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9화 〉외전 : 은빛의 새 (149/152)



〈 149화 〉외전 : 은빛의 새

은빛의 새는 변형을 마친 뒤 지상 위를 두 다리로 내려 앉았다.


새의 다리가 아닌 인간과 같은 두 다리로써 내려온 채 세기의 세라프와 대치했다.

< 변했어? >

통신 너머로 03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형하는 기체. 미지의 움직임을 보여준 것과 같은 만큼의 충격이었다.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변형을 할  있는 기체는 없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모습이 각인된 코어에는 다른 생물의 모습을 각인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눈앞의 기체는 현 시대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것을 두개씩이나 보여주었다.


< 저래서 잡아오라고 한 건가... >


대검을 고쳐  02는 눈앞의 기체의 행동을 경계하고 있었다.



'요즘 성체는 변하기도 하는구나...'


01의 조종석 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엘리세바도 적잖게 당황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찬식을 통해 받은 성체는 받은 자의 영혼의 형태에 걸맞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는데...'

엘리세바는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다.



은빛의 새가 보여준 공간을 넘나드는 능력과 형태를 변화하는 능력.

두 가지의 능력은 서로 다른 영역의 능력이었다.

'성찬을 받은 자는 하나의 능력을 수여받기 마련인데 어떻게 두개씩이나?'


자신의 대화에 응하지 않은 것을 포함해 눈앞의 성체는 조금 기이했다.



- 촤르륵


엘리세바가 고민하는 사이 인간의 형태로 변한 비야키는 등에 달린 꼬리 깃을 꺼내어 손에 들었다.


손에 쥐어진 금속의 꼬리깃은 사복검의 형태로 변했다.



- 촤악!

기다릴 틈도 주지 않은 채 비야키는 사복검을 휘둘러 쳐내었다.

< 쳇! >


세 기체  근거리용 대검을 들고 있는 02가 넓게 휘둘러지는 사복검을 막아내었다.

< 날개를 당해서 날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

02가 사복검을 막는 동안 01은 손에 쥐어진 포에 달린 앞부분의 장비와  부분의 배선반을 떼어내었다.


떼어진 포 안에서 나온 것은 길이가 조금 짧은 라이플이었다.

배선과 장비를 뜯어낸 덕분에 이전과 같은 화력은 나오지 않겠지만 근거리에서 사용하긴 적당할 것이다.


- 탕!


01이 짧아진 라이플을 비야키의 등을 향해 쏘자 붉은 광선이 산탄처럼 튀었다.


장비가 떨어졌기 때문에 01의 사격은 정확했지만 은색의 등을 조금 더럽힌 정도에 그쳤다.



- 촤악!


01과 02 두 대의 기체 사이에 낀 비야키는 발 아래의 눈 더미를 향해  끝에 달린 포구를 쏘았다.

포격을 맞은  더미는 시야를 가리는 눈발이 되어 01과 02의 시야를 차단했다.



- 쿵!


잠시 후 눈보라 속에서 무언가 날아와 01의 발 앞에 떨어졌다.


< 이건... 02 !>

거센 눈발 속에서 엘리세바는 부하의 콜 사인을 불렀다.

발 앞에 떨어진 것은 검은 세라프의 헤드 유닛.



눈보라가 가라앉은 뒤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머리가 떨어진 세라프. 02의 머리였다.

02의 머리를 참수한 비야키는 사복검의 날에 묻은 유압 실린더 속의 연료를 떨쳐낸 뒤 곧바로 01에게 달려들었다.



< 어딜! >


- 타앙!


짧은 숏라이플이 다시 한 번 붉은 광선을 산탄처럼 퍼붓자 비야키는 거리를 벌렸다.




< 대장... 더 이상 움직이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메인 제어유닛이... >

머리가 떨어져나간 세라프는 정밀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코어의 연결을 보조하는 헤드 유닛이 떨어져나간 세라프는 워커 수준의 단순한 공업 머신에 지나지 않는다.

< 선배! >




01과 비야키가 대치하는 틈을 타 03은 02의 조종석을 열어 그 안의 파일럿을 급히 03의 조종석 안으로 옮겼다.


방금  비야키에게 한쪽 팔이 떨어져나간 03과 마찬가지로 전투에선 도움이 되지 않을게 뻔했다.



03. 02와 함께 이 곳을 이탈하세요. >

< 대장! 다 같이 후퇴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

< 원래 계획은 그랬었죠. 하지만 상대는 우리 모두를 돌려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




비야키는 01을 향해 접근과 후퇴를 반복하며 점점 거리를 좁히고 있었을 뿐,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02와 03은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01마저 후퇴를 위해 등을 돌린다면 다른 두 대마저 위험에 빠질 것은 뻔했다.






< 신형 3대를 전부 잃을 수는 없어요. 3대를 잃으면 위에선 여러분의 가족까지 수용소로 보낼지도 몰라요. >

그럴 수가... >

소속 불명기의 포획을 실패한데 이어 3기의 세라프를 전부 손실해버린다면 남겨진 가족의 안전도 보장할  없었다.



< 이럴 때 대장다운 일이라도 해봐야죠. 얼른 도망치세요. >

< ... 죄송합니다 대장! >

한쪽 팔만 남은 03은 비어있는 02의 몸체를 붙잡은 뒤 등 뒤의 연료탱크를 점화시켜 설원을 달려 나갔다.

도망치는 02와 03을 향해 비야키는 달려들려고 했으나.




- 채앵!

01의 왼팔 아래에 달린 단검이 비야키의 사복검을 막았다.


---




02와 03이 무사히 이탈한 것을 확인한 엘리세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기체로 계속 싸우는 건 무리겠죠..."


비야키를 막기 위해 기체를 혹사시킨 결과 모니터 위로 기체의 여러 관절에 주황색의 불이 들어와있었다.

포를 분리해 라이플로 만든 이유도 기체의 부담을 줄이고자  것이었으나 계속되는 접전으로 인한 피로는 감출  없었다.

- 까드득...


저온의 환경에서 오래 노출되었던 문제도 겹쳐 관절사이에 성에가 낀 듯 삐걱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상대는 기체의 상태 따위를 배려해주지 않았다.

부하 둘이 사라진 01을 향해  사냥하기 쉬운 먹잇감으로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매섭게 달려들어왔다.

- 카앙! 캉!


고속으로 휘둘러지는 비야키의 사복검에 두터운 세라프의 장갑판 곳곳이 긁혀나갔다.




"성가실 만큼 빠르네요."

엘리세바는 02가 남긴 대검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 들린 단검으로 계속 대치했지만 겨우 막아내기만 할 뿐 더 이상의 대응은 힘들었다.

이대로라면 엘리세바가 패배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비장의 수가 남아있었다.




"엘. 확실히 이 근처였죠?"


[예. 바로 이 아래입니다.]

그녀와 엘 둘만이 알고 있는 비장의 수단. 얼어붙은 땅 아래에 숨겨둔 것을 이야기했다.



- 콰앙!


[ 엘 르아살! ]

엘리세바는 움직임이 헐거워진 기체의 팔 대신 거대한 다리를 들어 올려 세라프의 앞에 서있던 비야키를 멀리 차낸  사념을 다해 외쳤다.



- 우득!

엘리세바의 외침과 함께 땅 아래가 갈라졌다.




- 콰앙!


굉음과 함께 땅이 갈라지며 눈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폭풍과 얼음의 틈 사이에서  쪽 무릎을 굽힌 백색의 거인이 솟아올랐다.


엘 르아살이라 불린 거인은 엘리세바가 타고 있던 거친 흑색의 세라프와는 다르게 고운 선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적인 선이 남아있는 유려한 곡선의 거인.

거인의 한 손에는 새하얀 설원과 같은 아름다운 세검이 들려 있었다.

흑색의 세라프에 비해 작고 가는 기체였지만 기체가 주는 위압감은 남달랐다.



엘리세바의 육신. 사도에게만 주어진 열두 대의 기체 중 하나.


엘 르아살.


눈의 폭풍 속에서 엘리세바는 세라프의 조종석에서 엘 르아살의 조종석 안을 향해 뛰어내렸다.

- 콰앙!


그녀가  르아살에 뛰어든 것과 동시에 눈의 폭풍 속에서 사복검이 뻗어져나와 조금  까지 그녀가 앉아있었던 세라프의 조종석을 꿰뚫었다.

"망설임이 없는 행동이네요. 도대체 무엇이  아이를 조급하게 만든걸까요."


[여전히 인간의 생각은 잘 모르겠습니다.]



엘이 엘 르아살의 조종석에 내려앉은 것과 함께 백색의 거인의 눈은 푸르게 빛났다.



굽힌 무릎을 올려 일어선 엘 르아살은 곧바로  폭풍 너머의 상대를 향해 세검을 내질렀다.

채앵!


가느다란 세검의 끝에 사복검의 마디가 꽂혀 들렸다.

- 촤라락!


사복검을  엘 르아살은 가느다란 팔을 당기자 사복검과 함께 은익의 비야키가 끌려왔다.


은익의 비야키는 녹색의 눈을 빛내며 빼앗긴 사복검대신 날카로운 왼 손을 엘 르아살을 향해 내질렀다.


- 콰앙!


손이 내질러지자 엘 르아살의 다리가 비야키의 팔을 차 날려버렸다.


 르아살의 가는 다리에 차여진 비야키의 팔은 중간부터 끊어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한쪽 팔을 잃은 비야키는 사복검을 쥔 손을 풀어 다시  번 내질렀다.




챙!


사복검에서 손을 때자마자 엘 르아살은 비야키의 남은 손마저 가는 세검의 끝으로 꿰어 잘라내버렸다.




쾅!

양 팔을 잃은 비야키를 엘 르아살은 걷어  날려버렸다.


새와 같았던 고운 두 날개를 대신하던 팔을 잃은 비야키는 멀리 날려가며 다시 한 번 눈의 폭풍을 일으켰다.



잠시 후 눈의 폭풍이 가라앉고 그 곳에 남아있던 것은 두 팔을 잃은 은익의 비야키와 그 위에 가는 세검을 겨누고 있는 엘 르아살 이었다.

< 성체에서 내려오세요. 성찬식을 받은 아이여. >

3기의 세라프가 해내지 못한 것을 엘 르아살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버렸다.


---


조종석에 앉아있던 비야키는 더 이상 수가 없다고 판단한 듯 조종석의 커버를 열고  안에서 내렸다.



"이런 불경한  위에서 맨 몸을 드러내야 할 줄이야..."

전투의 여파로 흩날리는 눈바람 속에서 은색 성의를 걸친 비야키의 입에선 입김이 피어올랐다.

비야키는 단 세 격만에 자신을 패배시킨 백색의 기체를 올려보았다.

바닥 아래에서 나타난 저 것은 자신의 세계에 있던 성자님의 육신과도 닮아있었다.


비야키는 자신의 추론을 부정하듯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정말 성자라면 이런 불경한 곳에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생각한 것은 성자의 신성을 모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저 안에 있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 위잉

잠시   르아살의 조종석이 열렸다.

 안에서 내린 엘리세바는 멎어가는 눈바람 속에서 비야키의 성의와 같은 색의 은발이 곱게 흔들렸다.



"진짜... 성자님이라고?"

엘 르아살 안에서 내린 엘리세바의 모습을  비야키는 넋을 잃은  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보았다.


방금 전 까지 성자의 신성을 부정하던 자신의 행위가 오히려 그녀를 모욕한 샘이었다.



"성자... 그 사람다운 촌스러운 명칭이네요."

비야키의 얼빠진 목소리를 들은 엘리세바는 얄팍하게 감겨있던 눈을 떠 붉은 눈을 보인  비야키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당신에게 성찬을 내려준 분. 성자라고 했던가요? 제 2사도는 어디에 있죠?"

엘리세바는 평소의 느긋하던 모습과 다르게 어딘가 고혹적이면서 동시에 냉철한 모습으로 비야키에게 물었다.




"성자님은... 관 속에서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휴면상태..."

엘리세바는 잠이라는 단어를 듣자 휴면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도의 잠.


모든 힘을 다한 사도는 자신의 관 속에서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힘을 다시 회복하거나, 아버지가 깨어나는  날 까지.

"제 2사도가... 유감이네요."

낯선 세계에서 모처럼 발견한 형제의 흔적을 놓치자 아쉽다는 감정이 그녀의 얼굴 끝에 지나갔다.



"저는 그 분의 뜻을 뒤늦게 따르는 자... 비야키 입니다."


"비야키... 당신은 역시 성찬을 나누어 받은 아이였군요."

"그렇습니다. 비록 저는 성자님이 잠든 뒤에 성찬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비야키는 눈앞의 성자. 교단의 형제들에게 성찬을 나누어 준 제 2사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눈앞의 엘리세바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성자가 우리에게 형제들을 사랑하라고 했던 가르침처럼. 성자의 형제 자매 또한 성자처럼 존중 받을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리라.


어쩌면 이 불경한  위에 머무르는 성자는 잠든 성자님을 대신해 우리를 다시 한  이끌어주실지도 모른다.

비야키는 그런 기대감을 마음의 한 구석에 품고 있었다.


"...잠시 만요 비야키. 지금 잠든 뒤에 성찬을 받으셨다고 하셨나요."

그러나 비야키의 경외와 다르게 그 이야기를 들은 엘리세바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성자님에게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남은 성찬을 대행 받아..."


비야키는 눈앞의 성자 엘리세바에게 자신의 성찬을 숨김없이 고했다.

신성한 존재인 성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자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건 있을  없는 일이에요."

엘리세바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성자님?"

엘리세바의 단호한 말과 함께 내려지는 시선에 비야키의 가슴속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자신이 내려 받은 성찬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은 다른 형제들과 같은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인가.


"...사도가 잠들면. 성찬식은 더 이상 거행될 수 없어요."

"아닙니다. 저는 분명히 성찬을 받았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성체가 그 증거이지 않습니까."


잠든 사도는 성찬식을 거행할 수 없다.

하지만 눈앞의 비야키는 성찬의 증거인 성체. 은익의 비야키를 가지고 있었다.


"당신이 받은 성찬... 그 과정을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엘리세바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사도님의 관 위에 놓인 잔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가득 찬 성혈을 내려 받았습니다."

"성체는 받지 않았나요?"


"고결한 성체는 성배를 받은 뒤에 나타났습니다."

비야키는 자신의 결백과 신앙을 증명하듯 그 과정을 영광스럽게 주장하며 자신의 성체 은익의 비야키를 향해 찬미하듯 손을 내뻗었다.

"... 아니에요. 성체는 기체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체란 이런 것. 우리가 아이들에게 내리는 육신의 증거입니다."

엘리세바는 고개를 저으며 손 위에 붉게 타들어가듯 빛나는 수정을 꺼내었다.

"그것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수 없는 수정은 어딘가 어긋난 것처럼 동등한 면을 갖지 못한 채 손바닥 위를 돌고 있었다.



"성체 없이 성혈만을 받을 수 없어요. 당신의 성찬은 ...어딘가 잘못되어 있어요."


사도의 육신인 붉은 성체와 거룩한 피인 성혈.

두 가지가 준비되어야 인간은 죄를 씻고 사도에 가까워질  있다.


사도와 가장 가까운 아버지와 가까이 가기 위한 과정.

인간과 신을 잇는 첫 계단인 성찬식은 두 가지가 모두 준비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무지한 비야키는 잠든 사도에게서 흘러나오는 성혈만을 받았을 뿐이다.


"아닙니다... 저는 분명 성찬식을... 으윽!"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려던 비야키는 한쪽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고운 성의가 구겨져가며 비야키는 숨을 헐떡였다.


그가 성체의 힘을 빌려 시간과 공간의 틈 사이를 날아올랐을 때처럼. 그의 가슴은 죄여오기 시작했다.



"허억...헉..."

"비야키...?"

엘리세바는 성찬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슴을 움켜쥔 채 숨을 헐떡이는 그를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자신이 성찬을 내려준 아이는 아니지만 성찬식을 받았다는 것은 형제의 아이와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리라.



"성자님...가슴이..."

비야키의 얼굴은 순식간에 늙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힘들어보였다.

그는 설원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토해내듯 쉬고 있을 뿐이었다.


"우욱!"

비야키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져 흘러 나왔다.


새하얀 눈의 땅을 저주로 물들이듯 검붉은 피는 넓게 퍼져 흐르듯 흘렀다.


"불완전한 성찬의 대가가... 이런 겁니까...?"


"그렇지 않아요! 절반만 받은 성찬은 그저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눈앞에 쓰러져가는 비야키를 본 엘리세바는 아까의 냉철한 태도와 다르게 패닉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형제의 성찬식을 몇  본 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 콱! 촤악!


그 순간 비야키의 왼쪽 가슴이 터졌다.

언어 그대로 비야키의 가슴은 터져 나간 채 살더미를 흩뿌리며 눈의 바닥 위에 쓰러졌다.


살 더미와 은색의 성의가 설원 위에 흩뿌려지며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온 것이 꿈틀거렸다.

"이것은...?"

 위에 태반과도 같아 보이는 손가락만  검붉은 덩어리는 한참을 움직이다가 죽은 것처럼 그 움직임을 멈췄다.


[주인님.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곳을 피하시는 게...]



- 스윽

엘의 조언을 들은 그녀가 조심스레 발을 뒤로 뺀 순간 쓰러져 있던 비야키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에 공허한 구멍이 생긴 비야키는 가슴의 구멍 뒤로 눈이 흩날리는 설원을 보여주었다.



일어난 비야키의 눈은 비어 있었다.

눈이 있어야 할 그 곳은 검붉은 피만 쏟아지는 공허한 구멍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눈과 가슴 한켠에서 검붉은 피를 쏟아내던 비야키 였던 것.

- 탁... 탁...

고깃덩이는 엘리세바에게서 몸을 돌려 천천히 바닥에 놓인 성체 은익의 비야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탁! 탁! 탁!

걷기 시작하던 고깃덩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엘!"


엘리세바는 눈앞의 고깃덩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엘을 불렀다.

채앵!

엘리세바의 외침과 함께 거룩한 엘 르아살의 손에 들려있던 세검이 고깃덩이를 향해 꽂아졌다.

세검은 고깃덩이를 정확하게 상반신과 하반신.  덩어리로 쪼개어냈다.



- 철퍽... 철퍽...

그러나 찢겨진 고깃덩이는 상반신만을 이끌어 두 팔로  위를 달려 은익의 비야키의 조종석 안으로 도망쳐버렸다.



- 끄드득.. 으득...


고깃덩이를 품 안에 들인 은익의 비야키의 조종석이 닫힌 뒤 은익의 비야키는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인간과 닮아있던 팔과 다리는 여기저기 뒤틀려 짐승의 것처럼 변모했다.


아름답던 날개는 차원수의 것처럼 흉측하게 변해 은색의 날갯대 위에 역겨운 검붉은 살덩이를 치덕치덕 발라내었다.

그 위에 인간과 같았던 두 눈은 검붉은 살덩이 위에 녹아 가려져버렸다.



눈을 가진 것은 영혼을 가진 것.

그러나 눈을 가지지 못한 것은 영혼이 없는 것.

비야키. 거짓된 성찬을 받은 자는 영혼을 잃었다.




- 캬아아아아아아악 !!!




성스러운 성체에서 추악한 괴물로 변해버린 비야키는 설원 위에서 울부짖었다.



---



- 아아악!


비명과 같은 울음을 짖은 마수는 하늘을 향해 역겨운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엘 르아살!"

마수를 쫒기 위해 엘 르아살에 탑승한 엘리세바는 기체 위로 하얀 고리를 띄웠다.


아버지가 사도들에게 내려주신 기적.



세상을 자유롭게 살펴보기 위해 주셨던 권능을. 눈앞의 마수를 쫒기 위해 펼쳐 올렸다.

"저 곳으로 가면 연구소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곳으로 가는건 막아야해."

권능을 펼쳐 마수와의 거리를 좁히려 했지만 좀처럼 거리는 줄지 않았다.

눈앞의 마수는 성체의 신성을 좀먹어가며 이따금씩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을 반복하며 곧바로 내달리고 있었다.

저 마수는 필리스티아 연구소. 미하일과 그녀의 부하가 있는 곳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엘! 조금 더 속도를 내줘!"


[이미 최고 속도입니다!]

최선을 다해  르아살은 날고 있었지만 마수의 속도를 따라잡을  없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연구소는 파괴될 것이다.

- 쌔애액!

 순간.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설원을 울리며 엘 르아살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콰앙!

엘 르아살의 눈앞을 날고 있던 마수는 저 너머에서 날아온 무언가에 꿰어져 바닥 위로 굴러 떨어졌다.



마수를  것은 한 자루의 붉은 검.

붉게 빛나는 검은 마수의 날개를 꿰어 바닥에 붙들어놓고 있었다.

- 캬아아악!


마수는 날개를 찢어 도망치려고 하였지만 한 번 더 날아온 검이 다른 날개 마저 꿰어 버렸다.

< 변질되어 버렸는가 형제여... 아니 형제였던 것이여. >



검이 내던져진 곳에서 나이가 지긋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간과 하늘을 거칠게 찢듯 가르며 나타난 것은 허공을 발판 삼아 서 있었다.

그 곳에 서 있는 것은 한 쌍의 뿔을 가진 붉은 거인.



갑옷과도 같아 보이는 붉은 갑주를 걸친 거인은 허리와 어깨의 바인더에 여러 자루의 검을 걸치고 있었다.

붉은 거인은 양 어깨의 바인더에서 새로 검을 꺼내어 양 손에 거머쥐었다.


붉은 거인의 안에 탄 것은 교단의 질서를 수호하는 자.

무인이자 사냥개.



노란 옷의 왕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교단의 최강자.

무인 틴달로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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