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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화 〉라파 베레시트 (134/152)



〈 134화 〉라파 베레시트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혼탁해져가는 정신을 조금은 씻어내기 위해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이렇게 푹 잠들 줄은 몰랐다.


아르베넷안에서 잠든 나의 몸은 잠들기 전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상태였다.

모니터 위로 표시되는 시간만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일어나셨나요? 마스터. ]

잠에서 깨어나자 엘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응... 분석은?"


[ 잠드신 동안 전부 끝내뒀어요. ]


지난 밤 밤새 사도가 다시 올까 경계를 서며 엘에게 부탁했던 일이 있었다.

첫 번째로. 어제의 전투기록과 사도와의 전투에서 회수했던 물자. 사도가 '카나프'라고 부르던 물건에 대한 분석이었다.

카나프 여섯 장  다섯 장은 본래의 주인인 사도에 이끌려 돌아갔지만, 아르베넷의 창에 꿰였던 한 장은 돌아가지 못했었다.

그 한 장의 카나프와 아르베넷의 손끝에 뜯겨난 사도를 이루고 있던 물질에 대한 분석을 부탁했었다.



두 번째로  정보를 정리해서 박사에게 보내둘 것.


엘의 자체적인 분석도 가능하겠지만. 엘이 분석해서 나에게 보고 해봐야 나는 그냥  정도구나 하는 정보에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엘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전문가인 박사에게 맡긴다면 조금 더 사도의 정체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정체에 대해 도달할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박사는? 답장은 왔어?"

아뇨 아직 아무런 대답은... ]


모니터 위의 시간을 바라보자 이제 아침 아홉시가 조금 넘은 정도였다.

아홉시면 출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테니 아직 정보를 읽어보진 못했겠지.

가장 중요한 1호기의 개수작업으로 한참 바쁠 때였으니 일단 이 분석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박사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엘에게 지시했던 일에 대해 묻고 대답을 듣자, 우리 사이에 작은 적막이 흘렀다.


엘은 어제의 전투 이후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조심스러워진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뻗어버려  혼자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서,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점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같았다.

전투가 끝난 직후 다시 엘이 회복되었을 때도 말없이 아르베넷 안에 분석을 핑계로 방치하고 내린 것도.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엘은 말없이 나의 눈치를 조용히 살피는 것 같았다.

그런 엘을 달래주기 위해서.

"엘."

나는 손을 뻗어 엘의 등을 조심히 쓸어주었다.

네. 마스터...? ]


엘을 쓰다듬는  위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며 엘은 어딘가 긴장한  같았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 나도 어제 실수했었고..."

어른이 된 이후로 가장 하기 힘들었던  중 하나였던 것.


"...어제는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어. 미안해 엘."

먼저 사과하기.




나는 엘에게 사과를 건넸다.



[ 마스터...! ]

엘은 나의 사과를 듣고 안도한  미약한 진동이 가라앉았다.

안도한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속을 울렁이는 듯  어딘가 음울하며 불쾌했던 느낌이 사과와 함께 사라졌다.


어른일 때는 먼저 사과하는  힘들었고. 차라리 관계를 끊을지언정 사과는 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나는 정말로 달라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잠시 분위기가 온화해지며 언제나와 같은 평온한 분위기가 아르베넷의 안에 감돌았다.



[ 마스터. ]

"응? 무슨 일이야?"

평온해진 분위기 속에서 엘은 나를 불렀다.




[ 어제의 전투기록을 돌려봤는데... 조금 의아한 곳이 있었어요. ]


"의아한 곳?"


[  부분이에요. ]



엘이 지목한 부분은 전투의 처음 쯤... 아니 전투가 시작되기 이전 부분이었다.




"이 때는 전투도 없었는데?"

[ 그래서 마스터가 놓치신 걸지도 몰라요.  기록을 잘 들어주세요. ]



- 삑

< 음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겠지? >

< 무슨 소리야? 알아듣는다니... >


[ □□□ □□□ □□□□? □□□ ] >


< ... >


< 천사의 말. 할 줄 모르는 거야? > )

- 삑

비프음과 함께 음성 재생이 끝났다.


엘이 지적해준 부분은 사도 안에 타고 있던 갈색피부의 어린아이와 나누었던 대화였다.

"이 부분이 어때서?"


대단한 정보도 없이, 중간에 알아들을 수 없었던 언어가 지나간 것을 빼면 별 다른 정보가 없는데.

교전  대화도 아닌 이 부분을 지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상대 파일럿이 이야기 한 '천사의 말'... 저는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


"정말?!"

깜짝 놀란 나머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던 조종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외의 소득이었다.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또는 노래처럼 들리는 언어였지만.


엘은 이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




"그래서 저 아이가 한 말은 뭐였어?"

'아버지', '아이들', '여섯 번째'. ]



아버지와 아이들? 그리고 여섯 번째?

분명 그 아이는 열 번째와 열한번째가 아니냐며 나에게 물었었지. '여섯 번째' 또한 이 숫자와 뭔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 자세한 해석은 할 수 없었어요. 지금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정도... 이 세상의 어느 언어와도 달랐어요. ]

내가  아이의 말을 듣고 느꼈던 것과 엘이 느낀것은 다르지 않았다.



[ 부분적인 해석만 이루어진 건 정보가 부족해서에요...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야기를  이끌어 내보세요. 그러면 완벽하게 분석 가능할거에요! ]



문득 박사가 말했던 엘의 명칭이 떠올랐다.


분명 '기계 천사' 라고 했었던가. 천사의  이라는  엘이 사용할  있는 언어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엘도 처음 만났을 때 그 언어를 쓰려고 했었지...



"알았어. 다시 만난다면 대화를 유도해볼게."

[ 고마워요 마스터. ]


그 사도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만나자마자 곧바로 죽일 생각이었지만 엘이 정보가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

정보를 캐낸 다음에 꿰뚫어 매달아 버리면 그만이다.



---



엘과의 이야기가 끝난  몸을 풀  아르베넷의 안에서 내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라 그런지 기지에서 다시 보내주는 트레일러가 도착하기 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주인공군과 미하일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의 정비원에게 미하일의 행방을 물어봤더니 2호기는 혼자 연습을 위해 출격했다고 한다.


하늘 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조금 먼 곳을 날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커스텀 케루브를 내버려둔 채 사라진 주인공군이었다.

정비원들에게 행방을 물어도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정비원들의 임무는 기체의 정비지 탁아가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 돌보기는 나의 역할이었으니 잠을 핑계로 역할을 방임해둔 나의 책임이 컸다.

아마 어딘가 바람이라도 쐬러 간게 아닐까...

아직 젊은 나이였으니 한 곳에 머무르는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 지금 하고 있는 파일럿 일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결국  명의 정비원에게 더 묻고 물은 결과. 적어도 한 시간 전 까지는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정신없이 오랫동안 잠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가버렸다면 아이들을 너무 옭아매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이 쪽에서 찾으러  수 밖에 없었다.


차원수와 게이트가 없는 곳이지만 어제의 사도 처럼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또는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고...

기체를 두고 자기 두 발로 걸었다면 그렇게 멀리 가지도 못했을 테니 직접 찾으러 갈 법한 거리였다.



아르베넷에서 내린 뒤 옆구리에 끼고 있던 판초와도 같은 테나흐의 잎을 어깨 위에 두른 채.

주인공군을 찾기 위해 걸었다.


...



폐건물 틈 사이를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멀리서 걸어오는 푸른 파일럿 슈트를 입은 인영이 보였다.


푸른 파일럿 슈트를 입은 주인공군은 한쪽 어깨에 녹색의 더플백을 걸치고 있었다.

뭘 하고 온 걸까.

보고도 없이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 한 소리를 해주려고 마음을 먹은 뒤.




"주!..."

주인공군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려 하자.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어린아이 주제에 어른인 나를 걱정하려고 했던 그 모습이.

일찍 어른이 되어가는 듯 한 모습이 너무나 싫어져서.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자리에 머물러있는데.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그 모습에 질투를 느껴버려서.

아이로 남아달라고 억지로 나아가려는.

그 발을 붙잡고 늘어지려던 나의 꼴사나운 모습이 떠올라서.



"...혁아."


부끄러움과 함께 밀려오는 열등감과 함께 나는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며.

입술을 조금 깨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내가 열등감을 느껴버리게 만든 주인공군은 나를 보곤 한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런 나의 속을 알게 된다면 저 아이는 경멸할까.


나처럼 자신의 삶조차 당당하게 살지 못했던 녀석을.

자신을 넘어 이 세계를 이끌어 갈 그릇을 가진 저 아이는.

나의 비좁은 마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다가오는 주인공군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마저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아이를 혼낼 자격이 있기는 한걸까.


혼나야 하는 건 오히려 내가 아닐까.

나는...

"묘월아."


나의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떨어질 무렵.


나를 부르는 낮은 목소리와 하얀 파일럿슈트의 발끝에 드리우는 커다란 그림자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는 들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너무나  알고 있었다.


내가 엘에게 했던 것처럼.




나는 먼저 사과해야한다.

옛날의 나처럼.

자그마한 사과가 무서워 관계를 버리고 달아나는  아니라.

제대로 잘못과 마주하고 사과해야한다.




"...미안해."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짧은 사과를 건넸다.

"어제... 너한테."


너는 순수하게 나를 걱정해  것 뿐인데.



"내가... 신경질적으로 굴어서..."


너의 순수함을 질투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


마음을 담아서.

정말  년 만에 해보는 것인지 모르는 두 번째 사과를 건넸다.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끝내자. 그 대답을 듣는  두려워져서 고개가 점점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너는 과연 나의 사과를 받아줄  있을까.

만약 받아줄 수 없다면.


나는 여기까지 밖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과를 건넨 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듯 한 영겁의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이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다.

그 심플한 한마디에 영원히 멈춰있을 것 같은 시간은 다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주인공군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 얼굴은 어느 때처럼 순수하게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오히려 무신경했을지도 몰라."


나의 걱정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내가 어제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잘못을 저지른 건 나인데.


"미안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나에게 사과를 했다.




---



"아니야..."


나는 사과를 받을 입장이 아니다.



"내가 더..."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게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잘못했는걸..."


어린 너를 무대 위로 떠밀어 올렸을 뿐인데.




"나는 사과를 받을 자격이... 없어..."

나는 사과를 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너에게 사과해야해."


모든 것을 숨긴 채 너의 등 뒤에 숨어버린 것을.


- 툭




"정말 그렇게 생각해?"

조금은 무거운 목소리와 함께 어딘가 아릿한  냄새가 나는 두꺼운 파일럿 슈트를 입은 손이 올려졌다.

그 목소리는 나에게 묻는  같았다.


너는 정말로 반성하고 있는 건가.

정말 책임질 수 있는 건가.


나를 올려둔 주제에.




"정말이야... 진심으로..."

그 목소리를 듣자 다시 움츠려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잠깐 눈을 감아줘."


"눈을...?"


어째서 눈을?

"잠깐만 눈을 감아줘. 그러면 너의 진심을 믿어줄게."

"응..."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행위로 나의 진심이 인정받을 수 있다면 할 수 있었다.

눈을 감은 뒤 고개를 숙였다.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아 고개를 내렸다.

- 부스럭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눈 떠봐."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꽃...?"


나의 눈앞에는 꽃이 있었다.

 풀을 잘라낸듯한 풀 냄새와 함께 꽃의 향긋함이 느껴졌다.


하얗고 하얀. 너무나 하얀  한 아름이 나의 눈 앞에 있었다.




"선물이야."

"응?"

"어제... 그대로 사이가 어색해지는 게 싫어서... 선물을 준비해봤어."


너무나 아름다운 백합화 한 다발이.


"마음에 안 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에게?


"받아줬으면 해... 아니. 꼭 받아줘."


나에게 주어지는 거야?



"받아주면 너의 사과를 받아줄게."




떨리는 손을 뻗어.


나의 눈앞에 놓인 백합화 다발을 받아들였다.

빛나는 새벽별과도 같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백색에.


희망을 품은 듯 한 밝은 백색에.


너무나 기뻤다.



"...고마워."

나에게 주어진 꽃다발을 가슴 깊이 끌어안자 향긋한 향이 가득 퍼져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본게 정말 얼마만인지 조차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위험한 폐건물 사이를 해매며 나를 위해 꽃을 선물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얼마 만에 느껴보는 것인지 모를 타인의 따뜻한 호의에.

볼을 타고 한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

"아...아니! 울리려던 게 아니었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자 주인공군은 엄청 당황했다.

꽃을 받은 채 조금 눈물을 흘리다가 겨우 멈추자 나에게 건넨 첫 마디가 저거였다.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하려고 그랬던 거지! 따지려는게 아니었어!"

나의 반응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어가는  알았는데 여전히 순수한 모습이 너무나 빛나게 느껴졌다.

"...응."


아직도 품속에 꽃을 끌어안은 채 가볍게 고개만 흔들어주었다.




"백합화... 아네모네가 이런 곳에서도 피는구나."

품 속 가득 느껴지는 백합화의 향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네모네라고 하는구나..."

정작 따다 준 본인은 이게 무슨 꽃인지도 몰랐던 것 같았지만.



"전부 하얀색... 예쁘다."

더플백 아래에 꽃을 가득 담아왔던 건지 나에게 한 아름 건네주고도 아직 더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어? 하얀색? 잠깐만..."


나의 감상을 들은 주인공군은 더플백 안으로 손을 넣어 조금 더 뒤지더니.



"아 여기 있었네!"

무엇보다도 붉은.

나와 너의 눈처럼 붉은 아네모네를 꺼내었다.

"붉은 아네모네..."

아름답도록 붉은 아네모네의 색에 잠깐 시선을 빼앗겼다.

품속의 하얀 아네모네도 예뻤지만 눈앞의 한 송이 붉은 아네모네는 더욱 아름다웠다.

"이걸 같이 건네주려고 했는데... 더 이상 손에 들 곳이 없겠네."

주인공군은 빨간 아네모네를 나의 품에 건네주려다가 손이 꽉 찬 것을 보고 잠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면..."


- 사락



귀 옆을 간질이는 느낌과 함께.



"됐다."


붉은 아네모네가 머리의 옆에 꽂혔다.

"잘 어울리네. 예뻐."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너무나 스스럼 없던 행동이었다.




"아..."

얼굴이 아네모네처럼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품 가득 꽃을 품게 해주고.


가장 아름다웠던 붉은 아네모네마저 나의 옆에 꽂아주며.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너무나도 들떠버리는 듯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아네모네처럼 향그러운 느낌에.



꽃을 꽂아주고서 너무나 환하게 웃는 그 미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주인공군에게.



아니.

주혁이에게.




조금은 반해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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