."
"와아!"
조종석의 열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반쯤 녹아버렸지만 아까 막국수 집에서 계산하고 나올때 조금 집어왔던 사탕을 꺼냈다.
"하나만 주는 거야?"
"세 개 줄게."
손에 쥐어진 사탕을 전부 미하일의 손바닥 위에 얹어주었다.
주머니에 있던 사탕은 3개가 전부였으니까 더 줄 수도 없었다. 가까이 있었으니까 던져줄 필요도 없었고. 던져주다가 난간 아래로 떨어질 일도 없었다.
"신난다!"
미하일은 승리에 만족하는 듯 곧바로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주인공군은 딱히 사탕에 대한 미련은 없는 듯 패배를 떨떠름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 진 쪽은 벌을 받을 시간이야."
"아하트는 졌데요!"
사탕 3개를 하나씩 나눠먹는게 아니라 승자에게 몰아준 것은 패자에게 내려질 페널티와 구분하기 위해서 였다.
미하일은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는 듯 주인공군을 비웃었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승부의 세계란 냉정한 법이다.
"뭘 시킬 거니...?"
내 얼굴이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 주인공군은 평소보다 텐션이 내려간 나의 목소리를 듣고 약간 쫄아있는 것 같았다.
"몸을 숙여봐."
"이렇게?"
주인공군은 약간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머리 하나 정도 키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낮춰줘야 안경을 쓴 주인공군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었지만... 지금 볼 것은 얼굴이 아니다.
"더 숙여봐."
"이 정도로?"
주인공군은 아예 무릎 한쪽을 땅 위로 내려 자세를 확 낮추었다.
"그래 그 정도로."
한쪽 무릎이 땅에 닿을 정도로 숙인 주인공군의 등 뒤로 걸어갔다.
얘 역시 그 안에서 더웠던 듯 셔츠가 땀에 젖어 등이 좀 비치고 있었다. 일반적인 고등학생 정도의 체격이었지만 제법 넓어 보이는 등이었다.
뭐 지금으로선 잘 된 일이다.
- 툭
나는 주인공군의 등 위에 몸을 얹어서 올라탔다.
"묘...묘월아?!"
"마마...?"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두 명은 마치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놀랐다.
"지쳤어. 이대로 날 업고 연구소까지 가줘."
패자에게 주어진 벌은 나를 업고 연구소까지 옮겨주는 일이었다.
둘 다 체력은 어느 정도 있을테니 가벼운 나를 업고 가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
만약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알았어..."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주인공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지 그의 목에 팔을 두른 나를 업은 채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아까 땀을 좀 흘려서... 축축할지도 모르겠네 미안."
슬슬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 땀으로 젖은 사람이 달라붙었으니 불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과를 먼저 했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그... 다리 잡아도 괜찮아?"
지금 내 자세는 목에 팔을 감고 다리를 허리에 감은... 어정쩡한 자세였다.
"업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 그냥 잡아."
편하게 업혀가려면 업어주는 사람도 편해야겠지. 다리를 잡는 것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다.
"으...응."
내 허락이 구해지자 조금 거친 손이 반바지 밑의 허벅지에 잡혀오는 느낌이 들었다.
제법 탄탄한 게 땀에 미끄러질 일은 없겠네.
"가자. 출발."
업힌 채로 발을 까닥거리자 시야가 조금 높아지는 느낌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내 키가 예전만큼 컸었다면 이 정도 높이였을 텐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윗 공기는 맑구나.
나이 반절 정도의 어린애의 등에 업혀있는 꼴이긴 했지만...
- 까드득... 까드득...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미하일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게 있었던 건지 입에 물고있던 사탕을 깨부수고 있었다.
---
등에 업히자 조금 피곤한 것도 있어서 가끔씩 졸기도 하면서 길고 긴 연구소 복도를 지나고 나서 아까 우리가 모였던 응접실에 도착했다.
응접실은 아까 전 전투의 포격을 맞았던 듯 벽 한쪽이 날아가서 채광이 좋아졌다.
쉘터로 대피했던 안경소녀와 류하연 그리고 서예린도 이 곳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 도착하자마자 만날 수 있었다.
"고생했어. 이제 내려줘."
"응..."
십분 넘게 날 업고 가느라 고생한 주인공군의 머리를 한번 슥슥 쓰다듬어준 뒤 그의 등 위에서 내렸다.
걸어오는 동안 미하일은 별 이야기도 없이 내가 준 사탕을 전부 씹어 먹으며 주인공군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하일도 편하게 업혀서 가고 싶었던 걸까... 다음에 한번 업어주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미하일보다 작은 나로서는 힘들다.
"...둘은 무슨 사이길래 그렇게 가까운 겁니까."
류하연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던 안경소녀는 등에서 내린 나를 보며 물었다.
"우리 사이...?"
주인공군은 나와 그의 사이를 정의하지 못한 듯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배 후배 사이야. 내가 선임 파일럿. 이 쪽이 후임 파일럿."
"그렇습니까... 그것보다 당신..."
"응?"
"...지금 앞이... 다 비치고 있습니다..."
안경소녀는 혼자 납득하는 듯하더니 나의 눈치를 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까 조종석 안에서 땀으로 젖은 데다가 등에 업혀있어서 가슴이 눌린 탓에 얇은 흰 티셔츠는 땀에 푹 젖어 속옷 색이 비쳤다.
오늘은 하늘색이었지.
"괜찮아. 얘 빼고 전부 여자들인데 이 정도야... 그리고 어차피 쟤랑은..."
예전에 다 보여준 사이인데 이 정도가 대수냐는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말을 멈췄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굳이 꺼낼 필요가 있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고...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예전 일을 생각하니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그거 좀 줄래?"
부끄러움을 떨치기 위해 한쪽 팔로 티셔츠 위로 비치는 하늘색을 가리고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안경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예? 뭐 말인가요?"
"네가 입고 있는 그거."
밖에서 고생을 했던 나와는 다르게 서늘한 쉘터 밑에서 모니터로 지켜보기만 하느라 뽀송한 안경소녀의 가운을 가리켰다.
"앗! 이건 안 됩니다! 연구원에게 백색의 가운은 상징..."
곧바로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말없이 왼손을 슥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모아 튕길 준비를 하자 류하연이 자리에서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드...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아픈 건 싫어요!"
안경소녀는 자신의 가운을 벗어서 곧바로 나의 앞에 헌납해주었다.
가운을 받으며 왼손을 내리자 류하연도 내 손동작에 맞추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사람 다루는 법이 너무 험한 것 같지 않니...?"
"제가 저 안에서 했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경소녀와 류하연의 사이에서 질색하는 듯 한 표정을 지은 서예린을 뒤로하고 백색의 가운을 받아 몸 위에 걸쳤다.
팔 기장이 조금 길었지만 계속 입을 것도 아니고 잠깐 입을 거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
"그래서 선배... 군은 아직도 안 왔나요? 벌써 30분이 넘었는데."
대형 게이트가 발생했는데도 아직까지 군부대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리 옆 도시라고 해도 이렇게 출격이 느려도 괜찮은 건가.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가 해결하기엔 일이 너무 커졌으니 연구소장님을 직접 만나보는게 좋을 것 같아."
서예린의 의견은 올바른 의견이었다.
현장에 있던 우리들이 게이트를 수습했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외부인 이며 미성년자들이었다.
게이트의 후처리에 대한 문제는 우리들이 나서는 것 보다 연구소의 담당자인 소장에게 넘기는 게 올바른 판단이겠지.
"...맞아. 셋 모두 위험했어."
류하연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차원수도 물리쳤는데 이제 얼굴 보고 이야기 할 정도는 되겠지. 다시 가보자."
주인공군도 동의하는 듯 했다.
"그...그렇군요. 전 그러면 슬슬 퇴근 시간이 다가와서..."
안경소녀는 우리의 옆을 지나쳐 문을 나가려는 듯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려고 했다.
"미하일."
- 쾅!
나의 부름과 함께 미하일의 발이 문손잡이 위로 내질러지며 미하일의 킥을 정통으로 맞은 철문은 윗부분이 조금 우그러졌다.
아까부터 기분이 나빠 보였는데 그 기분이 실렸던 듯 강렬한 킥이었다.
"외부인인 우리끼리 가면 그렇잖아요. 당신도 함께 가요."
"네...네에..."
안경소녀는 미하일의 킥을 보고 조금 쫄아있는 것 같았다.
---
안경소녀를 앞세운 채 아까 들어가지 못했던 연구소장실을 향했다.
"저...정말로 소장님을 만나셔야...할까요?..."
안경소녀는 아까 전 통신망에서 보여주던 거만함과 자신감은 어디로 간 것인지 자신감이 없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안경소녀의 뒤로 류하연과 미하일이 딱 붙어서 호송하듯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인 걸까. 그 둘에게 위압감을 느끼는 듯 어깨가 조금 움츠려든 채 걷고 있었다.
"네. 이 곳에 온 목적은 그의 스카웃이니까요."
"그...그런가요..."
가운의 양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여유롭게 걷는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안경소녀는 계속 앞을 향해 걷다가 연구소장실 앞에 도착했다.
"열어요."
연구소장실 앞에 도착한 우리들을 대표해서 안경소녀에게 문을 열라고 하자...
'아직도 거기 있었나! 자넨 해고야! 썩 꺼져!'
문 안쪽에서 고집이 세 보이는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세요... 소장님 기분도 아직 안 풀린 것 같고... 제가 알아서 잘 설명드릴테니 그냥 돌아가주시는게..."
- 덜컥
안경소녀를 지나쳐서 내가 먼저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연구소장실은 채광을 잘 받는 듯 눈부신 햇빛이 연구소장실에 깔려왔다.
커다란 창에서 내려오는 햇빛을 등진 연구소장의 실루엣은 어렴풋하게 보일 정도였다.
잠시 후 눈부심이 조금 가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연구소장의 명패가 달린 책상 앞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성이었다.
어딘가 고집이 세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머리가 허연 은퇴를 슬슬 생각해야 할 나이대의 아저씨였다.
"실례합니다. 연구소장님."
우리들 중 가장 연장자인 서예린이 나를 지나쳐 그의 앞에 다가갔다.
"썩 꺼져!"
서예린의 정중한 대화 요청과는 다르게 그는 대화에 응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인지 곧바로 호통을 내질렀다.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지금 이 뒤에 있는 파일럿들 덕분에 당신의 연구소가 ..."
"꺼져!"
연구소장은 대화에 응할 생각조차 없는 것인지 꺼지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하지만..."
서예린은 계속되는 호통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듯 말끝이 조금 흐려졌다.
계속 보고 있는 것도 재밌겠지만 선배가 불쌍하니 도와줄까.
연구소장의 앞에서 쩔쩔매는 서예린을 지나쳐 연구소장의 책상 앞까지 다가가 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 뭐 하는 거니!"
서예린은 웃어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는 나의 무례한 행동을 보자 방금 전 까지 당당하게 나서려던 태도는 어디로 간 것인지 놀란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멈추지 않고 더 내밀어 뻗자 나의 손은 연구소장의 머리를 뚫고 의자의 목 부분에 닿았다.
"어...?"
연구소장의 머리를 뚫은 손을 위 아래로 흔들자 연구소장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일렁이며 흔들거렸다.
'꺼져! 꺼져! 꺼...'
- 지지직...
흔들 때 마다 연구소장의 목소리도 어딘가 노이즈가 낀 것처럼 들렸다.
"이건 대체...?"
"가짜에요."
"가짜?"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모듈의 3D 데이터... 이것도 그거랑 비슷한거에요."
손을 조금 더 아래로 내리자 의자 위에서 작은 구슬 같은 것이 잡혔다.
손에 잡힌 구슬을 위로 들어 올리자 연구소장의 모습을 하고 있던 3D 데이터는 사라져버렸다.
"이 곳엔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어요."
"뭐...? 그러면 네가 스카웃 하겠다던 '박사'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서예린은 나의 손 위에 얹어진 구슬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뇨... 그 사람은 이 연구소에 확실히 있어요."
"...대피했을 때 우리 셋 말고 아무도 없었어."
류하연은 나의 추리를 의심하는 듯 했다.
게이트가 열리고 대피한 것은 서예린과 류하연 그리고 안경소녀를 포함한 세 명 뿐.
"입구에서 만난 아저씨도 이야기 했었잖아요. 이 곳엔 박사 혼자밖에 안 남았다고..."
"연구소장이 가짜라면... 여기 혼자 남은 사람은..."
류하연은 이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듯 자기 앞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린 채 고개를 숙인 안경소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비어있는 연구소장의 자리에 앉으며 안경 소녀를 가리켰다.
"저 소녀가 스카웃하려는 인재... '박사' 에요."
처음부터 박사는 우리들과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