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9화 〉라파 베레시트 (129/152)



〈 129화 〉라파 베레시트

"둘이 같이 타자고?"


나의 제안을 들은 주인공군은 자기가 잘못 들은  아닌가 싶은 표정을 짓더니 되묻기까지 했다.




"응. 혼자서 시도하는 것 보단 바로 옆에서 누가 봐주는 게 문제점을 찾기 좋을지도 모르잖아."


미하일이 조종했을 때도 문제를 찾지 못했다면 바로 옆에서 봐주는 게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나도! 나도 탈래!"

방금 전에 테스트 비행을 마치고 온 미하일은 자기까지 다시 타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셋이서 탑승하긴 힘들지 않을까?"


"그치만..."

"주혁이 말이 맞아. 셋은 힘들 거야."

"으응..."

주인공군의 현실적인 조언을 듣자 미하일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금방 체념한 듯 했다.

미하일 혼자만 남겨두는  같아서 조금 따돌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좁은 케루브의 조종석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잠시 후 주인공군과 함께 커스텀 케루브의 조종석에 올라탔다.



"같이 앉지는 못하겠네."

평소보다 두꺼운 비행용 파일럿 슈트를 입은 덕분에 좌석 위에 둘이 같이 앉을 수는 없었다.

파일럿 슈트의 허리에 달린 카라비너 행거를 조종석 옆의 안전 바에 걸어두고 시트의 머리를 붙잡고 있는 게 전부였다.


상당히 불안한 자세지만 아까같이 급발진만 하지 않는다면 기체가 흔들리는 정도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아쉬워?"

"뭐? 아... 아니야!"

"풋..."


조금 농담 삼아 말한 것뿐인데 금방 당황하는 모습이 조금 웃겨서 웃음이 조금 나와 버렸다.

"그게 정말 그런 게 아니라..."

조금 고개를 돌리고 웃자 나에게 뭔가 해명하려는 것처럼 주인공군의 말 끝이 길어졌다.


"옛날 생각나네."

둘이서 같은 조종석에 오르자. 1호기의 조종석에 같이 탔었던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때의 1호기와 다르게 지금 케루브의 조종석은 훨씬 비좁아서 같이 앉을 수도 없었지만...

"그 때는 초보였는데... 지금은 베테랑은 아직 멀었지만.  하고 있어."


"...고마워."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꺼내본 말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조금 더 어색해진  같았다.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나를 제대로 마주보지 못했다.


  동안 제법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거리감이 남아있는걸까.



---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다시 한 번 해보자. 이번엔 살살할 수 있지?"

이번엔 나까지 타고 있는데 다시 급발진 해버린다면 나까지 아파질  같다.

"살살 해볼게."


"부탁해."



- 위이잉...



코어를 가동시키자 모니터 위에 기본 조작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띄워지며 기체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문제는 없는거 같은데..."

혹시나 혼자서 놓친 부분이 있을까봐 인터페이스를 들여다보았지만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


여러 번 추돌을 겪었지만 가동부에도 문제는 없었고. 출력도 전부 정상수준이었다.



"조금 위로 올라가볼래?"

커스텀 케루브의 기본 조작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박사가 달아준 시모닉스 유닛의 문제겠지.


박사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벽한 프로그램이라도 운영환경의 차이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마련이다.



- 우웅

잠시 후 시모닉스 유닛에 달린 코어가 도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조금씩 위로 떠올랐다.

일반 이륙 중에 문제가 발생한 것일지도 몰라서 한 손으로 조종석의 머리 부분을 잡은 채 계기판을 유심히 들여 보았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주인공군은 내가 옆에 타고 있는 것을 의식한 건지 오히려 너무 조심히 몰고있는 것 같았다.

"조금 빨리 해봐."


급발진 문제 때문에 조심하는 건 알고 있지만. 너무 느려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를 확인하려면  문제에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다.



- 위잉


조금 빠른 속도로 폐시가지가 내려보이는 높이까지 올라왔지만 문제는 없었다.

"이번엔 천천히..."

 예상이 맞다면 일반 비행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 슈우우...


 뒤에 달린 시모닉스 유닛의 코어가 천천히 돌며 비행을 시작했다.


아르베넷에 비해선 조금 둔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케루브 자체의 중량이 무거운 덕분에 그런 거겠지.

역시 일반 비행에도 문제점은 없었다.

"속도좀 내볼까?"

"응."

이제 고속모드로 바꿔본다면 문제점을 찾을  있겠지.


- 기이이이잉...

고속 비행모드로 전환하자 모니터의 인터페이스 위로 작은 알림이 나타난 뒤 케루브의 코어와 시모닉스 유닛의 코어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두개의 코어가 같이 돌기 시작하자 가슴속이 약간 울렁거리는 듯  느낌이 들었다.

아까 전 아르베넷에서도 느꼈던 비슷한 감각.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감각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말 움직여도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이대로 움직여."

내가 옆에 있는걸 신경 쓰는 것 같았지만 괜찮다는 의미로  손의 엄지를 펼쳐주었다.



"움직일게."


- 슈우우우우우우...

시모닉스 유닛에 달린 코어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 파앗!




조종석 아래의 페달을 밟은 것과 함께 케루브는 앞을 향해 쏘아졌다.

모니터 밖으로 비치는 바깥의 풍경이 선처럼 빠르게 흘러 지나갔다.



"으으..."

조종석 안으로도 느껴지는 가속도에 몸이 짓눌리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고도가 높았던 덕분에 부딪칠 곳이 없어서 충돌은 하지 않았지만.



"읏..."


이건 너무 빠르다.


파일럿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섰다.


삐! 삐!


계기판 위로 시모닉스 유닛이 달린 등 부분과 공기저항에 노출된 관절부에 주황색의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속 모드를 켜고 페달을 밟은 것뿐인데. 이렇게 급발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미하일이 탔을  문제가 없었으니까... 기체의 문제는 아니다...


"흐읏...윽..."

역시 주행시 충격을 줄여주는 건 조종석의 좌석 뿐인 걸까.

참으려고 해도 입에서 나도 모르게 힘겨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윽..."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주인공군은 어딘가 힘든 듯  표정을 지었다.

조종과 별개로 약간 상태가 나빠 보이는데... 혹시...

- 삐! 삐! 삐!

추측과 함께 나의 눈이 향한 곳은 인터페이스의 우측 상단. 그 곳에서 원인을 찾을  있었다.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원인이었는데 내가 이걸 놓쳤을 줄이야.


"됐어! 이제... 멈춰! 윽... 멈춰봐!"


덜덜 떨리는 조종석 안에서 겨우 팔을 뻗어 조종간 위에 얹혀진 주인공군의 손을 붙잡고 옆으로  틀었다.


- 슈아아아아아아!!!


내가 억지로 손을 잡아 조종간을 움직이자 기체가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버렸다.


옆으로 돈 것이 아니라 공중제비를 돌듯 공중에서 앞구르기를 하는 것처럼 한바퀴 굴러버렸다.



- 쿵!



기체가 도는 것과 함께 행거를 걸고 있던  몸도 거꾸로 들려서 천장 위에 등을 부딪쳤다.

"묘월아!"


"이대로 괜찮으니까! 멈춰봐!"

몸이 가속에 의해 짓눌려 천장 위에 매달린 것처럼 되었지만.

지금이라면 속도를 줄일 수 있었다.


- 끼이익!


주인공군이 조종간을 안쪽으로 당기며 양 페달을 내려밟자 고속 모드가 풀리며 기체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체에 가해지는 속도가 줄어들자 천장에 부딪친 몸이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꺄악!"

"우왓!"

- 쾅!


"아야야 야야야..."

속도가 완전히 줄어들며 천장에서 떨어진 내 몸은 가뜩이나 좁은 케루브의 조종석 안에서.


주인공군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몸을 겹치는 자세로 주인공군의 몸 위에 올라탄 꼴이 되어 버렸다.

---



케루브가 내려오는 동안 자세를 바꿀 수도 없어서 주인공군의 몸 위에 올라탄 자세 그대로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우리의 몸 사이엔 평소보다 두터운 파일럿 슈트가 있었지만.

미묘하게 따뜻미지근한 체온이 느껴지는 듯  자세로 마주볼 수 밖에 없었다.



"고생했어..."


기체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자 긴장이 풀리면서 몸에 힘이 빠지는 듯  기분이 들었다.

- 지이익


비행도 끝났겠다. 훈련용으로 입고 온 파일럿 슈트 안에 쌓인 열기를 빼낼 겸 슈트의 앞 지퍼를 조금 열었다.

열어봐야 이 자세로는 목 밖에 내릴  없겠지만 열지 않는 것 보다는 시원했다.


평소의 슈트라면 등부터 열어야 할 텐데. 앞을  수 있는 구조라 다행이었다.

"아...아니야. 네가 고생했지."

더위를 식힐 겸 슈트의 윗 주머니 안에 챙겨둔 머리끈을 꺼내 머리를 묶는 동안 나와 마주보고 있던 주인공군은 시선을 조금 돌렸다.

"아 도착했네."

머리를 다 묶자 조종석이 내려앉는듯한 느낌과 함께 케루브가 땅 위에 착륙했다.

착륙하는 동안  때문에 괜히 무거웠을까봐 착륙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조종석을 열고 가장 먼저 내려왔다.

계속 위에 올라타고 있으면 미안하니까...



그러나 바로 내려온 나와는 다르게 주인공군은 곧바로 내려오질 않았다.


"안내려오고 뭐해?"


허리를 뒤로 꺾어 커스텀 케루브의 조종석 안쪽을 쳐다보았지만 주인공군은 아직도 내려오질 않았다.


"...조금만 있다가 내려갈게."

"알았어."



내가 비행사고의 원인을 찾아냈던 것처럼 주인공군도 뭔가 찾아낸 걸지도 모르겠다.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어쩔 수 없겠지.

...

"덥다..."


파일럿 슈트의 상의를 내리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자 정비원들과 함께 비행을 지켜보던 미하일이 돌아왔다.

미하일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어렵게 입을 땠다.


"...마마 저 안에서 쟤랑...이상한   거 아니지?"


"무슨 소리야?"

이상한 짓?

조종석 천장은 의외로 등을 대고 있기 좋구나 하고 느낀 그걸 말하는 건가.



"...통신 채널에서 들리는 소리가 이상했어."


"잘 모르겠는데?"


통신이래 봐야 올라가 달라. 움직여달라 정도 밖에 없었는데.


뭐가 이상했다는 건지 다시 한  생각해봤지만 알  없었다.



시시한 고민을 하는 사이 주인공군도 자체 점검이 끝난 듯 조종석에서 내려왔다.

"...원인은 찾았어?"

주인공군은 조금 지쳐보였다. 테스트 비행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런건가.




"응. 간단한 이유였어. 이걸봐봐."


정비원에게 부탁해서 가져온 태블릿을 켜서 오늘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측정 된 적합률을 주인공군과 미하일에게 보여주었다.


태블릿 위로는 각각 붉은색, 푸른색의 꺾은 선 그래프가 백색의 배경시트 위로 표시되어 있었다.

"먼저 이 파란게 주혁이의 적합률이야."

35%.


최초 기동을 시작했을 때의 적합률이었다... 예전보다는 많이 늘었네.

처음 훈련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10~20% 언저리였는데 3개월 동안 많이 성장한  같았다.



"이 쪽이 미하일이 움직였을 때..."

붉은색의 그래프는 두 배는 높은 70%부터 그어져 있었다.



"나보다 두 배나 높구나..."

"조금 더 칭찬해줘도 좋아!"


미하일은 자랑스럽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내밀었다.

2호기가 아니라 약간 내려간 수치지만 그래도 높은 적합률이었다.


"그리고 이 쪽이 시모닉스 유닛을 가동했을 때."


주인공군은 20~30%를. 미하일은 65~68%를 찍고 있었다.



"어? 내려갔네."


"코어가 달린 장비를 장착했으니 어쩔 수 없어. 적합률이 코어에 나눠진 거야."


"미하일은 대단하네... 변동 폭이 적어."


주인공군이 10%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에 비해 미하일은 3%의 적은 변동수치를 보여주었다.





"중요한건 이 부분이야... 고속 모드를 켰을 때를 봐줘."

미하일은 50~60%로 조금 전 보다 더 낮은 위치로 그래프의 선이 꺾여 내려왔다.


고속모드는 미하일에게도 부담이 있었던 듯. 10%가까이 내려가고 변동폭도 3%에서 10%로 커졌다.

"나라도 이건 조금 힘들었나봐."

미하일은 커진 변동 폭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조금 툴툴거렸다.


그래도 높은 수치였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자세가 미하일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미하일이 저 정도라면... 나는  아래로 떨어져서 제어를 못했나보네."

시모닉스 유닛을 가동시켰을 때 미하일이 큰 폭으로 적합률이 떨어졌으니 주인공군은 자기는 더 심각하게 내려간 게 아닐까.

그것이 사고의 원인이   아닐까 걱정하는  표정이 조금 씁쓸해보였다.

"그건 아니야."

하지만 그 추측은 틀렸다.


태블릿의 화면 위로 손가락을 쓸어 다음 슬라이드로 넘겨 푸른 선의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정말 이게 내 적합률이야?"

"아하트가? 정말?"




짐작했었지만. 나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 70% ]



"오히려 처음보다  배 높아졌어."



적합률이 깎여나가야 할 상황에서.


주인공군의 적합률은 오히려 두 배 가까이 상승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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