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5화 (15/256)

15화

로아나가 펄쩍 뛰었다. 하지만 톨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이것도 싼 거야. 데스티에 급 전투마는 4천 골드부터 시작한다고. 저놈은 성격이 착해서 전투마는 못 되지만, 그래도 웬만한 승마용 고급 말의 등급은 훌쩍 뛰어넘지. 저놈 핏줄에는 전설의 명마인 퓨리에의 피가 섞여 있다고. 이것도 로아나 너를 봐서 엄청나게 깎은 거니, 이 이하는 절대로 안 돼.”

톨란은 그렇게 말하며 가람이 포기하기를 기다렸다. 가람은 톨란의 기대와는 달리, 물끄러미 흑갈색 말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시선을 마주하던 가람은 조용히 말했다.

“내일, 돈을 가지고 다시 올게요.”

“뭐? 정말 사려고?”

조그마한 아가씨가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톨란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저 말이 언젠가 기사에게 팔려 전투마로서 등급이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둘이 눈이 맞아 버린 것 같으니, 톨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저 순한 놈은 저런 아가씨 곁에서 지내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톨란은 가람이 과연 돈을 가져올지 의심스러웠지만 로아나를 봐서 하루 동안 저 말을 팔지 않고 기다려 주기로 했다.

“좋아. 하루 기다려 주지. 그 이상은 안 돼. 그렇게 돈을 가져오겠다는 손님이 한둘이 아니라고.”

가람은 고개를 끄덕이곤 로아나와 말 시장을 떠나왔다.

로아나는 가람이 오기를 부리는 것 같았다. 작은 아가씨가 타기에는 조랑말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게다가 그 말에게 그렇게 거금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여관으로 향하며 가람의 충동적인 결정을 돌리기 위해 조곤조곤 설득하는 로아나의 말을, 가람은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로아나는 더 설득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 일로 가람이 귀한 집 아가씨일 거라는 생각은 로아나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새겨졌다.

거금의 말을 턱턱 사는 가람은, 로아나가 보기에 조금 귀하게 자란 정도가 아니었다.

아마 동양의 어디 이름난 귀족가 아가씨가 아닐까. 오해였지만, 로아나의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가람은 그 오해를 풀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여관으로 돌아온 가람은 구입한 짐들을 한쪽에 놓아두고 재빨리 목욕을 마쳤다.

식사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로아나가 권했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후유증이 이제 나타나는지 방에 들어오자마자 피로가 몰려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가람은 로아나의 손에 로맨스 소설을 들려 보낸 뒤, 오늘 구입한 튜닉을 걸치고 곧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잠을 청할 것도 없었다. 가람은 피로에 휩쓸려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베록에서의 둘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피로가 쌓인 덕분인지 가람은 그 전날 꽤 일찍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로아나가 이른 아침에 들고 온 식사가 그대로 테이블에서 식어 가고 있었다.

가람은 한껏 기지개를 켰다. 몸은 어제처럼 아프거나 결리는 곳이 없었다. 바람직한 수면 자세 덕분에 가람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개운하게 일어나 앉았다.

[너무 곤히 자기에 깨우지 않고 갑니다. 앞으로는 문을 잠그고 주무세요.]

테이블 위에 곱게 놓인 쪽지를 읽은 가람은 자신이 어젯밤 문도 잠그지 않고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든 모양이다. 기겁한 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뒤늦게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다행히 도둑이 들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깜짝 놀란 심장이 펄떡펄떡 뛴다.

자물쇠는 가람 세계의 것과 달리 밖에서 잠그면 안에서 열 수 없는 구조라 로아나가 나갈 때 잠그지 않고 나간 모양이다.

문을 잠그며 한숨 돌린 가람은 식어서 맛이 없어진 아침을 대충 입 안에 욱여넣었다.

커다란 호밀빵과 꿀에 절인 포도, 굵은 소금을 뿌려서 구워진 가람의 팔뚝만 한 흰살생선이었다. 몹시 허기가 졌던 터라 먹는 속도는 빨랐다.

거의 5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식사를 해치운 가람은 욕실로 들어가 차가운 물로 세수를 마쳤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양을 봐서는 아직 아침인 모양이다. 약 9시쯤 되어 보였다.

시계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가람은, 도시 중앙에 있던 커다란 돌탑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세계사를 배울 때 알게 된 오벨리스크라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는데, 다른 점은 오벨리스크가 단순한 조각품이라면 그 탑은 건물로서 존재했다.

큰 도시에는 열 개도 넘게 지어져 있는 이 건물들은 도시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해시계로서 말이다.

‘아마 손목시계는 없겠지.’

가람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잠이 든다. 이들의 삶은 아주 단순했다.

시간이라는 것은 고상하고 귀족적인 물건이었다. 바쁜 척하며 스스로의 유능함을 뽐내는 것에 시계만큼 좋은 도구가 없었다.

오벨리스크가 시간을 알리긴 하지만, 그 시간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만, 모든 것에 편집적인 집착을 보이는 마법사들만이 그 시계를 사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해가 뜨면 아침, 그림자가 거의 발아래에 모여들면 정오, 해가 지면 밤. 딱 세 개의 시간만 존재한다.

첫 번째 달이 뜨면 ‘첫 번째 달이 뜰 무렵의 저녁.’ 시간이 좀 더 흘러 두 번째 달이 뜨면 ‘두 번째 달이 뜰 무렵의 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세 번째 달이 뜬 깊은 밤.’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다시 해가 뜨는 시간이 돌아온다.

이곳에서는 달의 보름이 세 번 오는데, 순서대로 약 9일을 주기로 각각의 달이 돌아가며 보름을 맞이했다.

보름은 짐승과 본능의 기운이 가장 강해지는 시기로, 이곳의 사람들은 보름을 불길하게 여겼다.

가람의 나라에서 보름달을 보며 한가위를 보내거나 노래를 지어 부르는 등의 친숙함을 나타내는 것과 천지 차이다.

‘가서 손목시계도 챙겨 와야겠다.’

수첩을 집어 들어 아래에 ‘손목시계’를 추가한 가람은 차원 문을 열려다가 문득, 로아나가 점심을 들고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에서는 시간이 변하지 않아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으니 시간을 잘못 맞춰 그녀와 차원 문을 연 상태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었다.

가람은 테이블을 끌어다가 문 앞을 막고 한 번 더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어제 사 온 옷과 책을 그 위에 바리바리 쌓아 올렸다.

마지막으로 문틈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쪽지를 끼워 넣은 가람은 방이 아니라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이렇게 욕실에서 차원 문을 열면 나중에 이쪽으로 문이 열릴 테니 바로 마주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준비를 마친 가람은 차원 문을 열었다. 겨우 이틀 만인데 아주 오랜만에 문을 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써 몇 번이나 본 빛의 소용돌이가 생기자 가람은 심호흡을 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랜만에 들어온 방은 전과 똑같았다. 가람이 저쪽 세상으로 가져가 이곳에서 가져올 물건을 적었던 수첩도 책상 위에 그대로 있었고, 한쪽에 있던 아버지의 여행용품도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습관처럼 집을 한 바퀴 돌아본 가람은 12시 1분, 멈춰 버린 밤거리로 나섰다.

좁은 골목을 지나 떡집, 과일 가게, 삼계탕, 음식점 등을 지나친 가람은 모퉁이의 편의점을 돌았다.

편의점에도 가람이 사려는 물건들은 있었지만, 가람이 향하고 있는 곳은 마트였다.

가람의 동네 경찰서 길 건너편에는 대형 마트가 있었고, 그곳이라면 대부분의 물건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마트 1층에 약국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주욱 걷던 가람은 경찰서 앞, 금은방에서 멈춰 섰다. 금은방은 귀금속도 판매하지만 예물용 고급 시계도 취급하는 법이다.

12시 1분에 멈춰 있던 금은방의 시계들은 가람이 인식하자 동시에 채칵, 채칵, 하고 초침을 움직였다.

공포 영화에 나올 만한 소름 돋는 광경이었으나 가람은 태연히 열려 있는 시계방 안으로 들어가 적당히 가벼운 손목시계를 몇 개 집었다.

하나는 손목에 차고, 나머지 시계를 금은방에서 찾아낸 벨벳 천 주머니에 쓸어 넣은 가람은 본격적으로 금은방을 털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큐빅, 에메랄드, 사파이어 할 것 없이 판매대에 놓인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 팔찌를 모조리 챙기고 그 아래 서랍의 물건들까지 챙겼다.

가람은 금은방 안쪽에서 금은방 주인의 물건으로 보이는 커다란 쇼퍼 백에 그것들을 챙겨 넣었다.

골드바로 불리는 금괴에 은괴까지 찾아내어 모조리 쓸어 담자 쇼퍼 백의 거의 절반이 가득 찼다.

커다란 가방에 가득히 담겨 반짝이는 장신구들은 물욕이 생길 만한 상황이 아닌 가람에게조차 멋지게 보였다.

금은방이란 하나가 있으면 주변에 몇 개가 더 있기 마련이라, 가람은 무거운 쇼퍼 백을 챙겨 들고 주변의 금은방 세 곳을 모두 털었다.

처음에만 잠깐, 양심의 가책이 있었을 뿐 가람은 이제 즐기고 있었다.

결국 장신구로 가득 찬 쇼퍼 백 두 개를 손에 넣은 가람은 허리가 휠 것 같은 무게에도 불구하고 낑낑거리며 들고 옮겼다.

보석이라고 해도 돌. 금은이라고 해도 금속이라 가람이 든 무게는 거의 40kg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무겁지만 들 수는 있어.’ 하고 들어 올린 가람은 팔이 떨어질 듯하고 허리가 접힐 것 같은 무게에 걸음이 처지기 시작했다.

가람은 결국 쇼퍼 백을 자리에 내려놓았다. 겨우 200미터 남짓 걸었을 뿐인데 가람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먼저 마트로 가서 카트를 하나 빼 와 그것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방 하나를 버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200미터나 들고 온 노력이 아깝기도 했거니와 얼마든지 새로 생긴다고 해도 가람의 25년간 쌓아 온 소시민적인 근성이 제 손에 들어온 귀금속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미련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길거리에 가방을 내려놓은 가람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다시 걸었다.

모든 고생은 욕심에서 오는 거라는 명언을 가슴 가득히 새기며 허리를 펴고 마트로 향했다.

길을 건너기 직전, 가람의 눈이 잠시 경찰서를 향했으나 가람은 우선 마트부터 뒤지기로 결정했다.

마트로 간 가람은 제일 먼저 약국으로 가 진통제와 소염제, 종합 감기약, 소독약, 후시X 같은 항생제 연고를 챙겼다.

감기약 대신 해열제를 챙기지 않은 것은 종합 감기약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비타민과 철분이 포함된 종합 영양제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반창고와 밴드, 치약과 칫솔을 가장 비싼 것으로 챙기고 소화제, 화상 연고, 벌레 물린 곳에 바르는 약, 마지막으로 바르는 형태의 파스를 챙겼다.

식품은 밀봉된 빵과 부피가 크지 않은 과자,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과일 통조림이나 말린 육포, 꼬마 김치, 고기 통조림을 챙겼다.

마차가 아니라 말의 등에 싣고 갈 테니 부피가 너무 크면 곤란했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물티슈를 하나 챙기고 마지막으로 생리용품을 담은 후 잡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트를 걸으며 가람은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하나씩 집어 카트에 넣었다.

스테인리스로 된 냄비, 장식용 전등, 향수, 볼펜, 라이터 마흔 개들이 1통, 청 테이프, 고무줄, 커다란 캐리어 가방, 초콜릿, 지갑,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필름, 새하얀 시폰 커튼까지 골고루 챙긴 덕분에 중간에 카트가 가득 차서 다른 카트로 한 번 교체해야 했다.

판매할 것 외에 자신이 입을 속옷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겉옷이야 그곳의 것으로 입어야 한다고 쳐도 속옷까지 따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람은 가득 채운 카트 두 개를 끌고 스포츠 레저 코너로 향했다.

최고급 침낭과 코펠, 고급 배낭과 튼튼한 우산, 자가발전 손전등, 가위, 미니 가스램프, 손난로, 다용도 맥가이버칼, 배에 두르는 형식의 복대 가방, 간이 정수기 필터, 다중 잠금 자물쇠도 다섯 개 챙겼다.

그것만으로 세 번째 카트가 완전히 가득해졌기에 가람은 살짝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여관방의 절반이 자신의 물건으로 가득 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람은 욕심부리지 말고 캠핑용품들은 하나씩만 챙기기로 했다.

그렇게 자신이 고른 물건들을 한자리에 놓고 보니 커다란 카트를 넘치게 쌓아 총 네 카트나 되었다.

사탕을 비롯한 과자, 초코바, 보존식이 한 카트를 가득 채웠고 잡화가 한 카트, 하얀 시폰 커튼과 하얀 극세사 커튼이 한 카트, 여행용품이 한 카트다.

카트는 가람이 들어가서 편안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라, 그렇게 모아 놓고 보니 정말로 가람이 묵고 있는 방의 절반 정도는 채울 것 같았다.

저것들을 다 가져다 파는 것도 엄청나게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하지만 가람은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지 않았다.

다양한 물건을 팔아서 물건들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건을 모두 정렬한 가람은 빈 카트를 하나 더 빼어 마트를 나섰다. 길거리에 놓아둔 금은보화를 가지러 갈 차례였다.

가람이 놓아둔 쇼퍼 백은 얌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백을 들어 카트에 담은 가람은 마트 대신 경찰서로 향했다.

가람이 뽑은 챙겨 올 목록 중에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은 역시 총일 것이다.

교통이 마비되었으니 미국으로 가서 널려 있는 총기를 주워 오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군대를 뒤질 수도 없다.

가람은 군부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보편적인 가람 나이대의 여성들은 군부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람은 막연히 생각했다. 영화에서 가끔 보이던 경찰들은 총을 갖고 있었으니까 있겠지 하고. 그리고 그 생각은 의외로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경찰서는 극단적인 경우를 대비해 상당한 수준의 무장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경찰서로 들어선 가람은 일단 첫 홀의 서랍을 모두 열어 보았다. 잠겨 있는 서랍도 있었지만 열리는 서랍도 있었다.

그러나 열리는 서랍에는 단순히 서류만이 있을 뿐 가람이 찾고 있는 물건은 없었다.

다른 장소를 뒤지려고 이동하던 가람은, 뜻밖에도 옷걸이에 걸린 외투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리볼버 한 정을 발견했다.

누군가 외투와 함께 걸어 놓고 잠시 다른 볼일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홀스터째로 그것을 벗겨 낸 가람은 조끼의 형태로 된 그것을 입고 단단히 여미었다.

왼쪽 갈비뼈 부근에 위치한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낸 그녀는 벽에 대고 시험 삼아 한 발 발포했다.

반동에 어깨가 들렸지만, 처음 총을 쏜다는 긴장으로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기에 손목이 삐거나 총을 놓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포탄인 덕분에 반동이 그리 심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가람은 그 반동을 기억하고 자신이 쏜 벽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았다. 총탄이 어디로 튀었는지 벽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경찰은 보통 앞의 세 발은 공포탄, 뒤의 세 발은 실탄으로 장전하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모르는 가람은 자신이 조준을 잘못 한 것으로 알고 조심히 물러서 가늠쇠를 보고 다시 발포했다.

가늠쇠를 보는 방법은 술을 마신 아버지가 군대에서 명사수로 복무한 활약상을 섞은 입담을 펼치며 알려 준 것이었다.

그 명사수의 피가 이어졌는지, 연달아 쏜 총탄의 첫 실탄은 가람이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탄착했다.

가람은 탄창이 모두 비어 딸깍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총탄을 발사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지구에 울리는 소음은 가람의 총탄 소리밖에 없었다.

세 발의 총탄은 500원짜리 동전만 한 틈을 두고 밀집해 있었다.

건물 안에서 총을 쏜 덕분에 귀가 먹먹하고 머리가 울렸지만 가람은 시원한 기분으로 리볼버를 다시 홀스터에 꽂아 넣었다.

이제 탄약을 찾을 차례였다.

0