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저기, 제 뒤에 있던 그분 어디로 가셨어요?”
“그분이요? 아아―까 전에 위로 올라가셨는데. 방으로 가셨나 봐요.”
“아까 언제요?”
“주방에서 밥이나 많이 준다고 할 때 그거 듣고 웃으면서 올라가셨어요. 방에서 식사하신다고 하셨으니 아마 케니가 식사를 갖고 올라갔을 텐데. 일행분이세요?”
“아뇨, 그건 아닌데. 감사 인사도 못 했는데…….”
“음, 내일 일찍 체크아웃 하신다고 하셨으니 아마 일찍 식사하고 잠드실걸요. 새벽에 나가시는 것 같던데.”
가람은 아쉬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가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내일 일찍 간다고 하니 그의 잠을 방해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가람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점원이 살짝 제안했다.
“그럼 이건 어때요? 감사 쪽지를 남기시면 내일 체크아웃 하실 때, 제가 케니에게 전해 드리라고 할게요.”
좋은 생각이었기에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점원은 생긋 웃고는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가람은 무어라 쓸까 잠시 망설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곳의 글씨로 삐뚤삐뚤 감사 인사를 적었다.
점원이 그것을 보더니 글씨가 귀엽다며 다시 까르륵 웃는다.
“자, 그럼 가실까요? 식사는 목욕 후에 방으로 가져다드릴게요.”
가람은 펜을 놓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가람의 등 뒤로 한껏 술기운이 오른 남자들이 빈 웃음을 터뜨렸다.
“자, 이쪽이에요.”
가람보다 한 보 정도 앞서 걷던 점원이 멈춘 곳은 계단을 두 번 올라 3층에 있는 왼쪽 두 번째 방이었다.
해가 져서 어두운 데다 정신이 없어 여관이 얼마나 큰지 몰랐던 가람은 마주 보는 객실 사이로 제법 길게 난 복도에 그제야 이 여관이 정말로 고급 여관임을 실감했다.
특히 복도 끝의 방은 한 짝 문인 가람의 방과 달리 커다란 양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람의 객실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점원은 복도 끝의 방을 보는 가람의 시선을 깨닫고 빙긋 미소 지었다.
“어머, 저건 특별실이에요. 저희 여관의 자랑이죠. 하루 묵는 데 25실버인 대신 모든 서비스 무료, 방의 호화로움도 저희 여관 최고랍니다. 지금은, 놀라지 마세요. 이건 귀여운 손님에게만 말씀드리는 건데 저 방에는…….”
점원의 목소리가 확 작아졌다.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속삭이는 그 모양새에 가람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그녀에게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마법사가 묵고 있어요.”
“마법사요?”
가람은 그녀의 말에 모르드레드를 떠올렸다. 가람의 표정이 굳어지자 점원은 의아했으나 이왕 하던 자랑이니 계속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편집증에 가까운 까다로움을 갖고 있었고, 그런 마법사가 묵을 만한 곳이라는 건 아주 뛰어난 여관이라는 뜻이었다.
“아직 젊어서 뛰어난 마법사는 아닌 것 같았지만, 수염이 잔뜩 자랄 때가 되면 진짜 마법사 같은 마법사가 되겠죠? 호호. 짐을 두고 이리로 오세요. 이쪽, 이쪽이에요.”
그녀의 말에 가람은 방을 둘러볼 새도 없이 침댓가에 대충 배낭을 풀어 놓았다.
가람의 객실은 침대방 하나와 욕실이 딸려 있는 간단한 구조였는데, 욕실에는 두레박처럼 생긴 것과 커다란 나무통, 그리고 작은 나무통이 있었다.
연한 녹색의 가루와 타월도 비치되어 있었는데 점원은 어정쩡하게 서 있는 가람을 내버려 두고 두레박을 나무로 만든 우물처럼 생긴 곳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참 조심스레 두레박을 늘어뜨린 뒤, 첨벙하는 소리가 들리자 박을 다시 끌어 올렸다. 두레박에는 더운물이 가득 담겨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지하에 있는 솥이 마법로에 닿아 있어요. 사용하지 않을 때는 마법로 뚜껑을 닫아 두니까 두레박을 늘어뜨리셔도 소용없을 거예요. 대신, 차가운 물은 쓸 수 있으니까 아침에 세수할 때 쓰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부지런히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커다란 나무통에 쏟아부었다. 가람은 신기한 기분에 우물 옆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하라는 말대로 까마득한 아래에 물이 담긴 커다란 솥이 놓여 있었다. 그 아래 무언가가 있었는데, 기이한 보랏빛이 일렁이는 것만 빼면 모닥불을 닮아 있었다.
그 불은 장작도 없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가람은 문득 불도마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게 마법로인가요?”
가람의 말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물을 긷던 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양에는 마법이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 보다.
그녀는 우쭐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네, 저 마법로는 저희 여관의 자랑이죠! 저렇게 마법로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은 얼마 안 된답니다.”
가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서비스 정신에 감탄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아침에도 목욕을 하고 싶을 것 같아서 말인데요. 목욕비는 얼마인가요?”
“50쿠퍼예요. 밥값보다는 좀 비싸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다른 곳은 1실버예요. 저희는 그나마 마법로 덕분에 장작값이 안 들어서 좀 싼 거죠. 목욕을 할 수 있는 여관도 몇 안 되니까요.”
그 말을 들으며 가람은 어렴풋이 물가에 대해 감을 잡아 가고 있었다.
정확히 같지는 않으나 1실버가 약 1만 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고, 1쿠퍼가 약 100원에 못 미치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식사비가 25쿠퍼이니 2,500원 정도의 꼴이었지만, 여관에 묵어 반값이라고 했으니 원래 가격은 50쿠퍼 정도다.
“자, 다 됐어요. 목욕이 끝나시면 이 통 옆에 있는 마개를 뽑으시면 돼요! 물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음식을 가져올게요.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마지막으로 찡긋 윙크를 한 점원은 큰 소리가 나지 않게 방을 나갔다. 가람은 그녀를 따라 방 바로 앞까지 가서 잠금쇠를 걸어 잠갔다.
처음 보는 구조의 잠금장치긴 했지만, 빗장을 걸어 잠그는 방식은 비슷해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쇠를 하나 걸치는 구조의 허술함 때문에 힘이 강한 사람이 한번 걷어차면 단번에 박살 날 것 같아 불안하긴 했다.
가람은 문 바로 앞에 탁자를 끌어다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가방과 의자 등을 쌓아 놓았다.
바리케이드를 친 후 한결 마음을 놓은 가람은 뜨거운 물이 준비된 욕실로 들어갔다.
모르드레드와 산을 오를 때 이틀마다 돌아가 꼬박꼬박 샤워를 하긴 했지만,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듯 움직였기에 이렇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가람은 서둘러 옷을 벗고 몸을 담갔다. 첨벙이는 소리와 수증기 사이로 촛불의 긴 그림자가 일렁인다.
조용했다. 빗살문에 덧창까지 달린 이중 나무문은 예외 없이 모두 닫혀 있었고, 3층이라는 이점 때문에 1층 주정뱅이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적막 속에서 가람은 천천히, 억눌렀던 모든 것을 풀어놓았다.
그것들은 목욕물의 온기를 빌려 은근하게 우러나와 곧 그녀의 심장을 타고 눈으로 흘러나왔다.
가람은 뜨거운 물로 달아오른 붉은 손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미처 움켜쥐지 못한 울음이 애달프게 흘러내려 욕조로 떨어졌다.
울음이 너무 커 오히려 소리는 작았다. 간간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토막 난 울음이 튀어나올 뿐이었다.
눈이 울지 못한 것을 어깨가 대신 울었다. 흐느끼는 어깨에 촛불이 토닥이듯 흔들린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꿈꿔 본 적조차 없는 삶에 갑자기 내동댕이쳐져 느꼈던 당혹감과 구명줄처럼 잡았던 모르드레드의 배신, 앞으로 등에 메고 가야 할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가람은 크게 울음을 터뜨릴 수조차 없었다.
한참을 흐느낀 가람은 뜨거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온몸이 뽀득뽀득하도록 힘주어 씻으며 가람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눈물과 함께 흘러나와 버렸는지, 가람의 눈에는 처음과 같은 연약함은 없었다.
실컷 울었으니 되었다. 이제 이렇게 울었으니 되었다고,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가람은 끝없이 되뇌었다.
울음은 모든 걸 다 해결하고 나서 울어도 된다고, 가족들을 모두 되찾고 나서 울어도 늦지 않다고, 시작하기도 전에 울며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자기 자신에게 속삭였다.
열심히 움직여 씻고 나자 기분은 훨씬 나아졌다. 가람은 살짝 부은 눈이 쓰라리지 않도록 수건으로 꼭꼭 눌러 물기를 닦고 머리도 털어 말렸다.
여자 점원이 말한 대로 나무통 옆의 마개를 뽑자, 수챗구멍으로 보이는 곳으로 물이 흘러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을 탁탁 털어 먼지를 제거한 그녀는 앞으로 옷은 두 벌 정도 챙겨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세탁하고 싶어도 가람이 가진 옷은 달랑 하나뿐이었기에 세탁하는 동안 입고 있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찝찝했지만, 가람은 먼지만 턴 옷을 다시 주워 입었다. 그녀가 옷을 다 입고 나오자 물이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식사를 가져온 점원이 문을 두드렸다.
가람은 후다닥 문 앞으로 가 막아 뒀던 테이블과 의자 등을 밀어서 치워 냈다. 살짝 땀이 날 정도로 급히 움직인 가람 덕분에 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렸다.
밖에서 기다리다 음식이 식을 것을 걱정해 일부러 몸 닦을 시간까지 다 계산해서 딱 맞춰 올라온 점원은 무슨 일인지 의아했으나 질문하는 대신 음식이 더 식기 전에 손님에게 건네는 길을 택했다. 투철한 직업 정신이었다.
“식사는 여기 테이블 위에 놓아 드릴게요. 오늘 정식은 스튜와 치즈 고기찜에 곡물빵이에요, 후식은 꿀에 절인 살구구요. 음료는 오렌지주스예요. 그럼, 맛있게 어머! 손님?”
식사를 세팅하던 점원이 가람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어머, 손님…….”
점원은 가람의 눈가에서 울음의 흔적을 발견했다. 부지런하고 마음 착한 그녀는 단숨에 이 작은 동양 아가씨가 홀로 울 수밖에 없었던 힘겨운 상황에 감정을 이입했다.
측은한 눈으로 가람을 본 그녀는 가람이 시선의 의미를 유추하느라 허둥대는 사이 재빨리 가람의 손을 꼭 붙잡았다. 노동으로 조금 단단해진 뜨거운 손 안으로 가람의 작은 손이 꽉 감싸 쥐어졌다.
“저, 저기, 왜…….”
당황으로 눈을 굴리는 가람에게 점원은 동정을 표했다. 이 고운 손이나 얼굴을 보면 아마 고생이라곤 몰랐을 귀한 집 따님일 거다.
그녀도 공주님처럼 돌보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이 있어서 가람이 남 같지 않았다.
이 어린 아가씨가 거친 사람이 가득한 항구 도시를 혼자 돌아다닌다니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가족을 놓치기라도 했나? 아니면 연인을 찾아서? 가람에게 별달리 들은 말은 없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가람의 사정을 상상했다.
“어휴, 아직 이렇게 귀여운데. 힘들겠지만 힘내요! 아가씨는 꼭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아, 저 감사합니다.”
가람은 영문도 모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측은한 눈으로 그런 가람을 바라보던 점원은 내일 아침은 자신이 직접 특별히 푸짐하게 담아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여관에 묵는 걸 보니 돈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처럼 마른 가람의 몸이 몹시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간의 산행으로 수척해진 가람은 동정심을 받고도 남았다.
“내 이름은 로아나예요. 로아나. 휴식의 요정에 로아나라고 하면 다들 아니까, 혹시라도 이방인이라고 무시하는 사람 있으면 로아나와 친구라고 말해요. 알았죠?”
“네? 네.”
가람은 그녀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호의는 감사히 받기로 했다. 가람도 싹싹하고 밝은 그녀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난봉꾼으로 인해 이 세계 사람들에게 가질 뻔했던 편견을 로아나가 말끔히 없애 주고 있었다.
“이런, 음식 식겠네. 어서 들어요. 먹고 그냥 두고 자면 내가 내일 아침 식사 가져와서 빈 그릇 가져갈 테니.”
로아나는 가람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호호 웃으며 방을 나갔다. 문틈으로 로아나의 미소 띤 얼굴이 살짝 보이다가 곧 사라졌다.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들으며 가람은 얼떨떨하게 의자에 앉았다. 로아나의 걱정대로, 음식이 식어 가고 있었다.
음식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약간 식은 스튜가 아쉽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크게 괴악한 맛은 아니었다.
스튜 사이사이에 떠 있는 고기 건더기는 어쩐지 익숙한 맛이었는데 가람은 기억을 더듬어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해 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트리거와 구워 먹었던 고기나무 열매였다. 질이 좀 안 좋은 것 같긴 했지만.
‘트리거는 잘 지내고 있을까?’
가람은 문득 걱정이 되었다. 그 호랑이라면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걱정이나 하자. 트리거가 들었다면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을 거야.’
가람은 고기찜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목욕을 하고 나오자 너무 피곤해서 식사보다 잠이 더 자고 싶었지만, 거의 의무처럼 식사를 했다.
예전 같으면 다이어트를 생각해 소식을 했겠지만, 이제 몸을 움직이는 일이 많아져 쉽게 배가 고팠기에 가람은 열심히 음식을 먹어 치웠다.
그렇게 한바탕 먹고 나자 좀 살 것 같아서, 그녀는 후식을 먹으며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자기 전에 앞으로 할 것들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가람은 제일 먼저 수첩 위에 ‘패스를 모을 것.’이라고 적은 뒤 별표를 다섯 개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베이스캠프로 가서 가져올 물건 목록도 적기 시작했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어 넣었기에 목록은 두서도 없고 구비하기 힘든 것도 많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었다.
가람은 제일 먼저 ‘무기’라고 적었다.
오늘 난봉꾼이나 곤충 인간들에게서 벗어난 일은 정말로 운이 좋았던 거다. 다음에도 그 운이 따라 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기로 뭘 갖고 다닐지 고민하던 가람은 옆에 작게 총, 가스총, 전기 충격기 등을 적었다.
잠시 총을 물끄러미 보던 가람은 그 위에 볼펜을 마구 그어 지워 버렸다가 다시 망설임을 담아 아주 작게 총, 이라고 적었다. 다른 글씨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작은 글씨였다.
꺼림칙하게 글을 적은 가람은 피하듯 수첩의 다음 줄로 내려갔다. 사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총질할 일이 있으랴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음은 돈이었다.
돈은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았다. 가람은 ‘1’이라고 적은 뒤 ‘금은방을 턴다.’라고 적었다. 돈은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무엇이 귀하고 귀하지 않은지 알기 위해, 그녀는 최대한 많은 종류의 물건들을 가져다가 팔아 보기로 결정했다.
볼펜, 향수, 수첩, 티셔츠, 물감, 그릇 등 딱히 분류를 따지지 않은 잡화가 가득 적혔다.
그리고 그다음, 여행용품이라고 적은 가람은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탁자 위로 엎드렸다.
그리고 엎드린 채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좋은 침낭-스포츠 용품점’, ‘새 코펠’ 등을 적은 가람의 손이 점점 느려졌다. 글씨도 처음의 반듯함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결국 가람은 천천히 의식을 잃고 잠에 빠져 들어갔다. 곧 피로에 젖은 고요한 숨소리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