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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6화 (6/256)

6화

이틀 만에 돌아온 방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그곳에 가 있었던 동안은 시간이 멈춰 있기라도 했다는 듯 시곗바늘은 가람이 이곳을 떠날 때와 별 변화가 없었다. 밖도 아직 캄캄한 자정이었다.

가람은 며칠 내내 그 빈곤한 마른 빵으로 식사를 했기에 배가 너무 고팠다. 일단 냉장고를 뒤져 밥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가람은 문득 부모님과 다툰 것이 떠올랐지만 개의치 않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어차피 부모님께는 사과할 마음의 준비가 다 끝나 있었다. 그러나 가람이 수줍게 방문을 연 보람도 없이,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무시나?’

가람은 안방 문에 시선을 주곤 재빨리 밥솥에서 밥을 푼 뒤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가람의 눈시울이 감동으로 젖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있을 가람의 생일 파티를 위해 준비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크고 예쁜 생일 케이크와 가람이 좋아하는 치킨과 피자, 새우튀김과 고기 강정, 샐러드와 미역국이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쪽 세계에서 이틀의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음식은 모두 금방 한 것처럼 신선해 보였다. 허기진 가람은 미처 그 이상함을 깨닫지 못했다.

가람은 거듭 날이 밝으면 꼭 사과드려야겠다고 결심하며 다른 음식들은 못 본 척하고 기본 반찬을 꺼내어 급히 허기를 채웠다.

밥을 먹고,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자 몸에 밴 피로에 가람의 몸이 침대로 녹아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가람은 그렇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침대에서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머리가 아프도록 푹 잔 가람은 한참이나 이불을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거렸다.

오늘은 생일이라 휴가를 냈기 때문에 늦잠을 자도 되었다.

그래서 가람은 중간중간 깼지만 일부러 부모님이 깨우러 올 때까지 이불 속에서 늦장을 부리고 있었다.

판타스틱했던 꿈의 여운을 즐기며 옆으로 누워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가람은 문득, 방 안이 지나치게 어두운 것을 깨달았다.

커튼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가람의 창문에 걸린 커튼은 하늘하늘한 시폰이라, 햇살을 가리는 데 별 효능이 없었다.

잠이 덜 깬 머리로 몽롱하게 오늘은 날씨가 흐린가 하고 느릿느릿 생각하던 가람은, 잠기운이 서서히 물러감에 따라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인지 깨달았다.

그저 구름이 끼어 흐린 탓에 해가 안 들어온다고 생각하기에는 방 안이 완벽하게 캄캄했다. 마치, 밤처럼.

‘아직 밤일 리가 없는데?’

뼈마디가 욱신욱신 찌뿌드드한 것도 그렇고, 머리가 무거운 것을 보면 질릴 정도로 오래 잔 것이 분명했다. 거의 열 시간 가까이 잤을 것이다.

숙면을 취한 탓에 실제 수면 시간에 비해 체감 수면 시간이 길다고 치더라도 일곱 시간은 잤어야 했다.

가람은 몸을 엄습하는 불길함에 몸을 떨었다.

‘지금 몇 시지? 아직 해가 뜨기 전인가?’

불길함을 외면하며 가람은 시계를 찾았다. 나무 테두리의 둥근 벽시계는 12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가 고장 난 거야. 가람은 그렇게 애써 자신을 타이르며 불안의 고삐를 그러쥐었다.

그러나 휴대폰의 시계도 정확히 12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폰도 고장인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람은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시계와 휴대폰이 동시에 고장이라니, 신기한 일이야. 정말 신기한 일이야. 신기해. 고장이라니.

가람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뛰쳐나왔다. 거실은 고요했다. 가람은 바로 안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가람은 보지 못했지만, 가람이 지나친 거실의 괘종시계 또한 12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온 가람은 부모님의 침대로 다가섰다. 다행히 침대는 누군가 자고 있는 기색이 있었다.

가람은 두터운 이불을 지나 부모님의 자고 있는 얼굴을 보기 위해 베갯가로 다가섰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까지 누군가 몸을 뉘였던 듯 이불은 조금 부풀어 있었지만 그뿐이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뒷걸음치던 가람은 부모님의 침댓가에 놓인 알람 시계를 발견했다. 12시 1분. 12시 1분이었다. 또, 12시 1분이었다.

가람은 그 자리에 굳어 얼어붙은 눈으로 알람 시계를 보았다. 시선이 닿자 초침이 움직이긴 했으나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 소리는 뚝 끊겼다. 가람은 씩씩거리는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음의 근원지를 찾던 가람은 그 소리가 자신의 숨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바닥을 펴서 맺힌 땀을 바지에 닦았다. 그리고 빠르게 안방을 빠져나와 욕실로 향했다.

“엄마! 아빠!”

텅 빈 집에 가람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가람은 반 뛰다시피 걸으며 갔던 방을 또, 다시 반복해서 뒤졌다.

집 안을 미친 듯이 오가던 가람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던지듯 내려놓았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거는 순간, 익숙한 벨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의 휴대폰 벨 소리는 안방에서 나고 있었다.

가람은 전화를 거는 상태 그대로 안방으로 걸어갔다. 안방 침대의 베개 바로 옆에서 벨을 울리고 있는 휴대폰이 보였다.

아버지의 휴대폰 발신자 표시에는 ‘딸 가람’ 어머니의 휴대폰에는 ‘귀한 바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가람은 한참 동안, 받을 리 없는 전화를 걸며 부모님의 휴대폰에 떠오른 발신자 표시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집 안에 없었다. 휴대폰도 두고 사라졌다. 가람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면 부모님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다리기엔 너무 불안했다. 가람은 운동화를 구겨 신고 밤길을 나섰다.

“아빠아―!”

정신없이 동네를 걸어 다니며 부모님을 불렀다. 이상했다. 동네가 너무나 조용했다. 12시는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인적이 드물 시간은 아니었다.

가람은 이제 뛰고 있었다. 구겨 신은 운동화가 너덜거리도록 가람은 뛰었다. 뛰며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엄마아―!”

스물 중반의 다 큰 처녀가 밤거리를 뛰며 엄마 아빠를 찾는 일이 꼴불견이란 것과, 이렇게 소리를 치며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가람의 머릿속에 없었다.

불길했다. 등에서 땀이 흐르고 현기증이 날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땀구멍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땀이 아니라 피가 아닌가 싶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소리쳐 부른 목에서 피 냄새가 나도록 가람은 외쳤다.

결국 가람은 큰길까지 뛰어나왔다. 혹시 부모님을 본 사람이 있을까 해서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거리는 깨끗했다. 결국 가람은 근처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혹시 부모님이 앞을 지나갔다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 부모님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의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람은 잠시 소리 내어 사람을 부르다 그곳을 뛰쳐나왔다. 가람의 숨소리에는 어느새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가람은 결국 집 근처의 경찰서로 뛰어들었다.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경찰서의 시계는 12시 1분에 멈춰 있었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는 몸을 문손잡이를 잡고 지탱했다.

경찰서에서조차 아무도 없었다. 이가 딱딱 부딪혔다. 가람은 경찰서까지 오면서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지 못했다.

소름이 돋는 팔을 문지르며 경찰서를 비척비척 나서던 가람은, 경찰서 앞의 도로를 보고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로의 차 중 움직이는 것은 한 대도 없었다. 시동이 걸려 있는지 헤드라이트는 모두 켜져 있었지만 차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게…… 뭐야.”

이 꿈에서 빨리 깨어났으면. 가람은 이가 딱딱 부딪히도록 떨며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다시 집을 향해 달렸다.

벌써 한 시간이 넘게 달리고 있었지만, 숨도 차지 않았다. 절박한 정신이 육체를 한계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가람은 집으로 향하면서도 마치 미친 사람처럼 편의점이나 고깃집, 치킨집,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모든 가게를 살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집 앞 길 건너에 있는 24시 대형 마트에서조차 사람이 없었다. 대형 마트의 정문에 걸린 시계도 12시 1분에 멈춰 있었다.

가람은 세상의 모든 시계가 12시 1분에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가람은 다시 집 안을 뒤졌다.

부모님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울음과 악다구니가 섞여 있었다. 한참 부모님을 부르던 가람은 TV를 틀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지친 몸을 늘어뜨리며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말았다.

TV의 영상은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가람은 TV의 시계가 12시 1분에 멈춘 것을 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TV를 노려보며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귀는 혹시라도 들릴 현관의 발소리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람이 기다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람이 지쳐 잠들고, 다시 일어나 부모님을 기다리고, 그리고 그것을 다섯 번이나 반복할 때까지.

아침은 오지 않았다.

가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모님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가람의 몰골은 말이 아니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 아래에서 오랫동안 쓰지 않아 먼지 쌓인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그곳에 차곡차곡 옷가지와 세면도구, 라면과 간식거리를 챙겼다.

바쁘게 손을 놀리는 가람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마치 완전히 메말라 껍질만 남은 것 같았다.

부모님을 기다리는 오랜 시간 동안 가람의 머릿속을 차지한 것은 모르드레드의 진한 웃음과 부모님께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부모님이 오시면 꼭 사과해야지, 해가 뜨면 부모님이 오실 거야. 그럼 꼭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해야지. 그러나 해가 뜨는 일은 없었다.

물을 챙기려고 냉장고를 연 가람의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맺혔다. 눈물샘에서 솟아오른 습기는 가람의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은 눈가를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핏발을 세웠다.

굵은 눈물방울이 맺힐 새도 없이 후드득 떨어져 내려 양말에 둥근 얼룩을 만들었다. 가람의 표정 없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꽉 다문 입가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냉장고에는 가람이 다른 차원에서 돌아와 보았던 음식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음식들이 마구 일그러져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게 꿈이라도, 설사 꿈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런 것들은 가람의 눈물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일은 내 생일이란 말이야. 잊어버렸지?’

가람이 부모님께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가람은 냉장고 앞에 무너져 오열했다. 울음은 길었다. 남은 힘을 다 짜내고 후회가 늘어뜨린 그림자만큼 길고도 길었다. 울다 죽을 만큼 울고, 죽어서도 울 것처럼 그렇게 울었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시간은 가람이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꿈 같은 게 아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무심코 저지른 그 충동적인 행동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 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후회일 뿐이다.

한참 기력이 다하도록 운 가람은 부은 눈을 세수로 가라앉히고 결연한 얼굴로 가방을 등에 메었다.

자신이 열어 둔 후 여전히 열린 채인 안방 문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가람은 곧 차원의 문을 열었다. 눈가에는 더 이상 울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곳은 한낮이었다. 오랜만이라 낯이 선 풍경을 둘러보던 가람은 이곳이 자신이 돌아갈 때 차원 문을 열었던 그 장소임을 깨달았다.

이곳에는 가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의 앞,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몸을 바로 세우는 남자는 가람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어서 와. 다시 올 줄 알고 있었어.”

모르드레드의 진한 웃음을 가람은 표정 없이 마주했다.

“다 알고 있었어요?”

고요한 가람의 말에 모르드레드는 어깨만 으쓱였다. 그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가람의 지친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가람은 성큼성큼 모르드레드에게 다가섰다. 모르드레드에 비해 머리 하나는 작은 체구였지만, 박력만은 밀리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고!”

마침내 가람은 폭발했다.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어!

가람의 핏발 선 시선에 모르드레드는 빙글빙글 웃으며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가람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모르드레드는 따귀를 때리려는 가람의 손을 잡아 막았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내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말이야.”

모르드레드가 가람을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차갑게 일갈했다. 그 위압감에 가람의 머리끝까지 채운 열기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모르드레드의 말이 맞았다. 그가 잘못한 일은 아니다. 모르드레드는 오히려 가람을 도와주지 않았던가. 돌아가는 법도 알려 줬고.

물론 그의 태도는 부아가 치미는 것이지만, 자신을 도와줬다는 것은 사실이다. 흥분이 가라앉은 가람이 어색하게 사과를 건네었다.

“저, 죄송해요. 너무 흥분했어요.”

지금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눈앞의 이 남자뿐이다. 그와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것은 없었다.

가람의 유일한 지푸라기가 바로 이 남자였다. 가람은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았다.

“괜찮아. 이해하니까.”

모르드레드는 방금 그렇게 차가운 말을 한 사람이 맞나 싶은 태도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가람은 그가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집으로 돌아가니까, 시계가 다 멈춰 있고 부모님이 안 계셨어요.”

“사람도 아무도 없지?”

“네. 불이 켜져 있는 집도 있고 가게도 문이 열려 있었는데 사람만 없었어요. 방금까지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많이 놀랐겠군.”

“아, 네. 그런데 부모님은 어디 가신 거죠? 사람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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