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6화 〉외전 : 은빛의 새 (146/152)



〈 146화 〉외전 : 은빛의 새

사령부의 회의실 안에는 여러 계급을 가진 장교들이 모여 있었다.

어느 누구하나 낮은 계급이 아닌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며칠사이에 있었던 방공시설과 감시시설의 파괴로 인한 대책회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사령관이나 비행단장도 아닌 젊은 장교였다.

"보시는 것처럼 현장은 어느 것 하나 남지 않은 채 파괴되었습니다. 주로 작은 파견기지와 감시소, 방공포 위주로 파괴되었는데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어두운 회의실 뒤로 비추어지는 자료화면에는 다 무너져 일부 벽만 남은 시설들의 사진이 지나갔다.



"차원수인가? 게이트가 열렸다는 보고는 없었는데."

 장교가 사진을 보곤 차원수의 행동이 아니냐고 물었다.

무너져 내린 벽에 남은 날카로운 상처는 마치 짐승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은 모양처럼 남아있었으니 차원수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차원수의 소행이라면 미사일이라도 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래. 언제까지 미사일을 놀려둘  없지 않나. 더 이상 핵 잠수함은 없지만 미사일은 아직 많아."

브리핑을 듣던 장교  일부는 어차피 외곽의 작은 시설이라면 기지를 버리는 셈 치고 미사일을 쏘면 되지 않냐는 이야기를 가볍게 꺼냈다.

그 파격적인 발언 속에는 군수품이 부족한 시기에 예전 시대에 지어진 어중간한 군사시설을 남겨두어 물자만 축내느니 이 김에 없애버리는게 낫지 않겠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는 그만두게. 베레스웃사 포인트의 사건을 벌써 잊은 건가?"


"..."


다른 장교가 베레스웃사의 이야기를 꺼내자 방금  까지 미사일의 이야기를 꺼내던 장교들은 입을 다물었다.




먼 이국의 국가에서 대형 차원수를 없애기 위해 핵미사일을 사용했던 사건.

부족한 병력대신 핵미사일을 사용한다는 전법은 좋았으나 게이트와 이상반응을 일으킨 덕분에 예상되었던 피해보다 더욱 심각한 결과가 나타났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생명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곳.


마치 신에게 벌을 받은 것과 같다는 의미로 베레스웃사라 불리게 된 사라진 국가의 사건.


 이후로 게이트가 열린 곳을 향해 핵병기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게이트가 없다면 사용해도 되는 것 아닌가?"

여전히 미사일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한  한 장교 한명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상대가 차원수라면 고민해볼만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대는 차원수가 아닙니다."


"차원수가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브리핑을 담당하던 젊은 장교는 서류봉투 안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사진을 한장 꺼내었다.

사진은 디지털이 아닌 낡은 아날로그 필름 방식으로 찍혀 흐릿한 잔상만이 남아있는 초라한 사진이었다.

사진의 한쪽 구석에는 기밀마크가 붉은 도장으로 찍혀있었다.


"필름 사진?"

"디지털로 촬영된 장비는 현장에서 모두 파손되었습니다.  병사가 취미로 가지고 있던 아날로그 카메라 덕분에 유일하게 구한 사진입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을 마친 젊은 장교는 사진을 영사기의 반사판 위에 올리자 작은 사진이 스크린 위로 크게 떠올랐다.

"이것은..."


"전투기? 아니... 전투기가 아니야."

사진을 본 장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진에 찍힌 것의 실루엣은 얼핏 보면 전투기라고 착각할  있었지만, 작은 사진에 찍혀있던 것은 거대한 날개를 펼친 새였다.

새는 깃털이 아닌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 아래에 저건 사람의 몸통인가?"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나이든 장교 한명은 안경을 고쳐 쓰며 새의 배 아래를 가리켰다.


확실히 새의 배는 어딘가 인간의 상체가 남아있는 듯 한 이지적인 실루엣이 남아있었다.



"설마... 차원기인가."

정비 특기 마크를 달고 있던 장교가 조심히 발언하자 다른 장교들의 혼란이 가중되기 시작하였다.

"어느 국가의 짓이지?"


"아직도 분쟁을 겪고 있는 그 국가의 소행인가?"

상대가 차원수가 아닌 차원기라는게 밝혀지자 장교들은 군사시설을 파괴한 테러범의 국가에 대해 유추하기 시작했다.






- 끼이익...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남자가 어두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단정하고 강인해 보이는 군인들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드는 남자.


남자는 흐트러진 가운을 걸친  어두운 회의실을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들어왔다.




그 손에는 손잡이가 달린 큼직한 박스가 하나 들려있었다.


"저 자는 누구인가?"

"이 분은 산하의 필리스티아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입니다."

젊은 장교의 소개를 받은 연구원은 조금 피곤한 듯  태도로 박스를 단상 위에 올렸다.



"저 연구원이 이 자리에 필요한 건가?"

"그에게 성분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성분 분석?"



- 푸시익


연구원은 책상위에 올린 박스의 옆면에 달린 패널에 정해진 패스워드를 누르자 상자의 잠금장치가 풀리며 안에서 연기가 조금 흘러나왔다.


잠시  연구원의 손에 들린 기다란 유리관 안에는 손바닥 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판이 들어있었다.



"설마 저게..."


화면 위에 떠있는 사진과 손에 들린 샘플.   가지 사이의 연결관계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명확했다.


"사진 속 차원기의 장갑판입니다. 방공포탑이 유일하게 기총 한발을 명중시킨 후 떨어져나온 잔해입니다."

연구원은 젊은 장교를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뒤 손에 들린 샘플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분분석 결과... 주변국가의 차원기들과 비교 해봐도 일치하는게 없었습니다."

"저 테러리스트의 기체가 어느 국가의 것인지 밝히지 못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조국을 상대로 테러를 벌이는 놈들의 출처를 밝히지 못한 건가!"


군복 위에 훈장이 가득한 한 장교는 책상을 내려치며 과장된 행동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진정하게. 자네의 애국심은 알겠지만 우선 적을 파악하는 게 먼저다. ... 저건 정말로 전투기가 아닌 거겠지?"

"네 저것은 전투기가 아닙니다. 단독으로 비행이 가능한 차원기... 라고 밖에  수 없습니다."

"단독비행... 코어를 사용해서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아직까지 코어는 미지의 영역이 너무나도 많은 블랙박스와 다름없는 미지의 구조체이다.

소형단계에서 겨우 구동에 성공시킨 이족보행 소형장비 워커나 정규 세대 이전의 차원기에나 쓰이던 기술로 비행이 성공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행동과 일치시켰기 때문에 걷는 것이 전부  뿐, 코어를 이용한 기체는 하늘을 날  없다.




"이것은... 기회군요."


분노를 비친 장교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머리가 희끗한 장교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기회라고?"

방금 전까지 분노하던 장교는 자신과 대조되는 행동을 보이는 장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기체는 어느 곳의 소속도 아닙니다... 그렇지요?"


"네 그렇습니다. 어느 국가에도 일치하는 기체는 없었습니다."

"만약 저 기체를 우리가 입수한다면 기체에 쓰인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겠군요."

"그렇군...!"

연륜이 있는 장교의 말에 가슴에 훈장이 가득달린 장교는 이제야 무언가 깨닫는 듯 했다.

"어느 국가의 것도 아니라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겠지요."


"정확합니다."

젊은 장교는 머리가 희끗한 장교의 말에 동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시간을 들여 브리핑과 성분분석을 진행한 이유 또한 같았으리라.



"저는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가지 작전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


필리스티아 연구소에서 제법 먼 거리에서 떨어진 고원은 눈이 가득 덮여있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살던 거주구였었지만 대형 게이트의 여파는  도시마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 세라프. 제 37차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



새하얀 고원위로 검정의 금속판이 두껍게 덮인 기체는 육중하게 움직였다.

양산 계획의 1세대 기체인 세라프는 관절 사이에 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꺼운 회색빛의 방수포를 머리 위 부터 두른 채 고원 위를 달렸다.

방수포 아래에 이따금씩 보이는 세라프의 머리 아래로는 녹색의 두 눈이 이따금씩 빛났다.


가장 앞을 달리는 세라프의 뒤로 다른 두 기의 세라프가 나란히 달렸다.

그 움직임은 땅을 밟아 달린다기 보다 양쪽 발목 끝과 종아리에 달린 추진 장치를 통해 추력으로 날아가고 있는 움직임에 가까웠다.

세 기체들은 모두 투박하며 거대한 라이플을 단 체 전방을 향해 달려 나갔다.



 탕 탕


예전 시가지의 건물 위로 달려있는 표적지를 향해 시작형 라이플의 끝이 주황색의 불을 뿜었다.

표적지를 향해 라이플의 탄환을 명중시킨 세라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갔다.


표적지의 아래에는 기체의 번호와 일치하는 넘버가 마킹되어 있었다.




02는 세발 중 두발을. 03은 한발도 맞추지 못했으나, 01은 모든 탄환을 명중시켰다.



표적을 지나자 구 시가지의 넓은 도로 위로 두꺼운 기체 크기의 더미가 준비되어 있었다.

- 키이잉...



기체의 왼팔 아래에 수납되어 있는 단검이 뽑혀나와 거칠게 왼손 위로 쥐어진다.

가장 앞서가던 01이 더미의 가슴. 기체라면 조종석이 위치할 부분에 곧바로 단검을 던져 넣자 더미의 머리 위로 녹색 불이 들어왔다.


02는 더미의 옆구리를 빠르게 그어 동력계가 위치할 부분을 직접 접근해서 긋자 더미의 머리 위로 주황색의 불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03은 단검을 사출시켜 손에 쥐려 하였으나...



- 쿠당탕... 쾅!


기체의 제어에 실패한 듯 그 자리에서 구르고 말았다.


더미는 아무런 공격조차 받지 못했으니 머리 위의 붉은 램프는 사라지지 않았다.


< 뭘 하는 거야! 3호! >

03이 넘어져 움직임을 멈추자 통신망 너머로 젊은 남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쓰러진 03을 향해 01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달려간 뒤 쓰러진 03의 어깨를 잡아 위로 일으켜 똑바로 눕혔다.



괜찮나요? >

03을 바로 눕힌 01의 안에서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야 야야... 네 괜찮습니다아... >

03의 안에서 방금 01안에서 들렸던 여성의 목소리 보다 더 어려보이는 듯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할까요. >

저온지역에서 반복되는 훈련의 여파인지 방수포 아래의 기체의 관절에는 점점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방금 전 03이 넘어진 이유도 기체의 관절부에 끼기 시작한 성에 때문에 자세제어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상 훈련을 지속하더라도 성과는 없을 거란 생각에 테스트 파일럿의 리더 엘리세바는 훈련을 중지시켰다.




...


트레일러에 기체를 수납한 뒤 엘리세바는 검붉은 색의 두꺼운 파일럿 슈트를 입은 채 트레일러의 아래로 내려와 헬멧을 벗자 땀에 조금 젖은 은발이 넓게 펼쳐졌다.


헬멧 안에도 열이 차있었던  차가운 공기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대장. 그러다가 감기 걸릴 겁니다."


다른 트레일러에서 걸어오는 것은 커다란 곰과 같은 체격의 남자.  역시 검붉은 색의 파일럿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자기의 덩치의 절반도 되지 않을 듯한 조그마한 체격의 파일럿이 붙잡혀 끌려오고 있었다.


"선배 아파요! 아파!"

끌려오던 파일럿은 조금 아이 같은 느낌을 주는 목소리의 키가 작은 여자 파일럿이었다.


"넌 좀  반성할 필요가 있어."

곰과 같은 남자는 자기 후배를 향해 으르렁 이듯 화를 냈지만, 어디까지나 훈계정도에서 그치는 수준이었다.




"저는 애초에 전투병과가 아니라구요. 저는 정보과 였어요!"


"끌려왔더라도 열심히 좀 해봐! 나도 행정과 였어!"


"네?! 선배가요?!"


작은 여자 파일럿은 눈앞에 있는 곰과 같은 남자가 행정 출신이었다는 것에 깜짝 놀란 듯 했다.


곰 같은 남자가 자기 어깨 너비보다 작을 것 같은 책상에 앉아 행정업무를 처리하다니. 생긴 것은 도끼를 들고 차원수의 머리를 직접 깨고 다닐  같은 인상의 남자인데.




"둘 다 그만 싸우세요."


자신을 앞에 두고 투닥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엘리세바가 이야기를 꺼내자 둘은 금방 조용해졌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둘은 아직 파일럿이 된지 삼일도 지나지 않았잖아요?"

아르세바의 말처럼 세라프 02와 03의 테스트 파일럿인 둘은 조종과 전혀 상관없는 직무를 맡고 있었다.


기지의 전 인원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  코어와 인간간의 적합률 검사에서 적합률이 가장 높게 나온 두 명을 차출하였으니 그들의 조종 미숙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번만 더 훈련을 거치면 실수도 줄어들거에요."


일반적인 전투기나 워커, 구형 차원기들과는 다르게 세라프는 타고난 적합률만 어느 정도 된다면 초보자도 쉽게 다룰 수 있는 기체다.


그녀의 말처럼 이대로 훈련을 반복한다면 그 둘은 훌륭한 파일럿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습니까."

"고마워요 대장~"


조용히 수긍하는 남자와 다르게 작은 여자 파일럿은 엘리세바의 허리에 팔을 감아 안긴다.


엘리세바는 익숙한 스킨십이었던 듯 약간 붉은 빛을 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조작 문제만 해결된다면 고원 너머에 있는 차원수를 상대 해봐도 괜찮을  같은데 말이죠..."

테스트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엘리세바가 세라프의 고질적인 문제.


저온 환경에서 조작 정밀성에 대해 고민하며 다음 단계의 훈련을 고민하던 중, 멀리서 정복을 갖춰입은 남자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정복을 갖춰 입은 남자는 엘리세바의 앞에서 멈춰선  오른손을 올려 경례를 했다.




"경례는 됐어요. 전 군인이 아니에요. ... 무슨 용건으로 오신건가요?"


"실례했습니다. 세라프의 세 파일럿에게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명령이요? 우리에게?"


엘리세바의 허리에 감겨있던 작은 여자 파일럿은 자기 앞에 선 정복을 입은 남자를 흘긋 쳐다보며 의문을 표했다.

정복을 입은 남자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봉투 안에서 한 장의 지령서를 꺼내었다.



"48시간 뒤 실행  작전의 징집명령입니다."


"이런건 유선으로 건네주셔도 되었을  같은데. 직접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직접 와서 건네 줘야  이유가 있었냐며 엘리세바는 정복을 입은 남자에게 물었다.




"사령관님 직속의 극비 작전입니다."

"극비..."

곰 같은 남자는 극비라는 이야기를 듣자 조금 긴장한 듯 했다.



"극비요? 제가 감청했던 것 중에 그런건 없 으읍 읍..."

작은 여자 파일럿이 뭔가 말하려던 것을  같은 남자가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정복을 입은 남자는 제대로 듣지 못했던 듯 지령서를 엘리세바에게 건네주었다.




"우리가 필요하다는 건... 기체가 필요한 임무. 아마 전투겠네요."


"그렇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사령부로 가셔서 듣게 될 겁니다."

"거부할 수는 없겠군요."

엘리세바의 손에 쥐어진 지령서에는 작전일시와 세 명의 파일럿의 이름, 사령관의 도장.



그리고 [버드 헌트] 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작전명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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