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라파 베레시트
"두 배나 높아졌다고?"
주인공군의 적합률은 두 배나 높아졌다. 단순한 숫자만 오른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손에 꼽는 경지인 70%의 수준까지 진입하였다.
본래 적합률이 70%인 미하일 마저 코어를 두개 다루는 상황에선 적합률이 내려갔지만, 주인공군은 오히려 상승했다.
"내가... 70%?"
그 당사자인 주인공군조차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듯 얼떨떨해보였다.
"그게 가능해? 잘못된 게 아니야?"
미하일은 70%라는 숫자가 믿기지 않는 듯 내가 들고 있는 태블릿을 잡아서 더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믿기진 않는데... 사실이야."
측정이 잘못된 것일까 싶어서 몇 번 다시 확인 했지만 측정 된 기록에는 변화가 없었다.
시모닉스 유닛의 고속비행모드를 켠 순간부터 측정치의 그래프가 치솟았다.
70%로 시작한 그래프는 낮아지지 않고, 75~76%의 변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급발진 문제도 적합률이 장비의 기준치보다 높아서 그랬을 거야. 정비팀에 부탁하면 금방 조절해주겠지."
추가 장비로 적합률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장비가 높아진 주인공군의 적합률을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보다 훨씬 높아."
축하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미하일은 자기보다 앞서 나갔다는 것이 분한 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태블릿을 들지 않고 있던 한 손이 꽉 쥐어지는 것이 얼핏 보였다.
"당장 적합률은 높을지 모르지만. 조종 실력은 미하일이 앞서니까 괜찮지 않을까?"
조금 질투를 느껴가는 미하일의 감정에 제동을 걸듯,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정말...?"
주먹을 쥔 손 위에 손을 올려 주먹을 감싸듯 잡아주자 쥐어진 주먹이 점차 약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미하일은 누구보다 강하니까. 최강의 파일럿이지?"
"응! 나는... 강해!"
주먹이 쥔 손의 힘이 서서히. 조금씩 풀어져 나가며 굳어있던 미하일의 표정도 점점 웃음을 띄기 시작했다.
표정이 금방 풀어진 것을 보자 안도가 되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도 미하일이 누군가와 비교가 될 때 마다 열등감을 느끼고. 때로는 그게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바로 옆에서 방향을 돌려줄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쉽게 기분을 풀어줄 수 있었구나.
원래 이런 역할은 내가 아닌 주인공군이 해야 했을 일이었겠지만.
아직 저 애에겐 누군가를 위로해줄만한 능력은 없어보였다.
지금의 주인공군은 그저 자신의 성장에 기뻐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다른 누군가를, 주변을 눈여겨 볼만한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주인공군의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미하일도 주인공군도 아직은 아이일 뿐이다.
그저 옆에서 누군가 잡아 줄 어른이 필요한 아이.
"아하트는 그렇다 쳐도 마마는 어느 정도야? 보고 싶어."
잠깐 생각에 빠져있었지만 미하일의 목소리가 나를 생각 속에서 꺼내주었다.
두 명의 적합률을 보고 있다 보니 정작 내 적합률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높지 않을까?"
성장감에 빠져있던 주인공군도 내 적합률이 궁금했던 건지 나와 미하일의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기대할 만한 수치는 나오지 않을 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지금의 나의 적합률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지긴 했다.
태블릿 화면의 아래로 손가락을 내려 그래프 아래에 있는 세 번째 탭. 나의 기록이 담긴 탭을 눌렀다.
잠깐 화면 위로 연산중임을 나타내는 로딩바가 잠깐 지나간 뒤 숫자가 나타났다.
[ 61% ]
시모닉스 유닛을 장착한 아르베넷의 기동 직후 측정된 적합률은 예전에 측정했던 수치인 61% 그대로였다.
"바뀐 게 없네?"
"마마 나보다 낮았어?"
미하일은 나의 적합률을 지금 처음 보는 거였지.
내 적합률을 본 두 명의 반응은 각자 달랐지만 나의 적합률이 생각보다 낮다는 것에 놀랐다는 점은 같았다.
"마마라면 80을 넘을 줄 알았어..."
"80을 넘길 수 있을 리가 없잖니?"
"그런가?"
미하일은 가볍게 언급했지만 적합률을 80을 넘어갔을 때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듯 했다.
적합률이 80이 넘어갔을 때의 위험성. 그 결말을 이 아이들은 끝까지 몰랐으면 한다.
"초기 적합률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어. 다음에 시모닉스 유닛을 기동시켰을 때는..."
텝 아래의 버튼을 눌러 측정항목을 바꾸자 시모닉스 유닛을 가동시켰을 때의 적합률이 산출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연산이 끝나고 적합률이 표시되었다.
[ 61%]
여전히 61% 그대로였다.
"신기하네... 아무런 변화도 없어."
"1%도 안 떨어졌어! 대단해!"
시모닉스 유닛을 기동시켰을 때 미하일도 주인공군도 적합률이 떨어졌었지만 내 적합률 만큼은 전혀 변동이 없었다.
장비의 기동부터 비행을 유지하는 동안 61%의 적합률은 낮아지지도 높아지지도 않았다.
"우연 아닐까?"
"대단한 거야!"
미하일은 내 적합률을 자신의 적합률을 봤을 때 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마마 굉장해! 엘리트! 에이스야!"
"헤헤..."
미하일이 칭찬해주니까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입 꼬리가 조금 느슨해진 것 같았다.
"맞아. 대단해."
주인공군도 나의 적합률을 보고 어린 동생에게 칭찬해주는듯한 말투로 말해주었다.
아이들에게 순수하게 칭찬을 받자 왠지 모르게 조금 부끄러워진다.
"아, 아무튼. 다음걸 볼까?"
계속 칭찬을 받자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 같아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주인공군의 어깨 옆에 붙어서 서둘러 다음 텝을 눌렀다.
시모닉스 유닛의 고속비행모드를 가동시켰을 때의 텝을 누르자 잠깐의 연산을 거친 뒤 두 자리의 숫자가 나타났다.
[ 61% ]
고속비행모드에서도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초기 기동 61%에서 시작한 그래프는.
계속 수평선을 그리며 61%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인공군의 푸른색 그래프 막대와 미하일의 빨간 그래프 막대 사이에서도 나의 흑색 그래프는 두 그래프를 꿰뚫듯 수평으로만 그어져있을 뿐이었다.
나의 적합률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두 자리의 숫자는 기이했다.
...
"이번에도 61%...?"
"장비가 고장난 게 아닐까?"
나는 태블릿을 등 뒤로 슥 숨기며 얼버무렸다.
"앗 나 못 봤어."
기이한 수평선을 보지 못한 미하일은 아쉬워했지만 내가 태블릿을 등 뒤로 가리자 굳이 확인하려 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게..."
주인공군은 나의 얼버무림을 받아들이지 않는 듯 내 손에 든 태블릿을 가져가려고 했다.
- 툭
태블릿을 가져가려는 주인공군의 손 위에 나의 다른 손을 뻗어 잡았다.
서늘한 손 위에 조금은 열을 띈 나보다는 큰 손가락이 잡혔다.
"이런 것보다 원인을 알았으니 얼른 장비 조정을 부탁드려보자. 이번엔 똑바로 날아봐야지?"
"아... 그랬지."
손을 잡고 다른 이야기로 얼버무리자 금방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아..."
쥐어진 손을 가볍게 밀어내자 조금 아쉬워하는 듯 한 소리를 냈다.
"이거 돌려드리면서 조정 부탁드릴게.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어줘."
손을 놓고 가볍게 밀어낸 뒤 화면을 끈 태블릿을 흔들어 보이곤 정비원이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알았어."
"또 둘이서만 놀고 있어!"
주인공군과 단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던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하일은 조금 분한 듯 했지만 등을 돌리고 정비원에게 향하자 금방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당장 이 자리는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적합률은 113%에서 내려가길 바란 순간부터 계속 61%를 나타내고 있었다.
사람의 심장박동, 소음의 크기, 호흡의 길이처럼 자연스럽게 변하고 또 움직여야 할 적합률은.
내가 무슨 일을 하던 61%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숫자는 이상하다.
오늘 이 곳에서 돌아간다면 박사에게 측정을 요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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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닉스 유닛의 정비를 끝낸 뒤 다시 한 번 테스트 비행을 시도했다.
이번엔 커스텀 케루브에 같이 탑승한 게 아니라 각자의 기체에 탔다.
다시 한 번 폐 시가지 위를 날아오른 뒤 주변에 충돌할 물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통신망을 열었다.
"미하일. 고속으로 바꿔보자."
< 응. >
먼저 나와 미하일이 시모닉스 유닛의 고속비행모드를 켰다.
- 슈우우우...
기체의 등 뒤로 코어가 도는 소리와 함께 기체가 빠른 속도로 날았다.
잠깐 주변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정적인 비행속도였다.
시모닉스 유닛은 조작계를 가볍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미세한 조정이 가능한 섬세한 장비였다.
아르베넷과 2호기는 별도의 조정이 필요 없었던 덕분에 안정적인 비행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주인공군의 커스텀 케루브는 아직 어떨지 모른다.
"주혁아. 너도 켜봐."
걱정이 조금 스쳐 지나갔지만 계속 불안해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번에도 실패할지 몰라도 시도는 해봐야한다.
< 켜볼게. >
잠시 후 커스텀 케루브의 등에 달린 시모닉스 유닛이 기동한 듯 통신 너머로 코어가 도는 소리가 들렸다.
기체의 외부에도 보호 장비가. 파일럿 슈트에도 안전장비가 되어있지만 이번에도 사고가 난다면?
- 슈우우우...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주인공군이 타 커스텀 케루브는 안정적으로 날아올랐다.
직전처럼 나의 옆을 스쳐지나가 건물에 처박히는 것 대신 아르베넷과 2호기의 속도에 맞추어 옆을 나란히 날았다.
< 이런 느낌이었구나... 빠르다. >
"축하해."
드디어 정상 기동에 성공한 것을 기뻐하는 듯 한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 제법이네. 아하트는 평생 못할 줄 알았는데. >
조금 도발하는 듯 한 말이 섞여있긴 했지만 미하일도 주인공군의 성공을 솔직하게 축하해주었다.
도발은 미하일 나름의 친근감을 나타내는 표시겠지.
< 이제 아하트도 날 수 있으니까 누가 빠른지 시합하자! 시합! >
- 슈아아아아아!!!
미하일의 통신과 함께 나의 옆에서 날고 있던 붉은 2호기가 붉은 궤적을 그리며 쏘아져 날아갔다.
승부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예전에 미하일과의 수영 승부에선 졌지만 이거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승부래. 너도 같이 해줄 거지?"
나도 질 수 없다는 마음에 짧은 통신을 남기고 조종석 아래의 페달을 꾹 내려 밟았다.
- 슈아아아아아!!!
시모닉스 유닛의 코어가 빠르게 돌며 나의 아르베넷 또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 어? 정말 하는 거야? >
2호기와 아르베넷이 쏘아져 나간 것을 본 주인공군은 통신에 답신을 보낸 뒤 가속하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린 폐 시가지 위로 푸른색, 붉은색, 백색의 궤적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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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시가지의 아래.
소녀는 머리 위로 지나가는 세 가지 색의 궤적을 올려보았다.
"신기하네. 요즘 세상엔 저런 것들도 날아다니는구나."
백색의 고운 천을 걸친 갈색 피부의 소녀는 한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빵을 떼어먹으며 그 모습을 올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소녀의 깨끗한 발아래에는 백색의 거대한 거인이 있었다.
거인의 이름은 '엘 이다말'.
엘 이다말은 조용히 숨을 죽이듯 소녀와 함께 하늘 위를 날고 있는 세 개의 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든 아버지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소녀는.
여섯 번째 사도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육신과 함께 올려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