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막간 : H.S.A GOMER frame
타브하와 필리스티아에 이어 세 번째의 시설 놋 베이스.
놋베이스는 타브하의 베레시트 1호기나 필리스티아의 베레시트 2호기와 같은 최신기는 없지만 양산 계획이 가장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기지였다.
한 명의 엘리트 천재에게 모든 것을 걸기보다 여럿의 범인을 키워 항상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을 육성하는 기지.
비가 쏟아지는 밤 그 기지의 안으로 트레일러 위에 실린 화물이 엄중한 감시 아래에 격납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트레일러가 향하는 곳은 기지 가장 깊숙한 곳이자 보안이 가장 높은 곳.
여러 보안을 거친 뒤 트레일러는 6번 격납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도착한 트레일러는 격납고의 바닥 위에 꽁꽁 싸 매인 화물을 내려놓자 검은 정비복을 입은 정비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것이 그 외주품인가요? 교수님."
정비원들과 같은 검은 정비복 위에 하얀 가운을 걸친 연구원이 자신의 옆에 서있는 여자를 향해 물었다.
"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줄 알았지만 예정대로 도착했네요."
연구원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회색의 여성정장 위로 하얀 가운을 걸친 놋 베이스의 연구 담당자.
디블라임 교수였다.
"중요도가 높은 프로젝트라면...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게 좋지 않았나요?"
연구원은 조심스럽지만. 연구자로써 가져야 할 호기심을 가진 채 디블라임 교수에게 물었다.
이렇게 엄중한 보안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물품이라면 차라리 기지에서 직접 만드는 게 좋지 않았을까.
"아쉽지만 제 전공은 차원기 쪽이 아니에요. 코어의 연구와 파일럿의 육성... 그리고 시스템의 조정입니다."
교수는 한 손에 든 태블릿 위로 눈앞의 화물에 대한 제원을 읽고 있으며 연구원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사람마다 잘 하는 분야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제 고집으로 매달려 시간을 뺏기기 보단. 조금 분하더라도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베스트겠죠."
디블라임 교수의 눈가 위로 조금 아쉬움을 품은 감정이 지나갔지만 그 감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케루브 2를 필두로 한 3세대 양산 계획의 선두에 서고 있는 그녀였지만 지금 도착한 저 것은 자신의 손으로 도저히 만들 수 없었다.
자기가 건넬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발상과 프레임의 설계도 뿐. 그러나 설계도 조차 교수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위원회'에서 건네 준 오래된 고문서와 같은 설계도. 교수는 그저 그 것을 전달해주었을 뿐이었다.
제약적인 정보를 건네 준 것뿐이지만 교수보다 한참은 어린, 고작 열여섯 살의 소녀인 '박사'는 저것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 끼이익...
교수와 연구원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화물 아래에 모인 정비원들이 화물에 걸린 잠금장치를 풀기 시작했다.
여러 겹의 포장이 풀리자 그 안에서 거대한 형체가 드러났다.
마치 수의에 감싸인 시체와 같은 무언가.
갈색의 천 아래로 거대한 기체의 프레임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정말로... 만들어졌네요."
연구원은 난간 아래로 보이는 프레임을 내려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놋 베이스의 누구도 개발하지 못한 기체를.
불가능한 설계사상을 가진 기체를... '박사'는 정말 만들어냈다.
"HSA 고멜 프레임"
교수는 태블릿 화면 가장 위에 떠있는 기체의 제원을 읽은 뒤 화면 위의 청사진과 천 아래에 덮인 기체의 실루엣을 비교했다.
천 아래에 놓인 기체의 실루엣은 일반적인 기체와 다른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기체보다 두 배는 커다란 길이.
어딘가 이질적인 기묘한 느낌을 주는 실루엣은 기지 안의 어느 기체와도 닮지 않았다.
인간과 같은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졌지만. 저 것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저게 정말로 차원기인가요? 차원수의 시체 같은건... 아니겠죠?"
연구원은 천 아래의 실루엣을 직접 본 것이 아니었지만 저 아래의 것은 자신에게 불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럴 리가요. 만약 정말 차원수였다면 기지에 들어오기 전에 불태워버렸을거에요."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연구원의 질문을 부정했다.
"데이터 확인 끝났습니다. 봉인을 걷어주세요."
태블릿 안의 정보를 확인한 교수는 정비원들에게 프레임을 감싸고 있는 천을 걷어 달라 지시했다.
'그 소녀는... 자기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있겠죠. 분명 그녀에겐 흥미가 없는 것 일 테니까... 천재의 비애군요.'
HSA 고멜 프레임은 '박사'의 손을 거쳤지만 클린업만 거쳤을 뿐. 소녀는 무엇을 만든 건지 조차 모를 것이다.
'박사'는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 뿐.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만든 뒤에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고멜 프레임은 박사의 사생아라 볼 수도 있으리라.
- 촤르륵
교수의 지시를 들은 정비원들은 갈색의 천을 고정한 잠금장치를 풀고, 봉인지를 찢었다.
천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고 검은 프레임. 프레임은 인간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거친 선. 날카로운 모습. 길쭉한 팔과 날카로운 손톱.
그리고 머리의 뼈대 위에 솟은 두개의 굵고 날카로운 뿔.
뼈대만 남은 프레임은 악마의 유해와도 닮아있었다.
가슴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코어가 들어갈 빈자리.
숨을 거둔. 아직 숨을 쉬어본 적조차 없는 악마의 형상.
"이런 기체를... 정말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건가요?"
교수가 건넨 태블릿에 적힌 제원을 읽어 본 연구원은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교수에게 물었다.
"중력 가속도도 어느 기체보다 높고... 이런걸 움직인다면... 파일럿은 고기반죽이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인간의 형태보다 두 배는 커다란 악마의 형상은 인간이 다룰 수 없는 구조였다.
"확실히... 인간이라면 무리겠네요."
교수는 인간이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는 듯 연구원의 질문을 긍정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건가요? 무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인간이 다루는 것은 무리라도 인공지능이라면 다룰 수 있을지 모른다.
코어를 다루는 것은 오직 인간만 가능한 일이지만. 조종은 기계에게 맡겨도 될지 모른다.
연구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공... 그래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교수는 아직 젊어 아름답지만, 조금은 나이가 들어가는 눈을 내려 고멜 프레임의 조종석이 들어갈 부분을 내려 보았다.
'인간은... 다룰 수 없겠죠.'
인간은 자신의 섭리를 뛰어넘은 악마를 다룰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이 아닌 신이라면. 이 세상에 흩어진 신의 조각들을 긁어모은다면.
인간은 악마조차 다룰 수 있게 된다.
'위원회가 준비해준 설계도와... '그것'이라면 정말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교수는 기지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어있는.
생명을 품을 수 없는 얼어붙은 땅에서 발견 된 지금도 살아있는 '그것'을 떠올렸다.
하반신만 남은 '그것'은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인간은.
인간이 손을 대서 안 되는.
기록되지 않은 실수의 산물을.
누군가 고의로 풀어놓은 덫을.
절반의 절반의 절반 위에 손을 대려 하고 있다.
인간은.
아버지가 주신 두 번째 계명을 어기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