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케필 · 레브
나의 폭로가 이어지자 안경소녀. 아니 박사는 식은땀을 감출 수 없는 듯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저 애가 박사라고?"
"그 독수리를 만든게 얘야?"
박사의 정체가 자기 옆에 있던 소녀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듯 제각기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역시..."
단 한명, 분석에 재능이 있는 류하연은 이미 그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던 듯 납득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우리 앞에 있는 그녀가 '박사'에요."
타브하 이전의 가버나움 연구소에 있던 천재소녀. 1세대 양산 계획인 세라프의 개발과 베레시트 시리즈의 초안 설계를 담당한 개발자 '박사'.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인해 가버나움 연구소를 이탈하였고 그 뒤로는 개인 연구만 계속 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류하연과 함께 박사와 같이 있었던 서예린 역시 짐작하지 못했던 듯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적당히 이야기하다가 몰아세우려고 했는데... 게이트가 열린 바람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지켜보려던 게 전투까지 이어져버렸지만.
"그렇구나... 그런데 왜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걸까. 연구소 사람도 모르고 있던거야?"
"그건 아닐거에요. 현장에서 가장 많이 볼 사람인데 정체를 숨기면 연구가 진행될 리가 없잖아요."
손에 잡힌 홀로그램 볼을 이따금씩 위로 던졌다 받아내었다. 작은 크기에 정밀한 장치가 심어져있어서 그런지 손바닥 위로 떨어질 때 마다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같이 가끔 찾아오는 외부인들 에게만 이런 연기를 반복했을거에요. 소장 본인이 손님을 만나기 싫다는 핑계를 대면서 조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니까요."
자신에게 들어오는 제의나 투자 내용을 전부 직접 들으면서 거절은 쉽게 건네기 위한 일종의 방패막이... 홀로그램은 바지사장. 아니 바지소장과 같은 역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죠?"
심문을 받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 박사를 향해 운을 때었다.
"...전부 알고 있었군요. 예전부터 감찰이라도 한건가요?"
박사는 아까 전 까지 통신망 너머로 기고만장하던 태도는 어디로 간 것인지 눈앞의 나를 향해 불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어떻게 연구소장이 저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그거야 원래 시나리오를 알고 있으니까... 라고 답변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모두에게 밝히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지만. 그 날은 지금이 아니다.
"눈이에요."
"눈?"
"눈에는 영혼이 깃든다고 하죠. 눈을 보면 많은 걸 알 수 있어요."
적당히 얼버무리기 위해 조금 눈을 올려 웃으며 안경 너머로 비치는 박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비과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적당한 혼란과 불신이 섞인 표정.
"눈을 보는 것으로 알 수 있었을 리가 없잖아요. 제 정체를 안 것도 어차피 그 사람이 알려준 게 아닌가요?"
아직 박사는 나를 향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 사람?"
"그쪽 타브하의 사령관 말이에요."
"그럴 리가요. 그 분은 당신에 대해서 알려주신 게 없어요. 제가 멋대로 찾아가겠다고 온 것뿐이에요."
사령관님에게 먼저 박사를 찾아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낸 건 나다.
박사가 있는 곳의 소재와 직위만 확인했을 뿐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묻지도 않았고 듣지도 못했다.
"뭐가 되었건 내가 그 사람 밑에서 일 할 생각은 없어요."
사람 좋은 사령관님이 자기 나이보다 훨씬 어린 소녀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
미움이라기보다 어딘가 증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박사는 사령관님을 싫어하고 있었다.
"...직접 오지도 않고 딸을 보낼 줄이야."
박사는 그러면서도 사령관님이 직접 오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는 것 같았는데... 딸?
"딸이요? 누가 말인가요?"
사령관님은 자식이 없는데. 이 자리에 딸이 있다고?
"당신 아닙니까! 저를 놀리는 건가요?"
박사는 나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삿대질 했다.
"네? 제가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머리가 조금 멍해졌다.
"묘월씨... 정말로 사령관님의 딸이야?"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 피곤해 보이는 아저씨와 나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을 텐데 대체 뭘 가지고 나를 사령관님의 딸이라고 추론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사근거리면서 남을 갉아먹으려는 성격이나...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하는 태도나... 아무리봐도 그 사람이랑 똑같아요!"
사령관님의 성격이 나랑 닮았다는 건 조금 놀랍긴 했지만 여기까지는 억지적인 추론 같았다.
"그리고 당신은... 언니랑 쏙 빼닮았어요."
"언니?"
"그 사람의 부인 말이에요."
지금은 실종된 사령관님의 부인. 그녀도 지금의 나와 같은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으니 오해할만했다.
"안됐지만 저는 사령관님의 아이가 아니에요."
"그럴 리가..."
직접 아니라고 이야기하자 나와 사령관님 사이의 의심은 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불신은 버리지 못한 듯 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당신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었다.
"그게 무슨소리인가요?"
"선배. 옆 도시의 부대가 도착할 때 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까요?"
"거리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30분 정도? 이 곳은 사람이 적은 민간 연구 부지니까 우선도가 낮을거야. 게이트도 닫혔고."
서예린은 나의 물음에 벽에 걸린 시계를 한번 보고 30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들었죠? 30분 정도 남았다네요."
"30분이건 1시간이건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건가요?"
박사는 아직 내가 말한 30분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이 연구소는 코어와 군수 개발을 담당하고 있죠?"
"그렇죠.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신 건가요?"
박사는 나의 질문에 대해 질문으로 대답했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민간인이 코어를 연구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죠. 군사목적으로 개발한다면 처벌은 더 무거울거에요."
"우리는 정식으로 인가받은 연구기관이에요. 법으로 문제될 점은 없어요."
민간인의 코어 연구행위는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군이나 정식으로 인가 받은 소수의 연구기관에서만 다룰 수 있다.
"이걸 읽어보시겠어요?"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박사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연구기관의 설립요건이네요. 예전에 이 곳을 설립할 때 지루할 정도로 많이 읽은 내용이에요."
화면 위에 띄운 것은 민간 연구기관의 설립요건.
"세 번째 줄을 읽어보시겠어요?"
이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녀에게 구태여 이것을 다시 보여줘야 할 이유가 있었다.
"법령에 의거하여 다음 조건을 충족할 때 연구기관으로써의 자격을 가진다..."
박사는 핸드폰을 받아서 안경다리 한쪽을 고쳐 올린 뒤 화면에 있는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연구소장과 선임 연구원을 포함해 3인 이상의 자격을 가진 연구원을 충족할 때 그 자격을 인정한다..."
세 번째 항목을 끝까지 읽은 박사는 이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듯 표정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박사가 읽은 것처럼. 연구기관은 3명 이상의 인원이 마련되어야 연구기관으로써의 자격을 가질 수 있다.
3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한 이유는 과거 코어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연구에 빠진 학자들이 홀로 연구를 진행하다가 많은 사고사례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독자 연구에 의한 폭주를 막기 위해 3인 이상의 국가에서 적합하다고 판단한 연구원들을 배치하도록 지정한 것이었다.
출장 전에 슥 읽어본 내용뿐이었지만.
"그런데 지금은 1명이네요?"
"아...아앗..."
"30분 뒤면 현장 조사를 위해 옆 도시에서 감찰관이 올 텐데. 연구기관이 아닌 곳에서 코어가 4개나 달린 기체를 다루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요?"
30분 뒤에는 차원수의 잔해를 정리하기 위한 병력만 오는 것이 아니라 게이트를 어떻게 닫았는지 파악하기 위한 감찰관도 함께 오게 될 것이다.
"버...벌금 아닐까요?"
"징역이에요. 연구 성과들도 국가에 환수되겠죠."
자격이 없는 민간인이 코어의 연구... 그것도 군사목적으로 악용될 위험이 큰 차원기를 제조한 게 밝혀진다면 박사는 얄짤없이 감옥행이다.
"그...그럴 수는 없어요... 여길 내가 어떻게 지켰는데..."
박사는 자신에게 남은 30분. 아니 이제 25분밖에 남지않은 일에 대해 두려워하며 손이 벌벌 떨려오는게 보였다.
"제가 도와드린다면 ...징역은 피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는 절박한 박사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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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연구기관.
작년부터 연구원들의 퇴직이 많아져 인근 상권도 붕괴되다 못해 유령 도시가 되고 있는 지역이었다.
유령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지역의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연구소의 입구에 한 대의 차량과 커다란 트레일러 두 대가 따라 들어왔다.
커다란 트레일러에 실린 것은 군용 세라프 2기. 10년 가까이 된 낡은 기체지만 전투가 아닌 임무에서는 아직도 충분히 쓸 만한 기체들이었다.
트레일러를 앞서가던 작전 차량에서 옷깃에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남자가 내렸다.
임시 감찰관의 직위를 가진 중위는 게이트가 닫힌 뒤의 상황을 파악하기위해 현장에 나오게 되었다.
현장에 남은 것은 열이 넘는 중형 차원수의 시체와 거대한 대형 차원수의 시체.
자기들끼리 동족상잔이라도 벌인 것이 아닌 이상 군사 시설이 없는 이 연구기관에서 차원수를 해치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으나, 시체의 앞에 놓인 거대한 ... 기묘한 형상의 기체 덕분이었으리라.
기묘한 형상을 한 기체는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되어 있지 않아 그가 들고 있는 단말에선 식별코드 불명으로 표기되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편성된 부대가 없었기 때문일 뿐. 소속은 이 연구소의 소속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케루브 다섯이 달려들어도 처리가 힘든 대형 차원수가 깔끔하게 절반으로 갈라져 죽어있다는 것은 정황상 이 기체의 소행이었으리라.
만약 그의 추론이 맞다면 이 기체는 민간 연구기관의 연구목적 치고 너무나 강한 병기였다.
국가의 인가가 내려진 연구기관인 이상 사유화를 염두에 두고 개발 된 것은 아닐 테지만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였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연구소장을 통해 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중위는 연구소를 향해 걸었다.
연구소의 입구를 열고 들어가자 데스크에 유니폼을 입은 조금 어려보이는 인상의 직원이 서 있었다.
'얼마 전에 직원이 다 나가서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뜬소문이었나.'
대위 계급장을 단 남자는 들리던 소문과는 다르게 데스크에도 직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감찰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소장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안쪽 소장실."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무뚝뚝했지만 방금 전 까지 게이트가 열렸던 것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 중위는 짧은 안내를 듣고 안쪽 복도를 향해 걸었다.
복도를 조금 걷자 한 쪽에 민간에 공개된 과학 전시관이 보였다.
예전엔 지역 학교에서 견학을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들었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대신 지역사회 공헌을 위해 일부 시설을 공개해두지 않으면 이것 역시 감찰 사항에 걸릴 항목이었다.
이 먼 지역의 조그만 전시관을 보기 위해 찾아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생각하기에도 불합리한 항목이었지만 감찰 항목으로 지정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와 신기해!"
하지만 중위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시관의 안쪽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전시관 안쪽을 들여다보니 전시관의 전시물 앞에 사람 둘이 서 있었다.
전시물의 앞에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조금 키가 큰 남학생과 그 옆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은발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오빠 이거 봐! 코어에 좋은 말을 해주냐 나쁜 말을 해주냐에 따라 출력이 달라진데!"
"그...그러니?"
여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옆에 선 학생을 향해 재잘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견학을 하러 온 민간인 남매겠지.
오빠 쪽의 얼굴이 마냥 즐거워보이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는 여동생이 귀엽게 느껴지는 나이였던 듯하다.
'그래도 오빠가 고생이 많을 것 같네.'
중위는 스스로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감찰 항목을 넘긴 것에 만족하며 2층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2층에 오르자 연구기관이 비어간다는 것은 뜬소문이었던 듯 저 멀리에서 가운을 입은 여자 연구원 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머리가 붉은 여자 연구원과 외국계 인사로 보이는 금발의 미녀가 외국어로 소통하며 중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 연구 기관은 국제교류도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찰사항을 하나라도 더 캐내라는 상부의 지시와는 다르게 연구기관은 소문과 다르게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두 연구원을 스쳐지나가 복도의 끝에 도착하자 연구소장실이 보였다.
중위가 문 위를 노크하기 위해 손을 올리자.
'썩 꺼져!'
소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큰 목소리와 함께 안경을 쓴 젊은 연구원 한명이 문을 열고 후다닥 빠져나왔다.
"저... 소장님을 뵈러 왔는데 말입니다..."
중위는 조심스럽게 안경을 쓴 연구원에게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소장실 안쪽은 들어가기 껄끄러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지금 소장님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시던데... 무슨 일로 오신건가요?"
"게이트 처리 관련한 감찰 때문에 나왔습니다."
"...그런 거라면 제가 소장님 대신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중위는 잠깐 고민했다.
굳이 심기가 불편한 민간 연구기관의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뭔가 책을 잡혀서 부대로 민원을 받는 것 보다 말이 통할 것 같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편하지 않을까.
"상관없습니다."
짧은 생각 끝에 결정을 내렸다. 굳이 긁어서 문제가 될 일은 피해가는 것이 좋았으리라.
지금까지 연구소의 모습을 본 결과 굳이 감찰사항에서 걸릴만한 내용도 없었을 것 같았으니 직접 연구소장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위는 윗사람이 껄끄러운 것은 자신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청취를 위해 응접실로 이동했다.
...
짧은 청취 결과 연구소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게 중위의 판단 이었다.
연구원의 숫자도 지나가며 마주친 것만 해도 세명이 넘었고, 지역사회 공헌을 위한 견학 프로그램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연구소장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 것은 조금 걸렸지만 정식 감사도 아닌 일시적인 감찰에 굳이 깊게 파고들고 싶진 않았다.
안경을 낀 연구원은 감찰 사항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해주었으나 연구소 앞에 놓여있던 기체와 테스트 파일럿에 대한 사항은 답변하지 않았다.
이 연구소가 민간 연구기관이었다면 해당 정보에 대해 요구할 수 있었지만.
이 연구소는 타브하와 정식적으로 협력 계약이 이루어진 민간 - 군사 연구기관이었다.
중위는 자기 소속보다 더 큰 기관의 일을 파고들어서 좋을 게 없을거라는 판단에 짧은 감찰을 마쳤다.
중위가 소속된 곳은 아직까지도 구식 세라프를 운영하고 있는 부대였으니 최신예기를 다루는 타브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단 타브하와의 물리적인 거리를 염두에 두어 안전을 위해 처치한 차원수의 코어를 넘겨준다는 것은 예상하지도 못한 성과였다.
이 코어들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상부에서도 지적할 점이 없는 감찰 결과에 흠을 잡지 않으리라.
중위가 연구소의 문을 나서자 아까 견학을 하던 남매가 보였다.
"군인 오빠 안녕!"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은발의 여자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귀여운 아이네.'
중위는 여자아이에게 응답하듯 손을 흔들어주고 현장 정리가 끝난 세라프 2기의 수납을 확인한 뒤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작전 차량에 올라탔다.
감찰 결과.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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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옆 도시의 부대에서 나온 감찰관이 철수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투후 코어 수습 및 뒷정리를 겸해서 감찰관이 올 것이란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감찰이 오기 직전 나는 박사에게 이번 감찰을 무사히 넘아가게 해주는 대신 타브하로 오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내 계획을 들은 다른 히로인들은 나의 방식에 의아해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좋게 끝났다.
짧은 촌극의 결과 감찰은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코어를 전부 넘겨주는 꼴이 되었지만 코어는 나중에라도 타브하를 통해 다시 받아오면 그만이었다.
성격이랑 전혀 안 맞는 어린 여자아이 연기를 하느라 전투 직후 가뜩이나 피곤했는데 더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다른 히로인에게 이 역할을 떠넘기고 적당히 연구원을 연기하려고 했지만 모두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어린 여자아이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자."
양 옆으로 묶은 머리를 풀며 내 옆에서 남매의 오빠를 연기해준 주인공군을 한번 올려보았다.
하는 일이라곤 옆에서 말도 안 되는 대화에 맞장구를 쳐주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얘도 오늘 전투에 참여했으니 지쳐 있었겠지.
"어울렸는데..."
주인공군은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알게 뭐냐. 더워서 하나로 묶어 올리는 거면 몰라도 양갈래로 묶는것은 거부감이 생긴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애들 데리고 고기나 먹으러가자."
오늘같이 지친날은 사령관님께 받은 카드로 조금 비싼 회식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그래..."
나의 옆을 걷는 주인공군의 얼굴은 조금 시무룩해보였다.
고기 이야기를 들어도 저런 표정이라니.
아까 전 까지 오빠 소리를 들을 때 까지만 해도 신나 보이더니 내가 머리를 푼게 그렇게 아쉬운 일이란 말인가.
나는 연구소의 현관에 들어서기 전에 잠깐 내 옆을 걷는 주인공군의 옆구리를 손가락 끝으로 찔렀다.
그리고 양 손을 머리 뒤로 모아 아까 까지 묶여있던 머리를 잡은 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에 둘이 있을 때 다시 묶어줄게. ...오빠."
내가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 나머지.
나는 연구소를 향해 급하게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