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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화 〉막간 : 인간과 하늘 (1부 END) (143/152)



〈 143화 〉막간 : 인간과 하늘 (1부 END)

기지를 급습한 백색의 소속불명기 그리고 차원수와의 전투가 끝났다.


처음으로 가동한 새로운 1호기 라파 베레시트는 아직 나에겐 너무나 버거웠다.


"허억...헉..."


전투가 끝나자 전투 동안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이 발아래부터 솟아오르듯 몸을 조여갔다.

입고 있는 파일럿 슈트가 몸을 바싹 조여 오는  처럼 느껴지며 격납고에서 첫 가동을 마쳤을 때 보다 더 격렬한 숨이 내쉬어졌다.



"우욱...윽..."


잠시 후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안에서 비릿한 향과 검붉은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푸른 파일럿 슈트 위로 검붉은 얼룩이 번져 적셔가기 시작했다.

성궤를 짊어질 자격만 얻었을 뿐. 아직 성궤의 안을 들여 볼 자격은 얻지 못했구나. ]


분명 혼자 있어야 할 조종석 안에서 흐릿한 소녀의 실루엣이 눈앞에 보였다.

"에메트..."


조금 전의 전투는 온전한 나의 실력이 아니었다.


하브릿 시스템을 기동한 뒤로.


내가 기체를 조종하는 것이 아닌.


나는 기체에 매달려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전처럼 1호기가 무너지지 않은 것도 전부  소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파일럿 시트에 푹 기댄 채 공중을 향해.


탈력감으로 인해 움직이기 힘든 팔에 겨우 힘을 주어 오른 손을 들어올려 실루엣을 향해 뻗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소녀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흐릿한 검은 실루엣은 나의 손을 향해 손을 뻗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를 향해 뻗어진 손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루엣은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 아직 때가 오지 않았는데 너무 일찍 힘을 써버렸구나... ]

"사라지는 거야...?"

[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잠시 떠나게 될 뿐. ]

소녀의 실루엣은 어딘가 아쉬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널 만날 수 있을까?"

소녀와의 첫 만남은 거절과 싸움뿐이었지만.


눈앞의 사라져 가는 소녀를.


언젠가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하늘의... ]

[ 별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우리는 다시 만나게  거야. ]


소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슬프게 느껴졌다.



"...기다릴게."




소녀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ARON HABRIT :: CLOSE ]

성궤는 닫혔다.

---


"흐윽...흑..."


여기저기가 더럽혀진 백색의 기체에서 내린 갈색 피부의 소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 잠들게 되는 줄 알았어..."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패배를 넘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청색으로 빛나는 기체.

 안에서 소녀가 느낀 것은 이질적인 무언가였다.


인간도 아니며 사도도 아니지만 아버지와는 다른 무언가.

소녀는 '그 것'에 공포를 느꼈다.


만약 소녀를 돕는 자가 없었더라면 소녀는 정말  자리에서 육신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무슨 자신감으로 저 곳에 다가간 건가요."

더럽혀진 백색의 기체의 맞은편에 서있는 다른 백색의 기체에서 내린  다른 소녀는 울고 있는 소녀를 보고 한숨을 지었다.

검정의 플레어스커트와 코르셋 조끼를 입은 소녀.


소녀의 머리는 울고 있는 소녀의 것처럼 은백으로 빛났으며 그 눈 역시 붉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언니가 있는  같아서..."


울고 있는 소녀는 자신이 인간들의 무리에 접근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 곳에 언니들은 없어요...  흔적만 남았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인간들의 땅에는 세 번째와  번째 사도는 없었다.


그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 그들은 이미 그 곳을 오래전에 떠났다.


"흔적만이라도... 찾고 싶었는걸..."

"..."


소녀는 말없이.


울고 있는 소녀를 품에 안아주었다.


보호자였다면 소녀를 꾸짖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소녀는 소녀를 꾸짖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떠나버린 이 땅에서.


열둘 보다 더 적어진 형제들은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말없이 다른 소녀의 등을 쓸어내려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그저 위로하는 것 밖에  수 없다.

잠시 후 소녀가 울음을 그치자.

소녀는 쓰러진 백색의 거인을 일으켜 세운 뒤 다른 곳을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걸로 꽃을 찾아준 빚은 받았어요. 소년."

소녀는 인간들의 땅을 한번 바라본 채 작게 읊조렸다.


---

[ 632번째 혼합체 실험을 개시합니다. ]

- 삐익

사무적인 실험 시작 보고와 함께 신호음이 울렸다.


- 부글...


실험실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투명한  안에서.


관의 안을 가득 채운 적색의 액체에서 기포가 솟아올랐다.




- 촤아악...


실험관이 비스듬히 열린  산모의 몸에서 양수를 쏟아내는 것처럼 적색의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액체가 모두 쏟아지자.


 안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 철벅... 철벅...


백색의 실험실 바닥에 발을 올리고  것은 천천히 걷기 시작하더니.



철퍼억!...


인간의 형상을 잃은 채.

쏟아지듯 바닥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 찰박... 찰박...

인간의 형상을 잃은 살덩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듯 바닥을 구물거리며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바닥을 기는 그 것은 실험실의 벽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다가.



- 쏴아아아!

벽 안쪽에서 쏘아진 고열의 화염에 살덩이는 타오르기 시작했다.

- 화르륵... 화르륵...

살덩이는 고열을 견디지 못하는  점점 불타오르다가.


 안에서 인간의 것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슈우우...


화염이 사라지고 나자 재와 뼛조각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 위이잉...

실험실의 온도가 정상범위 내로 내려가자 외부 잠금장치가 열리며 백색의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들어와 '사람이었던 것'의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 이번에도 실패했군요. 디블라임 교수. ]


실험실 벽의 너머.

관계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구역을 홀로 지키고 있는 디블라임 교수의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명이 들지 않는 곳에서 상반신이 가려진 남자의 손에는 두꺼운 책이 한 권 들려있었다.



신은 자신을 본 따 아름다운 열둘의 형상을 빚고. 남은 잔해로 인간을 빚어내었다. ]

[ 인간은 신을 따라 영혼을 가진 것을 만들려 했지만 ...만들 수 없었다. ]



- 탁



남자의 손에 들린 책이 덮였다.




[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영혼이 깃들지 않은 기계인형 뿐. ]


책을 덮은 남자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3세대 기체 개발 플랜 문서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남자의 말을 신경 쓰지도 않는 듯. 교수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손에 들린 시트지를 체크하고 있었다.




"인간에겐 시료가 부족한 것뿐이에요."

시트지의 체크를 마친 교수는 등을 돌려 자신을 부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교수의 맞은편에 서있는 것은 오래  얼어붙은  위에서 만난 '위원회'의 한  이었다.




[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

어둠 너머에서 남자가 가리킨 것은 방금  632 번째 실험이 이루어진 공간과는 또 다른 곳.

그 곳에는 조금 전과 다른 실험관이 놓여있었다.



실험관 안쪽의 배양액에 잠겨 있는 것은 은색의 천을 두른 인간의 하반신.


또 다른 곳에는 금색의 파일럿 슈트가 놓여있었다.



"신의 파편과 열 둘  하나인 '영웅'의 DNA 샘플... 이것으론 전혀 부족해요. 어느 것이나 뱀이 탈피한 허물이나 마찬가지에요."




교수는 잦은 실험 속에서 한 번도 보인 적 없었던 표정을.

약간의 짜증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자료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녀는 연구자로써 가장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자료가 부족하여 연구할  없었다.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러나 인간은 무에서 유를 만들  없다.

유에서 유를 변질시키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교수는 손에 들린 리모컨을 눌러 모니터의 화면을 바꾸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신과 가까운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모니터에 비치는 것은 얼마 전 타브하를 습격한 백색의 기체.

머리 위에 성인의 후광과도 같은 백색의 고리를 띄운 두 대의 기체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 당신은 이미. 저 것들과 가까운 것을 마주쳤을지도 모릅니다. ]


남자의 목소리는 자그마한 암시를 남겼다.




잠시  남자의 모습은 그 곳에서 사라졌다.


남게 된 것은 디블라임 교수 혼자 뿐.






"결국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을 인간이 움직일 수는 없다는  마찬가지야..."



위원회의 지시로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기체의 개발.

실험실과는 다른 구역에서 개발되고 있는 흑색의 기체는.

신과 가장 가까운 백색의 기체와 비슷한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

[ 늦었군 발타사르. ]



어두운 공동의 아래에서 흑색의 비석 아래로 비치는 두 그림자는 공동에 나타난 세 번째 그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 기체의 건조를 보고 왔을 뿐.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지 않나? ]


세 번째 그림자.


발타사르라 불린 자의 목소리는 가벼이 말했다.

우리에겐 영겁과 가까운 때에 도달하는 날이 찾아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

그림자 속에서 노인의 목소리는 비난했다.

[ 예정된 시나리오와 시간이 있는 이상. 그 시간만큼은 지켜주길 바란다. ]


어린아이의 목소리 역시 늦은 자를 작게 비난했다.

그러나 세 번째 그림자. 청년의 목소리를 가진 발타사르는 내색하지 않았다.


[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모인 이유는 알고 있겠지. ]


[ '여섯 번째' 사도가 베레스웃사에서 깨어났다. ]


[ 하늘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것인가? ]


[ 그건 아니다. 아직 예정된 시간은 반 이상 남아있다. ]




비석과 그림자의 사이에 백색의 기체의 모습이 비친다.




[ 벌써 눈을 뜨게 될 줄이야. ]

[ 시나리오 시트에는 없던 내용이 아닌가? ]


[ 예언서에는 없었다. ...누군가 개입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



잠깐 비석 사이로 침묵이 감돌았다.



여섯 번째에 이어 일곱 번째 마저 깨어났다. 이대로라면 열한 번째 까지 깨어났을지 모르겠군. ]


[ 인간인 우리가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 신이 빚은 사도들은 필요 없다. ]




비석 사이로 비치는 백색의 기체의 모습이 사라졌다.

[ 하늘이 열리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맞이하기 위해. ]


[ 우리의 계획을 앞당기지 않으면... 하늘 위의 '호르도스 베이스'의 건조를 서둘러야 한다.]


비석의 사이로 별들이 비춰진다.


별들의 사이로 푸른 행성을 공전하듯 도는 것은 거대한 구조물.

하늘의 위.

우주의 위에 올라 있는 것은 아직은 뼈대만을 가진 거대한 기지.



호르도스 베이스.




하늘이 열릴 것을 예견한 셋.



발타사르.
□□□□.
□□□□.



그들은 가장 가까운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




하늘과 하늘을 잇는 문의 앞.

교단의 본부 입구에서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두 명은 푸른 청색의 도복을 입은 채 문의 너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벌써 떠나는 건가."

남녀의 뒤로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발의 머리 사이로 눈만을 가린 백색의 가면을 쓰고 있는 남성.

성자가 떠난 교단을 대신하여 이끄는 자.

'노란 옷의 왕'




"왕의 마중이라니 영광이네."


소녀는 바라보고 있던 문에서 시선을 때고서 황색의 법의를 걸친 왕을 마주보았다.




"우리들은 성찬을 나누어 받은 형제가 아닌가. 집을 떠나는 형제의 여정을 배웅하는 것 역시 형제의 책무지."


왕은 팔을 들어 올려보였다.

"같은 성찬을 받았다는 말은 애매하지 않나?"


푸른 도복을 걸친 남자 역시 몸을 돌려 왕을 마주보았다.

"'우리'는 하나의 성찬을 쪼개어 받은 불완전한 세례자.'

"성찬을 넘어 성자와 서약한 '서약자'인 너와는 달라."

소녀와 남자의 뒤로 푸른 그림자의 무리가 어스름히 비추어졌다.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는 듯.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푸른 그림자는  사이에서 겨우 두 눈만 드러내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영혼을 가진 존재들.

불완전한 세례자와 그림자.

그리고 '서약자'.

"...우리의 성자님이 잠든 지금. 서약자인 나는 너무나 무력하다."


왕은 들어 올린 손을 아래로 내렸다.


자의로 내린 것이 아닌.


두 손을 들고 있을 힘조차 점점 잃어가는 것처럼 팔은 아래로 쳐져버렸다.


온전해야 하는 왕은 온전하지 못했다.


"그 때 까지 나는 성자님이 남겨주신 이 교단과... 우리들의 고향을 지키는 일 밖에  수 없다."

왕과 투신들의 발 아래로 비추어지는 것은.

푸르른 색을 띄고 있는 오래된 도시.


물속에 잠겨있는 것처럼 시간의 틈 사이에 갇힌.



교단의 고향.


 뤼에가 비추어졌다.


---




콰가가각...!

백색의 기체가 고요의 대지 위에서 구른다.




뿌연 먼지가 흩날리며 기체의 표면이 바닥에 긁힌다.



바닥을 구르는 기체는 온전한 형상을 가지지 못했다.

백색의 기체는  팔과 두 다리를 잃었다.

대지를 구르는 백색의 기체를 추격하는 것은 차원수도 다른 강철의 거인도 아니었다.


고작 기체의 발치에 머무르는 높이를 가진 검정색의 천으로 뒤덮인 그 것은 기체를 쫒고 있었다.




- 사아아악! 카앙!

천더미의 안쪽에서 거대한 금속의 팔이 뻗어져나와 남은 오른팔마저 끊어 내버렸다.

사지를 잃은 기체를 끝장내려는 것처럼 금속의 팔은 기체의 가슴을 꿰뚫려는 듯 높게 쳐올려지자.



- 파캉!



기체의 가슴 아래쪽이 열리며 타원형의 물체가 튕겨져 나왔다.

 것은 머리와 몸통만 남은 기체를 버린  저 멀리 사라지듯 도망쳐버렸다.




...



"허억... 헉..."


백색의 파일럿 슈트를 입은 여성이 기다란 통로를 달린다.


그녀의 하얀 슈트 사이로 검붉고 붉은 피가 흘러 슈트를 적셔간다.


피를 흘리는 여성을 부축하듯 조금 키가 작은 여자아이가 그녀를 부축했다.




여자아이 또한 여성의 것과 디자인이 같은 백색의 파일럿 슈트를 입고 있었다.

두 여자 모두 머리는 은백색을 띄고 있었으며.  눈은 붉었다.


"아윽...!"

피를 흘리는 여성은 통로의 한 구석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저는 틀렸습니다... 저를 버리고 떠나세요... 요나."


"그럴 수 없어...!"

여성은 피에 젖은 손으로 자신을 붙잡은 여자아이를 밀치듯 때어내려 했지만.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밀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둘 다 잡혀버리고 맙니다... 형제조차 믿을  없어요. 당신은 혼자서라도 도망쳐야해요!"


"그...그렇지만..."


여성의 부탁을 들은 여자아이의 눈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자아이 역시 눈앞의 여성이 말하는 바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저 안의 '방주'를 빼앗기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까지 도망치고 도망치세요... 우리를 쫒는 것은 너무 위험..."

- 푸욱


기다란 것이 등 뒤에서 여성의 가슴을 꿰뚫었다.


- 푸샤아아악!


꿰뚫린 가슴 사이에서 붉은 피가 치솟아 올랐다.

피의 사이로 투명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솟아 있었다.

여성의 가슴을 뚫은 것은 유리처럼 빛나는 한 자루의 세검.



세검을 들고 있는 것은 흑색의 그림자.


불이 꺼져가는 어두운 통로에서 그림자의 모습은 거의 감추어져 있었지만.

머리를 감싸는 흑색의 투구와 손에 들린 유리처럼 빛나는 세검은   있었다.





"도망쳐요... 요나... 엘... 요나를 도와주세요..."


여성은 마지막 힘을 다해서 어린 아이를 밀치고 자신의  안에 있던 백색의 원반을 던져주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여자아이는 백색의 원반을 들고 달렸다.



철컥... 철컥...

여자아이가 도망친 직후 추격을 막아내려는 것처럼 통로는 닫혀갔다.


- 챙!


철의 투구를 쓴 그림자가 통로의 격벽을 향해 손에 들린 세검을 휘두르자 격벽은 너무나 손쉽게 무너졌지만.



통로의 끝에 여자아이는 없었다.



- 쿠구궁... 콰아앙!

잠시 후 땅이 흔들렸다.

땅이 흔들리며 통로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 바깥이 보였다.


드넓은 백색의 대지와 검은 하늘.


그 위론 무수한 별이 바다를 그리는 것처럼 놓여져 있었다.


별의 바다 사이로 향하는 것은 거대한 백색의 고래.

아니.

고래를 닮은 모습의 함선 '방주'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 열 한 번째 사도와 방주를 놓쳤군요. ]


무너진 통로의 사이에서 검은 천 더미가 그림자를 향해 걸어왔다.


그림자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 쫓으면 그만입니다. 열 번째 사도와 육신을 회수한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

천더미는 자신의 발아래에 쓰러진 여성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웃는 것처럼 천이 파르르 흔들렸다.

천더미는 무너진 통로를 지나.


고요한 백색의 대지의 위를 걸었다.


얼마 걷던 천더미는  자리에서 멈추었다.




잠시 후.



천더미의 안에서 가느다랗고 긴.

아름다운 팔이 별의 바다를 향해 뻗어 올려졌다.




[ 영겁의 잠에 빠진 이여. ]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 저는 당신을. ]

[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이 □□번째의 세계 속에서. ]

하늘과 우주를 향해 찬미하던  것은.


잠시 후 그림자와 함께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 프로젝트 타브하 1부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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