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외전 : 은빛의 새
기지로 귀환한 테스트 파일럿 두 명은 며칠 후 사령관실로 다시 한 번 호출을 받게 되었다.
"신형기 세대 중 두 대는 중파손... "
사령관은 이번에 찾아온 둘에게 차를 내어주는 일도 없이 그들을 앞에 세워두곤 곧바로 보고서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기지로 귀환했던 세라프 두 대는 팔과 머리를 잃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왔다.
"어제 회수한 나머지 한대는 현장에서 조종석이 꿰뚫렸다. 코어는 그나마 멀쩡한 게 다행이었지."
한 손으로 보고서를 천천히 넘기며 읽는 사령관의 목소리는 조금 날카로웠다.
사령관과 제법 면식이 있던 테스트 파일럿의 대장을 맡고 있던 민간 협력자는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소속불명기를 포획하기는커녕 세대 다 당장 운용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져서 돌아왔기에 그의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의 집무용 책상 앞에 뻣뻣하게 선 젊은 군인 남녀 둘은 긴장을 놓지 않았다.
지금 저 사령관의 말 한마디로 임무 실패에 대한 징계처분으로 그들뿐만이 아니라 가족까지 수용소로 보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자네 둘은 수용소행이야. 알고 있나?"
보고서를 책상위에 대충 던져놓은 사령관은 미간이 찌푸려진 채 그 둘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옆에서 완전히 얼어서 입을 열지 못하는 여자 파일럿을 대신해서 옆에 선 곰과 같은 체격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듣자고 부른 게 아니야."
사령관은 이런 이야기는 질색이라는 듯 고개를 젓더니 책상 위에 있는 리모컨을 집어 집무실 한 쪽의 모니터를 켰다.
"자네 둘은 이걸 본 적 없겠지."
화면이 들어온 모니터 위에는 1급 기밀자료임을 나타내는 15초의 짧은 경고문구가 나타났다.
비밀관리 담당자나 해당 임무와 관련된 자가 아닌 이상 시청해선 안 되는 자료를 사령관은 그 둘 앞에 틀어주었다.
경고문구가 지난 후 재생된 것은 회수된 세라프에 내장되어있던 블랙박스 속 레코드였다.
[ 콰앙! ]
영상은 시작 직후 커다란 굉음과 함께 조종석이 뭉개지는 것을 시작으로 화면이 흔들렸다.
테스트 파일럿의 리더인 엘리자베타가 사망한 이유로 추정되는 직접적인 사인. 관통에 의한 조종석 파손이 녹화되어 있었다.
조종석 위쪽의 캠을 통해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저런 거대한 칼날이 박힌다면 그녀는 다진 고기더미가 되어 죽었으리라.
"대장..."
그 모습을 본 여자 파일럿은 사령관 앞이라는 것도 잊고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울기 시작했다.
"이런걸 보여주시기 위해 부르신 겁니까..."
곰과 같은 남자는 주먹을 움켜쥔 채 분노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사령관이 부른 이유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대장을 버리고 간 자신들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 부른 것일까.
"젊어서 기운이 넘치는 건 알겠지만 진정하게. 그녀의 죽음은 나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네. 자네들이 봐주었으면 하는건 이 다음의 부분이야."
사령관은 젊은 장교의 분노를 알고 있었는지 결례임에도 가볍게 넘기곤 영상을 마저 시청할 것을 권했다.
잠시 후 파손된 조종석의 카메라 대신 세라프의 머리 부분의 메인 카메라를 통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영상 속에 나타난 것은 하얀 백색의 유려한 기체.
현존하는 기술로 가장 가볍고 날렵하게 제작된 세라프조차 두꺼운 중갑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눈앞의 백색의 기체는 선이 곱고 유려하며 날쌨다.
그 뒤를 강인해 보이는 붉은 기체가 뒤따르며 설원 위에 나타난 차원수를 대적하고 있었다.
쓰러진 세라프의 카메라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을 담지 못했지만 이따금씩 화면의 한쪽에 보이는 하얗고 붉은 기체는 날렵하고 강했다.
어느 기체도 세라프의. 아니 그와 그녀가 직접 대적했던 은빛의 새 보다 빠르고 강했다.
잠시 후 영상의 마지막쯤에서 붉은 기체는 거대한 검을 쥔 채 휘둘렀다.
그 직후 산이 무너지는 것을 끝으로 세라프가 눈에 매몰되며 영상은 끝났다.
"...저게 정말 차원기입니까?"
영상을 다 본 남자 파일럿은 꽉 쥐어진 주먹을 푼 채 영상 속의 기체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자신이 싸운 미지의 적 보다 더 강한 기체가 두개나. 어느 것도 소속은 알 수 없는 소속 불명기였다.
"그렇네. 그러나 저것들 중 어느 것도 소속을 알 수 없었네."
영상이 끝나자 사령관은 리모컨을 눌러 모니터를 꺼버렸다.
"저런 미지의 적이 셋이나 존재...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앞으로 이 세상의 병기는 더 이상 낡은 전투기나 전차 따위가 아니게 될 거야."
전투기보다 빠르며 미사일보다 강한 병기를 상대로 옛 시대의 병기는 더 이상 나설 자리는 없었다.
차원 너머에 있는 것은 미지의 괴수뿐만이 아니다.
"세라프를 필두로 차원기 개발계획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더욱 커지겠지. 그래서 자네들을 수용소로 보낼 수 없는 거야. 실전을 겪고 살아돌아온 파일럿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인재이니 말일세."
이미 이 전투영상은 어딘가의 첩보원에 의해 외국으로 빼돌려졌을지도 모른다. 이 것을 필두로 이 세계는 그동안 미진하던 차원기 개발 경쟁을 가속할 것이다.
기체 다음으로 중요한 파일럿은 국가에게 있어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니 그들을 함부로 수용소로 보낼 순 없었다.
'그리고 자네들의 대장도 부탁했으니 말일세.'
사령관은 굳이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가 임무의 보상 대신 선택한 것은 자신의 부하에 대한 안전 보장도 담겨 있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파일럿으로써 활약해주게."
...
이후 전 세계적으로 차원기의 개발계획이 가속됨에 따라 전투 비행단의 하부 조직에 소속되어 있던 필리스티아 연구소는 정식으로 필리스티아 베이스로 승격하게 된다.
훗날 필리스티아 베이스는 세라프의 운용 리포트의 가치를 인정받아 이후 베레시트 2호기 개발 계획에 참여하게 된다.
---
따스한 봄 날씨가 느껴지는 연구소.
한 소녀가 자신의 몸의 몇 배는 될법한 책상 앞에 앉아 여러 청사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외국에서 보내온 세라프의 보고서... 관절이 얼어붙어서 운용이 힘들다고? 이런 쉬운 문제도 해결할 줄 몰라?"
소녀가 보고 있는 리포트에는 성에가 껴서 관절이 얼어붙은 세라프의 사진이 몇 장 첨부되어 있었다.
소녀는 검은 마커를 하나 꺼내들어 청사진의 위로 관절 부분을 덧칠하고 여러 소재에 대한 명칭을 기재했다.
"관절 부분에 실링을 씌우면 되겠지 뭐. 이쪽은 뭐야? 낙반에 기체가 찌그러졌다고? 그런건 기합으로 피하면 그만인데..."
청사진 위의 어깨에 들쭉날쭉한 몇가지 사각형을 그린 뒤 옆에 금속 명칭을 몇 가지 나열했다.
"이 정도면 당장 두 가지 불만은 해결되었겠지. 남은 건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
작업이 끝난 듯 소녀는 청사진의 위에 자신의 이름을 기재했다가 이름 부분만 찍찍 지웠다.
"장비의 이름은... 귀찮으니까 그냥 AAA... A3라고 쓰면 되겠네."
[A3 UNIT]
소녀는 청사진 가장 위의 타이틀을 기재하곤 리포트를 한쪽 구석에 치워버렸다.
"마지막으로... 언니의 기체를 복제한 제네시스 플랜..."
소녀는 새로운 청사진을 한번 읽다가 어딘가 슬픈 표정을 짓곤 진지하게 몇 가지 사항만 기재했다.
"지금 기술로는 힘들겠지만... 언젠가 시작되겠지. 이걸로 인수인계는 끝이야."
소녀는 청사진을 덮고 한쪽에 놓여있던 골판지 상자에 마커를 던져 넣은 뒤 작은 두 팔로 박스를 들어올리고 방을 나섰다.
"여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던가?"
소녀가 방을 나서자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머리가 검지만 조금 부스스한 남자는 소녀가 들고 있던 짐을 대신 들어주었다.
"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개발과장님."
소녀는 남자를 향해 개발과장이라 부르며 짐을 들어주는 그의 옆을 나란히 걸었다.
"너 마저 떠나겠다니 아쉽구만... 연구소가 쓸쓸해지겠어."
"다 그 사람 때문이에요. 자기 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소녀는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향해 작은 분노를 표현한 뒤 따스한 햇볕이 쬐여지는 연구소의 마당 앞 까지 나왔다.
"그 사람도 사정이 있었을 거야... 너무 미워하지만 말아줘."
개발과장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짓고 소녀를 마중나온듯한 용달 트럭의 짐칸에 짐을 실어주었다.
"개발과장님은 싫어하진 않았으니까. 언젠가 연구소가 열게 되면 초대장이라도 보내드릴게요."
소녀는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나누고 싶지 않았던 듯 조수석에 올라탄 뒤 이야기를 돌렸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정말 연구소장이 된 거야? 허어 이제 호칭도 박사에서 소장님이 되는 건가?"
"그냥 박사라고 불러주세요. 소장은 그 사람이 떠올라서 싫어요."
"알았어. 언제 한번 아들이라도 데리고 찾아가지."
소녀는 안전벨트를 맨 뒤 남겨진 개발과장을 향해 손을 흔든 뒤 트럭이 출발하자 멀어지는 연구소를 한번 바라보았다.
"나는 나의 로망을 찾으러 떠날 거야. 칙칙한 리얼은 필요 없어."
...
차원기 양산 계획의 1세대 기체. 세라프의 개발 및 코어의 가공에 참여한 권위자.
코드네임 '닥터' 박사라 불린 소녀는 가버나움 연구소를 떠났다.
이후 가버나움 연구소는 새로운 투자자를 얻고 국가의 개발계획 진흥에 따라 타브하 베이스로 승격된다.
---
차원의 너머 가장 불경하면서 또한 신성한 곳인 교단.
교단의 간부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문을 넘어온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가는 팔위에 시신을 들고 있었다.
그의 팔위에 들린 것은 무인의 시신과 한 자루의 태도.
무인은 얼굴 위에는 검은 천이 비통이 가득했던 고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거짓말... 무인이... 죽었어?"
원탁의 한 자리에 앉은 푸른 도복과도 비슷해 보이는 옷을 입은 소녀.
'투신'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아저씨가..."
여덟 개의 붉은 보석이 박힌 티아라를 쓴 소녀.
'꿈의 거미' 또한 짧은 말 한마디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무인은... 죽었습니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무인의 시신을 원탁 위에 올린 뒤 침통한 한마디를 전했다.
"그의 시신과 한 자루의 검이 문 앞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교단의 문 앞에 방치되어있던 무인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하여 수거한 것은 사제복을 입은 남자였다.
"교단과 이 세계를 수호하던 무인은... 하늘 너머의 침략자... 우리의 세계를 무너뜨린 악마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오른 팔이 사라진 시신의 옆에 그의 태도를 올려놓은 채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악마..."
백색의 예복을 입은 소년.
'인형사'는 악마라는 말을 곱씹으며 작게 이를 갈았다.
"성자님이 경고하셨던 대로 하늘 너머에는 악마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나서기엔 너무나 위험합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무인이 사라진 이틀간 차원 너머에 기거하는 차원수들은 교단의 본당 주변에도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지금 우리를. 교단을 이끌어갈 유일한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말없이 원탁의 가운데에 앉아있는 젊은 남자를 지목했다.
어린 소년과 소녀의 사이에 앉아있는 것은 첫 번째 성찬을 내려 받은 자.
교단과 가라앉은 그들의 고향을 지키는 자.
'노란 옷의 왕'
황색의 법의를 걸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인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
소란스러웠던 소년과 소녀와는 다르게 그의 말은 무게가 있었다.
두 번째 최강자인 무인이 빠진 지금 교단은 차원수를 막기에도 급급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시길... 뒤를 이을 자는 준비되었습니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그의 걱정을 덜어주듯 무인의 뒤를 이을 자가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남자는 사제복의 안쪽에서 작은 종을 꺼내어 흔들자 잠시 후 회의실의 문을 열고 검은 상복을 입은 소녀가 들어왔다.
"그 소녀는?"
왕은 모두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얼굴에 검은 면사포를 두른 소녀와는 일면식이 없었던 듯 사제복을 입은 남자에게 물었다.
"무인이 받은 성찬을 계승한 소녀입니다."
"성찬의 계승이 가능한 것인가?"
성찬은 성자에게 직접 받는 것이 원칙일터. 계승이 이루어졌다는 말에 왕은 의문을 품었다.
"눈을 보여주렴."
소녀는 자신의 얼굴을 덮은 면사포를 걷어 올리자 소녀의 고운 얼굴의 두 눈은 붉었다.
"붉어..."
"성자님과 똑같아..."
"이 아이는 성찬을 가장 가까이 계승받은 건가."
저마다의 말은 달랐지만 반응은 같았다.
검은 상복을 입은 소녀는 성자에게서 직접 성찬을 받지 않았지만. 성자와 가장 가까운 특징을 물려받았다.
"오늘부터 이 소녀가 무인. 틴달로스 입니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소녀에게 무인의 태도를 건네주었다.
...
소녀는 두 번째 무인이 되었다.
교단을 지키기 위해.
잠든 도시를 언젠가 떠오르게 하기 위해.
---
산사태가 일어나고 새하얀 눈만 남은 설원을 방한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걷는다.
남녀의 뒤로는 하얀 군복을 입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병사들이 그 둘을 호위하듯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가장 앞에 걷는 남자는 방한복을 흐트러지게 입은 채 한 손에 장비를 든 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뒤를 따르는 병사들 또한 눈 위에 장비를 실은 썰매를 두 발만 달린 워커가 끌어가며 따라가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병사들 중 한명이 손에 든 지도와 GPS장비를 확인하고 가장 앞을 걷는 남자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주위를 잘 뒤져보세요. ...절대로 직접 닿으면 안 됩니다."
하얀색으로 도장된 라이플을 든 병사들은 삼인 일조로 편성되어 설원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색을 하던 병사들 중 한명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수신호로 목표물을 찾았다는 사인을 보냈다.
사인을 확인한 즉시 두터운 방한복을 흐트러지게 입은 남자가 가장 먼저 그 곳으로 향했다.
남자가 도착한 곳에는 라이플을 든 병사가 무언가를 향해 경계하고 있었다.
그 곳에 있는 것은 은색의 옷을 걸친 사람... 의 절단된 하반신이었다.
엘 르아살이 양단한 비야키의 하반신은 홀로 얼어붙은 땅 위를 걷고 있었다.
극저온에서 얼어붙은 듯 한 하반신은 조금 전까지 어딘가로 걷고 있었던 듯 걷는 자세 그대로 멈춰있었다.
남자가 손짓을 하자 병사들은 라이플을 아래로 내렸다.
"저건... 걷던 도중 살해당한 걸까요?"
남자의 옆에 있던 방한복을 입은 여자는 눈앞의 기묘한 하반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저건 살해당한 게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있어요."
남자는 다가가려는 여자를 막은 채 손에 든 장비를 보여주었다.
작은 모니터 위에는 눈앞의 하반신이 살아있는 생명반응으로 감지됨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잘려있는데 살아있다니... 이건 사람이 맞는 건가요?"
"저건 사람이 아니라 신의 찌꺼기입니다."
"신 말인가요...?"
연구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여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했다.
그녀 역시 과학자로써 눈앞의 기묘한 하반신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기보다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게 먼저였으리라.
"당신은 모르겠군요. 닥터. 이 세계에는 분명히 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병사들을 향해 손짓하자 거대한 썰매를 끌던 워커가 걸어 나와 작은 보조암을 펼쳐 짐칸에 실려있던 거대한 강화 플라스틱 케이지를 꺼내어 하반신 위에 조심스럽게 덮었다.
"저건 기록되어있지 않은 것이지만... 확실히 신과 닿은 무언가 입니다."
하반신을 조심스럽게 케이지 안에 담은 워커는 케이지를 들어올렸다.
- 쾅!
케이지 안에 넣어져 온도가 올라가자 방금 전 까지 멈춰있던 하반신은 케이지를 걷어차기 시작했으나, 케이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저런 신의 편린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살아있는 신의 증거는 실종되어 버렸지만. 이거라도 건진 게 다행입니다."
흐트러진 방한복을 입은 남자는 케이지가 워커 위에 실리는 것을 바라보며 완전히 고정된 것을 확인하자 안도한 듯 했다.
"저런 괴물이... '위원회'에서 직접 출두하실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요?"
남자 옆의 방한복을 입은 여자는 남자에게 위원회를 언급했다.
"네. 그걸 위한 출장이었으니까요.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지만 ... 당신의 연구결과는 언제나 흥미 있게 받고 있었습니다."
"저번에 보내주셨던 검은 샘플 또한... 당신이 말하는 신의 편린인가요?"
그녀는 눈 앞의 남자. 위원회의 삼인 중 한명에게 자기 앞으로 보내진 의문의 물질에 대해 물었다.
검게 물든 조각. 이 세상의 어느 물질과도 일치하지않는 그것은 코어와 뭔가 연관점이 있다는 것 밖에 밝히지 못했다.
"그것 또한 신의 편린이었지요. 우리가 닥터. 당신에게 걸고 있는 기대가 큽니다. ...언젠가 우리들은 짜여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요. 저 높은 곳을 향해."
남자는 워커 위에 먼저 올라탄 채 아래에 남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닥터 디블라임."
...
절반의 성찬과 절반의 거짓에게서 남은 절반을.
절반의 절반의 절반을.
인간은 주워 올렸다.
---
넓디넓은 도로 위로 한대의 붉은 바이크가 달린다.
바이크가 한참 달려서 도착한 곳은 군인의 장례를 위한 추모 공원이었다.
바이크에서 내린 소녀는 헬멧을 바이크 위에 얹은 채 공원의 안쪽으로 걸었다.
평일 이른 새벽시간이라 공원에는 아무도 없어야 했지만 가장 구석에 마련된 시신을 찾지 못한 군인이 묻힌 곳의 비석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저씨 오랜만."
소녀는 비석 앞에 서있던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어 오랜만이다 미하일."
소녀의 인사를 받아 준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의 체격은 마치 곰처럼 커다랬다.
"언니는?"
"슬슬 산달이 다가와서 병원에 있어. 오늘은 나 혼자 왔어."
"아쉽네. 선생님은 모두가 오는 쪽을 좋아하셨을 텐데... 아기는 어쩔 수 없나."
소녀가 남자의 옆에 서서 비석의 앞으로 다가가자 비석의 앞에는 얼마 전에 새로 산듯한 초콜릿이 포장지째로 두개 올려져있었다.
"나도 가져왔어."
소녀는 라이딩 재킷 안에서 앞에 놓여있던 초콜릿과 같은 상표의 초콜릿을 꺼내어 올려놓았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은 엘리자베타.
이제는 낡은 고물이 되어버린 차원기 양산계획 1세대의 파일럿의 묘비였다.
시신은 이 곳에 없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 곳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너 오늘 떠나는 날이 아니었나?"
남자는 소녀와 함께 공원을 나서며 공원 앞에 주차된 자신의 차 앞으로 향했다.
"가기 전에 잠깐 들린 거니까 괜찮아. 어차피 이쪽으로 가야 비행장도 나오고."
"그랬냐...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식사라도 초대할걸 그랬나. 아무튼 힘내라. 그 곳엔 1호기도 있다며?"
소녀는 오늘 외국으로 향할 예정이다.
"허접한 1호... 아하트 보다 내가 더 강해. 나도 선생님이나 아저씨 같은 베테랑 파일럿이 될 거야."
"넌 이미 실력으로는 완성되어있어. 조금 날카로운 성격만 죽이면 베테랑이 될 수 있어."
세라프가 운용되던 시절부터 파일럿이었던 남자는 소녀의 실력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평가해주었다.
단지 부족한 것은 소녀의 날카로운 성격뿐. 그것만 해결되어 소녀가 부드러워진다면 그녀는 파일럿으로써 완벽히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싫어. 내 성격엔 문제없어. 아저씨나 언니. 선생님을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싫은걸."
"너무 그러지 말고... 그 곳에서 좋은 사람이라도 찾아봐. 넌 아직 어려."
"엄마나 선생님 같은 사람이라도 다시 만나는 게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어."
소녀는 바이크를 끌고 공원을 떠났다.
오늘은 소녀가 고국을 떠나 외국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날.
베레시트 계획의 2호기와 함께.
소녀는 낮선 외국으로 떠난다.
---
외전 : 은빛의 새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