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0화 〉6 그리고 7 (140/152)



〈 140화 〉6 그리고 7

- 파샤 아아아!

장갑판의 틈 사이에서 푸른빛의 입자를 흩날리며 라파 베레시트는 기동했다.

- 콰앙!

라파 베레시트가 기동하는 것과 동시에 천사들의 포격이 격납고를 향해 쏘아졌다.

- 슈우우...

그러나 포격이 쏘아져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리에 회색빛의 기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방금 전 까지 기체가 있던 행거만 녹아 무너져내린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천사들은 사라진 상대를 찾는  연기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얼굴을 돌려 찾기 시작했지만.


- 푸샥!

그 순간 연기 속에서 붉은  눈이 번쩍이며 검은 손이 나타나 천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백색의 가슴 가운데에서 빠져나온 검게 빛나는 강철의 손날은 자신의 눈처럼 붉은 천사의 코어를 쥐고 있었다.

- 콰드득...!

강철의 손이 움켜쥐어지며 손에 들려있던 적색의 코어는 너무나도 손쉽게 뭉개어 터져버렸다.




스스스...


자신의 핵심인 코어를 잃어버리자 천사의 육신은 재와 같은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흩날려버렸다.

연기가 걷힌 곳에서 나타난 것은 회색의 라파 베레시트. 그 두 눈은 붉으며 손은 동체의 회색보다도 더 검게 물들어있었다.


...!

두 천사는 다른 개체를 죽인 붉은 눈동자를 노리듯 검으로 변화한 오른 팔로 내리쳤지만.


검은 허공만 가를 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라파 베레시트는 천사들이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주변의 시간을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였다.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은 위대한 존재가 만들어낸 천사는. 인간이 만든 것을 따라잡지 못했다.

- 콰아아아!

고속으로 움직이던 라파 베레시트는 한 마리의 천사를 붙잡은 채 격납고의 벽을 무너뜨리며 빠져나왔다.




- 철걱

허벅지 장갑의 하드 포인트에 장비되어있던 단검이 사출되어 검게 빛나는 왼손에 쥐어졌다.



- 기이이잉...!

손잡이만 있는 단검에 검으며 또한 푸르게 타오르는 검날이 솟아올랐다.


- 카가각...각...!

푸르게 타오르는 검날은 천사의 가슴을 뚫어 코어를 파괴했다.


천사의 육신 안에 내장된 코어가 파괴되는 것과 함께 천사의 육신은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남은 하나의 천사는 라파 베레시트의 뒤를 노리듯 양 손을 검으로 바꾸어 달려들었지만.

빛나며 붕괴하기 시작한 천사의 육체가 던져져 달려든 자세 그대로 활주로의 바닥을 뒹굴며.


가슴 아래에는 푸르게 빛나는 단검이 투척되어 박혔다.





- 콰아아아아아아!

라파 베레시트의 등 뒤로 두 기의 천사가 공간을 파괴시키며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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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헉..."


천사와의 싸움이 끝나자 라파 베레시트 안의 소년은 숨을 거칠게 헐떡였다.


온 몸에선 모든 수분을 쥐어 짜내기라도 할 것 처럼 땀이 쏟아져 내렸다.



소년의 주변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지운 것처럼.


모든 시간을 지워낸 것처럼.

소년은 고요 속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 ...삐...익! ...삑!

고요 속에서 느린 비프음이 들렸다.

모니터 위로 감지된 파일럿의 생체신호는 어느  하나 멀쩡한 게 없어보였다.

아론 하브릿이 가동되었을 때 모니터에 표시된 수치는 113%.

평소의 소년이라면 절대로   없는 불가능을 아득히 뛰어넘은 숫자였다.


[...역시 너에겐 아직 이르구나.]


소년의 주변을 맴돌듯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처럼. 소년에겐 감당할  없는 힘이었다.


자신의 적합률을 넘어 코어와 일체가 되려하는 행위는 마치 조그마한 머그컵에 욕조의 물을 전부 때려 부어넣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ARON HABRIT :: CLOSE ]


소녀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성궤는 닫혔다.




성궤가 닫힌 것과 함께 주변의 모든 소리를 지운 듯 한 정적이 사라지며 고요가 걷혔다.


삑! 삑!

조종석 안에서 느리게 들리던 비프음도 본래의 속도로 울렸다.




- 철컥…….


라파 베레시트의 장갑판이 닫히며 푸른빛의 입자도 확산을 멈추었다.

113%를 나타내던 수치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떨어져가던 숫자는 60%에서 멈추었다.

"하아...하..."


모니터 위에 붉게 표시되던 각종 경고 메세지가 서서히 사라질  쯤 소년은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우윽!..."

그러나 안도도 잠시 뿐. 소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검붉은 피는 청색의 파일럿슈트를 적셔가며 슈트의 팔과 가슴 아래를 더럽혔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힘의 편린을 다룬 대가는 컸다.


"후우..."

잠시  소년의 입가에 비릿한 피의 향이 사라지자 소년은 손등으로 입가를 한번 쓸어 닦았다.



모니터에 나타난 파일럿의 생체신호는 아까보다 좋아졌지만. 전장에 서기엔 위험한 상태였다.

내상을 입은 소년이 전장에서 이탈하더라도 누군가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소년이 가장 먼저  것은 무너진 활주로와 격납고였다.


여태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진짜 전장.

소년이 믿고 따르는 백색의 소녀가 항상 활약했기에 소년이 진짜 전장을  것은 처음이었다.

기지의 방공시설이 무너지고 큰 불이 나고 있었다.


항상 소녀와 함께 걷던 넓은 활주로는 대부분이 무너진 채 불타오르고 있었다.


소년은 이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아니야..."


소년은 양 손을 조종간 위에 올렸다.




소년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 위잉...

소년이 조종간을 움직이자 미약하게 코어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라파 베레시트가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소녀가 더 이상 모두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자신이 싸우지 않으면 소녀를 지킬  없다.



"가자. 1호기."

회색의 라파 베레시트는 전장을 향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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