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7화 〉외전 : 은빛의 새 (147/152)



〈 147화 〉외전 : 은빛의 새

필리스티아 연구소의 테스트 파일럿 세 명이 호출된 곳은 사령부의 사령관실이었다.


일개 테스트 파일럿과 민간 협력자 입장으로써는 직접 방문할 일이 없는 공간에 사령관이 직접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임무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왔는가."


사령관실의 문이 열리자 그 곳에는 머리가 희끗한 정복을 입은 남자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사령관님을 뵙습니다앗..."


초급 장교가 마주하기엔 벅찬 상대였기 때문인 걸까.

엘리세바의 세 일행  키가 작은 정복 차림의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겨우 경례를 올렸다.


그 옆에 선 정복이 터질듯 한 곰 같은 체격의 남자는 말 없이 경례를 올렸지만 그의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게 보였다.



하지만 그런 둘과 다르게 엘리세바는 정복이 아닌 롱스커트위에 카디건, 그리고 숄을 걸친 채 그들의 가운데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다른 건 복장뿐만이 아니었던 듯 엘리세바는 마치 지인을 만나는 것처럼. 사령관을 옆집 아저씨라도 되는 것처럼 편하게 인사를 건넸다.

"대...대장!"

"대장!..."

거리낌 없는 대응에 엘리세바의  옆에 선 부하 둘은 크게 놀랐다.

군사정권이 자리 잡은 시대에서 장성 급에게 무례하게 구는 행위는 어딘가 수용소로 보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 둘은 엘리세바 때문에 수용소에 보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으리라.

"남들 앞에서까지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만두게."

사령관은 몸을 돌려 창가 아래에 자리 잡은 의자에 앉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만큼 사령관과 엘리세바는 면식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제게 언제까지나 아저씨인걸요. 여긴 여전하네요. 아저씨는 커피일거고. 다른 둘은요?"


그녀는 사령관실을 마치 자신의 집처럼 편하게 돌아다니며 사령관실 한 쪽에 마련된 탕비용 찬장을 뒤적였다.

"..."

다른  명에게도 뭔가 마실 거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실  말이에요. 이런 자리에서 그냥 이야기만 나누기 그렇잖아요?"

찬장을 뒤져 미리 갈아둔 커피 원두와 찻잎을 꺼낸 엘리세바는 여전히 입구에서 뻣뻣하게 굳어있는 부하 둘을 향해 다시 물었다.



"...커피면 됩니다."

"저...저도 그렇헷스요."

사령관이 그 둘을 지긋이 바라보자 둘은 겨우 대답해주었다.

한명은 완전히 혀를 씹은 듯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저 둘이 지금 자네의 부하인가."

"네 그런 샘이에요.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건가요. 얼른 자리에 앉아요."

엘리세바는 찻잔에 찻잎을 조금 넣고 물을 우려내며 부하 둘을 사령관의 책상 앞 회의용 테이블 앞에 앉혔다.



"비서를 시키면  것을."

사령관 역시 그들의 앞에 마주 앉은 채 조금 기다리고 있자 엘리세바는 세 명의 앞에 차를 내려놓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편하게들 들게. 나는 내 앞에서 불편해하는걸 원하지 않네. 커피는 입에 좀 맞는가?"


사령관은 커피 잔을 쥐고 조금 홀짝인  잔을 내려놓았다.



"...합성이 아닌 커피는 처음 봤어요."


"자네 나이라면 처음 본 것일 수도 있겠군."

정복을 입은 여자 파일럿이 잔을 양 손에 모아쥐고 그 향을 조금 음미하자 사령관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형 게이트가 열린지  년이 지났지만 아직  세상은 그 후의 혼란으로 가득 차있다.


지금 사회에서 커피 같은 사치품은 일반 장교의 봉급으로는 구할 수조차 없는 물건이었다.

곰 같은 남자 역시 진짜 커피는 처음이었던 듯 사령관의 앞이란 것을 잊고 한참이나  풍미를 즐기는  했다.

"진짜 차는 맛있네요."

커피를 즐기는 셋과는 다르게 엘리세바는 찻잎을 우려낸 차를 마셨다.


커피만큼 비싸진 않지만 찻잎 역시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


"48시간 뒤에 작전이 있다는 건 들었겠지."


잠시간의 티타임이 끝나자 사령관은 곧바로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네. 작전이 있다는 건 들었어요. 이번에도 이웃국가의 문제인가요?"

"그건 아니네."


"이웃국가가 아니라면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 그것도 아니라면... 감염자 문제인가요?"

엘리세바의 이야기를 들은 사령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시시한 작전은 전투기와 군으로 해결할 수 있네. 자네들을 부른 건 그런 일이 아니야."

"국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형기 3대를 모두 쓸 정도로 말인가요?"

"그렇네."

사령관은 감출 생각은 없었던 듯 곧바로 수긍했다.



"대체 무슨 작전이기에 그럴까요?"

엘리세바는 찻잔을 내려놓은 뒤 얄팍하게  듯한 눈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포획작전이네."

"차원수의 포획인가요? 설마 예전에 연구소에서 하시던 일을 계속 하시려는  아니겠죠?"

"그건 기밀사항이네!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말게!"


차원수와 연구소.

두 키워드를 들은 사령관은 여태까지 보였던 온화한 태도를 거두고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를 듣고 겨우 긴장이 풀려가던 두 명은 불행하게도 다시끔 긴장하게 되었다.



‘히끅...’

작은 여자 파일럿이 놀란  딸꾹질을 조금 하자 사령관은 작게 한숨을 내쉰  이야기를 다시 꺼내었다.



"소리쳐서 미안하네... 하지만 상대는 차원수가 아니야.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하려던 것도 아니고."


"차원수도 아닌데 차원기를 세대나 징집할 이유가 있는 건가요?"


엘리세바의 집요한 물음에 사령관은 대답대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황색의 봉투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건... 새? 차원수?"


"아니... 전투기 같아 보이는데."

사령관이 꺼내둔 은색의 실루엣이 찍힌 사진을 본 두 명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영혼을 가진 모습이네요."


"네?"


"예?"


엘리세바의 잔잔하지만 단언하는 듯  말에 두명은 어리둥절해 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답에도 다른 두 명은 여전히 의문에 가득찬 표정을 지었지만,  자리에서 사령관만큼은 엘리세바를 조금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다.


"사진에 찍힌 건 자네들이 몰고 다니는 것과 같은 차원기네.  며칠간 외곽의 방공시설을 파괴한 주범이지."

"이게 차원기란 말입니까?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겼습니다만..."

 같은 체격의 남자는 사진을 한 손에 쥔 뒤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그 사진 속 어디에도 은색의 실루엣이 차원기라고는 믿지 못했다.

차원기라는 것은 코어를 사용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본  만든 기계의 거인이다.

하지만 사진 속 이 것은 인간의 형태를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네. 전투기도 아니고 차원수도 아니라면 그건 차원기겠지. 어느 국가의 것인지조차 알 수 없네만."

"그렇습니까..."

사령부 최고 지휘권을 가진 사령관이 내린 판단이라면 올바른 것이리라 생각한 남자는 사진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소속불명기라면 격추하면 되지 않을까요?"


이제야 딸꾹질이 멎은 작은 여자 파일럿은 사령관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꺼내었다.


혼란을 노리는 것은 차원수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외국의 국가는 혼란을 틈탄 무력도발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군도 처음엔 격추하려고 했으나... 잡을 수가 없었네."

"잡을 수가 없었단 말입니까?"

"빠른 속도로 우리의 대공사격 망을 벗어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네. 그 후에 방공시설을 파괴했지."

"단독비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사령관의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형태를 벗어난 것도 모자라 단독비행이 가능한 기체라니. 지금의 개발 기술 수준으로는 이룰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국가의 방어선은 튼튼하게... 아니 오히려 인접한 국가를 전부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네. 우리는 그 기체를 포획하려고 하네."


사령관을 포함한 수뇌부의 판단은 소속불명기를 포획한  그 기술을 손에 넣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반적인 대공방어로 정복할 수 없으니 신형기 3대를 투입한다... 리스크가  작전이네요."


여태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엘리세바는 찻잔을 내려놓고 다리를 조금 꼰  사령관을 마주보았다.

"이것이 자네들의 임무. 은빛의 새 사냥 일세. 전략과에선 버드헌트라고 부르는  같지만 말이야."


사령관은 늙어가는 얼굴 속에서 야심을 품은 모습을 내비쳤다.

이 곳에 들어온 순간.


아니. 세 명이 최신예기 세라프를 탄 순간부터 이 임무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



사령부를 방문한지 어느덧 하루하고 반이 더 지나갔다.

출격을  시간 앞두고 격납고에 모인 엘리세바를 포함한 세 명의 파일럿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마치고 온 듯 했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할 일은 잘 마무리 하고 왔나요?"

사령관실을 나서기  엘리세바는 사령관과 일종의 거래를 가졌다.


위험한 임무인 만큼 자신의 밑에 소속된 두 명의 부하에게 사령관 재량으로 어느 정도의 보상을 요구했었다.



"가족에게 배급권을 세 달치 더 얹어주었습니다."


"저는 외곽 방어선 기지에 있는 언니를 사령부 예하로 옮겨달라고 했어요..."


부하 둘은 남게 될 가족에게 베풀어 줄 혜택을 선택했다. 어느 것이나 초급 장교에겐 과분한 특권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부 대장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대장은 어떤 걸 하고 오셨습니까?"

 둘은 자신의 목숨값 대신 받은 보상에 만족하는 듯 엘리세바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동시에 궁금증을 가졌다.


일개 초급장교인 우리가 이 정도의 혜택을 받았다면 대장격인 이 여자는 도대체 무엇을 받았을까.

"아. 전 현물로 받았어요."


"현물 말입니까? 금이나 코어를 받으신 겁니까?"


곰 같은 남자는 현물이라는 단어를 듣자 어떤걸 받은 것인지 머릿속으로 유추했다.

현물이라면 국경너머에서도 쓰이는 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군에서 독점하고 있는 코어인가?

어느 것이나 이 혼란 속에서도 확실한 가치를 가지는 물건이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거에요."


엘리세바는 고개를 젓고 옆구리에 끼고 있는 조금 큰 상자를 보여주었다.

"그게 뭐에요 대장?"

"초콜릿이에요."


"...예?"

남자는 엘리세바의 대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숨값 대신 받은 것이 초콜릿 한 상자라니.


"앗. 두 명은 먹어본 적이 없었나요?"


"아뇨... 저도 어릴  종종 먹어봤습니다."

"저도 어릴 때 한번 먹어본 적이 있어요..."




엘리세바가 사령관에게서 임무의 대가로 요구한 것은 초콜릿  박스였다.

국내에서는 이제 없다고 봐도 될.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생산 된 비축분이었다.

단순한 기호품이지만 이 한 박스의 값어치는 4인 가족의 세달 어치 배급권이나 사령부의 인사이동만큼의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었다.



"어제 밤까지 미하일과 질리도록 먹어봤어요. 절반은  아이에게 선물로 줬지만요."

엘리세바는 사령관에게서 받은 초콜릿  박스를 자신과 친한 소녀 미하일과 신나도록 먹고 남은 절반을 미하일에게 주고 나왔다.



"이렇게 많이 먹으면 코피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런 일은 없더라구요."


"대장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어요..."


출격하기 전 밤늦게까지 어린 소녀와 초콜릿을 나누어 먹다니.

대장의 감성은 일반적인 사람이랑 많이 다르다는 생각에 작은 여자 파일럿은 질린 듯 한 표정을 내비쳤다.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았어요. 아 하나씩 드시겠나요?"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대장!"


하지만 초콜릿이 그 둘에게도 돌아가자 그 둘은 거절하지 않고 갈색의 판형 사치품을 즐겼다.

...




잠깐의 사치를 즐긴  세 명의 파일럿은 트레일러에서 내려 작전 지역에 도착한 뒤 자신의 기체를 올려보았다.

흑색의 장갑판을 두른 거인. 세라프의 뒤에는 원래 달려있지 않던 거대한 연료탱크가 두개 달려 있었다.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장비된 연료탱크의 끝에는 땅에 끌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판이 달린 거대한 지지대 하나가 서브 레그로 달려있었다.

"고출력의 운용을 위한 외부 연료를 담은 드롭탱크라니... 이런 게 필요할까요?"

어느새 검붉은 색의 파일럿 슈트를 갖춰 입은 여자 파일럿은 기체의  뒤로 달린 연료탱크를 한참이나 살펴보았다.



"보여주기 용입니다. 아직 전투기를 만들던 기술이  만하고 버리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시위인 것이죠..."

어느새 세 명의 옆에 흐트러진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옆에 서서 초콜릿을 하나 먹으며 이야기를 꺼내었다.


연구원의  대로. 코어를 이용한 기체의 운용에는 외부 연료계가 필요하지 않았다.


액상 연료를 가득 담은 연료탱크는 예전에나 쓰이던 사족 보행전차나 전투기에나 쓰이던 옛 기술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마냥 장식용은 아닙니다. 뒤에 달린 버니어로 고출력의 스피드를 낼  있습니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상대... 소속불명기를 상대하는데 유효하겠군."

 같은 남자는 추가 장비가 마냥 쓸모없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선배. 여기 뭐라고 적혀있어요..."


기체의 아래에서 연료탱크를 살펴보던 작은 파일럿은 회색빛의 연료탱크 옆면을 가리켰다.


"이건..."

"'바바야가'라고 적혀있네요."

낯선 언어로 조잡하게 흑색의 페인트로 적힌 글자였지만 엘리세바는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오래 된 글자도 읽을 줄 아시는 겁니까?"


"어쩌다보니까요."

엘리세바는 지금 세대에서는 쓰이지 않는 글자를 간단하게 읽었다.


"바바야가라면 마녀의 이름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민담 속에 등장하는 마녀가 타고 다니던 운송수단의 이름을 땄다는데... 개발팀이 워낙 괴짜다보니 말입니다."


연구원은 질색이라는  표정을 조금 구겼다.


낡은 장비인 주제에  오래된 민담속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다니. 개발자라는 족속은 도무지 이해할  없는 족속들이나 마찬가지다.

연료탱크는 두 기의 세라프 모두 달고 있었지만 세 대의 형상은 각기 달랐다.

한대는 거대한 레이돔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다리 아래로는 두 개의 미사일 포드를 달고 있었다.

다른 한대는 거대한 장갑판을 어깨부터 두르고 있었으며, 다른 팔에는 중간 부분이 빈 거대한 대검이 쥐어져 있었다.



마지막 한대에는 내부 배선이 조금 노출 된 거대한 라이플이  손 위에 들려 있었다.

아니 이 것은 포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시무시한 무기네요... 누가 쓰게 되는 걸까요."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듯한 조잡하지만 거칠고 강한 형태의 라이플을  엘리세바는 솔직한 감상을 꺼냈다.



"당신입니다."


"네?"


"적합률이 가장 높은 사람에게 할당 된 무기인데... 당신밖에 쓸 사람이 없습니다."


"그...그런가요."


엘리세바는 연구원의 말에 조금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녀의 미학과는 어긋난 듯한 조잡해보이는 무기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으리라.



"프레임을 보내준 국가에서 같이 받아온 기술로 재현한 무기입니다. 사격에 코어를 쓴다고 하더군요. 그쪽에선 사용할 수 있는 기체가 없다고 넘겼는데... 우리도 출력을 겨우 줄여서 사용 가능한 수준까지 튜닝 했습니다."


세대의 세라프 프레임과 함께 받아온 무기 기술.


코어를 사용한 포격 전용 무기이지만 그 출력은 방어선의 방어포탑보다 높았던 탓에 일반적인 기체는커녕 포탑도 견디기 힘든 출력이었다.

필리스티아 연구소에서 겨우 출력을 줄이는 노력 끝에 휴대가 가능한 수준까지 줄였지만, 일반적인 적합률로는 다룰 수도 없는 강력한 무기였다.

"이런 것 까지 꺼내야 할 정도로 위에선 기대하고 있는게 많은 거겠죠... 행운을 빕니다."

각 기체의 커스텀과 무기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연구원은 다시 트레일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연구원과 작업원들은 세 대의 기체와 파일럿만 내려둔 채 현장에서 이탈했다.


---




예상 등장 시간까지 앞으로  분... >

곰 같은 체격의 남자는 자신의 기체 속에서 전략과의 사전 예측으로 소속불명기의 예상 등장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


< 대장... 맛있는 건 알겠지만 이제 그만 드셔도 되지 않습니까. >


소속불명기와의 대결에 긴장하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통신망 너머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 네? 제가 뭘요? >

카메라 너머로 다 보입니다. 다 큰 여자가 입가 가득 초콜릿을 묻히고 있는 건 좀... >



< 앗 이거 보이고 있었나요? >


남자의 말에 엘리세바는 허둥지둥 파일럿 슈트의 손등 부분으로 입가를 아무렇게나 닦았다.


< ... 지금 모습 엄청 깹니다. >

선배. 대장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던 건가요? >


< 시끄러워. 뭐가 그런 눈이야. >


남자는 중요한 임무임에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두 여자의 통신에 조금 머리가 아파왔다.


< 맞아요.  남자의 취향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작고 다람쥐 같은... >

엘리세바는 자신을 향해 깬다고 말한 남자에게 복수하듯 그녀가 알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 우와 아악!! 대장! 그 이야기는 비밀로 ...! >

< 네? 네? 그게 무슨 이야기에요? 자세히 알려주세요. >

연애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들뜬 것인지 작은 여자 파일럿이 조금 신난  목소리가 높아졌다.


< 그건 말이죠... >



- 삐! 삐! 삐!

그러나   이야기를 끊듯 경보음이 크게 세  울렸다.


< 나타났습니다! 경계망에 소속불명기 확인! >

경보가 울리자 작은 여자 파일럿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신속하게 임무 태세로 들어간 뒤 기체에 짊어진 레이돔을 통해 식별된 신호를 다른 두 대에 전송해주었다.



< 소속불명기? 어디냐! 전혀 보이지 않는다! >


검과 방패를 든 기체는 탁 트인 언덕 위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은색의 기체는 보이지 않았다.


세 대의 기체가 각자의 무기를  채 모든 면을 포착하고 있었지만, 레이돔에 식별 신호만 잡힐 뿐 기체는 보이지 않았다.


< 각기! 산개! >

그 순간 엘리세바는 무언가 느낀 듯 다급하게 외쳤다.

콰앙!

엘리세바의 명령과 동시에 세 대의 기체가 언덕 아래로 급하게 회피기동을 마친 것과 함께 크게 내려찍는 소리가 언덕 위를 울렸다.

- 쿠구구...

무언가에 내려찍혀진 언덕은 눈과 작은 자갈더미를 언덕 아래로 흩날려 내려왔다.

만약 엘리세바의 신속한 판단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흑색의 세라프도 똑같이 찌그러졌을지도 모른다.

< 정면이 아니라... 위에서 나타났다고? >

흩날리는 눈보라가 그치자 언덕 위에 있는 것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딘가 기묘한 모습을 가진 새를 닮은 것.


그러나 새를 닮은 그것은 생물이 아니었다.



눈보라 속에서 달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기체.


성자가 떠난 뒤 성찬을 받은 자.

은익의 비야키의 등장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