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라파 베레시트
"그래서 보스가 가져온 표본을 분석한 결과..."
- 머엉
"외부 구성물질의 대부분이 아르베넷의 외장과..."
"에헤헤..."
"창에 꿰여 회수 된 장갑판도 분석결과 동일한..."
어제 이후로 기분이 계속 들뜨고 있었다.
선물을 받아보는 건 아주 어렸던 시절에도 좀처럼 겪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한 다발의 꽃.
흔하디흔한 아네모네였지만 그 꽃들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아무런 꿍꿍이 없는 순수한 선물을 받아본게 정말 얼마만일까.
그게 너무나 기뻤다.
나를 위해 준비해주었다는 게 너무나 기뻐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결국 그 자리에선 기지로 돌아갈 트레일러가 온 바람에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각자 돌아오게 되었지만.
조만간 얼굴을 다시 볼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어떤 얼굴로 주혁이를 대해야 할까...
- 콰앙!
"우왓!"
그러나 나의 짧은 고민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흩어져버렸다.
"보스! 제대로 듣고 있나요!"
한쪽 턱을 책상위에 괴고 있던 나의 몸이 흔들렸다.
내 눈 앞에 있는 안경을 낀 가운을 걸친 소녀.
박사는 나에게 불만을 품은 듯한 표정을 짓곤 책상을 두어 번 더 내려친 뒤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스! 정신 차려요! 돌아온 뒤부터 조금 이상해요!"
"나? 내가? 저...전혀 아무렇지... 않은데?"
"지금 말하고 있던 내용을 제대로 듣긴 했나요?"
"으...으응."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다른데 신경이 팔려서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선 적당히 받아주고 나중에 정리한 문서를 정독하면 되는 게 아닐까...?
"이쪽은 개수작업을 삼일 만에 끝내서 죽을만큼 피곤한데..."
박사는 정말 피곤했던 건지 눈 아래가 조금 퀭해보였다.
"돌아오자마자 이런 커다란 일감을 던져주고 보고까지 시키셨으면서..."
"작업이 끝나는 대로 천천히 시키려고 했는데 개수를 삼일 만에 끝냈을 줄은 몰랐지... 오버워크야."
박사는 예정상 이주일은 걸릴 거라고 예상된 1호기의 개수 작업을 삼일 만에 끝내버렸다.
열심히 일하는 건 좋지만 너무 과하게 일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개발부장님이 조금만 더 해보면 될 거 같다길래 그만..."
박사의 성격상 초과근무는 절대로 안할 줄 알았는데 개발부장님이 꼬드겨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수작업을 삼일을 철야로 꼬박 일하고 하루 동안은 숙소에서 잠만 쭉 잤다고 한다.
오늘도 더 쉬어야 할 텐데 내가 사도의 파편과 장갑판을 가져오자 새로운 걸 발견했는데 쉴 수는 없다며 또 열심히 일해 주었다.
"저도 지금 제 정신이 아니지만... 지금의 보스는 어딘가 이상합니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벼...별일 없었어!"
"... 뭐 두 번이나 부정한다면 세 번째 까지 물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튼 조금 쉬었다 계속 하도록 하죠."
"...미안해."
바쁘게 마련한 자리였지만 내가 집중하지 못한 것 때문에 회의가 끊긴 격이었다.
"미안하면 음료수라도 사 주세요. 계속 혼자 떠들었더니 목이 마릅니다."
이 정도 부탁이라면 쉽게 들어줄 수 있다.
"어떤 거로 사다줄까?"
"닥페, 코카, 스프라이트 3개를 부탁드립니다."
"목 아픈데 탄산을 세 개나...?"
"두개는 킵 해둘겁니다."
사주는 김에 여분까지 챙겨두겠다는 건가.
"웬일로 닥페 3개가 아니네?"
"...개발부장님이 다른걸 좋아하시길래 저도 조금씩 입에 익혀보려고 합니다."
박사는 조금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하곤 고개를 조금 돌렸다.
"아주 순애보네..."
"누가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 사올게."
"고맙슴다."
내 자리에 대충 놓여있던 카드지갑을 챙기곤 회의실을 나섰다.
---
회의실을 나와 긴 복도를 혼자 걷다보니 문득 어제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나에게 꽃을 건네주었던 주혁이는 그 뒤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줬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꼭 이야기해줘. 무슨 일이든 도와줄게.'
여태까지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주혁이가 나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조금 끄덕였지만 주혁이는 그걸로 만족한 듯 조금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이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정체와. 새롭게 나타난 적 '사도'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나도 없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는.
모든 것을 알아보고 시도해본 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은 걸까.
난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주혁이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 애는 왜 나를 도와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걸까.
혹시 그 애는 나를...
생각에 빠져 걷다보니 어느새 복도의 끝을 나서 격납고 입구에 있는 자판기 앞 까지 도착했다.
지금 혼자서 생각해봐야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내가 알고 있던 시나리오보다 시간이 더 주어진 지금.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해볼 문제였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박사에게 음료를 뽑아주는 일이었다.
... 그런데 박사가 뽑아달라고 했던 게 뭐랑 뭐였더라.
박사가 열심히 마시던 닥페는 매진인 듯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매진 된 닥페를 제외하면 자판기는 여러 음료가 있었다.
기억이 안 나니까 그냥 적당히 뽑아가야겠다.
- 삑
- 덜컹
카드를 자판기의 리더기 위에 댄 뒤에 음료 버튼을 세 번 누르자 곧 음료캔이 쏟아져 나왔다.
결제가 끝난 카드를 반바지 뒷주머니에 쑤셔넣은 뒤 음료 3캔을 손으로 들려고 하자...
"어..."
작은 두 손에 음료 3캔을 한 번에 들긴 힘들었다.
품에 안고 턱으로 잘 받치면 어찌어찌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박사는 왜 세 개나 뽑아달라고 해서... 이래서야 내 건 뽑아갈 수도 없었다.
무릎을 굽혀 자판기에서 음료를 꺼내고 있자.
"묘월아."
뒤에서 나를 부르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소년의 티가 벗겨져 청년에 가까워져 가는 목소리.
주혁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음료를 꺼내던 자세 그대로 멈춰버렸다.
쟤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제 1 격납고와 베타니아의 위치는 자전거를 타고 와야 할 정도로 한참이나 먼 거리인데.
내가 주혁이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환청이라도 들은 건가?
"묘월아?"
그러나 다시 한 번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니 헛것을 들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한참 회의를 하다 오는 바람에 몸가짐이 적당 적당히 일텐데.
얼굴에 뭐 묻은 건 없겠지?
슬쩍 자판기의 투명한 플라스틱 토출구에 비치는 얼굴을 살펴보자 흠이 될 건 없었다.
언제나와 같은 나의 얼굴이었다.
"안녕 주혁아."
얼굴에 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돌려 조금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녕... 그건?"
주혁이는 나의 품에 안겨있는 캔 세 개를 보곤 물었다.
"아 박사한테 가져다주려고..."
"혼자 세 개나 들고가긴 힘들겠네. 내가 좀 들어줄게."
커다란 손이 자연스럽게 나의 팔 안쪽으로 들어와 캔 두개를 가져가버렸다.
"...고마워."
"무슨 일이든 도와주기로 약속했잖아. 이 정도 쯤이야."
나의 감사를 들은 주혁이는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이런 일 말고도... 도와줄 수 있으니까 못 미더워보여도 조금은 의지해줬으면 해."
"응..."
분명 해주고 싶은 말이 더 있었고.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더 있었지만. 평소처럼 쉽게 입 밖으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캔을 나눠들고.
조금은 좁은 복도를 서로의 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만 둔 채 걸어갔다.
---
"크아아악!"
잠시 후 나와 주혁이의 손에 들린 음료수를 본 박사는 괴이한 소리를 냈다.
"이게 뭡니까 보스!"
"음료수 사달라고 했잖아. 닥페는 없어서 다른걸 적당히 뽑아왔어."
"아니... 사다주신건 감사하지만... 사달라고 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손에 들린 음료수를 책상위에 쭉 늘어놓았다.
왼쪽부터 데자와 솔의 눈 맥콜 세 가지의 조합이었다.
적어도 하나는 탄산이니까 얼추 맞는 게 아닌가? 내용물의 색도 비슷하고.
"어째서! 소년은 보스가 이런걸 뽑도록 내버려두고 있던 겁니까!"
"어? 나? 내 잘못이야?"
박사의 분노는 나에게 그치지 않고 옆에 있던 주혁이에게 까지 꽂혔다.
주혁이는 이미 내가 캔을 뽑은 뒤에 왔으니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정말로 배신한 겁니까!"
"배...배신?"
박사의 피로가 겹친 절규가 울려 퍼졌다.
"당신과 나는 동료가 아니었습니까!"
"아니 동료가 맞긴 한데..."
박사의 혼란스러운 추궁에 주혁이는 당황하고 있었다.
"적당히 해둬."
너무 피로가 쌓인 나머지 헛소리를 계속하는 박사의 말을 멈추기 위해 어깨를 툭툭 두들기자 조금 진정한 것 같았다.
"음료 정도야 나중에 다시 사다줄게. 아니 그냥 자판기를 복도에 옮겨두자."
지금처럼 밖에 놔둬봐야 비만 맞을 거고. 흡연자도 없으니 굳이 밖에 자판기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뭐가 불만인거야. 전부 맛있는 것뿐인데."
"...보스의 취향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한숨을 쉰 박사는 데자와를 집어 캔을 딴 뒤에 한 모금을 들이켰다.
"잘만 마시네."
"이건 학위를 준비할 때 너무 많이 마셔봐서 다시 마시고 싶진 않았습니다. 맛없는 건 아니지만요."
- 푸샷
나머지 두개는 안 마실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 가운데 있던 솔의 눈을 땄다.
"으음..."
조금 들이키자 특유의 청량함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수고비야."
우리 둘 사이에서 무안하게 서있던 주혁이에게 남은 캔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고맙다곤 말했지만 잠시 후 한 모금 들이킨 모습은 어딘가 조금 떨떠름해보였다.
박사도 주혁이도 아직 어려서 이 맛을 모르는 것 뿐이다.
...
"소년은 제가 불렀습니다."
박사는 빈 캔을 내려놓은 뒤 가운의 끝자락으로 자기 안경알을 문질러 닦았다.
저걸로 닦으면 더 뿌얘지지 않던가.
"주혁이를?"
"1호기의 개수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이걸 일찍 전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불렀습니다."
박사는 음료를 마시자 조금 노곤해진 듯 하품을 한번 하곤 책상위에 커피 머그잔 자국이 찍힌 두꺼운 책자를 주혁이에게 건네주었다.
예전에 박사가 없던 시절 A3 유닛을 운용하기 위해 전달되었던 매뉴얼 두께의 세배는 될법한 메뉴얼이었다.
"이게 새로운 1호기의 매뉴얼..."
매뉴얼을 받아들은 주혁이는 어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매뉴얼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평소엔 아이다우면서도 자기 일 앞에서는 이따금씩 진지해지는 표정이 주혁이의 특징이었다.
나라면 매뉴얼은 대충 넘겨보고 실전으로 바로 뛰어들었을 텐데.
예전에도 한참 매뉴얼을 들여다보던 모습이 생각나서 조금 웃음이 지어졌다.
"어? 왜 그래.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내 시선을 의식한 주혁이는 잠깐 당황한 듯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그냥 쳐다본 거야."
"그래?"
말 그대로 그냥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즐거웠다.
"흠흠..."
박사의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년을 부른 용건은 그게 끝입니다. 내일부터 실제 운용 테스트를 해봐야하니 바빠질 겁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앞으로의 대책회의 비슷한 걸 하고 있었어."
주혁이가 오기 전 까지 박사와 나는 사도에 대한 분석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도 같이 들어도 괜찮을까?"
"소년이 말입니까?"
박사는 예상하지 못한 듯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스?"
그 후 박사는 잠깐 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지금 진행 중인 회의는 타브하와는 관련 없는 베타니아만의 안건이었는데 부외자인 주혁이가 들어도 괜찮냐는 의미를 담은 질문이었다.
"괜찮아. 얘는 내..."
주혁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문제될 건 없었지만.
이 자리에 끼어들게 할 만한 당위성을 줄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맞는 말일까.
박사처럼 단순한 동료라고 하기엔 우리 사이가 그것 보다는 깊었으며 친구라고 서스름없이 부르기엔 조금은 부족한 관계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조력자야."
잠깐 망설인 다음 떠올린 단어는 조력자였다.
스스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니 나를 돕는 역할이라면 이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을지 모른다.
"...조력자군요."
박사는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보고할 때 공개할 내용의 편집 권한은 나에게 있으니까 어련히 내가 잘 알아서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마저 들을 내용이 타브하에 꼭 숨길만한 내용도 아니었고 오히려 모두와 공유해야 할 내용일지도 모르니까.
---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박사가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하자 잠시 꺼두었던 빔 프로젝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스크린 위에 비치는 건 세 기의 기체의 사진이었다.
란테고스, 아틀락나챠 마지막으로 UNKNOWN으로 표기 된 사도.
사도 또한 명칭이 붙어야겠지만 발견시기가 짧아서인지 정식 명칭이 붙지 않았다.
일단 UNKNOWN으로 처리 된 사도는 교단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구나.
"타브하에서 전투를 겪었던 세 대의 기체의 자료를 모아보고 분석했습니다."
박사가 다시 발표를 시작하자 분위기가 조금 진지해졌다.
"이 기체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차원기에 대한 기본 상식과는 어딘가 어긋나있습니다. 기체의 디자인부터 프레임까지... 개발 컨셉이 전혀 다릅니다."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자 세 대의 기체 위에 펜으로 휘갈긴 듯한 메모가 몇개 지나갔다.
'원격조종?', '거미? 게이트?', '비행? 아르베넷과 같은 타입?'
박사가 나름 세 대의 기체와의 전투를 보고 분석한 듯 녹색 마커로 사진 위에 마킹이 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각 기체의 특징을 가장 잘 분석해낸 것이리라.
"우리가 개발해낸 세라프 부터 베레시트 시리즈까지. 어느 기체와도 개발간의 유사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요... 마치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교단의 기체와 사도의 사진 위로 반투명하게 나타난 타브하의 기체를 찍은 사진이 옅게 겹쳐졌지만 실루엣이나 기체의 비율마저 어느 하나 서로 일치하는 게 없었다.
"그러나 이 세 대의 기체는 서로 같은... 마치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것 같은 유사함을 가지고 있어요."
이 세계의 기체를 제외한 교단의 두 기체와 사도의 실루엣을 합치자 조금 전 타브하의 기체와 일치하지 않던 것과는 다르게.
하나의 프레임을 공유하는 것처럼 실루엣이 하나로 겹쳐졌다.
"정말이네... 겹쳐놓고 보니 전부 비슷해."
가장 이질적인 기체였던 아틀락나챠의 실루엣도 다른 두 기체와 겹치니 몸을 이루는 부분만큼은 일치했다.
가는 허리에 조금은 긴 팔. 키가 큰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은 모두 비슷했다.
교단의 기체와 사도는 닮아있었다.
"...아르베넷과의 공통점은 있었어?"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교단의 기체는 성자의 성찬식에 의해 떼어진 육신의 일부.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식도 없고 그 아비도 없는 나의 기체 아르베넷은 어떨까? 저들과 닮아있는 걸까.
"부탁하셨던 대로 비교 분석을 해봤지만..."
박사가 리모컨을 누르자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그 뒤에 아르베넷의 실루엣이 교단과 사도의 위에 겹쳐졌지만.
"유사성이 15%도 되지 않아요."
아르베넷은 앞서 나온 세 대의 기체보다 조금 더 컸으며 그 비율도 달랐다.
15%의 유사성이라면 차라리 앞서 나온 타브하의 기체와의 유사성이 더 높으리라.
"...그렇구나."
예상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샘플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사진과 영상이 전부니까요. 만약 포획을 한다면 더 자세히 알아볼 수도 있을 텐데... 보스라면 할 수 있지 않나요?"
"그건 안 돼."
"그렇습니까..."
박사는 내가 거절하자 쉽게 받아들였지만 조금 아쉬워했다.
"그 다음으로... 1호기에 남은 전투 데이터를 연동해서 분석한 결과. 저 3기의 적합률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교단의 기체들의 적합률을...?"
전투를 직접 겪었던 당사자인 주혁이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이것이 3기의 적합률입니다."
박사가 리모컨을 한 번 더 조작하자 기체의 사진 아래로 붉은 숫자가 표시되었다.
[ 60% ]
유백의 란테고스의 적합률.
가장 먼저 등장했던 적인만큼 조금 낮은 적합률을 가지고 있었다.
[ 72% ]
취록의 아틀락나챠의 적합률.
미하일을 조금 고전하게 만든 상대여서 그런지 조금은 높은 숫자였다.
"둘 다 강한 상대였지..."
이 당시에 1호기의 적합률은 60밑을 감돌았으니 고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둘 다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밀랍인형이나 거미 차원수들을 부린다는 게 가장 큰 골칫거리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새로 나타난 교단 기체의 적합률이..."
박사는 마지막 자료를 보여주기 전 조금 자신감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어떻길래 그래?"
"그게 조금..."
박사는 잠깐 망설인 뒤 리모컨을 한 번 더 조작했다.
"...정말?"
화면 위에 비친 붉은 숫자를 보자 박사가 망설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 0 ]
폐 시가지 위에 나타난 여섯 장의 날개를 두른 사도의 적합률은.
0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