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6 그리고 7
- 파아악!
백색의 사도가 팔을 잃은 2호기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 쳇 !>
2호기의 오른팔에 겨우 뼈대만 남아있던 골야트의 팔이 달려드는 사도를 향해 휘둘러졌다.
- 콰드득...!
사도의 주먹과 골야트의 팔이 맞부딪쳤다.
< 소용없어! >
천사를 쉽게 찢어내었던 거인의 팔은 사도의 힘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게 찢겨나가며 강철의 잔해가 무너진 활주로 위로 떨어져내렸다.
< 정말 강해... >
2호기 안의 미하일은 재빠르게 조종간을 움직여 무너진 팔 유닛을 분리하고 2호기의 허벅지 안에서 단검을 사출해 손에 쥐었다.
- 채앵!
단검이 사도의 주먹을 빗겨 팔 아래를 그어내자 사도의 주먹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 뭐 ?! >
힘이 실린 주먹이 미하일의 테크닉 앞에 흘려져 버리자 사도는 당황한 듯 했다.
미하일에게 눈앞의 적은 분명히 강하다.
고작 한번 싸워본 교단의 기체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상대다.
< 하지만 마마보다는 약해! >
- 파칵!
사도의 주먹을 빗겨낸 뒤 벌어진 틈 사이로 2호기는 단검을 사도의 팔 안쪽 관절 틈 사이에 박아 넣었다.
< 잔재주를! >
보통의 기체였다면 관절 이음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만으로 작동을 멈출지도 모르지만.
세상의 섭리를 넘은 육신에게 잔재주는 통하지 않았다.
팔을 가볍게 접은 것만으로 단검은 부서져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 위잉...
골야트의 팔과 함께 다 무너져가던 브니엘의 등에 달려있던 작은 서브 암이 없어진 2호기의 왼팔을 대신해 사도의 몸을 붙잡았다.
< 하아 아아!... >
브니엘의 등에 겨우 남아있던 잔여 연료를 소진해 2호기는 최고 속도로 가속했다.
< 인간 주제에...! >
사도는 자신을 붙잡은 채 가속하는 2호기를 밀치려 했지만 곧바로 2호기의 다리가 사도의 다리 안쪽을 향해 들어왔다.
- 콰아아아앙!
2호기가 안쪽으로 다리를 걸자 사도는 몸의 중심을 잃듯 바닥으로 미끄러져 넘어져버렸다.
인간의 아이가 신의 대리인을 쓰러뜨렸다.
---
< 아버지도... 아버지도 인간에게 넘어진 적이 없는데 !!! >
사도 안의 어린아이는 미하일의 테크닉에 넘어진 게 제법 분한 것 같았다.
"잘했어 미하일!"
아르베넷을 둘러싼 천사와 대치하는 상황이었기에 2호기를 도울 수 없었지만 미하일은 혼자서 위기를 넘겼다.
사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2호기에게 덤벼들었지만 2호기는 한쪽 팔이 없더라도 사도를 요령껏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디까지나 피하고 흘려내고 있을 뿐. 2호기는 사도에게 제대로 된 데미지는 입히고 있지 못했다.
당장 2호기를 도와줘야 했지만...
- 콰아앙!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여러 갈래의 광선이 아르베넷을 노려 쏟아졌다.
여섯이 넘는 천사는 나조차도 상대하기 버거웠다.
천사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베테랑 파일럿에 맞먹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나타나는 틈을 노리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완전히 나타난 뒤로는 상대가 힘들었다.
코어를 통해 기체와 연결되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온연한 자신의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대하는 건 골치아팠다.
천사들은 최소한의 딜레이도 없이 생각과 동시에 몸이 움직이는 존재였다.
- 샤악!
천사의 검이 휘둘러져 왔다.
- 콰직!
몸을 틀어 피한 뒤 비어있는 가슴 아래를 노려 코어를 일격에 잡아 터뜨렸다.
- 스스스...
코어가 한방에 파괴되자 천사는 가루가 되어 땅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파삿!
하나의 천사를 쓰러뜨린 사이 다른 천사의 코어를 노려 손등의 수정을 통해 광선을 쏘았다.
- 그 극...극... 콰앙!
광선에 가슴이 꿰뚫려 코어가 깨지기 시작하자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사의 몸이 부풀다가 터져버렸다.
정말 성가신 적이다.
코어를 온전히 부수지 못하면 몸 전체가 폭발해버려 부수적인 피해를 입히고.
코어를 부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한다면 빠른 속도로 피해버리거나 매서운 공격이 이어진다.
지금도 짧은 시간 안에 두마리를 해치웠지만.
이 사이에 사격이 세발이나 쏟아졌다.
아까 절단한 사도의 장갑판을 왼팔에 장비해둔 덕분에 직접 사격에 노출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사도와의 연결은 끊어져 비행은 못하게 된 것 같았지만 재질은 쓸 만했다.
"성가셔!"
- 콰득!
장갑판으로 천사의 머리를 뭉개버리는데도 제법 큰 쓸모가 있었다.
- ...
머리가 뭉개진 천사는 몸만을 돌려 아르베넷을 향해 라이플로 변한 오른손을 겨누었다.
눈이 없는 녀석이니 머리가 없어도 시야엔 문제가 없던 듯 정확하게 아르베넷을 노려 사격을 가했다.
"큭!"
재빨리 천사의 팔을 옆으로 밀어냈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 파사앗...
붉은 광선이 아르베넷의 가슴 옆을 스쳐 쏘아지자 상흔과 검게 그을린 자국이 아르베넷의 가슴에 남겨졌다.
< 이 것들은 아르베넷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요! 조심하세요! 마스터! >
엘의 경고와 함께 머리를 잃은 천사를 장갑판으로 밀쳤다.
"하아...하..."
점점 몸이 지쳐가는게 느껴졌다.
계속되는 긴장감 속에서 아르베넷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상대로 오랜 시간 집중을 유지하긴 힘들었다.
그동안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낸 탓인지 장기전에서 지치게 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한명정도 더 지원이 있었더라면...
- 스슥... 슥
천사는 한 기가 쓰러질 때 마다 전장의 상황을 학습하듯 공격을 피하는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 콰앙!
반면 아르베넷을 향해 노려오는 공격은 점점 정밀해져갔다.
피로가 쌓여간다.
- 쾅!
그러나 천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냥감이 지친 틈을 노리는 짐승처럼. 아르베넷을 노려오고 있었다.
< 마스터! >
"앗...!"
엘의 부름으로 피로 속에서 정신이 겨우 들었다.
아르베넷은 포위당했다.
천사의 검과 라이플이 점점 아르베넷을 몰고 있었다.
기초적인 전술 실수였다.
아르베넷의 자세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피곤했더라도 이런 실수를 할 줄은... 천사의 포위망을 쉽게 빠져가가니 힘들어보였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피하는 방법도 막으려는 듯 천사는 지면에서 낮게 날아올랐다.
- 꽈악...
아르베넷의 오른손으로 창을 강하게 당겨 잡았다.
한 마리를 돌파한다면 약간의 피해만 입은 채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소 같으면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도박이었지만 방심의 대가는 컸다.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누군가 도와준다면...
- 콰앙!
나약해진 마음과 함께 손이 떨리기 시작한 순간. 하늘에서 붉은 광선이 쏘아졌다.
"읏..."
아르베넷을 향해 노린 줄 알고 급하게 장갑판을 들어 올렸지만.
광선은 아르베넷에게 쏘아진 것이 아니었다.
- 푸칵...!
광선이 노린 것은 아르베넷이 아닌 천사였다.
가슴의 코어가 터져버린 천사는 공중에서 재가 되어 흩날렸다.
광선이 쏘아진 곳 너머에는 흑철색의 실루엣이 서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금속 라이플을 들고 있는 회색빛의 거인.
"주혁아...!"
새로워진 1호기.
라파 베레시트가 서 있었다.
---
회색빛의 라파 베레시트는 기다란 라이플을 들고 있었다.
아르베넷의 라자루스가 짧아지는 것과는 대조되게 기본 병장보다 두 배는 긴 라이플을 견착하고 있었다.
새로운 적을 인식한 천사들은 아르베넷을 내버려둔 채 1호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아직 새 기체에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저렇게 많은 상대는..."
1호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 각도로 창을 던지기 위해 준비를 마쳤지만.
"아윽..."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조종간을 쥔 손 끝이 떨리며 아르베넷이 쥔 창이 아래로 쳐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얼른 주혁이를 돕지 않으면...
- 콰앙! 쾅!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1호기는 부동자세로 라이플만 들어 올려 천사의 코어를 단 두발의 사격으로 정확히 폭발시켰다.
"어..."
1호기를 노리는 천사는 순식간에 제거되었다.
- 슈우우...
1호기의 라이플 끝에서 사격을 마친 뒤 연기가 조금 솟아 올랐다.
1호기는 나의 도움 없이도 성과를 올렸다.
내가 바라던 믿음직한 모습에 한발자국 가까워진 것 같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시한 감상을 가질 때가 아니다.
천사를 쓰러뜨렸으니 얼른 1호기와 함께 2호기를 도와야한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조종간을 쥐어 한쪽 무릎을 꿇은 아르베넷을 일으켰다.
< 응? >
계속해서 2호기를 노리던 사도의 안에서 의아한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 언니? >
사도는 움직임을 멈춘 채 1호기를 돌아보았다.
< 이 느낌은... 세 번째 언니? 언니지! >
사도 안의 어린아이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2호기에게 보이던 적대심을 지워낸 채 1호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언니! >
사도는 양 팔을 들어 올려 눈 앞의 1호기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환영하고 있었다.
- 기이이...
그러나 1호기는.
자신을 환영하는 상대를 향해 라이플을 겨누었다.
- 콰앙!
라이플의 끝에서 붉은 섬광이 쏘아졌다.
< 어... >
사도의 조종석을 향해 정통으로 붉은 섬광이 쏘아져 나갔지만.
- 파앙!
사도의 주변을 맴돌던 장갑판이 겹쳐져 사격을 흘려내었다.
< 언니... 어째서? >
사도 안의 어린아이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 언니가... 어째서... 나를 노리는 거야...? 응? >
< 엘 멈춰! >
사도의 장갑판이 움직여 1호기를 향해 매섭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 카앙! 쾅!
1호기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장갑판을 견제하듯 라이플을 쏘자 장갑판은 궤도를 바꿔 빗겨나갔다.
< 저것은... 사도가 아닙니다. 주인님. >
통신 너머로 이질적인 목소리가 하나 끼어들었다.
역시 저 쪽에도 엘이 있는 건가...
< 세 번째 언니! 언니가 맞다면 얼른 대답해줘! 엘이 오해를 하고 있어...! >
방금 전 장갑판을 날린 것은 어린아이의 의지가 아니었던 듯 어린아이는 1호기를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 ...아니야. >
전장에 나타난 뒤로 침묵하고 있었던 1호기의 안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 나는... 네가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야. >
통신망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남자의... 목소리 ? >
이제는 강해져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스스로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어른이 되어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슈욱!
그 순간 눈앞에서 1호기가 사라졌다.
- 카앙!
시야에서 사라진 1호기는 사도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사도를 향해 푸르게 빛나는 검을 내리쳤다.
< 크읏! >
사도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팔을 올려 공격을 막는게 전부였다.
< 그리고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어. >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딘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 언니가 아니면... 됐어. >
사도는 양 팔을 강하게 틀어 1호기를 떨쳐넀다.
< 엘... 검을 꺼내줘. >
< ... 알겠습니다. 주인님. >
1호기와 거리를 벌린 사도는 한 손을 바닥 아래로 펼쳤다.
- 쌔애액...
사도가 펼친 오른손 아래의 바닥에서 작은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의 안에서 백색의 자루가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 빠드득... 득...
그 안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사도는 백색의 검을 손에 쥐어 게이트 안에서 완전히 뽑아내었다.
완전히 뽑아낸 검은 2호기가 휘두르던 특대검과도 비슷한 사이즈의 거대한 무기였다.
< 아론 마흐타. >
사도는 검을 높게 들어 올리며 검을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 형제를 사칭해 나를 속이려던 너는. >
사도는 높게 들어 올린 검을 1호기를 향해 겨누었다.
< 아버지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