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7화 〉라파 베레시트 (127/152)



〈 127화 〉라파 베레시트

박사를 타브하에 데려오고 며칠이 지난 뒤.


나와 주인공군 그리고 미하일까지 세 명은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트레일러에 타고 있었다.

베레시트 1호기의 개수가 진행되는 동안 마냥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박사가 연구하던 장비의 테스트를 맡기로 했다.


시험장비의 특성상 기지 내부 부지에서 테스트하긴 곤란해서 일부러 먼 지역까지 나오게 되었다.

괜히 기지 내에서 입증이 안  장비를 테스트하다가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곤란해지는 건 결국 우리들이니 어쩔 수 없었다.




기지를 벗어나 조금 멀리까지 오게 되었지만 다행히 테스트 할 만한 곳은 많았다.


저번 폐쇄도시처럼 이 세계에는 버려진 지역이 너무나 많았다.

게이트에 대비해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지역에는 한계가 있었다. 주둔할  없는 곳은 그저 버려진 땅이 될 뿐이었다.


게이트와 차원수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국가의 모든 곳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켜지지 않는 곳이 생기는 만큼 국방에 허점이 생길  있었지만 침략해오는 국가는 없었다.


주변 국가들도 10년 전 사건으로 인해 자기 영토를 지키기 급급하였고. 국방이 허술한 틈을 타 침략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자국의 방어선이 무너져 망한 국가도 있었다.

이 세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롭다.

...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다 무너져가는 시가지였다.


저번 폐쇄도시와 같은 예상치 못한 대형 차원수의 습격이 걱정되어 게이트 발생빈도가 낮은 버려진 지역을 골랐다.

"아으..."


트레일러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쭉 켰다.

트레일러 같은 대형탑차는 예전에도  번 타본적이 있었지만 이 승차감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늘 장비 테스트를 위해 따라온 주인공군과 미하일도 잠이  깬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졸려..."


베레시트 2호기가 실렸던 트레일러에서 내린 미하일은 아직도 잠이 덜 가신듯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미하일은 목이 꺾여 불편할 텐데도  어깨에 자주 기대곤했다.

주인공군은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미하일을 한번 흘긋 쳐다보고 말 뿐이었다.

"너도 기댈래?"


한쪽 어깨는 비어있으니까 양쪽에서 누르면 의외로 균형이 맞을지도 모르고.




"...괜찮아."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주인공군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야 별 상관없는데...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트레일러에서 세 대의 기체가 내려졌다.

가장 먼저 내려진 것은 백색의 아르베넷.

붉은 2호기.

그리고 푸른색으로 칠해진 커스텀 케루브다.

한 대만 케루브인 이유는 1호기가 개수작업 진행 중이라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 양산기와 신형장비의 호환 테스트를 겸할 목적으로 1호기 대신 케루브를 차출해왔다.

혹시나 주인공군이 혼자만 양산기를 타게되서 부끄러움을 느낄까봐 전날 정비원들에게 몰래 부탁해서 케루브를 푸른색으로 도장해왔다.


1호기 개수로 한참 바쁠 정비원들에게 부탁만 하기엔 염치가 없어서 나도 학교가 끝난  몰래 도색작업에 참여해서 도와주긴 했다.



이 정도 정성이면 '나만 양산기란 말이야! 부끄러워!' 같은 반응은 안보여주겠지...



"파란색 케루브네..."

다행히 주인공군은 파랗게 칠해주니까 별 불만은 없는 듯 색에 대한 감상만 조용히 내주었다.



"아하하하! 아하트만 양산! 웁...!"


미하일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일이  풀리고 있는데 괜한 이야기가 끼얹어져선 곤란하다.

"우웁...웁!"


손바닥 아래로 미하일의 작은 입술이 떨리는 느낌이 들렸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조용히...

- 할짝



"힉!"


미하일의 입을 막고 있던 손에 부드럽고 축축한 감각이 느껴져 손을 휙 놓아버렸다.



"푸하... 저 녀석만 자기 기체가 없잖아."

"수리중이니까 어쩔 수 없잖니..."

"교관님이 항상 기체를 애인처럼 대하라고 했어. 그런데 아하트는 애인을 자기 손으로 부쉈어! 폭력남! 인기 없는 남자! 동정!"


막은 입을 때자마자 미하일의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기체를 애인처럼 대하라고 했더니 부수면 저런 취급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마지막 두개는 너무한데.



"내가...  애인을 부순 거야...?"

주인공군은 미하일의 말에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자신의 기체를 애인처럼 대하라. 많은 파일럿들이 훈련단계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정말 기체를 사랑하라는 게 아니라 섬세하게 대하라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1호기가 부서지긴 했지만... 전부 주혁이 잘못은 아니야."

드림랜드에서  이상 부서졌던 1호기의 주 파손원인은 검게 변한 아르베넷과의 전투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아틀락나챠와 싸웠더라면 이 정도까지 부서지진 않았을 텐데... 기억엔 없어도 내 책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야 내 잘못이지...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그러나 주인공군은 어딘가 분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아직 십대라서 어쩔 수 없는 걸까. 감정의 조절이 어려울 시기이니 어쩔 수 없겠지.


"기운내자. 응?"

주인공군의 등을 한 손으로 툭툭 두들겨주었다.



"쟤는 기체 간수를 못했는데도 위로받아..."


내가 주인공군을 달래는 게 어딘가 마음에  드는 것인지 미하일은 조금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한마디 더 할 것 같은데...


다른 이야기로 주의를 돌리는 수밖에 없겠다.


"기체가 애인이라니. 그럼 남의 케루브를 타고 차원수에게 던져서 자폭시킨 나는 뭐가 되는 거니 미하일?"

기체를 험하게 다루는 거라면  역시 지지 않는다.

나에겐 예전에 1호기를 보조하기 위해 케루브를 차출해서 자폭시켜버린 전례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기체를...? 터뜨려...? 어...어어...마마...그건 불륜같은거 아니야...?"


나의 이야기를 들은 미하일은 표정이 조금 창백해졌다.


미하일이 들어온 뒤로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내 예전 전과를 모르고 있었겠지.



남의 기체를 빼앗은 뒤 부숴버려서 돌려주지 않았으니... NTR 비슷한  되는건가?

결국 그 뒤에 돌려준 건 부서져버린 기체와 교전기록이 담긴 레코드를 돌려주었으니 어떻게 보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오퍼레이터가 이 자리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또 남들에게 오해를 살법한 별명이 하나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지...




"아무튼 미하일의 말은 너무 신경쓰지 마.  때 일은 어쩔  없었잖아..."


전부 따지고 보면 내가 저지른 일이지만 또 다른 내가 저지른 일이니 어떻게 보면 나에게 잘못을 묻는  잘못된 일이 아닐까.


조금 뻔뻔하지만 위로를 건넸다.




"그래...?"

위로를 해주자 조금 기운을 차린  같아보였다.

그래도 아까 전에 미하일이 인기 없는 남자라고 말한게 조금 걸렸던 건지 표정이 침울해보였다.

히로인에게 저런 이야기를 직접 듣는 건 조금 괴롭겠지.

남자애가 자신감이 있어야지. 기운 없이 축 처진 모습은 보기 안쓰럽다.



"애인도 언젠가 생길지도 몰라. 힘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처럼 기체를 험하게 쓰는 어른이 되지 말고. 주변에서 좋은 히로인을 골라잡으렴.



"힘내볼게."

기운이 돌아온  같아서 다행이었다.

묘하게 자신감이 붙어보이는게 회복이 참 빠르구나.



"마마가... 기체를...남자를 갈아타고... 버리고..."

주인공군이 회복된 대신 미하일이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각자의 기체에 올라탔다.

일부러 먼 곳 까지 오게  이유는 지금 기체의 등 뒤에 달린 신 장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박사가 개발해낸 비행 유닛. '시모닉스 유닛' 의 시험을 위해서였다.

케루브나 2호기의 경우엔 어깨에 달린 하드 포인트를 통해 시모닉스 유닛의 장착이 완벽하게 되어있었지만.


아르베넷은 유선적인 디자인 때문에 시모닉스 유닛을 제대로 고정할 수가 없었다.

박사가 나에게 허락을 구하고 아르베넷의 어깨에 타공을 시도해보았지만 격납고의 어떤 장비를 써도 아르베넷의 장갑판은 뚫리지 않았다.



결국 시모닉스 유닛을 장착하지 못하고 거대한 운송용 벨트로 아르베넷의 동체에 묶어놓은게 전부였다.

모양새는 조금 나쁘지만 확실히 고정은 되었으니 운용에는 문제가 없을거라는게 박사의 판단이었다.

시모닉스 유닛의 구동원리는 저번에 탑승했던 케필 레브의 두 번째 시험기와 비슷하다고 들었다.


 때 뛰어난 비행성능은 입증되었으니 먼 곳까지 시험운행을 하러 온 보람이 없진 않을 것이다.



"테스트 준비완료. 시모닉스 유닛 기동하겠습니다."


준비가 완료된 뒤 정비팀에 알린 뒤 아르베넷을 기동시켰다.

- 부웅


아르베넷을 기동시키자 등 뒤에 달린 비행장비의 코어가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체가 서서히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활주로를 달릴 필요도 없이 제자리에서 코어의 힘만으로 바로 이륙이 가능한 점이 놀라웠다.

코어가 없는 아르베넷에 코어를 달린 장비를 쓰니 조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이질감. 또는 이물감 같은 느낌이 가슴  한쪽을 맴도는  같았다.




그래도 예전처럼 어지럽거나 힘든 정도는 아니다. 단지 약간의 간질거리는 듯 한 느낌만 느껴질 뿐.

- 부웅

내가 이륙한 뒤에 미하일도 준비가 끝난 것인지 2호기가 서서히 떠오르는 게 보였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한 것을 보니 역시 파일럿으로써의 재능이 누구보다 높은 미하일다웠다.



- 부웅

마지막으로 푸른 케루브가 떠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기체라 시간이 조금 걸린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기동은 별 문제 없이 성공했네. 조금 날아보자."


혹시나 기동 중에 문제가 생길까봐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세 명 모두 기동엔 성공했다.


응. >


< 마마가... 그런... >


자신감이 있는 주인공군의 통신과는 다르게 미하일은 여전히 아까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2호기도 묘하게 흔들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다른 사람의 기체를 빼앗아서 터뜨린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던가?

"미하일."

< ...응? 응. >


"집중해야지."


< 응 알았어... >

다행히 한번 주의를 주자 정신을 다잡은 듯 2호기의 움직임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내가 가장 먼저 시가지의 위를 날자 2호기와 커스텀 케루브가 그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하늘을 날게 될 줄이야. 예정보다 훨씬 빠른 진보였다.

하늘을  수 있게 된다면 전장에서 제약이 하나는 사라지는 셈이다.


무리하게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뛰어다닐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다음에 나타날 '투신'들과의 싸움에서 유리해질 것이다.


전투를 쉽게 넘길 수 있게 된다면 여유도 그만큼 더 생기겠지.




다행히 비행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등에 펼쳐진 시모닉스 유닛의 쌍익이 기류를 타며 자연스럽게 날 수 있었다.

속도도 섬세하게 변경이 가능했고. 공중에서 멈출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에 조금만  코어가 흔해진다면 항공 산업 자체를 바꿀법한 천재의 발명이었다.



"조금 속도를 내보자. 고속비행 모드로 전환해봐."


응. >


< 알았어.>



나도 시행착오 없이 떠오른다는 느낌 하나만으로 날아올랐으니 젊은  명은  쉬울지도 모르겠다.


조금 욕심을 내서 고속비행을 시도 해봐도 되겠다.


- 슈우우우!

조종석 아래의 페달을 내려밟자 시모닉스 유닛을 장비한 아르베넷이 빠른 속도로 날았다.

약간의 바람을 가르는 듯 한 느낌과 함께 빠른 속도로 무너진 건물의 위를 날았다.

슈우우!


미하일도 조종엔 별 문제가 없었는지 나의 옆을 따라잡듯 나란히 날았다.


저번에 박사의 작품을 가지고 날아올랐던 게 도움이 되었었나보다.

아르베넷과 2호기의 고속비행을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주인공군의 비행실력을 확인하려 하자...




슈우우우우우!!!


아르베넷과 2호기의 사이를 푸른빛이 번뜩이더니 쏘아져나가듯 무언가 지나가버렸다.


음속과도 같은 속도로 지나간 그것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앞에 있는 낮은 빌딩을 향해 날아갔다.



- 콰아아아앙!!!

 소리와 함께 푸르게 빛나던 그 것은 건물을 무너뜨리듯 건물의 외벽 사이에 쳐박혀버렸다.



무너져가는 건물에 처박힌 것은 푸른색의 커스텀 케루브...


주인공군이 타고 있는 기체였다.


"주혁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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